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현철의 시사경제 뽀개기] 대적 M&A 분쟁서 友軍 역할하는 백기사
▶ 백기사와 흑기사


삼성카드는 삼성에버랜드 보유 지분(25.64%) 중 17.0%를 주당 182만원에 KCC에 팔기로 결정했다고 12일 공시했다. 매각 대금은 총 7739억원이다. KCC는 이건희 삼성 회장의 아들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에 이어 에버랜드의 2대주주에 오른다. 이에 대해 증권가에선 전략적 제휴설, 백기사설, 파킹설 등이 제기되고 있다. - 12월13일 한국경제신문

☞ 시장경제의 한 주체인 기업들은 다른 기업들과 때론 경쟁하고 때론 협력하면서 지속가능한 성장을 추구한다. 삼성그룹이 지배구조 개선과 관련해 범현대가의 일원인 KCC를 끌어들인 것은 협력의 한 형태로 볼 수 있다. 삼성은 삼성에버랜드 지분을 우호적인 KCC에 팔아 법 규정을 준수할 수 있고, KCC로선 건설·조선사업을 하고 있는 삼성물산 삼성중공업에 페인트와 건자재를 공급하고 삼성과 태양광발전 분야에서도 협력을 강화할 수 있다. KCC를 창업한 정상영 명예회장은 고 정주영 현대 회장의 막내 동생이다. 삼성카드가 에버랜드 지분을 파는 것은 현행 ‘금융산업 구조개선에 관한 법률’(금산법)에 따라 같은 대기업 계열의 금융사는 다른 계열사의 의결권이 있는 주식 5% 이상을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삼성카드는 나머지 지분도 추가로 매각해 내년 4월까지 에버랜드 지분을 5% 미만으로 낮출 계획이다.

백기사와 파킹은 인수ㆍ합병(M&A) 수단의 하나다. ‘백기사(White Knight)’는 현 경영진에 우호적인 제3 세력이다. 다른 기업이 강제적으로 경영권 탈취를 시도하는 적대적 M&A 분쟁이 발생할 경우 우군(友軍)으로 활용할 수 있다. 백기사에 미리 회사 주식 일부를 양도할 수도 있고, 위기시 백기사에 지분 매입을 요청할 수도 있다. 2003년 외국계 자본인 소버린이 SK 지분 15%를 사들이면서 경영권을 위협하자 신한·하나·산업은행이 백기사 역할을 해 적대적 M&A를 막은 게 그 사례다. 백기사 역할은 보통 자금력이 탄탄하고 경영진이나 대주주 간 관계가 돈독한 기업이 하게 된다. 국가 기간산업으로 분류되는 기업에 대해 외국자본 등이 적대적 M&A를 시도할 경우 국민연금 등 연기금이 백기사 역할을 할 수도 있다. 백기사와 상반된 역할을 하는 게 ‘흑기사(Black Knight)’다. 적대적 M&A를 시도하는 기업이 단독으로 경영권 확보에 필요한 주식을 취득하기 어려울 때 우호적인 제3자를 찾아 도움을 구하게 되는데 이를 흑기사라고 부른다.

‘파킹(Parking)’도 M&A의 한 수법이다. 남들이 모르게 제3자에게 지분을 감춰두는 방식이다. 이렇게 숨겨진 지분은 다른 기업이 적대적 M&A를 선언할 경우 주주총회에서 자신의 편으로 활용할 수 있다. 파킹은 적대적 M&A의 공격수단이 되기도 한다. 경영권에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3자를 동원해 해당 기업의 주식을 매입, 경영권 탈취에 필요한 지분을 확보함으로써 적대적 M&A를 성사시키는 것이다.

삼성그룹이 에버랜드 주식을 KCC에 팔아도 이건희 회장 일가와 삼성 계열사 보유지분이 50%를 훨씬 넘는다. 그래서 경영권 유지엔 큰 문제가 없다. 하지만 KCC가 아니라 해외 사모펀드 등이 이번에 에버랜드 지분을 가져갈 경우 향후 분쟁이 발생할 소지도 있다. 이런 싹을 사전에 차단하겠다는 게 삼성 경영진의 의도로 풀이된다. 에버랜드는 삼성생명(지분율 19.3%)의 지배주주이고, 삼성생명은 다시 삼성전자 지분 7.4%를 가진 대주주다. 에버랜드가 삼성그룹 지배구조의 맨 꼭대기에 위치한 일종의 지주회사인 셈이다. 그래서 에버랜드 지분을 누가 가져가느냐는 재계의 큰 관심사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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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상거래 결제수단… 기축통화국은 주조이득

[강현철의 시사경제 뽀개기] 대적 M&A 분쟁서 友軍 역할하는 백기사
상품이나 서비스를 사고 팔려면 화폐가 필요하듯이 국제 간 상거래에도 사는 쪽과 파는 쪽이 믿고 거래할 수 있는 결제수단이 필요하다. 이처럼 국제 무역거래나 금융거래에서 결제 수단으로 이용되는 기본통화를 ‘기축통화(基軸通貨· Vehicle Currency)’라고 한다.

지구상에는 240개국 이상의 국가가 존재한다. 이들 국가는 대부분 자국 통화를 갖고 있지만 이 돈이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건 아니다. 한나라의 통화가 국제적으로 통용되기 위해서는 해당 통화에 대한 국제적 수요에 영향을 미치는 기본요건, 즉 △경제규모 △통화가치의 신뢰성 △금융부문의 발달 등이 충족돼야 한다. 다시 말해 경제규모가 세계경제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해야 하고, 통화가치에 대해 다른 나라들이 신뢰할 수 있어야 하며, 금융산업이 발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요건들이 갖춰져야 한 나라의 화폐가 국제적으로 △계산의 단위 △교환의 매개 △가치의 저장이라는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 미국이 세계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4.23%(2009년 기준)로 유로(21.4%), 일본(8.7%), 중국(8.56%)에 비해 훨씬 높다. 중국 경제규모가 빠르게 커지고 있지만 아직 미국을 따라잡을 만큼은 아니다.

오랫동안 국제 결제수단으로 사용돼온 건 금이다. 금은 상품의 가격이나 환율의 표시에 적용할 수 있는 계산의 단위로 적합하며, 어느 국가에서나 결제수단으로 받아들여진다. 나아가 인플레이션이나 전쟁 등 혼란 상황에서 가치저장의 수단으로도 적합하다. 이처럼 금을 국제거래의 결제수단으로 사용한 게 금본위체제다.

하지만 2차 세계대전 이후 국제무역이 급증함에 따라 금만으로는 결제나 지불준비자산을 충당하기 어렵게 됐다. 그래서 세계 각국은 강대국으로 부상한 미국의 달러를 금 이외의 국제결제 통화로 사용하게 된다. 이를 금환본위제라고 하는데 각국 화폐의 가치는 금이나 달러에 고정됐다. 그후 닉슨 행정부가 베트남 전쟁 등으로 인한 국제수지 적자, 전비조달에 따른 인플레이션 등으로 1971년 금과 달러가치의 연계를 깨트린 금태환 정지 선언을 하면서 국제통화체제는 현재와 같은 변동환율체제로 전환됐다.

달러화는 금태환 정지 이후에도, 그리고 최근의 금융위기에도 여전히 기축통화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미 버클리대의 배리 아이켄그린 교수는 그 이유로 △달러화 표시 채권시장이 잘 발달돼 있고 △세계의 투자자들이 달러화를 안전자산으로 여기고 있는데다 △달러를 대신할 만한 대체통화가 없다는 점을 들고 있다.

그러나 달러화 위상에 대한 우려의 시각 또한 커지고 있는 게 사실이다. 미국이 막대한 경상·재정적자와 국가부채에 허덕이면서 통화가치가 불안정해지고 있어서다. 세계 각국 정부가 비상자금으로 갖고 있는 외환보유액에서 달러화의 비중이 감소하는 현상은 이를 반증한다.

이런 틈을 타 세계 최대 외환보유국인 중국은 위안화의 국제화를 적극 추진 중이다. 동남아 국가들과의 무역에서 위안화로 결제하고 국제통화기금(IMF)이 발행하는 화폐인 특별인출권(SDR)의 가치결정에 위안화를 포함시키려는 시도 등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위안화가 기축통화로 부상하기는 쉽지 않다. 위안화가 기축통화가 되려면 중국 정부가 환율이 시장에서 자유롭게 결정되도록 허용해야 하며, 국제자본의 유출입에 대한 규제도 완전히 풀어야 한다.

미국 또한 달러가 기축통화에서 밀려나는 걸 방치하지 않을 것이다. 기축통화국으로서 누리는 막대한 주조이득(Seigniorage)을 포기할 수 없기 때문이다. 화폐를 찍어내면 액면가(교환가치)에서 발행비용을 뺀 만큼 이익이 생기는데 이게 세뇨리지다. 만약 달러화가 기축통화가 아니라면 미국 또한 다른 나라처럼 외환위기에서 자유롭지 못하게 된다.

강현철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hc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