네덜란드와 프랑스 정치불안으로 최근 글로벌 금융시장이 요동쳤다. 네덜란드 정치권이 긴축안 합의에 실패해 내각이 총사퇴하고 프랑스 대선 1차 투표 결과 좌파 사회당 후보 당선이 유력해진 탓이다. 금융시장에 불안이 번지면서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국채값이 폭락했고 유로화 가치도 약세를 면치 못했다. 독일, 프랑스, 스페인, 이탈리아 등 주요국 증시도 불안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그리스에 대한 2차 구제금융 결정으로 한동안 안정세를 보이던 유로존 재정위기가 다시 불거지는 모양새다. 2년 넘게 진행된 유로존 재정위기가 치료법을 찾지 못한 채 계속 악화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환자(재정위기국) 상황이 모두 다른 탓이 크다. 스페인이나 아일랜드처럼 부동산 거품붕괴로 금융부실이 심해진 나라와 이탈리아처럼 대규모 인프라 사업으로 나라 빚이 늘어난 곳에 대한 처방이 같을 수 없기 때문이다.

[Focus] 유럽 재정위기 2년… 걷히지 않는 '공포의 그림자'

#긴축처방, 잘못된 처방일까

지난 21일 체코 프라하에선 12만명이 참가한 대규모 긴축반대 시위가 벌어졌다. 긴축반대 시위대는 툭하면 아테네와 마드리드 도심도 점거한다. ‘나라가 망해가는’ 상황에서 벌이는 파업의 명분은 긴축반대. 유럽의 공식 처방전인 긴축정책에 재정위기국 내부의 저항은 여전히 거세다. 연금 삭감과 임금 감소, 실업 증가 등 긴축의 부담을 국민들이 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나마 올 3월 최종 합의를 본 긴축 기반의 신재정협약도 좌초 위기에 처했다. 독일 주도 긴축정책은 네덜란드와 프랑스가 지지하면서 유럽 25개국이 적용키로 관철됐는데 네덜란드와 프랑스 정치불안으로 정책기반이 무너진 것이다.

근본적으로 “아끼고, 조이는” 긴축정책이 유럽경제를 살리는 대안이 될 수 없다는 비판도 있다. 폴 크루그먼 미 프린스턴대 교수는 “경기 부양이 아닌 긴축정책은 자살로 이르는 길”이라고 주장했다. 긴축 처방은 독일이 주도했다. 1930년대 초인플레이션을 경험한 독일은 물가 상승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여왔다. 하지만 긴축을 통해 이룬 독일의 성공 경험이 경제사정이 다른 나라에서도 통한다는 보장은 없다.

#초기치료, 때를 놓치다

“그리스를 정치적으로 지원한다.” 2010년 2월10일 그리스 문제가 국제문제로 비화된 뒤 열린 첫 유럽연합(EU)정상회의에서 나온 결정이다. 2009년 12월9일 피치가 그리스의 국가신용등급을 강등한 뒤 석 달 가까이 금융시장이 요동쳤지만 EU는 관망만 할 뿐 그리스 사태 개입을 주저했다. “(자구 노력 중인) 그리스를 지지한다”는 립서비스만 내놓은 채 구체적인 지원방안을 제시하지 않은 것.

실망한 시장은 그리스 국채 투매에 들어갔다. 같은해 5월 그리스에 대한 1차 구제금융이 결정됐지만 지원금액(1100억유로)은 시장의 기대에 못 미쳤다. 시장 불안은 그리스와 경제사정이 비슷한 아일랜드, 포르투갈로 번졌고 그때마다 EU의 미온적 대응→위기 재발→제한적 개입→위기 확대 및 전염의 형태가 반복됐다. 초동대처가 실패하면서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도 못 막게 키웠다.

#복지병, 뿌리가 깊다

남유럽의 과도한 복지제도는 재정위기가 발생한 근본 원인으로 꼽힌다. 그리스 이탈리아 등 남유럽 국가들은 경제 규모에 어울리지 않게 긴 휴가(바캉스)와 조기 은퇴, 넉넉한 연금,높은 실업수당, 잘 갖춰진 의료보험이라는 고복지 시스템을 구축하며 재정부담을 키웠다.

재정위기가 터지기 직전인 2010년까지 그리스에서 사회보장비용이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8.0%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1개 회원국 평균(15.2%)을 웃도는 것은 물론 복지 대명사 노르웨이(16.2%)도 뛰어넘었다. 생애 최고 연봉의 95%를 연금으로 받는 상황에서 연금생활자는 인구의 23%(260만명)까지 늘었다. 정부가 실업률을 낮추기 위해 공무원 수를 대폭 늘리면서 재정 적자는 불어났다. 정치인들이 표를 얻기위해 복지정책을 선심성으로 쏟아냈고 유권자들이 여기에 유착하면서 가능했던 일이다. 현재 남유럽 복지제도는 대대적인 수술에 들어갔지만 한번 복지에 맛들인 국민들의 습성은 쉽게 변하지 않고 있다.

#리더십 부재, 재정위기 키우다

유럽의 리더십 부재는 재정위기를 키운 주범 중 하나로 지목된다. 최대 경제대국인 독일은 “밑빠진 독에 물 부을 수 없다”며 적극적인 개입을 주저하고 있다. 올초 국가신용등급이 강등된 프랑스는 제 코가 석 자 상황이다. 영국은 신재정협약 불참을 비롯해 유럽대륙의 주요 정책결정과정에서 소외됐다. 여기에 국제통화기금(IMF) 등에선 유럽의 재정위기 대응기금 규모를 1조유로 규모 이상으로 키우라고 주문하고 있지만 유럽은 유럽재정안정기금(EFSF·4400억유로)과 유로안정화기구(ESM·5000억유로)를 올 한 해 동안 한시적으로 병행 운용하는 차선책을 택했다. 유로존 전체가 공동 위기대응기금에 돈을 내놓을 만한 여유가 없는 탓이 크기 때문이다.

이처럼 유로존이 이달 초 재정위기 ‘방화벽’ 규모를 8000억유로 규모 수준으로 두 배 가까이 키우기로 결정했지만 재정위기를 신속하게 진압할 수 있는 ‘빅 바주카포’를 갖췄는지에 대해선 이견도 만만찮다.

김동욱 한국경제신문 기자 kimd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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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정위기 안전지대 네덜란드도 '흔들'

[Focus] 유럽 재정위기 2년… 걷히지 않는 '공포의 그림자'
재정위기 안전지대로 불리던 최고 국가신용등급(AAA)의 네덜란드가 흔들리고 있다. 네덜란드 연정을 구성하고 있는 3개 정당이 160억유로 규모 예산긴축 합의에 실패한 뒤 내각이 총사퇴하는 정치혼란이 발생한 탓이다.

글로벌 신용평가업체 피치가 “네덜란드가 재정적자 감축 조치를 제대로 취하지 않으면 AAA신용등급을 강등할 수 있다”고 경고했던 터여서 글로벌 시장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당장 네덜란드 국채금리와 안전자산으로 불리는 독일국채 금리차는 4년 내 최대 수준으로 벌어졌다.

앞서 네덜란드 정치권은 내년까지 재정적자 규모를 국내총생산(GDP) 대비 3% 미만으로 낮추기 위한 긴축안 협상을 진행했었다. 하지만 정치권 일각에서 “경제에 부담을 준다”는 이유로 정치권이 국민들 눈치를 보면서 긴축안 집행이 삐걱거렸다. 이는 다시 네덜란드가 최고신용등급(AAA)이 위협받는 사태로 확대됐다.

주요 외신들은 “재정위기가 유럽 변방에서 핵심지역으로 번졌다”며 우려를 키웠다. 네덜란드는 독일 룩셈부르크 핀란드와 함께 유로존에 남아 있는 4개 ‘AAA신용등급’ 국가 중 하나다.

네덜란드 일간 데폴크스크란트는 “네덜란드가 재정위기 여파로 최고신용등급(AAA)을 박탈당한 프랑스와 오스트리아가 간 길을 따라가고 있다”고 평가했다. 영국 BBC방송 역시 “지금껏 네덜란드는 투자안전지대로 여겨졌지만 이제 코너로 몰렸다”며 “올해 GDP 대비 재정적자 비율이 정부 예상치인 4.6%를 넘어 4.7%까지 높아질 수도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독일 경제주간 비르츠샤프츠보헤는 “네덜란드에서 긴축에 따른 생활고를 상징하는 ‘치즈빵과 우유 한잔’이란 표현이 유행하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