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mart한 논술의 법칙 ⑧
▧ 들어가며… ▨ 위 문제의 학생 답안
문제 요구조건에 맞게 제시문 재서술해야

[논술 기출문제 풀이] Smart한 논술의 법칙 ⑧
안녕하세요. 벌써 2월이 되었고 학교에 따라서는 개학한 곳도 있을 것입니다. 겨울방학 동안 수능공부를 열심히 하느라 논술에 대해 공부하지 않은 학생들은 지금부터라도 꾸준히 논술을 준비하기 바랍니다. 아직은 늦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1주일에 한 번이라도 꾸준히 글을 쓴 학생들은 이후 수시 논술 시험에서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 다른 경로를 통해 논술을 바로 시작했으면 좋겠습니다. 자신이 세운 계획에 맞게 보람된 시간 보내기를 바랍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학생 글의 평가기준은 대학에서 제시한 평가기준을 바탕으로 제가 조금 더 구체적으로 작성한 것이며, 평가 점수는 제 개인적인 판단임을 미리 알려 드립니다. 그리고 자신이 지원하고 싶은 대학의 최신 기출 문제를 페이지 하단에 있는 제 메일로 보내주시면, 이 중에서 한 주에 한 명 혹은 두 명의 학생의 글을 채점하고 첨삭해드리겠습니다. 물리적인 여건상 많은 학생들의 글을 봐 드리지 못한 점 미리 양해 부탁드립니다.



▧ 문제 : 2012년 성균관대 모의논술 1번 문제



수천 명의 희생자를 낸 불시의 폭력은 부조리 이외에 다른 아무것도 아니다. 폭력은 할 말을 잃게 한다. 현대 사회의 폭력은 일상생활의 편의시설을 이용한 무차별적인 살육이다. 미국과 미국을 공격한 테러리스트 사이에는 압도적인 힘의 비대칭이 존재한다. 그렇지만 생쥐가 코끼리를 쓰러뜨린 순간, 펜타곤은 혼란에 빠졌고 월가는 활동을 멈췄다. 중동지역에 미국이 개입해 온 역사는 테러의 역사와 겹친다. 불행하게도 전쟁터에서나 일어나던 파괴와 학살이 거대도시를 무대로 충격적인 규모로 재현되었다. 아프가니스탄의 이슬람 원리주의 세력에 테러의 책임이 있다는 방향으로 사태가 진전되고 있다. 부시 대통령은 “이것은 전쟁이다, 자유를 위협하는 ‘악’에는 반드시 승리하겠다”고 선언했다. 선진국들도 이에 협력을 약속했다. 미국에서는 자국의 안전보장을 지키는 수준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보다 근본적으로 국민을 지켜야 한다는 ‘자위전쟁’의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결국 테러를 억제하기 위한 방법은 강대국의 군사력에 의한 제재밖에 없는 것인가?

폭력은 정의라는 명분으로 이용되어 왔으나, 어떤 경우에도 폭력은 정당화될 수 없다. 정치가 지나치게 폭력에 의존하면 그 유효성은 감소하고 파괴성이 증대한다. 폭력이 한번 사용되면 증오심을 매개로 다른 폭력을 불러올 수 있다. 세계를 동시에 연결하는 미디어가 이런 현상을 가속화시킨다. 911 테러 이후에 이슬람 과격파가 환호하는 모습이 전파를 탔다. 그러자 인도에서는 힌두교 우익단체가 이슬람을 공격하려는 움직임이 일었다. 인도와 대립관계에 있는 파키스탄이 탈레반 세력을 후원하고 있다고 알려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민족과 종교라는 ‘정의’의 색안경을 벗어 버리고 나면 초강대국이나 분쟁지역에서 무력을 사용하는 것은 소수의 권력자들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폭력을 신앙처럼 여겨 온 그들의 욕심이 사람들의 생명을 빼앗아 온 것이다.



우리 자신과 가정을 방어하고 우리의 이해를 안전하게 지키기 위해서 우리는 무력을 필요로 한다. 이 두 가지 목적은 무력의 다른 모든 측면과 마찬가지로 영원한 것이다. 이는 전시와 마찬가지로 평시에도, 비록 그것이 비용이 든다손 치더라도 무력 보유를 결코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중략) 방어와 안전의 추구는 분명한 잠재적 대립에서 비롯된다. 어느 사회나 이해와 우선순위가 다른 사람들 간의 대립으로 만연해 있다. 이른바 국가라는 사회들이 어떤 문제를 두고 상호 대립할 경우, 양측 모두 이를 만족스럽게 해결하지 못한다. 그들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무력에 호소한다. 처음에 지적한 대로 적당한 표현은 아니지만, 우리는 이것을 마찰 전쟁이라고 부른다. 양측의 목적은 모두 각자 나름대로의 평화를 수립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말해서, 자기 방어의 경우를 제외한다면 군사력 사용이란 문제 해결을 위한 모든 시도를 다 해본 연후에 취하게 되는 마지막 수단으로 간주되었다. 국가들은 지난 수세기에 걸쳐 이러한 분쟁 문제를 다루기 위한 군사 및 정부 기관과 그것을 처리하기 위한 법률 및 의정서─일반적으로 제네바 협정으로 알려진─를 개발해 왔다. 일단 전쟁이 벌어지면 교전국들 모두 협정 준수의 요구를 받기는 하지만 동일한 규정으로 전쟁을 할 리가 없다. 실제로 통솔력의 상당 부분을 나름대로의 관점과 나름대로의 방식, 그리고 자기편에 유리하고 상대편에는 불리한 규정에 따라 전쟁을 준비하는 데 할애한다. 더욱이 일부 스포츠를 제외한 사회적으로 용인된 기타 행위들과 달리 전쟁과 전투는 시합이 아니다. 2등이 되는 것은 지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그의 가르침을 통해서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악에 대한 무저항을 제안한다. 악에 대한 무저항은 사람들의 공동생활의 기초가 되며 인간이 인간에게 가하는 악으로부터 인간을 해방한다. 우리의 전체 삶을 폭력에 근거하고, 모든 즐거움을 폭력을 통해서 얻거나 보호받는 대신에, 그리고 우리들 각자가 어린 시절부터 노인이 될 때까지 폭력을 당하거나 폭력을 가하는 것을 보는 대신에 우리의 말과 행동에서 다음과 같은 생각에 통감하는 것을 떠올려 보았다. 즉 사람들이 복수라는 것은 매우 저등한 동물의 감정이며, 폭력이라는 것은 수치스러운 행동일 뿐 아니라 사람들에게서 진정한 행복을 앗아가는 것이라고 마음속 깊이 느끼는 것을 생각해 보았다. 또한 애국심이라는 이름하에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는 저 국민적 증오심 대신에, 그리고 전쟁이라고 불리는 저 살해에 대한 미화 대신에 … 그래서 어떤 특정한 나라, 특별한 법, 특정한 경계선, 특정한 땅만을 인정하는 것은 커다란 무지를 보여줄 뿐이라는 사실에 우리 모두 통감하는 것을 떠올려 본다. 그리하여 개개인의 삶이 모든 인간이 진심으로 추구하고 바라는 것이 되고, 모든 사람들은 형제자매가 되어 다른 사람들과 항상 평화를 유지하게 될 것이며, 따라서 세상이 주는 모든 혜택을 즐기게 되기를 바랄 뿐이다.



독재 정부가 군대와 경찰을 동원해 일부의 자국민에게 조직적으로 테러를 가하는 것을 ‘국가 테러리즘’이라고 부른다. 이웃 나라에서 이런 일이 발생한다면 우리는 과연 어떻게 해야 할까? 가장 좋기는 그 나라 사람들이 어떻게 해서든 스스로 그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지만, 그렇게 되기를 기다리다가 돌이킬 수 없는 희생이라도 발생한다면, 그때의 방관이 도덕적으로 정당화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런 긴급한 상황이 바로 인도적 군사 개입을 요구하는 상황이다. 언제든지 신고가 들어오면 출동할 수 있는 경찰이 있다면 좋겠지만, 그러한 국제경찰이 준비되어 있지 않고, 있다고 하더라도 출동하는 데에 시간이 오래 걸린다면, 그래서 무턱대고 기다렸다가는 돌이킬 수 없는 인명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면, 이웃한 국가가 군사적으로 개입하는 것이 설령 그것이 타국의 주권을 침해하는 것이더라도 정당할 수 있다.

부당한 폭력에 의해 탄압받는 시민들에게 군사 개입 같은 외부의 도입을 받을 권리가 있다고 얘기할 수 있을까? 그 권리는 무엇에서 비롯할까? 우리에게는 위험에 처한 이웃을 도울 권리는 물론, 의무도 있다고 얘기할 수 있을까? 도움을 받을 권리와 도움을 줄 의무가 이러저러한 법률적 주장에 의해 정당화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그 권리와 의무는 피해자가 도움을 받지 못했을 때에 우리가 느끼게 될 부끄러움에서 비롯한다. 그 부끄러움에서 우리의 의무가 생겨나고, 우리의 의무에서 그들의 권리가 생겨난다. 그렇다면 필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위급한 상황에 처한 이웃이 구조되지 않았을 때에 우리로 하여금 부끄러움을 느끼게 하는, 그들과 우리 간의 정서적 연관성일 것이다. 지구적으로 증가하는 상호 연관성이 오늘날 집단 학살 같은 일이 일어난 이웃 나라에 우리가 개입하는 것을 의무로 만든다. 그들이 제때에 구조받지 못했을 때에 느끼게 될 부끄러움이 우리로 하여금 희생을 감수하고서라도 개입하게 만드는 것이다.



<문제> 아래 제시문(가~라)을 하나의 주제에 관한 상반된 두 입장으로 분류하고, 각 입장을 요약하시오. (400±40자)



제시문 가~라는 폭력의 정당성에 대해 상반된 입장을 갖고 있다. 제시문 가와 다는 폭력이 정당화될 수 없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다. ① 제시문 가에서는 폭력은 부조리이며 무차별적인 살육이라고 말하고 있고, ② 제시문 다에서는 악에 대한 무저항이 사람들의 공동생활의 기초가 되며 인간이 인간에게 가하는 악으로부터 인간을 해방한다고 말한다. 반면 제시문 나와 라는 폭력이 정당화될 수 있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즉, 제시문 나는 우리 스스로가 자신의 소유물을 방어하고 안전하게 지키기 위하여 무력을 사용하여도 된다고 말한다. 또 제시문 라에서는 인도적 국가개입이 요구되는 긴급한 상황에는 그에 대한 정당한 무력을 행하여도 된다고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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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시문 이면에 숨어있는 출제 의도 파악해야
[논술 기출문제 풀이] Smart한 논술의 법칙 ⑧
-문제에서 요약하라고 명시하지 않는 이상 논술에서 제시문을 단순 요약하는 문제는 없다!

학생들은 논술의 난이도를 어떻게 체감할까요? 어떤 문제를 쉽다고 생각하고 어떤 문제를 어렵다고 생각하는 것일까요? 아마도 이 문제에 대해 많은 학생들은 어렵지 않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성균관대 시험 치고는 어렵지 않다고 느낄 것입니다.

학생들이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제시문 자체가 어렵지 않기 때문입니다. 보통 많은 학생들은 제시문이 쉬우면 논술시험이 쉽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데 제시문이 쉽다고 글을 잘 쓸 수 있는 것일까요? 제시문이 쉬우니 시험의 변별력은 없는 것일까요? 그러니 문장을 잘 쓰고 글씨를 예쁘게 쓰는 학생이 붙는 것일까요?

이러한 학생들의 생각이 논술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보여주는 증거 중 하나가 됩니다. 다시 말해 학생들이 논술은 주어진 제시문만 가지고 글을 써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실제 논술은 주어진 제시문 이면에 숨어 있는 출제자의 주제의식과 그것을 보여주는 입장을 찾아내야 좋은 답안을 쓸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제시문에 대한 이해도 중요하지만 출제의도를 파악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 출제의도를 찾아내는 것이 흔히들 말하는 논술의 정답이 됩니다. 따라서 좋은 답안이란 제시문을 잘 이해한 답안이 아니라 출제의도를 잘 파악한 답안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제시문이 쉽다고 좋은 답안을 쓸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또한 이미 논술의 답안은 그 자체로 하나의 완벽한 글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제시문을 읽지 않은 사람이 해당 답안을 읽어도 그 자체로 이해가 가능하고 제시문의 내용을 유추할 수 있는 글이 좋은 답안이라는 것이지요.

자 이런 두 맥락─출제의도를 파악한 답안+하나의 완벽한 글인지 여부─에서 위의 학생 답안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이 글은 잘 쓴 글인가요? 아니면 못쓴 글인가요? 자신이 쓴 글과 비교하면서 판단해 봅시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 정도 글로는 합격하기 어렵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혹은 못쓴 글은 아니나 잘 쓴 글도 아니다, 즉 평범한 수준의 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점수표에서 볼 수 있듯이 제시문 가와 다에 대한 서술 때문입니다. ①, ②번 문장이죠.

이 학생이 과연 이 제시문을 이해하지 못했을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제시문의 난이도가 어렵지 않기 때문에 분명히 제시문을 어느 정도 잘 이해했을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봤을 때 출제자의 의도를 잘 파악한 것입니다. 그런데 왜 점수는 낮은 것일까요? 바로 하나의 완벽한 글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내가 잡은 기준에 맞게 제시문을 재서술할 수 있어야 한다!

[논술 기출문제 풀이] Smart한 논술의 법칙 ⑧
먼저 제시문을 전혀 읽지 않았다고 가정하고 이 글을 바라봅시다. 첫 번째 문장에서 폭력이 정당화될 수 있는지 여부로 제시문이 나뉜다고 말하고 있고 두 번째 문장에서 제시문 가와 다가 폭력이 정당화될 수 없다는 입장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읽는 사람입장에서는 이 문장 이후에 어떤 내용이 나오기를 기대할까요? 아마도 제시문 가와 다에 어떤 내용이 있기에 폭력이 정당화될 수 없다고 하는 것일까를 궁금해할 것입니다. 즉, 폭력이 정당화될 수 없는 이유가 서술되어 있기를 기대할 것입니다.

①, ②번 문장을 보겠습니다. 어떤가요? 폭력이 정당화될 수 없는 이유를 알겠나요? 물론 이 문장들이 제시문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음은 분명합니다. 이 학생이 쓴 문장의 내용이 제시문에 있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왜 폭력이 정당화될 수 없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다음으로 제시문 나와 라에 대한 서술 부분을 보겠습니다. 먼저 두 제시문이 폭력이 정당화될 수 있다고 하고 있고 제시문 나와 라에 대한 서술에서 어떤 경우에 폭력이 정당화될 수 있는지에 대한 서술이 정확하게 기술되어 있습니다.

차이를 알겠나요? 전자는 글을 읽어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고 후자는 글을 읽으면 무슨 말인지 알게 됩니다. 그러면 학생이 제시문 가, 다는 이해 못하고 나와 라는 이해해서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일까요?

이런 차이가 발생한 이유는 제시문의 흐름대로 단순 요약하려 했기 때문입니다. 제시문 나와 라는 제시문 자체에서 이미 폭력이 정당화될 수 있다는 주장과 언제 폭력이 정당화될 수 있는지를 명확하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학생들이 아무 생각없이 제시문의 논리를 따라가면서 제시문의 논리를 자신의 글로 옮겨도 문제가 발생하지 않게 됩니다. 왜냐하면 내가 쓰는 글 자체가 폭력의 정당화 여부와 그 이유이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제시문 가와 다는 폭력이 정당화될 수 없다는 주장도 제시문 나와 라에 비해 덜 선명하고 그 근거도 덜 선명합니다. 그러니 제시문 가와 다의 흐름에 맞춰 주장과 근거가 무엇이며 이를 어떻게 효율적으로 쓸지 고민하지 않고 쓴 것입니다.

결국 이 학생은 모든 제시문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으며 제시문의 흐름, 설명방법에 따라 글을 작성하게 된 것이고 운 좋게 제시문 나와 라는 자신의 글의 흐름과 맥락에 일치했으나 운 나쁘게 가와 다는 일치하지 않았던 것이지요. 그러니 좋은 답안을 쓰기 위해서는 내가 잡은 분류기준에 따라 제시문을 바꿔서 쓸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제시문은 답안을 쓰기 위한 재료이므로 요리를 하기 위해서는 가공을 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제가 쓴 예시 답안과 학생 답안을 비교해 본다면 재료 그것 자체와 잘 조리된 요리의 차이를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명심하기 바랍니다. 논술의 답안은 내가 쓰는 것이고 따라서 내가 쓴 글이 잘 전달될 수 있으려면 하나의 완벽한 일관성과 완결성을 가져야 한다는 사실. 그래야 읽는 사람이 이해하기 쉬우며 그래야 좋은 점수를 받는다는 것을요. 다음 시간에 뵙겠습니다.



제시문 가~라는 폭력이 정당화될 수 있는지 없는지에 대한 상반된 입장으로 나뉠 수 있다. 제시문 가와 다는 폭력은 어떤 경우에든 정당하지 않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즉, 제시문 가는 폭력 사용은 정의 실현을 명분으로 하더라도, 또 다른 폭력을 부르거나 파괴성이 증대되므로 정당화될 수 없다고 말한다. 제시문 다 역시 폭력은 동물적 분노심에 기인하는 수치스런 행동이며 폭력으로는 행복에 이를 수 없기 때문에 폭력이 정당화될 수 없다고 본다. 반면 제시문 나와 라는 폭력 사용이 정당화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제시문 나는 인간 사회에서 발생하는 불가피한 이해의 차이에 기인한 대립과 갈등 상황에서 자기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폭력이 정당화될 수 있다고 본다. 제시문 라 역시 부당한 폭력에 의해 탄압받는 시민들을 구하기 위한 폭력은 정당화될 뿐만 아니라 도덕적 의무라고 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