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공계 CEO 열전 (9) - 빌게이츠 마이크로 소프트 회장
#독서왕 빌
빌 게이츠. 그의 이름을 들어보지 않았다면 그는 ‘지구인’이 아닐 것이다. 유복한 집안 출생, 하버드대 법학과 입학· 중퇴, 마이크로소프트사 설립, 윈도95 출시, 세계 2위 부자(2011년 포브스 집계). 그의 인생은 굴곡이 없어 보일 만큼 화려했다. ‘버려진 아이’ 스티브 잡스와 늘 비교됐던 빌. 윌리엄 헨리 게이츠 3세가 본명인 그의 성장기와 비즈니스 속으로 들어가 보자.
우연일까. 스티브 잡스가 태어난 1955년 빌 게이츠가 시애틀에서 첫 울음을 터뜨렸다. 대학생 사이에 출생해 곧 입양된 스티브와 달리 빌은 변호사인 아버지와 금융기업 이사인 어머니의 정을 한껏 받고 컸다. 스티브는 생물학적 부모를 끝내 거부했지만 빌은 부모의 슬하에서 구김없이 컸다. 너무도 다른 이 두 사람이 정보기술 시장에서 운명적 조우를 할 줄이야!
빌은 어릴 적 못 말리는 독서광이었다고 한다. 그가 가지고 논 것은 백과사전. 10살이 되기 전에 빌은 백과사전을 독파했다. 집 근처 공립도서관에서 열린 독서경진대회에서 아동부 1등과 전체 1등을 차지할 정도였다. 굵은 안경을 쓴 이 아이는 어른이 된 후 “나는 평일에 최소한 매일 밤 1시간, 주말에는 3~4시간 독서시간을 가지려 노력했다. 독서가 나의 안목을 넓혀줬다”고 술회했다.
빌은 13살 때인 1967년 사립학교 레이크사이드스쿨로 진학했다. 졸업생의 25%가량이 미국 아이비리그에 진학하는 명문학교였다. 8학년 때 빌은 컴퓨터부문에서 남다른 천재성을 발휘했다. 학교 ‘어머니회’를 GE(제너럴일렉트릭)컴퓨터와 연결해 컴퓨팅을 할 수 있게 했다. 공유 터미널을 이용하려는 생각을 한 아이는 빌뿐이었다.
#컴퓨터 프로그램에 몰두
이때부터 빌은 컴퓨터 프로그래밍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그가 만든 첫 작품은 컴퓨터를 상대로 할 수 있는 간단한 게임이었다. 학교의 반 편성 프로그램을 만들었고 이를 악용(?)해 여학생이 자기 반의 대다수를 차지하도록 만들기도 했다. 심지어 한 회사의 급여관리 프로그램을 주는 대가로 로열티를 받는 수완도 발휘했다. 고교생인 빌은 이미 워싱턴주립대에 진학해 있던 폴 앨런과 함께 교통량 데이터 분석프로그램을 만들어 돈을 더 벌었다. 마이크로소프트 공동 창업자가 되는 폴 앨런을 만난 것이다.
1973년 빌은 변호사인 아버지 등의 영향을 받아 하버드대 법학과에 진학했다. 하지만 그는 곧 수학과로 전과했다. 컴퓨터광이 법학에 재미를 느끼지 못했을 것은 뻔했을 터다. 빌은 대학 생활에 큰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좀더 자유롭고 싶었다. 빌은 결국 대학을 중퇴했다. 스티브 잡스와 마찬가지로. 천재들은 대학을 싫어하는 것일까.
#1500달러로 회사 설립
대학을 중퇴한 그는 1975년 형뻘인 앨런과 회사를 차렸다. 마이크로소프트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회사 설립에 필요한 1500달러 자본금은 하버드 기숙사에서 친구와 포커를 쳐 따서 마련했다는 소문도 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마이크로컴퓨터와 소프트웨어를 합친 것으로 초기 이름은 ‘Micro-Soft’였으나 그해 겨울 단순하게 ‘Microsoft’로 변경됐다. 창업 후인 1981년 회사는 당시 세계 최대의 컴퓨터 회사인 IBM사로부터 개인용 PC에 사용할 운영체제 프로그램(후에 DOS라고 명명됨) 개발을 의뢰받아 매출을 올렸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오늘날처럼 성공한 계기는 1983년에 마련됐다. 컴퓨터에 ‘창(windows)’을 단 것. 물론 이보다 앞서 애플사가 세계 최초로 이 방식을 썼었다. 하지만 이 방식이 적용된 운영체제는 큰 인기를 끌지 못했다. 이 당시에는 여러 회사가 나름대로의 운영체제를 만들어 마케팅에 나섰지만 시장이 무르익지 않아 고배를 마시던 중이었다.
대부분의 PC가 운영체제로 윈도를 쓰기 시작한 것은 1990년 마이크로소프트가 내놓은 윈도3.0이 시장의 반응을 얻으면서부터다. 프로그램 관리자와 아이콘의 역할이 강조되고 하드웨어보다 소프트웨어의 중요성이 서서히 부각되던 때였다. 기업용 컴퓨터 시대에서 개인용PC로 시장이 옮겨가는 시기였다. 개인용PC가 열리기 이전 대형컴퓨터 생산에만 열을 올리던 IBM의 시대에 처음으로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운 때이기도 했다.
#세계로 향한 '창'
1995년 8월 ‘윈도 95’를 출시, 개인용 컴퓨터 운영체제의 획기적 전환을 가져왔다. 이용자 편익이 극대화된 제품으로 발매 4일 만에 전 세계적으로 100만개 이상이 팔려나갔다. PC의 급속한 확산과 더불어 세계 컴퓨터 운영체제 시장의 주도권을 장악해 나갔다. 거의 모든 PC에는 윈도가 탑재돼 전 세계적으로 돈을 쓸어 담을 정도였다. 이후 마이크로소프트는 이번 버전의 오류를 개선한 윈도 시리즈를 잇따라 출시, 지금의 아이폰 못지 않은 인기를 누렸다. 특히 마이크로소프트는 IBM이 새로운 PC를 개발할 때마다 새로운 소프트웨어를 개발, 운영체제의 표준으로 자리매김했다.
개인용 PC와 소프트웨어 시장의 가능성에 대한 정확한 예측과 남보다 앞선 제품개발을 통해 전세계에 마이크로소프트 열풍을 만들어 냈다는 평가다. MS-DOS, EXCEL, WINDOWS로 이어진 핵심 소트프웨어는 자동차나 대형 유조선을 만드는 것보다 훨씬 부가가치가 높은 제품으로 전 세계에 소프트웨어의 중요성을 일깨웠다.
#경영 33년...그리고 은퇴
2008년 빌 게이츠는 33년간 경영해온 회사를 떠났다. 그는 직원들에게 “MS와 MS의 일이 내 삶에서 단 하루라도 떠난 적이 없다”며 고별사를 했다. “큰 변화가 일어나는데도 모르고 놓치는 경우가 있습니다. 탁월한 사람들을 투입하지 않을 경우 이런 일이 생깁니다. 가장 위험한 실수지요.” 그는 또 자신이 떠남으로써 생길 수 있는 공백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저의 부재는 다른 사람들이 두각을 나타낼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저는 이제 물러나야 하며 뭔가 새로운 일이 나타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는 실수도 언급했다. “내 예측은 여러 번 틀린 적이 있습니다. 우리는 실수를 했고 실수했다는 것을 알고 있어요. 하지만 그것에서 우리는 배웠고 업적도 낳았습니다.” MS가 야심차게 내놓은 비스타는 그 실수 중 하나였다. 구글의 검색시장 석권에도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애플의 아이팟과 아이폰에는 손도 한번 못써보고 성공을 지켜봐야 했다. 새로운 사람이 필요한 이유를 그는 이렇게 설명한 것이다.
그는 세 가지 혁신을 이뤘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첫 번째가 작고 가벼운 것이 무겁고 큰 것을 이긴다는 것이었다. IBM시대에 하드웨어 우선에서 벗어나 모든 컴퓨터에서 작동되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했다는 의미다. 두 번째가 표준화에 대한 남다른 혁신이다. 컴퓨터 생산업체에 소프트웨어를 헐값으로 장착시켜 표준제품이 되도록 해버렸다. 마지막으로 시장의 요구를 재빨리 받아들이는 민첩성이다. IBM이 갑작스럽게 새로운 OS를 요구하자 그는 제품을 새로 개발하기보다 디지털 리서치회사의 제품을 모방한 업그레이드 제품을 잽싸게 내놨다. 이 때문에 스티브 잡스는 빌 게이츠를 아이디어 모방의 대가로 비난했다. 빌이 만든 제품 중 그의 독자적인 아이디어는 하나도 없다고 할 만큼 스티브는 비판적이었다. 윈도95는 스티브 잡스의 MAC OS를 그대로 본떴다. 하지만 꿩 잡는 게 매라고 했던가. 그는 나름대로 업그레이드하고 새로운 변화로 시장을 석권했다.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회장 겸 이사회 의장은 엇갈린 평가에도 불구하고 세계에서 두 번째로 돈 많은 부자로 남아있다.
고기완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dadad@hankyung.com
빌 게이츠 회장 프로필
▶ 1955년 미국 시애틀에서 출생
▶ 1973년 하버드 법학과 입학
▶ 1975년 마이크로소트프사 설립
▶ 1995년 윈도95 출시
▶ 2008년 경영 은퇴
#독서왕 빌
빌 게이츠. 그의 이름을 들어보지 않았다면 그는 ‘지구인’이 아닐 것이다. 유복한 집안 출생, 하버드대 법학과 입학· 중퇴, 마이크로소프트사 설립, 윈도95 출시, 세계 2위 부자(2011년 포브스 집계). 그의 인생은 굴곡이 없어 보일 만큼 화려했다. ‘버려진 아이’ 스티브 잡스와 늘 비교됐던 빌. 윌리엄 헨리 게이츠 3세가 본명인 그의 성장기와 비즈니스 속으로 들어가 보자.
우연일까. 스티브 잡스가 태어난 1955년 빌 게이츠가 시애틀에서 첫 울음을 터뜨렸다. 대학생 사이에 출생해 곧 입양된 스티브와 달리 빌은 변호사인 아버지와 금융기업 이사인 어머니의 정을 한껏 받고 컸다. 스티브는 생물학적 부모를 끝내 거부했지만 빌은 부모의 슬하에서 구김없이 컸다. 너무도 다른 이 두 사람이 정보기술 시장에서 운명적 조우를 할 줄이야!
빌은 어릴 적 못 말리는 독서광이었다고 한다. 그가 가지고 논 것은 백과사전. 10살이 되기 전에 빌은 백과사전을 독파했다. 집 근처 공립도서관에서 열린 독서경진대회에서 아동부 1등과 전체 1등을 차지할 정도였다. 굵은 안경을 쓴 이 아이는 어른이 된 후 “나는 평일에 최소한 매일 밤 1시간, 주말에는 3~4시간 독서시간을 가지려 노력했다. 독서가 나의 안목을 넓혀줬다”고 술회했다.
빌은 13살 때인 1967년 사립학교 레이크사이드스쿨로 진학했다. 졸업생의 25%가량이 미국 아이비리그에 진학하는 명문학교였다. 8학년 때 빌은 컴퓨터부문에서 남다른 천재성을 발휘했다. 학교 ‘어머니회’를 GE(제너럴일렉트릭)컴퓨터와 연결해 컴퓨팅을 할 수 있게 했다. 공유 터미널을 이용하려는 생각을 한 아이는 빌뿐이었다.
#컴퓨터 프로그램에 몰두
이때부터 빌은 컴퓨터 프로그래밍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그가 만든 첫 작품은 컴퓨터를 상대로 할 수 있는 간단한 게임이었다. 학교의 반 편성 프로그램을 만들었고 이를 악용(?)해 여학생이 자기 반의 대다수를 차지하도록 만들기도 했다. 심지어 한 회사의 급여관리 프로그램을 주는 대가로 로열티를 받는 수완도 발휘했다. 고교생인 빌은 이미 워싱턴주립대에 진학해 있던 폴 앨런과 함께 교통량 데이터 분석프로그램을 만들어 돈을 더 벌었다. 마이크로소프트 공동 창업자가 되는 폴 앨런을 만난 것이다.
1973년 빌은 변호사인 아버지 등의 영향을 받아 하버드대 법학과에 진학했다. 하지만 그는 곧 수학과로 전과했다. 컴퓨터광이 법학에 재미를 느끼지 못했을 것은 뻔했을 터다. 빌은 대학 생활에 큰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좀더 자유롭고 싶었다. 빌은 결국 대학을 중퇴했다. 스티브 잡스와 마찬가지로. 천재들은 대학을 싫어하는 것일까.
#1500달러로 회사 설립
대학을 중퇴한 그는 1975년 형뻘인 앨런과 회사를 차렸다. 마이크로소프트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회사 설립에 필요한 1500달러 자본금은 하버드 기숙사에서 친구와 포커를 쳐 따서 마련했다는 소문도 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마이크로컴퓨터와 소프트웨어를 합친 것으로 초기 이름은 ‘Micro-Soft’였으나 그해 겨울 단순하게 ‘Microsoft’로 변경됐다. 창업 후인 1981년 회사는 당시 세계 최대의 컴퓨터 회사인 IBM사로부터 개인용 PC에 사용할 운영체제 프로그램(후에 DOS라고 명명됨) 개발을 의뢰받아 매출을 올렸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오늘날처럼 성공한 계기는 1983년에 마련됐다. 컴퓨터에 ‘창(windows)’을 단 것. 물론 이보다 앞서 애플사가 세계 최초로 이 방식을 썼었다. 하지만 이 방식이 적용된 운영체제는 큰 인기를 끌지 못했다. 이 당시에는 여러 회사가 나름대로의 운영체제를 만들어 마케팅에 나섰지만 시장이 무르익지 않아 고배를 마시던 중이었다.
대부분의 PC가 운영체제로 윈도를 쓰기 시작한 것은 1990년 마이크로소프트가 내놓은 윈도3.0이 시장의 반응을 얻으면서부터다. 프로그램 관리자와 아이콘의 역할이 강조되고 하드웨어보다 소프트웨어의 중요성이 서서히 부각되던 때였다. 기업용 컴퓨터 시대에서 개인용PC로 시장이 옮겨가는 시기였다. 개인용PC가 열리기 이전 대형컴퓨터 생산에만 열을 올리던 IBM의 시대에 처음으로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운 때이기도 했다.
#세계로 향한 '창'
1995년 8월 ‘윈도 95’를 출시, 개인용 컴퓨터 운영체제의 획기적 전환을 가져왔다. 이용자 편익이 극대화된 제품으로 발매 4일 만에 전 세계적으로 100만개 이상이 팔려나갔다. PC의 급속한 확산과 더불어 세계 컴퓨터 운영체제 시장의 주도권을 장악해 나갔다. 거의 모든 PC에는 윈도가 탑재돼 전 세계적으로 돈을 쓸어 담을 정도였다. 이후 마이크로소프트는 이번 버전의 오류를 개선한 윈도 시리즈를 잇따라 출시, 지금의 아이폰 못지 않은 인기를 누렸다. 특히 마이크로소프트는 IBM이 새로운 PC를 개발할 때마다 새로운 소프트웨어를 개발, 운영체제의 표준으로 자리매김했다.
개인용 PC와 소프트웨어 시장의 가능성에 대한 정확한 예측과 남보다 앞선 제품개발을 통해 전세계에 마이크로소프트 열풍을 만들어 냈다는 평가다. MS-DOS, EXCEL, WINDOWS로 이어진 핵심 소트프웨어는 자동차나 대형 유조선을 만드는 것보다 훨씬 부가가치가 높은 제품으로 전 세계에 소프트웨어의 중요성을 일깨웠다.
#경영 33년...그리고 은퇴
2008년 빌 게이츠는 33년간 경영해온 회사를 떠났다. 그는 직원들에게 “MS와 MS의 일이 내 삶에서 단 하루라도 떠난 적이 없다”며 고별사를 했다. “큰 변화가 일어나는데도 모르고 놓치는 경우가 있습니다. 탁월한 사람들을 투입하지 않을 경우 이런 일이 생깁니다. 가장 위험한 실수지요.” 그는 또 자신이 떠남으로써 생길 수 있는 공백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저의 부재는 다른 사람들이 두각을 나타낼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저는 이제 물러나야 하며 뭔가 새로운 일이 나타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는 실수도 언급했다. “내 예측은 여러 번 틀린 적이 있습니다. 우리는 실수를 했고 실수했다는 것을 알고 있어요. 하지만 그것에서 우리는 배웠고 업적도 낳았습니다.” MS가 야심차게 내놓은 비스타는 그 실수 중 하나였다. 구글의 검색시장 석권에도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애플의 아이팟과 아이폰에는 손도 한번 못써보고 성공을 지켜봐야 했다. 새로운 사람이 필요한 이유를 그는 이렇게 설명한 것이다.
그는 세 가지 혁신을 이뤘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첫 번째가 작고 가벼운 것이 무겁고 큰 것을 이긴다는 것이었다. IBM시대에 하드웨어 우선에서 벗어나 모든 컴퓨터에서 작동되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했다는 의미다. 두 번째가 표준화에 대한 남다른 혁신이다. 컴퓨터 생산업체에 소프트웨어를 헐값으로 장착시켜 표준제품이 되도록 해버렸다. 마지막으로 시장의 요구를 재빨리 받아들이는 민첩성이다. IBM이 갑작스럽게 새로운 OS를 요구하자 그는 제품을 새로 개발하기보다 디지털 리서치회사의 제품을 모방한 업그레이드 제품을 잽싸게 내놨다. 이 때문에 스티브 잡스는 빌 게이츠를 아이디어 모방의 대가로 비난했다. 빌이 만든 제품 중 그의 독자적인 아이디어는 하나도 없다고 할 만큼 스티브는 비판적이었다. 윈도95는 스티브 잡스의 MAC OS를 그대로 본떴다. 하지만 꿩 잡는 게 매라고 했던가. 그는 나름대로 업그레이드하고 새로운 변화로 시장을 석권했다.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회장 겸 이사회 의장은 엇갈린 평가에도 불구하고 세계에서 두 번째로 돈 많은 부자로 남아있다.
고기완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dadad@hankyung.com
빌 게이츠 회장 프로필
▶ 1955년 미국 시애틀에서 출생
▶ 1973년 하버드 법학과 입학
▶ 1975년 마이크로소트프사 설립
▶ 1995년 윈도95 출시
▶ 2008년 경영 은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