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cus] 北 로켓발사 실패…135초만에 1년치 식량 날렸다
다소 안개가 낀 날씨였던 지난 13일 오전 7시38분55초. 평안북도 철산군 동창리 발사장에서 ‘광명성 3호’ 위성이 탑재된 ‘은하 3호’ 로켓이 쏘아올려졌다. 국제사회의 거센 비판에도 불구, 북한의 새 지도자 김정은으로선 자신의 시대가 열렸음을 알리는 승부수였다. 하지만 로켓은 1단 분리에도 성공하지 못한 채 공중에서 폭발했다. 미국은 예고한 대로 북한에 대한 영양식 지원을 중단한다고 밝혔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북한을 강력하게 규탄하는 의장성명을 채택했다. 북한 주민들의 1년치 식량에 해당하는 비용인 8억5000만달러(9600억원)를 공중에 날림과 동시에 국제사회에서의 고립을 자초하는 데는 불과 135초밖에 걸리지 않았다.

#16일만에 약속 깨고 로켓 발사

북한이 장거리 로켓 발사를 예고한 것은 지난달 16일. 북한 조선우주공간기술위원회 대변인은 이날 담화를 통해 “김일성 주석 생일(4월15일)을 맞아 4월12~16일 사이에 자체 기술로 제작한 실용위성을 쏘아올린다”며 “평화적인 과학기술 위성 발사와 관련한 국제 규정을 원만히 지킬 것”이라고 밝혔다. 국제사회의 비판을 의식한 듯 ‘실용적 목적의 인공위성’임을 재차 강조하고 위성 발사 현장에 외신기자도 초청하겠다는 뜻도 피력했다.

국제사회는 즉각 반대 입장을 밝혔다. 북한은 2009년 4월 장거리 미사일 발사와 같은 해 5월 실시한 2차 핵실험으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결의안 1874호에 따른 제재를 받고 있다. 결의안에 따라 북한은 탄도 미사일 발사 기술을 이용한 어떤 발사행위도 금지돼 있다. 비록 북한이 ‘광명성 3호’가 인공위성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발사행위 자체만으로도 유엔 안보리 결의 1874호를 정면으로 위배하는 셈이다.

특히 북한과 미국 간 2·29 합의가 발표된 지 불과 16일 만에 나온 것이어서 국제사회의 충격은 더 컸다. 북·미는 2월29일 북한이 장거리 미사일 발사·핵관련 활동의 일시 중지를 약속하고 미국은 북한에 24만t 규모의 영양식을 지원하기로 합의한 뒤 영양 지원 이행을 위한 후속대화를 이어가던 중이었다. 미국은 북한의 발표에 대해 “장거리 로켓 발사를 강행한다면 약속했던 영양 지원을 중단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김정은 시대 출범 알리는 '도발'

국제사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장거리 로켓 발사를 강행한 것은 새 지도자인 김정은 시대의 개막을 자축하기 위해서다. 로켓 발사 직전인 11일 북한은 제4차 조선노동당 대표자회를 열어 김정은을 노동당 제1비서로 선출했다. 이어 발사 당일인 13일 최고인민회의에서는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으로 추대해 김정은으로의 3대 세습을 완성했다. 이에 맞춰 장거리 로켓을 쏘아올림으로써 대내외적으로 ‘김정은 체제’의 시작을 알린 셈이다.

주민들을 결속시키기 위한 측면도 있다. 북한은 그간 2012년이 ‘강성대국(군사적으로 강하고 경제적으로 부유한 나라) 진입의 해’가 될 것으로 선전해왔다. 김일성의 100번째 생일인 4월15일은 강성대국 진입을 선호하는 시점이 될 것이라고 떠들어왔다. 그러나 북한의 경제사정은 나아지지 못했고, 주민들이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새 지도자의 업적도 내놓지 못했다. 북한 당국으로서는 주민들에게 ‘강성대국’의 이미지를 보여줄 수 있는 이벤트가 필요했던 셈이다.

하지만 이를 위해 북한이 치른 비용은 너무도 크다. 우리 정부는 이번 미사일 발사에 8억5000만달러가 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동창리 미사일 발사장 건설에 4억달러(4500억원), 대포동 2호(탄도체) 개발에 3억달러(3400억원), 초보적 위성 개발에 1억5000만달러(1700억원) 등이다. 이 돈이면 중국산 옥수수 약 250만t, 쌀은 140만t을 살 수 있다. 지난해 10월 기준 북한 주민 1인당 하루 실제 옥수수 배급량(355g)으로 따지면 북한 주민 1900만명의 1년치 식량에 해당한다. 2·29 합의로 약속됐던 미국의 대북 영양지원 24만t, 약 2억달러(2250억원)가 물거품이 된 점을 감안하면 1조원에 달하는 돈을 허공에 날린 셈이다.

# 유엔 안보리 의장성명 채택

국제사회도 등을 돌렸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로켓이 발사된 지 사흘 만인 16일 “역내에 ‘중대한 안보 우려(grave security concerns)’를 초래했음을 ‘개탄한다(deplore)’”며 “안보리는 북한이 탄도미사일 기술을 이용한 어떠한 추가적인 발사도 진행하지 말 것과 탄도미사일 관련 모든 활동을 중단함으로써 결의 1718호와 1874호를 준수하고, 미사일 발사 모라토리엄에 대한 기존의 약속을 재확인할 것을 요구한다”는 내용의 의장성명을 채택했다. 의장성명이나 결의안 채택까지 통상 8~10일이 걸리는 점을 감안하면 이례적으로 신속하게 대처한 것이다. 국제무대에서 북한의 후견인 역할을 해온 중국도 의장성명 문구에 합의해 북한에 경고 메시지를 보냈다.

한국과 미국은 2·29 합의가 사실상 폐기됐다는 데 뜻을 같이했다. 무엇보다 미국과 합의를 이룬 지 불과 16일 만에 정면으로 위배함으로써 미국 내 대북 협상파의 입지를 좁힌 것은 북한의 가장 큰 패착이다. 북한에 대한 신뢰를 스스로 무너뜨림으로써 북한은 국제사회에서 고립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조수영 한국경제신문 기자 delinew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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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면 구긴 북한, '핵 장난' 언제까지…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가 결국 실패로 돌아가면서 북한의 다음 행보가 주목된다. 북한 내에서 강경 입장을 주도하는 군부로서는 이번 실패를 만회하기 위한 후속 카드가 절실해진 상황이어서 3차 핵실험 등 추가적인 도발에 나설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지금까지 북한은 장거리 로켓 발사 후에는 핵실험을 실시해왔다. 북한은 2006년 7월 ‘대포동 2호’ 미사일 발사 3개월 뒤인 10월 1차 핵실험을 했고, 2009년에도 장거리 미사일 ‘광명성 2호’를 발사한 지 50일 뒤인 같은 해 5월25일 2차 핵실험을 강행했다.
[Focus] 北 로켓발사 실패…135초만에 1년치 식량 날렸다
북한은 이번에도 핵실험 가능성을 부정하지 않고 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를 강력하게 비판한 의장성명이 채택되자 북한 외무성은 17일 성명을 내고 ‘2·29 북·미합의’가 파기됐다고 밝혔다. 이어 “우리는 북·미합의에서 벗어나 필요한 대응조치들을 마음대로 취할 수 있게 됐으며 그로부터 파생되는 모든 후과는 미국이 전적으로 책임지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향후 추가적인 핵실험에 나설 수 있음을 내비친 것으로 풀이된다. 2·29 합의는 북한이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 영변에서의 우라늄 농축 활동을 임시로 중단하고, 그 대가로 미국은 북한에 24만t 규모의 영양식을 지원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다. 실제 북한이 최근 풍계리에서 핵실험을 위해 땅을 파는 모습이 위성에 포착되기도 했다. 풍계리는 2006년, 2009년 1·2차 핵실험이 실시된 곳이다. 정부 고위 당국자는 “핵실험 한 번에 플루토늄은 8㎏, 고농축우라늄(HEU)은 25㎏이 든다”며 “북한으로서는 성공 가능성이 낮은 핵실험을 할지, 핵물질을 보유해 미국과의 협상에서 몸값을 높일지를 두고 치밀한 계산을 벌이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