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 가정의) 상징으로 (국회에) 들어왔지만 상징으로만 끝나지 않게 다문화 가정뿐 아니라 약자와 소외 계층을 위해 일하겠습니다. 끝까지 약속을 지킬 수 있도록 많이 응원해 주십시오.”

이번 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헌정 사상 첫 이주민 출신 국회의원이 된 이자스민 당선자(35·사진)는 17일 국회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이같이 말했다. 이 당선자는 이번 선거에서 새누리당 비례대표 후보로 입후보했다. 이 당선자는 당선 안정권인 17번을 배정받았다. 국제 결혼이 늘면서 농촌 등에서 다문화 가정이 급증한 데다 이주노동자들이 국내에 정착하는 경우도 많아 국회에서도 그들의 목소리를 대변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판단에서다. 이 당선자는 2010년 지방선거에서 경기도 의회의 한나라당 비례대표로 당선된 몽골계 이라 의원(33)에 이어 두 번째 이주민 출신 의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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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당선자는 지난해 말 개봉한 영화 ‘완득이’에서 주인공 완득이의 어머니 역을 맡아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영화에서 17년 만에 찾아간 아들 완득이에게 “잘 자라줘서 고마워요”라고 완득이 어머니가 말하는 장면에 영화 관객들은 눈시울을 적셨다.

이 당선자는 필리핀 출신이다. 한국에 정착하게 된 계기는 1995년 한국인 항해사와 사랑에 빠지면서다. 당시 이 당선자는 의과대학 진학을 목표로 아테네오 데 다바오 대학 생물학과에 재학하고 있던 학생이었다. 가족과 주변의 반대가 심했지만 이 당선자는 그해 한국행 비행기를 탔다. 그리고 1998년 귀화하면서 남편 성을 따라 성씨를 ‘이’씨로 바꿨다.

이 당선자는 2005년 한 방송사의 ‘외국인 주부가요열창’에 출연하기 전까지만 해도 평범한 주부였다. 이후 EBS ‘외국인을 위한 한국어’ 프로그램에서 한국어 강사를 맡는 등 다양한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정부 부처의 자문 요청도 줄을 이었다. ‘다문화’가 한국 사회의 화두로 떠오르면서다. 이 당선자는 2008년에는 최초의 이주 여성 봉사단체인 ‘물방울 나눔회’를 조직하는 등 이주민 권익 향상을 위해 다방면에서 노력했다. 지난해에는 서울시 외국인 공무원 1호로 임용돼 외국인 지원시설인 서울글로벌센터에서 일해왔다.

이 당선자에 대해서 일부 인터넷 이용자들은 “불법 체류자가 판을 치게 됐다”, “매매혼이 늘어날 것” 등의 비난을 가했다. 외국인의 활동 영역이 넓어지면서 ‘제노포비아(외국인 혐오)’ 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하지만 이런 인종차별적 발언에 대해서 경계하자는 주장을 펼친 인터넷 이용자들도 많았다. 이 당선자는 “이번 일로 상처도 받았지만, 주변 사람들 중에선 격려와 박수를 쳐주면서 힘내라고 하는 분들이 굉장히 많아 희망을 잃지 않았다”며 “대한민국의 포용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한 번에 증명할 수 있는 기회였다”고 말했다. “다른 다문화 가정 구성원들이 더 많은 상처를 받을까 봐 그게 더 걱정”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조귀동 한국경제신문 기자 claymo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