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과 경제의 만남] (56) 鐵의 女人을  통해서 본  '시장과 정부'
지난 2월27일 전 세계인들의 시선은 제84회 아카데미 시상식이 열린 미국 로스앤젤레스 코닥 극장에 쏠렸다. 이날은 가장 많은 박수를 받은 이는 세 번째로 여우 주연상을 받은 미국 여배우 메릴 스트립이 바로 그 주인공이었다. 그녀는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의 일생을 그린 영화 ‘철의 여인’에서 대처 전 총리를 완벽히 재현해냈다는 찬사를 받았다.

철의 여인은 말년을 맞은 대처 전 총리가 일생을 회상하는 형태로 정계 입문,국회의원 당선,당수직 도전,총리 임명,정계은퇴까지 그녀의 정치 인생 전반을 조명하고 있다. 식료품집 둘째 딸로 태어나 남성 엘리트들이 장악하고 있는 영국 정계에서 새바람을 일으키는 과정을 실감나게 그려냈다. 하지만 그녀가 어떠한 정책을 폈고,그것이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해서는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오히려 말년에 이른 대처가 외롭게 자신의 영광스러웠던 시기를 회상하는 장면들은 오히려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희곡 등이 그려내는 몰락한 왕에 가깝다. ‘신자유주의’ 개혁을 밀어붙인 한 거물 정치인을 바라보는 복잡한 시각이 영화에 그대로 녹아들어 있는 셈이다. 대처 전 총리와 ‘대처리즘’ 정책에 대한 평가는 아직도 끝나지 않고 진행되고 있다.

#장기불황에 비틀댄 영국 경제

영국 경제는 제2차 세계대전을 치르면서 막대한 전쟁 비용과 전쟁 피해 누적으로 침체의 늪에 빠졌다. 영국의 산업 경쟁력은 2차 세계대전 이전부터 이미 미국 독일 등 다른 국가들보다 뒤떨어졌다. 6년간의 전쟁은 비틀대는 영국 경제에 결정타를 날린 셈이었다. 전쟁이 끝난 뒤 정권을 잡은 노동당은 경제 회생을 위해 적극적으로 정부 역할을 확대했다. 철도와 석탄 등 주요 산업들을 국유화하였고, 복지국가 건설을 목표로 완전고용과 사회보장제도 확대에 정책의 초점을 맞추었다. 이러한 정책의 근간에는 영국의 저명한 경제학자인 존 메이나드 케인스의 처방이 자리잡고 있었다. 케인스는 정부가 재정을 풀어 유효수요를 창출해야 불황에서 탈출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1960년대 말까지는 그럭저럭 경제가 순조롭게 움직였다.

1970년대 들어 영국 경제는 곪아왔던 상처가 한꺼번에 터지면서 위기를 맞게 된다. 가뜩이나 영국 기업들의 경쟁력이 뒤처진 상황에서 오일쇼크와 스태그플레이션이라는 대외 악재가 겹쳤기 때문이다. 그간의 친노동정책으로 생겨난 강력한 노조와 과도한 복지제도는 기업들이 고임금과 저효율에 시달리게 했다. 이른바 ‘영국병’이라는 신조어가 생겨났을 정도였다. 급기야 1976년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을 받기에 이르렀다.

#'대처리즘'이라는 독한 약

불황이 물러갈 조짐을 보이지 않자 영국인들은 케인스 경제학에 의문을 품기 시작했고, 대처 전 총리가 이끈 보수당은 노동당을 물리치고 정권을 잡게 됐다. 그녀는 케인스와 학문적으로 대척점에 서있던 프리드리히 하이에크의 말에 귀 기울였다. 그는 인간의 경제적 자유를 완벽하게 보장하는 유일한 제도가 시장이라고 보고, 시장에 대한 정부의 통제는 경제의 효율성을 저해한다고 역설하였다. 정부 재정을 줄여 민간에 자금이 흘러들어가야 투자가 확대되고 고용이 늘어 경기가 회복될 수 있다고 보았다. 또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과 공공부문의 민영화,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주장하였다. 그녀는 총리에 취임하자마자 복지 확충을 위한 공공지출을 과감히 삭감하고, 국영기업을 민영화하는 등 소위 ‘대처리즘’으로 불리는 정책들을 시행하는 데 매진하였다. 노동조합의 활동을 규제하기 시작하였고, 세금을 줄이고 각종 규제를 철폐하여 기업 활동의 폭을 최대한 보장하는 일에 전력을 기울였다. 영화 ‘빌리 엘리어트’는 대처 전 총리의 이러한 정책에 정면으로 맞섰던 광부들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또 각종 금융 규제를 과감히 풀어 금융 시장을 활성화했다.

대처의 극약처방은 효과를 보았다. 마이너스 성장까지 기록하던 영국 경제는 1982년부터 회복세로 돌아섰다. 1988년 경제 성장률은 선진국 경제에서는 이례적인 수준인 5.2%였다. 정부재정 규모도 1982년 국내총생산(GDP)의 48.4%에서 1990년 GDP의 40%로 줄었다. 노동시장을 유연화하고 과도한 사회복지 정책을 축소하면서 영국 경제의 체질은 건전해졌다. 그녀는 1990년까지 11년 동안 재임하며 영국사상 최장수 총리가 됐다.

#신자유주의 향한 분노 'Occupy'

대처의 처방이 모든 면에서 옳았던 것은 아니다. 대처 집권 이후 영국 사회는 부(富)의 불평등이 심각해졌다. 사회 양극화로 치안이 불안해지고 사회 유동성도 저하됐다. 노조의 입김이 약해지면서 근로자의 대량 해고, 임금 삭감, 비정규직 확대 등이 용이해져 노동시장의 불확실성이 증폭되었다.

다른 나라들에서 추진된 신자유주의가 세상에 가져온 변화들도 대동소이했다. 시장 기능의 확대와 경쟁 원리의 적용으로 경제 규모가 커지고 효율이 높아져 사회 전체의 부를 증가시켰다. 하지만 계층 간,국가 간 빈부격차가 확대되는 부작용이 발생했다. 이러한 비판은 2008년 미국에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벌어지고 그로 인해 글로벌 금융위기가 촉발되자 본격적으로 세력을 얻었다. 지나친 규제 완화와 자본의 세계화가 금융 위기의 원인이라는 게 그들의 주장이다. 최근 미국에서 벌어진 ‘월가 점령(Occupy Wallstreet)’ 시위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분노의 표출이다.

그렇다고 신자유주의에 대한 대안이 명시적인 형태로 제시되는 것은 아니다. 정부의 적극적인 재정 정책을 근간으로 하는 케인스의 처방으로 되돌아가지는 못하는 것이다. 금융위기를 맞아 일시적으로 늘어난 정부 지출 탓에 오히려 재정 위기를 걱정하는 목소리마저 나온다. 세계는 지금 시장과 정부, 하이에크와 케인스 간의 두 번째 라운드를 맞이하고 있다.

☞ 경제 용어 풀이

[인문학과 경제의 만남] (56) 鐵의 女人을  통해서 본  '시장과 정부'
▧ 신자유주의 (Neo-liberalism)

정부의 시장개입을 비판하고 시장과 민간의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중시하는 사상이다. 신자유주의는 작지만 강한 정부를 지향하고, 세계화를 표방한다. 또 공공부문의 민간 이양과 규제 완화 등을 추구한다. 1980년대 영국의 마거릿 대처 총리와 미국의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추진한 정책들이 신자유주의의 대표적인 예로 꼽힌다.

정원식 <KDI 전문연구원 kyonggi96@kdi.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