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들어가며…
안녕하세요. 신학기가 시작한 것이 얼마 되지 않았는데 벌써 4월입니다. 4월에도 모의고사와 중간고사가 있는 중요한 시기이네요. 날씨가 따뜻해지니 졸리기도 하겠지만 계획을 철저히 세워서 열심히 공부하기 바랍니다. 그리고 수능도 중요하지만 수시를 지원하려는 학생들은 신학기가 시작된 만큼 논술에 대해 공부하기 바랍니다. 언수외를 꾸준히 공부하듯 논술도 꾸준히 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여러 다른 경로를 통해 논술을 바로 시작했으면 좋겠습니다. 자신이 세운 계획에 맞게 보람된 시간 보내기를 바랍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학생 글의 평가기준은 대학에서 제시한 평가기준을 바탕으로 제가 조금 더 구체적으로 작성한 것이며, 평가 점수는 제 개인적인 판단임을 미리 알려 드립니다. 그리고 자신이 지원하고 싶은 대학의 최신 기출 문제를 작성하여 페이지 하단에 있는 제 메일로 보내주시면, 그중에서 한 주에 한 명 혹은 두 명의 학생의 글을 채점하고 첨삭해 드리고 관련 자료를 보내드리겠습니다. 물리적인 여건상 많은 학생들의 글을 첨삭해드릴 수 없는 점 미리 양해 부탁드립니다.
▨ 문제: 2012년 숙명여대 모의 논술 인문계열 문제
가 “서방이 있나, 일가친척이 있나, 너 하나만 믿고 사는 이년의 팔자에 너조차 밤낮 어디로 간다고만 하니 난 누굴 믿고 사냐?”
어머니의 넋두리는 인제 귀에 못이 박일 정도였다. 이러한 어머니보다도 차라리, 열 살 때부터 절에 보내어 중질을 시켰으니, 인제 역마살도 거진 다 풀려 갈 것이라고 은근히 마음을 느꾸시는 편이던 할머니는, 그러나 갑자기 세상을 떠나 버렸다.
당사주라면 다시는 더 사족을 못쓰던 할머니는, 성기가 세 살 났을 때 보인 그의 사주에 시천역(時天驛)이 들었다 하여 한때는 얼마나 낙담을 했던 것인지 모른다. 하동 산다는 그 키가 나지막한 명주 치마저고리를 입은 할머니가 혹시 갑자을축을 잘못 짚지나 않았나 하여, 큰절(쌍계사를 가리킴)에 있는 어느 노장에게도 가 물어보고 지리산 속에서 도를 닦아 나온다던 어떤 키 큰 영감에게도 다시 뵈어봤지만 시천역엔 조금도 요동이 없었다.
“천성 제 애비 팔자를 따라갈려는 게지.”
할머니가 어머니를 좀 비꼬아 하는 말이었으나 거기 깊은 원망이 든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이런 말엔 각별나게 신경을 쓰는 옥화는, “부모 안 닮는 자식 없단다. 근본은 다 엄마 탓이지.”
도리어 어머니에게 오금을 박고 들었다. “이년아 에미한테 너무 오금박지 마라. 남사당을 붙었음, 너를 버리고 내가 그놈을 찾아갔냐, 너더러 찾아 달라 성화를 댔냐?”
그러나 서른여섯 해 전에 꼭 하룻밤 놀다 갔다는 젊은 남사당의 진양조 가락에 반하여 옥화를 배게 된 할머니나, 구름같이 떠돌아다니는 중과 인연을 맺어 성기를 가지게 된 옥화나 다같이 <화개장터> 주막에 태어났던 그녀들로서는 별로 누구를 원망할 턱도 없는 어미 딸이었다. 성기에게 역마살이 든 것은 어머니가 중 서방을 정한 탓이요, 어머니가 중 서방을 정한 것은 할머니가 남사당에게 반했던 때문이라면 성기의 역마운도 결국은 할머니가 장본이라, 이에 할머니는 성기에게 중질을 시켜서 살을 때우려고도 서둘러보았던 것이고, 중질에서 못다 푼 살을, 이번에는, 옥화가 그에게 책장사라도 시켜서 풀어 보려는 속셈인 것이었다. <중략>
한 걸음, 한 걸음, 발을 옮겨놓을수록 그의 마음은 한결 가벼워지어, 멀리 버드나무 사이에서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서 있을 어머니의 주막이 성기의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져갈 무렵 하여서는, 육자배기 가락으로 제법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며 가고 있는 것이었다.
나 운명이 우리를 인도하며, 각자의 수명은 태어나는 순간에 결정되지요. 모든 것이 인과관계로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사물의 영속적인 질서가 개체도 전체도 지배하지요. 만사는 우리 생각처럼 우연히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필연적으로 일어나기 때문에 우리는 만사를 용감하게 참고 견뎌야 하오. 무엇이 그대를 기쁘게 하고 무엇이 그대를 울게 할지 이미 오래 전에 정해져 있으며, 개개인의 인생이 서로 아주 달라 보여도 결과는 마찬가지라오. 우리가 받는 것은 무엇이든 사라질 것이며, 우리 자신도 사라진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왜 우리가 분개하며, 왜 불평하는 거죠? 우리는 그것을 참고 견디도록 태어났는데 말이오. 자연의 것인 우리 몸을 자연이 어떻게 쓰든 우리는 매사에 쾌활하고 용감해야 하오. 사라지는 것이 무엇이든 그 어떤 것도 우리의 것이 아니라는 점을 생각하며 말이오.
선한 사람이 할 일이 무엇이겠소? 자신을 운명에 내 맡기는 것이오. 우리가 우주와 함께 휩쓸려간다는 것은 그나마 큰 위안이오. 우리더러 그렇게 살라고, 그렇게 죽으라고 명령한 것이 무엇이든 간에 그것은 똑같은 필연성으로 신들도 옭아매고 있소. 만물의 창시자이자 조종자인 그분이 운명의 법을 입법했으나 그 스스로도 그 법을 따르고 있소. 그분은 단 한 번 명령하고는 늘 복종하지요.
다 인간에 있어 존재는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자유롭고, 끊임없이 자기 자신으로부터 분리되고 있기 때문에 자유롭다. 그것은 또한 하나의 무(無) 즉,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았다는 사실에 의해 현재의 존재와 미래의 존재로부터 분리되어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이미 정해진 자신의 본질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만들어나감으로써 존재하기 때문에 자유이다.
어떤 존재가 자신의 본질과 같다면 그 존재는 자유로울 수 없다. 자유란 그야말로 인간의 핵심에서 존재하게 되는 무(無)이고, 이 무가 인간 존재로 하여금 존재하는 대신 자기를 만들도록 강요하는 것이다. 인간 존재에 있어서 존재한다는 것은 ‘자기를 선택하는’ 일이다.
인간 존재가 받아들일 수 있는 것 중에 어떤 것도 외부 혹은 내부로부터 그에게 찾아오지 않는다. 인간은 어떤 도움도 없이 자기 자신을 가장 소소한 데까지 규정해야 한다는 참을 수 없는 필연성에 완전히 내던져져 있다. 그러므로 자유는 ‘하나의’ 객관적 존재가 아니고 인간의 존재이다. 즉 자유는 인간에 있어 ‘존재의 무(無)’이다. 만일 우리가 먼저 인간을 일종의 이미 완성된 충만한 존재라고 생각한다면, 나중에 인간을 자유롭게 하는 계기와 심적 영역을 인간 내부에서 찾는 일은 부조리하다.
그것은 마치 가득 채워놓은 그릇 속에서 빈 공간을 찾는 것과 같다. 한 인간이 어떤 때는 노예이지만 또 어떤 때는 자유롭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논리적 차원에서 보면 인간은 온전하고 영원하게 자유롭거나 아니면 전혀 자유롭지 않거나 둘 중 하나일 수 있다. 그러나 위에서도 말했듯이 실제에 있어서 인간이라는 존재는 자유롭다. 이렇게 인간은 철저하게 자유롭도록 저주받은 존재이다.
<문제> 제시문 <가>, <나>, <다> 중에서 하나의 입장을 선택하여 옹호하고, 이를 토대로 다른 두 제시문의 입장에 대해 각각 논평하시오. (1,000자±100자)
▧ 위 문제의 학생 답안
①<제시문 가, 나, 다 내용 정리> 제시문 다는 인간은 철저하게 자유롭기 때문에 저주받았다고 말한다. 인간은 스스로의 본질을 끊임없이 규정하기 때문에 자유로운 존재이지만, 동시에 스스로를 끊임없이 규정지어야 한다는 필연적인 운명을 가진 존재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봤을 때 인간의 자유는 운명에 종속된 것이다. 다의 필자는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저주받은 존재라 주장하지만 나는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축복받았다고 생각한다. 자유로우면서도 인간 스스로의 운명을 따르는 것은 가장 바람직한 태도라고 본다. 제시문 가에는 그러한 인간의 유형이 제시된다.
역마살이 든 주인공 성기가 그러하다. 외적으로 굉장히 자유로운 운명을 타고난 성기는 처음에는 그러한 운명을 거스르고자 노력도 해 보았다. 하지만 종국에는 늘 정착하지 못하고 떠난다. 떠나면서도 그는 발걸음이 가볍고 콧노래까지 나온다고 한다. 그의 모습을 볼 때 그는 자신의 운명을 따르는 데 만족하고, 그 속에서 자유를 누리는 존재인 것이다.
자유로운 것이 곧 인간의 운명인데 생기는 애초부터 자유를 운명을 타고났고, 또 그 운명에 순응하는 태도로 보아 인간의 최고로 바람직한 모습이다.
②<가의 입장에서 논평시도> 제시문 나에서는 운명론적인 사고방식이 드러난다. 하지만 제시문 나에서는 운명자체가 만사를 결정한다고 주장하였다. 앞서 말했듯 인간의 운명은 인간이 자유를 추구하도록 하는 것이다.
만사는 인간이 운명을 따르며 자유를 누리는 과정에서 생겨날 것이고 그것을 참고 견디든, 기뻐하든 그것은 운명을 타고난 인간의 몫이지 운명 자체가 결정지을 사항이 아니다. 인간은 운명은 따르며 자유로운 가운데 만사의 희로애락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그 어느 순간에도 운명에 따라 참고 견디라는 제시문 나의 주장은 인간의 자유를 옭아맬 가능성이 있다.
③<자신의 주장> 따라서 가장 합리적인 입장은 제시문 가의 주인공이 가진 운명에 순응하면서도 자유를 누릴 줄 아는 입장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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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나는 대로 글을 쓰지마라
▧ 평가 기준 및 점수
▧ 평가 해설 및 예시답안
- 생각하는 대로 글을 써서는 안된다 !
100점 만점에 44점. 개인적으로는 많이 준 점수입니다. 글 자체로만 보면 나쁘지 않은 글솜씨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논술 답안으로는 나쁜 글입니다. 제시문을 정확하게 파악하지도 못했고 문제가 요구한 것을 정확하게 충족시키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번 2012년 숙명여대 모의논술 문제는 쉽지 않습니다. 학생들이 좋아하지 않는 문학 작품도 등장하고 있고 제시문 다의 난이도가 장난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런 문제가 나오면 학생들은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시간에 설명했던 것처럼 제시문이 어렵다면 문제의 난이도가 높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지요.
자, 학생의 글은 세 단락으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나쁘지 않은 단락 구성입니다. 그런데 첫 번째 단락에서는 제시문 가, 나, 다를 차근차근 정리하고 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가→나→다 순이 아니라 다→나→가 순으로 쓰고 있지요. 그리고 두 번째 단락에서는 나름의 논평을 시도하고 있고 마지막 단락에서는 자신의 주장을 밝히고 있습니다. 이러한 형식을 학생들은 가장 많이 취하곤 합니다. 다시 말해 많은 학생들이 선호하는 글쓰기 방식이라는 것이지요. 학생들은 문제가 어떤 형식으로 출제되든, 먼저 제시문들을 주욱 정리하고 문제의 요구사항을 충족시키려 합니다. 그것이 자신이 글쓰기 쉽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지요. 학생들에게 논술 답안을 쓰라고 하면 제시문을 읽고 조금 생각한 후 바로 글을 작성하기 시작합니다. 제시문의 내용을 먼저 정리하는 것이지요. 그러면 분량도 확보되고 생각도 어느 정도 정리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는 문제의 요구사항을 충족시키려 하는 것인데요. 이러한 방식은 좋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문제의 요구조건을 충분히 충족시키지 못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이번 학생의 답안처럼 제시문의 내용을 정리하는 것에 급급한 나머지 문제의 요구조건인 논평에 대한 분량이 줄어들 수 있다는 것이지요. 실제 이 학생의 글을 보면 제시문에 대한 정리가 글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논리적인 논평과 왜 자신의 의견이 옳은지에 대한 부분이 많지 않고 선명하지도 않은 것입니다.
명심해야 할 것은 그 어떤 누구도 글을 쓰기 전에 글을 어떻게 구성하면 좋을지, 어떻게 전개하면 좋을지 충분히 생각하고 어떻게 구성할지를 결정한 후에 비로소 글을 작성하게 됩니다. 그것은 논술강사인 저뿐만 아니라 글을 직업으로 갖는 작가나 학자 모두에게 해당됩니다. 글 쓰기 전에 충분히 생각해 두고 구성을 생각해 두어야 좋은 글을 쓸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봤을 때 제시문들만 주욱 정리하고 그 다음에 글을 쓰겠다는 생각은 합격과는 멀어지는 길이 될 것입니다.
- 제시문을 하나하나 별개로 볼 것이 아니다
글의 구성이나 표현, 그리고 논증의 논리성을 떠나 이 학생은 제시문을 정확하게 독해하지 못했습니다. 제시문 <다>가 바로 대표적인 오독이지요. 제시문 <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다면 이 학생이 많이 부족해서 그랬을까요? 아닙니다. 사실은 이런 현상은 제시문이 까다롭고 어려울 때 많은 학생들에게서 나타납니다.
실제 제시문 <다>의 글은 철학자 사르트르의 글입니다. 철학자들은 글을 어렵게 쓰기로 유명하지요. 아마 이 글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학생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논술 문제 출제 방식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다면 이 문제를 정확하게 풀 수 있습니다.
논술 문제를 만들 때는 먼저 학생들에게 묻고 싶은 주제를 선정합니다. 예를 들어 21세기 대한민국 경제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묻고 싶다고 합시다. 이것이 주제입니다.
그런데 만약 문제를 이렇게 냈다가는 평가하기가 어려울 뿐만 아니라 학생들이 제대로 글을 써내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니 21세기 대한민국 경제에서 시장의 자율성을 더욱 확대할 것인지 정부의 개입을 늘릴 것인지라는 입장, 혹은 주장을 선정하게 됩니다. 이런 입장과 주장을 보여줄 수 있는 제시문을 주는 것이지요.
제시문들은 각기 다른 주장, 다른 분야, 다른 소재를 갖고 있지만 결국 하나의 주제로 엮이고 있는 것이지요. 따라서 제시문은 별개가 아니라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고 이런 연결방식을 읽어내야 출제자의 의도에 부합한 글을 써 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많은 학생들이 제시문을 하나씩 하나씩 별개로 이해하려 애씁니다. 당장 글이 눈 앞에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다가는 바로 이 학생처럼 오독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번 문제의 경우 제시문 <나>에 대한 내용은 모두 정확하게 이해할 것입니다. 운명은 신에 의해 정해져 있고 그것에 순응하자는 것이 제시문 <나>의 주장입니다. 이렇게 파악했다면 다른 제시문들을 그냥 볼 것이 아니라 운명에 대한 내용인지를 따져보고, 그것이 정해진 것인지 여부를 따져보고 순응하자는 것인지를 따져봐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가>의 성기 어머니와 할머니의 입장과 성기의 입장을 파악해 볼 수 있을 것이며 제시문 <다>의 입장도 미루어 유추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만약 이 학생이 제시문들을 유기적을 읽을 수 있었다면 이런 글은 쓰지 않았을 것입니다.
논술의 답안이란 제시문이라는 주어진 조건들을 활용하여 출제자의 의도를 파악하고 출제자의 질문에 대한 답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글을 쓰기 전 충분히 고민해야 하며, 문제가 만들어지는 방식들에 대한 이해를 하고 있어야 합니다.
잘 생각해 보기 바랍니다. 수능 기출문제를 분석하는 이유는 출제자의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서며 문제가 어떻게 출제되는지 이해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렇다면 논술은 과연 다를까요? 당연히 답은 동일합니다. 그럼 다음 시간에 뵙겠습니다.
인간의 운명이 정해지지 않았기 때문에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해야 한다는 제시문 <다>의 입장은 타당하다. 즉, 인간은 무엇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존재하고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규정할 수 있기 때문에 자신의 삶을 스스로 정립해야 한다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 예시 답안
이렇게 봤을 때 인간의 운명은 정해져 있으므로 정해진 운명에 순응해야 한다는 제시문 <나>의 입장은 옳지 않다. 제시문 <나>에서는 인간의 운명을 신이 정해 놓았고 그 정해진 운명에서 인간은 절대로 벗어날 수 없다고 말한다. 따라서 정해진 운명을 받아들이고 순응하는 것이 올바른 삶의 방식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운명을 신이 정했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또한 제시문 <다>의 입장처럼 인간이 선택할 수 있고, 이런 선택의 연속이 인간의 삶이라면 수많은 변수가 가능할 것이고 이 수많은 변수를 미리 정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제시문 <나>는 부정적으로 평가된다.
제시문 <가> 역시 운명이 정해진 것이라는 점에서 제시문 <다>의 입장에서 부정적으로 평가될 것이다. 비록 제시문 <가>의 성기의 어머니와 할머니는 역마살이라는 성기의 운명을 변화시키기 위해 미리 절로 보내거나 책장사를 시켜 역마살을 없애려는 적극적인 행위를 시도한다.
하지만 성기의 마지막 선택에서 볼 수 있듯이 이미 개인에게는 정해진 운명이 있고 이를 따라갈 수밖에 없다고 제시문 <가>는 말한다. 즉, 개인의 행위로 선택된 정해진 운명이란 변화시킬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개인의 행위로 선택되었다는 것 자체가 이미 개인에게 선택의 자유가 있었다는 것이므로 성기가 자신의 역마살을 순응할지 그렇지 않을지에 대한 선택 역시 열려 있는 것이다.
따라서 정해진 운명은 없으며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선택해야 한다는 제시문 <다>의 입장에서 제시문 <가>는 부정적으로 평가된다.만약 인간의 운명이 누군가에 의해 설계된 것이라면, 왜 그렇게 설계되었는지에 대한 목적, 의미부여가 필요하게 된다. 다시 말해 내가 왜 그렇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설명이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나에게 있어 유의미한 것이어야 한다. 하지만 운명이 정해져 있다는 것은 모든 사람에게 유의미한 목적을 설정해주기 어렵기 때문에 제시문 <다>의 입장은 타당하다. (1099자)
강현정 S논술 선임 연구원 basekang@naver.com
안녕하세요. 신학기가 시작한 것이 얼마 되지 않았는데 벌써 4월입니다. 4월에도 모의고사와 중간고사가 있는 중요한 시기이네요. 날씨가 따뜻해지니 졸리기도 하겠지만 계획을 철저히 세워서 열심히 공부하기 바랍니다. 그리고 수능도 중요하지만 수시를 지원하려는 학생들은 신학기가 시작된 만큼 논술에 대해 공부하기 바랍니다. 언수외를 꾸준히 공부하듯 논술도 꾸준히 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여러 다른 경로를 통해 논술을 바로 시작했으면 좋겠습니다. 자신이 세운 계획에 맞게 보람된 시간 보내기를 바랍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학생 글의 평가기준은 대학에서 제시한 평가기준을 바탕으로 제가 조금 더 구체적으로 작성한 것이며, 평가 점수는 제 개인적인 판단임을 미리 알려 드립니다. 그리고 자신이 지원하고 싶은 대학의 최신 기출 문제를 작성하여 페이지 하단에 있는 제 메일로 보내주시면, 그중에서 한 주에 한 명 혹은 두 명의 학생의 글을 채점하고 첨삭해 드리고 관련 자료를 보내드리겠습니다. 물리적인 여건상 많은 학생들의 글을 첨삭해드릴 수 없는 점 미리 양해 부탁드립니다.
▨ 문제: 2012년 숙명여대 모의 논술 인문계열 문제
가 “서방이 있나, 일가친척이 있나, 너 하나만 믿고 사는 이년의 팔자에 너조차 밤낮 어디로 간다고만 하니 난 누굴 믿고 사냐?”
어머니의 넋두리는 인제 귀에 못이 박일 정도였다. 이러한 어머니보다도 차라리, 열 살 때부터 절에 보내어 중질을 시켰으니, 인제 역마살도 거진 다 풀려 갈 것이라고 은근히 마음을 느꾸시는 편이던 할머니는, 그러나 갑자기 세상을 떠나 버렸다.
당사주라면 다시는 더 사족을 못쓰던 할머니는, 성기가 세 살 났을 때 보인 그의 사주에 시천역(時天驛)이 들었다 하여 한때는 얼마나 낙담을 했던 것인지 모른다. 하동 산다는 그 키가 나지막한 명주 치마저고리를 입은 할머니가 혹시 갑자을축을 잘못 짚지나 않았나 하여, 큰절(쌍계사를 가리킴)에 있는 어느 노장에게도 가 물어보고 지리산 속에서 도를 닦아 나온다던 어떤 키 큰 영감에게도 다시 뵈어봤지만 시천역엔 조금도 요동이 없었다.
“천성 제 애비 팔자를 따라갈려는 게지.”
할머니가 어머니를 좀 비꼬아 하는 말이었으나 거기 깊은 원망이 든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이런 말엔 각별나게 신경을 쓰는 옥화는, “부모 안 닮는 자식 없단다. 근본은 다 엄마 탓이지.”
도리어 어머니에게 오금을 박고 들었다. “이년아 에미한테 너무 오금박지 마라. 남사당을 붙었음, 너를 버리고 내가 그놈을 찾아갔냐, 너더러 찾아 달라 성화를 댔냐?”
그러나 서른여섯 해 전에 꼭 하룻밤 놀다 갔다는 젊은 남사당의 진양조 가락에 반하여 옥화를 배게 된 할머니나, 구름같이 떠돌아다니는 중과 인연을 맺어 성기를 가지게 된 옥화나 다같이 <화개장터> 주막에 태어났던 그녀들로서는 별로 누구를 원망할 턱도 없는 어미 딸이었다. 성기에게 역마살이 든 것은 어머니가 중 서방을 정한 탓이요, 어머니가 중 서방을 정한 것은 할머니가 남사당에게 반했던 때문이라면 성기의 역마운도 결국은 할머니가 장본이라, 이에 할머니는 성기에게 중질을 시켜서 살을 때우려고도 서둘러보았던 것이고, 중질에서 못다 푼 살을, 이번에는, 옥화가 그에게 책장사라도 시켜서 풀어 보려는 속셈인 것이었다. <중략>
한 걸음, 한 걸음, 발을 옮겨놓을수록 그의 마음은 한결 가벼워지어, 멀리 버드나무 사이에서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서 있을 어머니의 주막이 성기의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져갈 무렵 하여서는, 육자배기 가락으로 제법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며 가고 있는 것이었다.
나 운명이 우리를 인도하며, 각자의 수명은 태어나는 순간에 결정되지요. 모든 것이 인과관계로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사물의 영속적인 질서가 개체도 전체도 지배하지요. 만사는 우리 생각처럼 우연히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필연적으로 일어나기 때문에 우리는 만사를 용감하게 참고 견뎌야 하오. 무엇이 그대를 기쁘게 하고 무엇이 그대를 울게 할지 이미 오래 전에 정해져 있으며, 개개인의 인생이 서로 아주 달라 보여도 결과는 마찬가지라오. 우리가 받는 것은 무엇이든 사라질 것이며, 우리 자신도 사라진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왜 우리가 분개하며, 왜 불평하는 거죠? 우리는 그것을 참고 견디도록 태어났는데 말이오. 자연의 것인 우리 몸을 자연이 어떻게 쓰든 우리는 매사에 쾌활하고 용감해야 하오. 사라지는 것이 무엇이든 그 어떤 것도 우리의 것이 아니라는 점을 생각하며 말이오.
선한 사람이 할 일이 무엇이겠소? 자신을 운명에 내 맡기는 것이오. 우리가 우주와 함께 휩쓸려간다는 것은 그나마 큰 위안이오. 우리더러 그렇게 살라고, 그렇게 죽으라고 명령한 것이 무엇이든 간에 그것은 똑같은 필연성으로 신들도 옭아매고 있소. 만물의 창시자이자 조종자인 그분이 운명의 법을 입법했으나 그 스스로도 그 법을 따르고 있소. 그분은 단 한 번 명령하고는 늘 복종하지요.
다 인간에 있어 존재는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자유롭고, 끊임없이 자기 자신으로부터 분리되고 있기 때문에 자유롭다. 그것은 또한 하나의 무(無) 즉,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았다는 사실에 의해 현재의 존재와 미래의 존재로부터 분리되어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이미 정해진 자신의 본질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만들어나감으로써 존재하기 때문에 자유이다.
어떤 존재가 자신의 본질과 같다면 그 존재는 자유로울 수 없다. 자유란 그야말로 인간의 핵심에서 존재하게 되는 무(無)이고, 이 무가 인간 존재로 하여금 존재하는 대신 자기를 만들도록 강요하는 것이다. 인간 존재에 있어서 존재한다는 것은 ‘자기를 선택하는’ 일이다.
인간 존재가 받아들일 수 있는 것 중에 어떤 것도 외부 혹은 내부로부터 그에게 찾아오지 않는다. 인간은 어떤 도움도 없이 자기 자신을 가장 소소한 데까지 규정해야 한다는 참을 수 없는 필연성에 완전히 내던져져 있다. 그러므로 자유는 ‘하나의’ 객관적 존재가 아니고 인간의 존재이다. 즉 자유는 인간에 있어 ‘존재의 무(無)’이다. 만일 우리가 먼저 인간을 일종의 이미 완성된 충만한 존재라고 생각한다면, 나중에 인간을 자유롭게 하는 계기와 심적 영역을 인간 내부에서 찾는 일은 부조리하다.
그것은 마치 가득 채워놓은 그릇 속에서 빈 공간을 찾는 것과 같다. 한 인간이 어떤 때는 노예이지만 또 어떤 때는 자유롭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논리적 차원에서 보면 인간은 온전하고 영원하게 자유롭거나 아니면 전혀 자유롭지 않거나 둘 중 하나일 수 있다. 그러나 위에서도 말했듯이 실제에 있어서 인간이라는 존재는 자유롭다. 이렇게 인간은 철저하게 자유롭도록 저주받은 존재이다.
<문제> 제시문 <가>, <나>, <다> 중에서 하나의 입장을 선택하여 옹호하고, 이를 토대로 다른 두 제시문의 입장에 대해 각각 논평하시오. (1,000자±100자)
▧ 위 문제의 학생 답안
①<제시문 가, 나, 다 내용 정리> 제시문 다는 인간은 철저하게 자유롭기 때문에 저주받았다고 말한다. 인간은 스스로의 본질을 끊임없이 규정하기 때문에 자유로운 존재이지만, 동시에 스스로를 끊임없이 규정지어야 한다는 필연적인 운명을 가진 존재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봤을 때 인간의 자유는 운명에 종속된 것이다. 다의 필자는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저주받은 존재라 주장하지만 나는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축복받았다고 생각한다. 자유로우면서도 인간 스스로의 운명을 따르는 것은 가장 바람직한 태도라고 본다. 제시문 가에는 그러한 인간의 유형이 제시된다.
역마살이 든 주인공 성기가 그러하다. 외적으로 굉장히 자유로운 운명을 타고난 성기는 처음에는 그러한 운명을 거스르고자 노력도 해 보았다. 하지만 종국에는 늘 정착하지 못하고 떠난다. 떠나면서도 그는 발걸음이 가볍고 콧노래까지 나온다고 한다. 그의 모습을 볼 때 그는 자신의 운명을 따르는 데 만족하고, 그 속에서 자유를 누리는 존재인 것이다.
자유로운 것이 곧 인간의 운명인데 생기는 애초부터 자유를 운명을 타고났고, 또 그 운명에 순응하는 태도로 보아 인간의 최고로 바람직한 모습이다.
②<가의 입장에서 논평시도> 제시문 나에서는 운명론적인 사고방식이 드러난다. 하지만 제시문 나에서는 운명자체가 만사를 결정한다고 주장하였다. 앞서 말했듯 인간의 운명은 인간이 자유를 추구하도록 하는 것이다.
만사는 인간이 운명을 따르며 자유를 누리는 과정에서 생겨날 것이고 그것을 참고 견디든, 기뻐하든 그것은 운명을 타고난 인간의 몫이지 운명 자체가 결정지을 사항이 아니다. 인간은 운명은 따르며 자유로운 가운데 만사의 희로애락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그 어느 순간에도 운명에 따라 참고 견디라는 제시문 나의 주장은 인간의 자유를 옭아맬 가능성이 있다.
③<자신의 주장> 따라서 가장 합리적인 입장은 제시문 가의 주인공이 가진 운명에 순응하면서도 자유를 누릴 줄 아는 입장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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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나는 대로 글을 쓰지마라
▧ 평가 기준 및 점수
▧ 평가 해설 및 예시답안
- 생각하는 대로 글을 써서는 안된다 !
100점 만점에 44점. 개인적으로는 많이 준 점수입니다. 글 자체로만 보면 나쁘지 않은 글솜씨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논술 답안으로는 나쁜 글입니다. 제시문을 정확하게 파악하지도 못했고 문제가 요구한 것을 정확하게 충족시키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번 2012년 숙명여대 모의논술 문제는 쉽지 않습니다. 학생들이 좋아하지 않는 문학 작품도 등장하고 있고 제시문 다의 난이도가 장난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런 문제가 나오면 학생들은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시간에 설명했던 것처럼 제시문이 어렵다면 문제의 난이도가 높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지요.
자, 학생의 글은 세 단락으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나쁘지 않은 단락 구성입니다. 그런데 첫 번째 단락에서는 제시문 가, 나, 다를 차근차근 정리하고 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가→나→다 순이 아니라 다→나→가 순으로 쓰고 있지요. 그리고 두 번째 단락에서는 나름의 논평을 시도하고 있고 마지막 단락에서는 자신의 주장을 밝히고 있습니다. 이러한 형식을 학생들은 가장 많이 취하곤 합니다. 다시 말해 많은 학생들이 선호하는 글쓰기 방식이라는 것이지요. 학생들은 문제가 어떤 형식으로 출제되든, 먼저 제시문들을 주욱 정리하고 문제의 요구사항을 충족시키려 합니다. 그것이 자신이 글쓰기 쉽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지요. 학생들에게 논술 답안을 쓰라고 하면 제시문을 읽고 조금 생각한 후 바로 글을 작성하기 시작합니다. 제시문의 내용을 먼저 정리하는 것이지요. 그러면 분량도 확보되고 생각도 어느 정도 정리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는 문제의 요구사항을 충족시키려 하는 것인데요. 이러한 방식은 좋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문제의 요구조건을 충분히 충족시키지 못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이번 학생의 답안처럼 제시문의 내용을 정리하는 것에 급급한 나머지 문제의 요구조건인 논평에 대한 분량이 줄어들 수 있다는 것이지요. 실제 이 학생의 글을 보면 제시문에 대한 정리가 글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논리적인 논평과 왜 자신의 의견이 옳은지에 대한 부분이 많지 않고 선명하지도 않은 것입니다.
명심해야 할 것은 그 어떤 누구도 글을 쓰기 전에 글을 어떻게 구성하면 좋을지, 어떻게 전개하면 좋을지 충분히 생각하고 어떻게 구성할지를 결정한 후에 비로소 글을 작성하게 됩니다. 그것은 논술강사인 저뿐만 아니라 글을 직업으로 갖는 작가나 학자 모두에게 해당됩니다. 글 쓰기 전에 충분히 생각해 두고 구성을 생각해 두어야 좋은 글을 쓸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봤을 때 제시문들만 주욱 정리하고 그 다음에 글을 쓰겠다는 생각은 합격과는 멀어지는 길이 될 것입니다.
- 제시문을 하나하나 별개로 볼 것이 아니다
글의 구성이나 표현, 그리고 논증의 논리성을 떠나 이 학생은 제시문을 정확하게 독해하지 못했습니다. 제시문 <다>가 바로 대표적인 오독이지요. 제시문 <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다면 이 학생이 많이 부족해서 그랬을까요? 아닙니다. 사실은 이런 현상은 제시문이 까다롭고 어려울 때 많은 학생들에게서 나타납니다.
실제 제시문 <다>의 글은 철학자 사르트르의 글입니다. 철학자들은 글을 어렵게 쓰기로 유명하지요. 아마 이 글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학생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논술 문제 출제 방식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다면 이 문제를 정확하게 풀 수 있습니다.
논술 문제를 만들 때는 먼저 학생들에게 묻고 싶은 주제를 선정합니다. 예를 들어 21세기 대한민국 경제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묻고 싶다고 합시다. 이것이 주제입니다.
그런데 만약 문제를 이렇게 냈다가는 평가하기가 어려울 뿐만 아니라 학생들이 제대로 글을 써내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니 21세기 대한민국 경제에서 시장의 자율성을 더욱 확대할 것인지 정부의 개입을 늘릴 것인지라는 입장, 혹은 주장을 선정하게 됩니다. 이런 입장과 주장을 보여줄 수 있는 제시문을 주는 것이지요.
제시문들은 각기 다른 주장, 다른 분야, 다른 소재를 갖고 있지만 결국 하나의 주제로 엮이고 있는 것이지요. 따라서 제시문은 별개가 아니라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고 이런 연결방식을 읽어내야 출제자의 의도에 부합한 글을 써 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많은 학생들이 제시문을 하나씩 하나씩 별개로 이해하려 애씁니다. 당장 글이 눈 앞에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다가는 바로 이 학생처럼 오독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번 문제의 경우 제시문 <나>에 대한 내용은 모두 정확하게 이해할 것입니다. 운명은 신에 의해 정해져 있고 그것에 순응하자는 것이 제시문 <나>의 주장입니다. 이렇게 파악했다면 다른 제시문들을 그냥 볼 것이 아니라 운명에 대한 내용인지를 따져보고, 그것이 정해진 것인지 여부를 따져보고 순응하자는 것인지를 따져봐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가>의 성기 어머니와 할머니의 입장과 성기의 입장을 파악해 볼 수 있을 것이며 제시문 <다>의 입장도 미루어 유추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만약 이 학생이 제시문들을 유기적을 읽을 수 있었다면 이런 글은 쓰지 않았을 것입니다.
논술의 답안이란 제시문이라는 주어진 조건들을 활용하여 출제자의 의도를 파악하고 출제자의 질문에 대한 답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글을 쓰기 전 충분히 고민해야 하며, 문제가 만들어지는 방식들에 대한 이해를 하고 있어야 합니다.
잘 생각해 보기 바랍니다. 수능 기출문제를 분석하는 이유는 출제자의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서며 문제가 어떻게 출제되는지 이해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렇다면 논술은 과연 다를까요? 당연히 답은 동일합니다. 그럼 다음 시간에 뵙겠습니다.
인간의 운명이 정해지지 않았기 때문에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해야 한다는 제시문 <다>의 입장은 타당하다. 즉, 인간은 무엇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존재하고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규정할 수 있기 때문에 자신의 삶을 스스로 정립해야 한다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 예시 답안
이렇게 봤을 때 인간의 운명은 정해져 있으므로 정해진 운명에 순응해야 한다는 제시문 <나>의 입장은 옳지 않다. 제시문 <나>에서는 인간의 운명을 신이 정해 놓았고 그 정해진 운명에서 인간은 절대로 벗어날 수 없다고 말한다. 따라서 정해진 운명을 받아들이고 순응하는 것이 올바른 삶의 방식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운명을 신이 정했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또한 제시문 <다>의 입장처럼 인간이 선택할 수 있고, 이런 선택의 연속이 인간의 삶이라면 수많은 변수가 가능할 것이고 이 수많은 변수를 미리 정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제시문 <나>는 부정적으로 평가된다.
제시문 <가> 역시 운명이 정해진 것이라는 점에서 제시문 <다>의 입장에서 부정적으로 평가될 것이다. 비록 제시문 <가>의 성기의 어머니와 할머니는 역마살이라는 성기의 운명을 변화시키기 위해 미리 절로 보내거나 책장사를 시켜 역마살을 없애려는 적극적인 행위를 시도한다.
하지만 성기의 마지막 선택에서 볼 수 있듯이 이미 개인에게는 정해진 운명이 있고 이를 따라갈 수밖에 없다고 제시문 <가>는 말한다. 즉, 개인의 행위로 선택된 정해진 운명이란 변화시킬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개인의 행위로 선택되었다는 것 자체가 이미 개인에게 선택의 자유가 있었다는 것이므로 성기가 자신의 역마살을 순응할지 그렇지 않을지에 대한 선택 역시 열려 있는 것이다.
따라서 정해진 운명은 없으며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선택해야 한다는 제시문 <다>의 입장에서 제시문 <가>는 부정적으로 평가된다.만약 인간의 운명이 누군가에 의해 설계된 것이라면, 왜 그렇게 설계되었는지에 대한 목적, 의미부여가 필요하게 된다. 다시 말해 내가 왜 그렇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설명이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나에게 있어 유의미한 것이어야 한다. 하지만 운명이 정해져 있다는 것은 모든 사람에게 유의미한 목적을 설정해주기 어렵기 때문에 제시문 <다>의 입장은 타당하다. (1099자)
강현정 S논술 선임 연구원 basekang@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