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프로야구에 '바람의 傳說' 남기다

“태양 앞에서 바람이 멎었다.” 언론들은 그의 은퇴 소식을 이렇게 표현했다. ‘태양’은 선동열 KIA 프로야구 감독을, 바람은 ‘바람의 파이터’ 이종범 선수를 뜻했다. 태양과 바람 사이에 어떤 함수 관계가 숨어 있는지는 미지수이지만 두 사람은 야구 천재의 은퇴를 무리수에서 자연수로 이끌어낸 듯하다. 이제 이종범은 공식 은퇴식만 남겨 두고 있다.
[피플 & 뉴스] 42살로 은퇴하는 '야구 천재' 이종범
이종범의 올해 나이는 42세다. 한국 프로야구 선수 중 최고참 현역이었다. 지난달 31일 은퇴를 선언하기 전까지 그는 2012년 시리즈를 위해 몸을 다듬었다. ‘올해도 뛰리라. 2루를 훔치는 노병의 슬라이딩을 보이리라.’ 팬들은 그의 2012년 시리즈를 의심하지 않았다. 그런 탓일까. 그의 은퇴는 4월1일 만우절 거짓말로 받아들여졌다.

해태, 주니치, KIA를 거친 그의 프로야구 인생 19년(1993년 3월~2012년 3월)은 바람 그 자체였다. 그는 수비에서는 봄바람처럼 부드러웠고, 타석에서는 폭풍처럼, 때론 칼바람처럼 베트를 휘둘러댔다. 1루에서 2루로 내달릴 때는 태풍이었다.

그의 기록에는 ‘바람의 파이터’의 전설이 내포돼 있다. 1993~1997년 해태 시절 이종범은 첫해만 빼고 타율 3할대를 넘었다. 작은 체구에 홈런도 16~30개를 때려냈다. 도루 역시 84개까지 ‘찍었다’. 야구 천재라는 별명도 이때 얻었다. 천재의 명성은 현해탄을 넘어 일본 야구계에도 알려졌다. 1998년 일본 명문 주니치 드래곤스는 이종범을 영입했고 천재는 그곳에서 온갖 견제와 부상 투혼으로 3년을 버텼다. 팔꿈치 부상으로 4년간의 일본 생활을 접은 그는 2001년 해태에서 이름을 바꾼 KIA로 복귀했다. 친정에 돌아온 그는 3년간 3할대 타율을 넘나드는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2003년 아테네 올림픽 예선에서 국가대표로 뛰었고, 2006년 36세의 나이로 WBC(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 대표로 출전, 일본 야구를 무너뜨리는 데 1등 공신 역할을 했다.

나이 탓일까. 그의 바람은 WBC 이후 한풀 꺾이기 시작했다. 바람의 속도가 떨어지면서 도루 수가 급격히 줄었다. 연간 10개 이내였다. 주니치 시절을 제외한 그의 통산 성적은 타율 2할9푼7리, 안타 1797개, 홈런 194개, 타점 730점, 도루 510개다.

야구 전문가와 팬들은 천재의 은퇴를 아쉬워한다. 50세의 투수 모이어와 47세의 투수 야마모토가 미국과 일본 프로야구에서 전설처럼 뛰고 있는 마당에 42세 은퇴는 이르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프로야구에선 경쟁이 키워드다. 나이와 이름값으로 야구를 하지는 않는다. 젊은 경쟁자는 끊임없이 올라온다.

은퇴가 끝은 아니다. 그의 앞에 또 다른 야구인생은 계속될 것이다. 선동열 감독도 후배를 위해 ‘뒷일’을 생각했을 터다. 개막전을 코앞에 둔 지금, 바람처럼 치고 바람처럼 달리는 이종범의 모습은 전설이 됐다. 천재의 은퇴식이 기다려진다면 당신은 그를 사랑한 사람이다.

고기완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dad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