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과 경제의 만남] (53) 경제고통지수와  의적 '로빈 후드'
영국의 전설적 영웅인 ‘로빈 후드(Robin Hood)’는 실제로 존재했던 인물인지 아니면 전설 속 가공의 인물인지 명확하게 알려져 있지 않다. 일설에 의하면 12세기 무렵 실존했던 인물이라고도 하고, 헌팅던 백작(Earl of Hutingdon)의 별명이라는 설도 있지만, 이러한 주장 역시 확실한 근거는 없는 상태다. 다만 로빈 후드의 이름이 기록된 중세의 문헌과 그의 활약상을 묘사하고 있는 문학 작품을 통해 그가 어떤 인물이었는지 추측할 수 있을 뿐이다.

신화와 민담을 통해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오던 로빈 후드의 이야기가 문학 작품의 소재가 되기 시작한 것은 15세기에 이르러서다. 물론 그 이전에도 윌리엄 랭글랜드의 ‘피어즈 플로우맨’이라는 작품에서 로빈 후드가 언급되기는 하였다. 하지만 이 작품 속에서는 그저 로빈 후드의 이름만 살짝 언급한 정도에 불과하였다. 이후 1420년 스코틀랜드의 역사가 윈턴의 ‘스코틀랜드 연대기’에 로빈 후드의 이야기가 등장하였고, 1475년경 발간된 ‘로빈 후드의 무용담’에는 그와 관련된 여러 에피소드가 수록되었다. 이후에도 ‘로빈 후드와 포터’, ‘로빈 후드와 리틀 존’, ‘아이반호’ 등 수많은 소설과 희곡 등에서 로빈 후드의 이야기가 다루어졌고, 오늘날에도 영화와 텔레비전 드라마를 통해 그의 모습을 종종 접할 수 있다.

로빈 후드의 생애를 그린 작품은 지금까지 수없이 많았지만, 대부분의 작품에서 공통적으로 찾아볼 수 있는 특징이 하나 있다. 대부분의 작품 속에서 로빈 후드는 ‘의적’(義賊)으로 묘사되어 있다는 점이다. 소설 속의 그는 백성들을 착취하는 탐관오리나 귀족들의 재물을 빼앗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는 의로운 도적으로 등장한다. 또한 희곡 속의 그는 부당한 권력에 항거하는 시대의 혁명가이자 불우한 사람들을 돕는 박애주의자로 묘사되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각 작품이 발표된 시대와 작품의 문학적 범주에 관계없이 한결같다.

예를 들어 로빈 후드 이야기를 다룬 초기 작품 중의 하나인 ‘로빈 후드의 무용담’을 보면, 그는 근거지인 셔우드 숲을 지나가는 사람이 귀족이거나 부자이면 돈을 요구하고 천한 신분이거나 가난한 사람이면 빼앗은 돈을 나누어 주었다고 서술되어 있다.

또한 다른 작품에서는 부패한 관리들을 척결하여 곤궁하고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가는 서민을 구원하는 영웅으로 그려지고 있다. 물론 로빈 후드에 대해 도둑질을 일삼은 살인자이자 무법자일 뿐이라는 평가가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를 다룬 작품이 나올 때마다 주목받고 관심을 끄는 것을 보면 대다수의 사람은 자신들의 힘든 삶을 구원해 줄 로빈 후드와 같은 영웅의 등장을 기다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1년 우리나라의 경제고통지수는 7.4로 나타났다. 경제고통지수는 미국의 경제학자 아서 오쿤(Arthur Okun)이 고안한 경제지표로, 국민들이 피부로 느끼는 경제적인 삶의 어려움을 수치로 계량화한 것이다. 경제고통지수는 물가상승률에 실업률을 더하여 산정하며, 지수가 상승하면 국민들이 느끼는 경제적 고통이 커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우리나라의 경제고통지수는 2006~2007년 5.7을 기록하며 비교적 낮은 수준을 유지하였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발하면서 7.9로 치솟았다. 2009년에는 6.4로 다소 하락하였지만, 2010년 6.7, 2011년 7.4로 상승을 지속하면서 현재는 금융위기 때에 버금가는 수치에 육박하고 있는 상태다.

이에 반해 국민 개개인의 기부 행위는 최근 들어 급증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기부는 사회구성원 간의 경제적 불평등과 계층 간의 양극화 해소 등을 위해 개인이나 단체가 금품이나 봉사활동을 제공하는 행위를 말한다. 경기개발연구원은 ‘노블레스 오블리주와 기부문화’라는 보고서를 통해 1999년 29.3%에 불과했던 개인 기부가 2009년에는 64%로 두 배 넘게 증가했다고 발표하였다. 기부금액 역시 개인 기부는 같은 기간 8500억원에서 6조1500억원으로 600% 이상 증가하였다. 이에 반해 법인의 기부금액은 73% 증가하는 데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개인 기부의 증가 속도를 법인이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이와 같은 현상은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기부 현황에서도 살펴볼 수 있다. 공동모금회는 2007년 67.5%였던 기업의 기부 비중은 2011년 67% 정도로 예상되어 정체하고 있는 반면, 개인 기부는 지속적으로 증가하여 2008년 30만명에 불과했던 개인 기부자 수가 2011년에는 70만명에 달해 사상 최대를 기록할 것으로 내다보았다.

경기가 좋지 않을 때는 경제고통지수가 상승하고, 이에 따라 대다수 국민들의 경제적 고통의 체감 정도는 악화되게 마련이다. 이런 경우 남을 돕는 온정의 손길이 다른 때에 비해 줄어들 것으로 예상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내 코가 석 자인데 주위를 신경 쓰기란 여간해서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위에서 언급한 지표들을 살펴보면 경제가 어려워 실업자도 늘고 물가가 올라 살림살이도 힘들어졌지만 어려운 이웃들을 배려하는 사람들의 마음 씀씀이는 오히려 커졌음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이 우리는 경기가 좋지 않아 경제고통지수가 높아졌음에도 불구하고 불우한 사람들을 돕는 따스한 손길이 예상외로 증가하는 현상을 종종 목격할 수 있는데, 이를 계량화하여 수치로 나타낸 것을 ‘로빈 후드 지수(Robin Hood Index)’라고 부른다. 아마도 착취계급의 재산이나 재물을 빼앗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준 로빈 후드의 훈훈한 마음씨를 빗대어 이름 붙인 것으로 보인다.

로빈 후드 지수가 높아졌다는 소식은 우리 사회에 아직은 정이 남아 있고 또한 살아갈 만한 가치가 있다는 점을 방증한다는 점에서 반갑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동시에 경제적인 삶이 이전보다 팍팍해졌음을 의미하기도 한다는 점에서 마냥 흐뭇해하기는 어렵다. 경제고통지수가 크게 하락하였지만, 나눔의 손길은 줄어들지 않았다는 소식이 들려올 날을 기다려본다.

정원식 KDI 전문연구원 kyonggi96@kdi.re.kr


경제용어 풀이

경제고통지수(Misery Index)

사람들이 느끼는 경제적 어려움을 계량화하여 수치로 나타낸 것으로, 특정 기간의 물가상승률과 실업률을 더하여 구한다. 지수가 높으면 물가가 올랐거나 실업자가 늘어 경제생활이 어려워졌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경제고통지수는 경제생활에 영향을 주는 지표 중 일부만을 사용하고, 지표의 중요성을 감안하지 않고 단순히 더한 것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