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 전문가가 FTA에 의견내는 건 당연"

"법관의 정치적 중립성에 위배되는 행위"

판사들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비판하는 글을 잇따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에 올리면서 법관들의 이 같은 입장 표명이 과연 합당한 것인지를 둘러싸고 논란이 한창이다. 발단은 지난달 최은배 인천지법 부장판사가 페이스북에 ‘뼛속까지 친미인 대통령과 통상관료들이 서민과 나라 살림을 팔아먹은 날을 결코 잊지 않겠다’는 취지의 글을 올리면서 시작됐다. 이 같은 사실이 보도되자 법관윤리강령을 위반했는지를 가리기 위한 대법원 공직자윤리위원회가 열렸고 윤리위는 “법관들이 의견표명을 할 때는 자기절제와 균형적인 사고를 바탕으로 품위를 유지해야 하고 페이스북 등 SNS 사용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라며 분별력 있고 신중한 자세를 가질 것을 권고했다. 또 법관의 SNS 사용기준을 만들 필요가 있음을 공감하고 충분한 논의를 거쳐 기준을 마련하기로 했다. 이 같은 윤리위원회 결정에 대해 이번에는 김하늘 인천지법 부장판사가 “한·미 FTA는 사법주권을 침해하는 불평등 조약일 수 있다”며 한·미 FTA 재협상을 위한 태스크포스를 법원행정처 내에 구성할 것을 대법원장에게 청원하겠다는 글을 법원 내부 게시판에 올렸다. 이처럼 판사들이 한·미 FTA에 대한 개인적인 견해를 잇따라 밝히면서 이에 대한 찬반 논란도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찬성

한 지방법원 판사는 “법관 개인이 페이스북에서 사적으로 얘기한 것을 공론의 장으로 끌고와 재판 공정성을 단죄하고 의사 표현을 위축하려는 시도”라며 일부 언론과 대법원을 비난했다. 이용섭 민주당 대변인은 “대법원의 조치는 권위주의 시대에나 있을 법한 것”이라며 “정부정책과 반대되는 글을 올렸다는 것만으로 윤리위원회를 열고 문제삼는 것은 양심과 표현의 자율을 보장하는 헌법정신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우위영 민노당 대변인도 “대법원의 결정은 겉으로는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을 걸고 있지만 사실상 FTA 반대 입장에 대한 표적 징계라고밖에 할 수 없다”는 논평을 발표했다.

김하늘 판사의 글에 댓글을 단 판사들은 대부분 “전문가인 법관이 사실상 법률과 동등한 한·미 FTA를 연구하는 것은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는 의견을 밝혔다.

한 판사는 “법원이 사법부와 직결된 문제에 제대로 된 목소리를 내지 못한 것 자체가 부끄럽다”고 자책했다. 또 다른 판사는 “법률에 준하는 조항에 문제가 있다면 사법부가 당연히 의견을 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주장했다.

한 네티즌은 “표현의 자유는 헌법에 보장된 기본권”이라며 “문제가 많은 한·미 FTA 날치기에 대해서 법관이 문제 제기를 하는 것은 정상적인 국가라면 지극히 상식적인 일”이라고 주장했다. 아무리 법관이라지만 법정도 아니고 SNS 등에서 개인적인 입장 표명을 한 것을 두고 이처럼 온 나라가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 오히려 더 이상하다며 판사들의 행동을 지지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반대

‘시민과 함께하는 변호사들’은 “법관이 아니더라도 SNS에서의 표현이 사회적 문제가 된다면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며 “행위자가 법관이고 정치적 문제에 개입한 것이라면 법관의 정치적 중립이라는 헌법적 가치에서 책임이 가중된다”는 입장이다.

변호사 출신인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이두아 한나라당 의원은 “판사가 자기 주관에 대해 밝히는 것은 부적절하다”며 “그럴 거면 변호사를 하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같은 당 이은재 의원도 “본연의 업무는 재판 업무지 정부가 하는 것에 대해 법원까지 동요해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김기현 한나라당 대변인도 “누구보다 균형감각을 갖춰야 할 현직 판사가 한·미 FTA 반대 주장만을 일방적으로 수용해 불평등 운운하는 것은 그야말로 경솔한 처사”라고 강조했다.

부장판사 출신 K교수는 “한·미 FTA에 대한 찬반 의견은 논외로 하겠지만 법관은 사건이 벌어진 다음 사후에 판단하는 것이지 아직 사건이 오지도 않았는데 미리 판단해서 발언하는 것은 법관의 본질에 반한다”는 의견을 나타냈다.

전희경 바른사회시민회 정책실장은 “대법원이 판사들의 의견 표명 행위에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겠다고 하는데도 일부 법관이 지속적으로 정치적 발언을 하는 것은 결국 판사 스스로 사법부를 불신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꼬집었다.

한 네티즌은 “공직자는 엄격한 윤리의식을 갖고 정치적 문제에 중립을 고수해야 하는 게 일반시민과 다른 점 아니겠느냐”며 “판사가 편향된 사고방식을 지니고 있다면 재판의 신뢰성과 공정성이 깨진다”는 견해를 밝혔다.


생각하기

이 문제는 크게 두 가지 이슈를 포함하고 있다. 한 가지는 SNS와 내부 게시판 의견 개진을 사적인 공간에서의 행위로 봐야 할 것인가의 문제이고 또 하나는 법관이 한·미 FTA 체결에 대해 의견을 개진하는 것을 어떻게 봐야 할 것인가이다. 우선 페이스북을 사적 공간으로 볼지 여부인데 친구 수락을 하지 않은 사람도 일방적으로 특정인의 대화 내용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사적인 공간으로 보기는 점차 여려워지고 있는 게 현실이다.

다음 현직 판사의 한·미 FTA 내용에 대한 의견 개진 문제는 단순히 한 명의 개인으로 글을 쓴 것인지, 판사라는 직업인으로서 글을 올린 것인지에 따라 다르게 접근해야 할 것이다.

SNS의 경우 종류도 점차 다양해지고 있고 여기서 자신의 개인정보 공개 정도도 조금씩 다르기 때문에 일률적으로 판단하기는 쉽지 않다. 다만 이번에 문제가 됐던 최은배 판사의 경우 그와 친구를 맺지 않은 사람도 페이스북에서 그의 현 직업과 이름 출신학교 등을 모두 알 수 있도록 신상정보를 공개해 놓았다면 그가 페이스북에 올린 글은 판사라는 현 직업인이 올린 것을 누구나 알 수 있기 때문에 단순히 개인적인 글이라고 보기에는 곤란한 부분이 있다.

공직자가 SNS에서 특정 이슈에 대한 의견을 제시하는 경우 어디까지 한계를 둘 것인가는 매우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다. 일정한 기준을 정하기도 어려울 뿐 아니라 SNS 관련 기술이 변하면 이런 기준 역시 바뀌어야 하기 때문이다.

다만 불특정 다수가 글을 올린 사람의 이름과 직업을 모두 알 수 있다면 사적 공간에서의 개인적인 의견 개진으로 보는 데는 한계가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김선태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kst@hankyung.com

<연합뉴스 11월27일자 보도기사>

현직 부장판사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인 페이스북에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반대 글을 올리고 대법원이 이 문제를 윤리위에 회부하자 찬반 논란이 사이버 공간과 정치권으로 빠르게 퍼지고 있다. 지난 25일 인천지법 최모 부장판사가 ‘뼛속까지 친미인 대통령과 통상관료들이 서민과 나라 살림을 팔아먹었다’는 취지의 글을 올린 사실이 알려진 이후 포털사이트 다음 토론방에는 수십 건의 찬반 의견이 실렸다. 한 네티즌은 “공직자는 엄격한 윤리의식을 갖고 정치적 문제에 중립을 고수해야 하는 게 일반시민과 다른 점 아니겠느냐”며 “판사가 편향된 사고방식을 지니고 있다면 재판의 신뢰성과 공정성이 깨진다”는 견해를 밝혔다. 다른 누리꾼은 “법관 윤리강령에는 ‘직무를 수행함에 있어 정치적 중립성을 지킨다’고 규정돼 있다”며 “(사적 영역인) 페이스북에 글을 올리는 것은 직무 수행과 무관하고 정치적 중립에 어긋나는 것도 아니다”고 옹호했다. 최 부장판사의 페이스북 친구는 종전 300명 선에서 550명으로 늘었고 트위터 팔로어는 30명에서 2만2000여명으로 급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