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lobal Issue] 초저금리가  마냥 좋을까?…"버블 커지면 어쩌려고…"
초저금리(매우 낮은 이율) 정책에 대한 논란이 일어나고 있다. 시라카와 마사아키 일본 중앙은행 총재는 지난달 23일 미국 중앙은행(Fed)이 주최한 콘퍼런스에서 Fed의 초저금리 정책에 대한 경고 발언을 쏟아냈다. 그는 “거품 붕괴 후 초저금리 정책은 분명 필요한 조치였지만 부작용과 한계를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과 비슷한 통화정책을 펴고 있는 일본 중앙은행 총재의 발언이라 더 주목받고 있다. 이에 대해 벤 버냉키 Fed 의장은 “현재 통화 정책이 성장을 회복시키는 데 도움을 줄 것”이라고 강조하며 미국의 초저금리 정책 유지를 강하게 시사했다. 버냉키 의장은 또 조지워싱턴대에서 “2008년 발생한 미국의 금융위기는 저금리 정책 탓이 아니다”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초저금리 정책을 놓고 논란이 뜨거워지는 양상이다.

#지구촌은 초저금리 시대

미국을 비롯한 세계 주요국들이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기준금리를 낮추면서 글로벌 초저금리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미국은 현행 0~0.25%인 기준금리를 2014년 말까지 유지키로 했다. 또 보유 중인 단기 국채를 팔고 장기 국채를 사들여 장기 금리를 떨어뜨리는 ‘오퍼레이션 트위스트’를 오는 6월 말까지 지속할 계획이다. 유럽중앙은행(ECB)과 일본중앙은행도 시중에 자금이 돌 수 있도록 돕는 금리정책을 펴고 있다.

글로벌 초저금리 추세는 2008년 금융위기 여파와 연이은 유럽발 재정위기 사태로 주요국이 경기 부양에 나선 이후 나타났다. 지난 1월 Fed의 통화정책 결정기구인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는 정례회의 후 성명에서 “미국의 경제상황은 2014년 말까지 초저금리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진단하기도 했다. 특히 버냉키 의장은 “경제가 강력한 회복 단계로 진입했다고 선언하기에는 이르다”며 “유로존 재정위기에서 부는 역풍이 만만치 않다”고 지적했다. Fed가 경기 부양을 위해 초저금리 기조를 당분한 유지할 것이란 입장을 밝힌 것이다.

버냉키 의장은 장기 실업자가 전체 실업자의 40%를 웃도는 현상도 우려했다. 그는 “실업률을 떨어뜨리기 위해선 저금리 정책을 통해 소비자의 소비와 기업의 생산을 늘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기 실업자가 줄어들지 않으면 정부가 거둬들이는 소득세는 줄어들고, 실업수당 등 정부 지출은 늘어난다. 장기 실업은 근로자가 가지고 있던 기술력을 점점 잃게 해 국가경제의 생산성을 장기적으로 떨어뜨리는 요인이 된다. 실업률을 낮추기 위해 초저금리를 통한 경기 부양에 힘쓰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Fed는 초저금리 정책이 미국 증시에서 이탈한 투자자들의 복귀를 자극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달러 강세 속에 지난해 10월 이후 미 증시에서 빠져나간 자금은 450억달러(50조원)나 된다. 또 Fed는 초저금리 정책으로 5년 또는 7년 만기 국채의 신뢰를 높여 투자자를 끌어들일 계획이다.

[Global Issue] 초저금리가  마냥 좋을까?…"버블 커지면 어쩌려고…"
#"경제성장 역효과"지적도

문제는 초저금리가 길어지면서 부작용 또한 만만치 않다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초저금리 기조 유지로 시중에 자금이 넘치면서 주식과 부동산으로 투자가 몰리는 등 버블 위기가 다시 고조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마사아키 총재는 “저금리는 시간이 지날수록 생산성은 물론 자원 배분을 비효율적으로 만들어 경제성장 잠재력에 역효과를 낼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 “저금리가 지속되면 기업과 정부의 부채 상환 동기 유발이 줄어들고 원자재 가격도 밀어올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세계 중앙은행들의 중앙은행으로 통하는 국제결제은행(BIS)의 하이메 카루아나 총재도 “저금리 정책은 기업과 금융사들이 손실에 대한 인식을 하지 못하게 만들어 또다시 과도한 위험을 감수하도록 할 수 있다”고 말했다. BIS는 2008년 미국에서 금융위기가 발생하기 전 금융시스템에 위험이 형성되고 있다고 지적한 기관이다.

장클로드 트리셰 전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도 23일 “지금 중앙은행들이 동시에 시행하고 있는 경기부양책과 양적완화 등은 통상적인 방식에서 벗어난 통화정책”이라며 “이는 행동의 전염이라는 측면에서 봤을 때 다양한 위험을 가져올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 내에서도 Fed가 기준금리 인상 시기를 앞당겨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제임스 불러드 세인트루이스 연방은행 총재는 “초저금리 정책을 지나치게 긴 기간 약속하면 미국 경제와 세계 경제에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며 “Fed는 기준금리를 2013년 말 올려야 할 필요성이 있을지 모른다”고 지적했다. 그는 “올해 미국 경제가 약 3% 성장할 것으로 예상한다”며 “고성장은 아니지만 실업률을 낮추기엔 충분하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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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저금리의 후유증 '유동성 함정'

[Global Issue] 초저금리가  마냥 좋을까?…"버블 커지면 어쩌려고…"
일본은 1990년대 초저금리를 이어나갔다. 경기 부양을 위해서다. 일반적으론 금리가 낮아지면 기업은 싼 이자로 은행에서 돈을 빌릴 수 있기 때문에 투자와 생산을 늘리게 된다. 가계도 저축을 하기보다는 소비를 늘린다. 투자와 소비가 늘면 고용과 생산이 증가하고 소비와 투자를 촉진하면서 경기가 좋아지게 된다. 일본의 저금리 정책의 목적은 여기에 있었다. 하지만 1993년과 1994년, 일본의 경제성장률은 각각 0.2%와 0.62%에 불과했다. 초저금리를 통한 경기 부양에 실패한 것이다. 일본 경제가 ‘유동성 함정’에 빠졌기 때문이다.

유동성 함정이란 시장에 현금이 흘러 넘쳐 구하기 쉬운데도 기업의 생산·투자와 가계의 소비가 늘지 않아 경기가 나아지지 않는 상태를 말한다. 마치 경제가 함정에 빠진 것 같이 보여 붙은 이름이다. 유동성 함정은 경제 주체들이 경제 상황을 비관해 소비와 투자가 얼어붙을 때 주로 일어난다. 기업이 투자를 하기 위해선 투자한 사업이 성공할 것이라는 전망이 있어야 한다. 가계도 경기가 악화돼 물가가 떨어지는 상황을 예상한다면 소비를 줄일 수밖에 없다.

1990년대 일본에서도 경기 비론관이 팽배했다. 그래서 모든 경제 주체가 투자보다는 현금을 보유하려고 했다. 일본은행은 계속 금리를 낮춰 1995년 연 0.5%까지 떨어뜨렸다. 그럼에도 경제성장률은 1995년 1.94%, 1996년 2.82%에 그쳤다. 미국 Fed도 2007년 경기 부양을 위해 금리를 낮추기 시작해 2008년 0~0.25% 수준까지 낮췄다. 하지만 미국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2008년 4분기 -5.4%를 기록한 데 이어 2009년 1분기 -6.4%를 나타냈다. 유동성함정의 대표적 사례다.

금리를 계속 내리다 보면 어느 순간 제로금리에 이르게 된다. 중앙은행은 쓸 수 있는 모든 정책수단을 잃게 되고 경제는 유동성 함정에서 빠져나올 수 없게 될 수도 있다. 무분별한 초저금리 정책을 주의해야 하는 이유다.

고은이 한국경제신문 기자 kok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