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킹 푸어'와 유럽의 복지모델


유럽 재정위기는 소강 상태에 접어든 듯하지만 EU(유럽연합) 전역에서 점점 많은 노동자들이 벼랑 끝으로 몰리고 있다. 파리정치대학(IEP)의 장 폴 피투시 교수는 “각국 정부가 재정적자 감축을 위해 지출을 대폭 삭감함에 따라 ‘워킹 푸어’ 인구는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우려했다. - 4월1일 뉴욕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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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십만명의 유럽인들이 집을 구할 돈이 없어 캠프장이나 자동차에서 생활한다. 프랑스에서만 약 12만명이 캠프장에서 지낸다. 친척 집에 얹혀 사는 사람도 수백만명이다. 경기침체 여파로 실업자가 급증하고, 새로 생긴 일자리도 대부분 비정규직뿐인 유럽의 현재 모습이다. 유로화를 사용하는 17개국(유로존)의 2월 실업률은 10.8%로 유로화 도입 이후 사상 최고치다. 스페인이 23.6%로 가장 높은 것을 비롯 그리스(21%), 포르투갈(15%), 아일랜드(14.7%), 프랑스(10%), 이탈리아(9.3%) 등도 높은 실업률을 나타냈다. 16~24세의 청년 실업률은 스페인과 그리스가 50%에 육박하고 포르투갈과 이탈리아 등도 30%에 달한다. 총 실업자 수는 1713만명으로 한 달 만에 148만명이 늘었다.

직장이 있는 사람도 고통스럽긴 마찬가지다. ‘하우스 푸어(house poor)’가 집을 가졌지만 과도한 대출에 따른 빚부담으로 허덕이는 사람들이라면 ‘워킹 푸어(working poor)’는 일을 해도 가난한 사람들을 뜻한다. 워킹 푸어 급증 현상은 그리스 스페인 등 재정위기의 직격탄을 맞은 국가들에서 프랑스 독일 등지로 확산되는 추세다. EU 통계청에 따르면 유로존 근로자들 가운데 연간 생계비가 빈곤선인 1만240유로(1500만원)에 못 미치는 비중이 2006년에는 7.3%였으나 2010년에는 8.2%로 높아졌다. 스페인과 그리스에서는 비중이 두 배로 높다.

왜 일을 해도 가난한 것일까? 일한 만큼 대우를 받을 수 있는 좋은 일자리가 없기 때문이다. 지난해 EU에서 새로 만들어진 일자리의 절반이 비정규직이었다. 경제위기로 소비와 투자가 극도로 위축된 상황에서 양질의 일자리가 창출될 리 없다.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정부가 너무 오랫동안 ‘국가는 자애롭고 시장은 냉혹하다’며 시장에 간섭하고 지출을 늘려온 데 있다. 그리스나 이탈리아, 프랑스 등은 나라경제의 성장잠재력과 경쟁력을 키우는 데 힘쓰기보다는 복지지출에 많은 세금을 퍼부었다. 기업을 키우기보다는 공무원과 공공부문을 확대해 정부가 세금으로 일자리를 만들어 월급을 주어왔다. 연금과 무상 의료혜택, 주택보조금 등 유럽형 복지모델은 나라를 부도 직전의 위기로 몰아넣었다. 정부가 해마다 세수 이상으로 쓰고, 경상수지 적자도 눈덩이처럼 쌓인 결과 국민들이 일할 수 있는 양질의 일자리가 사라진 것이다.

오는 22일 대선 1차 투표가 예정된 프랑스에선 요즘 후보간 설전이 치열하다. 재선을 노리는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은 일자리를 위협하는 이민자 단속에 나서겠다는 공약을 내놓고 있다. 프랑수아 올랑드 사회당 후보는 정부 돈으로 교사 일자리 6만개를 만들고 부자들에겐 최고 75%의 소득세를 물리겠다고 공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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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에서 발행되는 주간 경제지 이코노미스트(Economist)는 최신호(3월31일자)에서 “프랑스는 GDP(국내총생산) 대비 공공지출 비율이 56%로 유로존 최고 수준”이라며 “정치인들이 ‘불편한 진실’을 감추려는 건 흔한 일이지만 개혁을 단행하지 않는다면 프랑스가 다음 유로존 위기의 중심에 서게 될 수도 있다”고 전했다.

정치 위기가 경제 위기를 더 오래 지속시킬 가능성이 있다는 경고다.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의 퍼주기식 복지가 춤을 추는 한국으로서도 남 얘기가 아니다. “가난 구제는 나라님도 못한다”는 속담처럼 실업과 워킹 푸어 문제를 풀려면 무엇보다 민간 기업을 키워 제대로 된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야 한다.

강현철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hckang@ha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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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가안정 위해 수입품 세율을 탄력적으로 적용

삼겹살 수입과 할당관세


전국 양돈 농가가 돼지고기 무관세 수입에 반발해 2일 시작하기로 한 돼지고기 무기한 출하 중지 방침을 철회했다. 농림수산식품부와 대한양돈협회가 전날 마라톤 협상에서 삼겹살 무관세 수입물량을 대폭 줄이는 등의 합의안에 서명했기 때문이다. 정부는 돼지고기 수급을 고려해 할당관세를 적용, 2분기에 무관세로 삼겹살 7만t을 수입하려 했었다. - 4월2일 한국경제신문

[강현철의 시사경제 뽀개기] 일해도 가난한 사람들…'퍼주기 복지' 가 남긴 상처
☞ 관세는 수출·입 물품에 대해 부과ㆍ징수하는 세금이다. 관세를 부과하는 목적은 크게 △국가 재정수입 확대 △국내 산업 보호 △물가안정 등 기타 정책적 고려 등을 꼽을 수 있다. 일반적으로 관세는 △수출품에 대해 물리는 수출세 △수입품에 대해 부과하는 수입세 △국경을 통과하는 물품에 대해 부과하는 통과세로 구분된다. 이가운데 오늘날 수출세나 통과세를 부과하는 국가는 거의 없고 대부분의 나라가 수입세를 채택하고 있다. 관세는 또 부과기준에 따라 △수입품의 가격에 대해 일정 비율로 부과하는 종가세 △수입품의 수량에 대해 일정액으로 물리는 종량세로 나눌 수 있다.

관세는 세수 확충뿐만 아니라 수입을 억제해 국내 산업을 보호하는 역할도 한다. 하지만 높은 관세가 세계무역을 위축시키고 성장을 가로막는 걸림돌로 작용함에 따라 WTO(세계무역기구) 체제에서 대폭적인 관세 인하가 이뤄지면서 관세의 중요성은 많이 쇠퇴했다.

수입물품에 대해 적용되는 관세율은 크게 △기본관세율 △양허관세율 △탄력관세율이 있다. 기본관세율은 국회에서 법률의 형식으로 제정한 세율이다. 양허관세율은 특정 국가 또는 국제기구와 조약이나 협정 등으로 정한 세율을 뜻한다. 탄력관세는 경제여건 변화에 신축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일정 범위 안에서 행정부가 관세율을 탄력적으로 변경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탄력관세는 외국의 덤핑 판매에 대응해 부과하는 덤핑방지관세(반덤핑관세)를 비롯해 여러 가지가 있다. 할당관세도 그 가운데 하나다. 할당관세는 △원활한 물자수급 또는 산업경쟁력 강화를 위해 필요할 경우 △수입가격이 급등한 물품 또는 이를 원재료로 한 제품의 국내 가격 안정을 위해 필요한 경우 △유사 물품인데도 세율이 너무 차이가 나는 경우에 부과되는 관세다. 수입을 늘릴 필요가 있으면 일정 수량까지 저율의 관세를 부과하고, 수입을 억제할 필요가 있는 경우에는 일정 수량을 초과해 수입되는 물품에 고율의 관세를 물린다.

이 밖에 △외국에서 보조금을 받은 물품의 수입으로 인한 국내 산업의 피해방지를 위해 부과하는 상계관세 △우리나라의 무역이익을 침해하는 나라로부터 수입되는 물품에 대해 물리는 보복관세 △특정 물품의 수입증가로 인해 국내 산업이 피해를 입을 경우 부과하는 긴급관세 △물품 간 세율 불균형 해소나 소비자 보호 등을 목적으로 부과하는 조정관세 △가격이 계절에 따라 크게 차이가 나는 물품에 부과하는 계절관세 등도 탄력관세의 일종이다.

이번 삼겹살 파동은 정부가 봄 나들이철을 앞두고 공급 부족이 우려된다며 물가안정 차원에서 1분기에 이어 2분기에도 7만t의 삼겹살을 무관세로 수입키로 하면서 비롯됐다. 가격 하락을 우려한 양돈농가들은 수입방침을 철회하지 않으면 돼지고기를 공급하지 않겠다고 위협했다. 정부는 양돈협회와 협상에 나섰고 결국 수입물량을 줄이기로 합의했다. 국내 삼겹살 소비량은 월평균 2만t이다. 공짜 점심은 없는 것처럼 모든 경제정책에도 비용이 뒤따른다. 소비자와 생산자(양돈농가) 사이에서 합리적으로 균형을 찾는 경제정책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