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공계 CEO열전 ⑦
박지영 컴투스 사장
#“게임에 빠졌어요” # 밀양을 떠나 울산으로

# 24살에 빚만 2억5000만원 # 모바일 게임으로 성공가도 # 스마트폰의 등장
박지영 컴투스 사장(37)은 모바일 게임 업계의 여전사다. 스물네살 어린 나이에 미개척 분야인 모바일 게임 시장에 투신, 미국 타임지(誌)가 선정한 세계 14대 기술대가(Global Tech Guru)에 뽑히기도 한 자랑스러운 한국 여성 기업인이다. 컴투스는 국내 최초 모바일 롤플레잉 게임(RPG)인 춘추열국지를 비롯해 테트리스, 붕어빵 타이쿤, 한국프로야구, 폰고도리 등을 서비스하고 있는 국내 1위의 모바일 게임 업체다. 남성 위주의 정보기술(IT) 업계에서 우뚝 선 박 사장은 또 어떤 인물일까.
[기술이 국력이다] “사람이 적게 간 길을 가라… 프로스트의 詩처럼”
# 밀양을 떠나 울산으로


1남2녀 중 막내인 박 사장은 경남 밀양에서 나고 컸다. 초등학교 2곳, 여자중학교 2곳, 인문계 고교 1곳이 전부였던 고향이다. 어릴 적부터 총명해 초등~중학교까지 밀양에서 줄곧 1등을 했다. 고교 진학을 앞두고 지영은 고민에 빠졌다. 밀양에서 고교를 마치느냐 아니면 좀 더 넓은 곳으로 나가 경쟁하느냐, 선택의 기로에 섰던 것. 지영은 산업도시 울산행을 택했다. “새로운 환경에서 공부하고 경쟁하고 싶다는 목마름이 더 컸어요.”

울산 생활은 녹록지 않았다. 울산이라는 곳은 서울에서 오는 인구가 많은 도시여서 사투리를 쓰는 친구들이 많지 않았다. 밀양 사투리가 혀에 밴 지영이 한마디만 해도 친구들은 웃음보를 터뜨렸다. 유학생활은 외로웠다. 철저하게 혼자였다. 친구들이 자기에게 관심을 가져주는 밀양 분위기는 없었다.

이런 환경 속에서 지영은 위축되기보다 새로운 것을 알아가는 재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박 사장은 이때를 “살아가는 요령을 배운 시기였다”고 말한다. 첫 번째 남다른 길은 이렇게 긍정적인 생각으로 극복했다.

박 사장이 선택한 두 번째 남다른 길은 이공계열인 고려대 컴퓨터학과에 입학했다는 것이다. 의대나 약대, 사범대에 들어가 안정된 삶을 살기를 바라는 부모의 뜻과 다른 길이었다. “의사, 약사 선생님은 굳이 해보지 않아도 아는 직업이라 관심을 두지 않았어요. 수학, 과학 과목을 좋아해서 이공계열을 선택했고 재미있을 것 같아 컴퓨터학과를 선택했어요.”

#'게임에 빠졋어요'

대학 진학 후 박 사장은 게임을 하면서 친구들과 어울렸다. 이때 등장한 3D 게임은 컴퓨터학도인 지영의 눈에 신기하게 다가왔다. ‘버추얼 파이터(Virtual Fighter)’ 같은 3D게임에서 나타나는 각종 그래픽과 효과는 컴퓨터학도의 뇌리에 박혔다. 시간만 나면 친구들과 함께 오락실에서 파묻혀 살다시피했다.

오락실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게임공략법을 알려주겠다며 접근한(?) 같은 과 동기가 있었다. 이 인연은 캠퍼스 커플로 발전했고 결혼으로 골인했다. 컴투스 창업 파트너이자 현재 컴투스 부사장인 이영일 씨를 만난 게 순전히 게임 덕분이라고 해도 과장이 아니다.

대학 졸업반 시절 또 다른 길을 선택했다. 취업 대신 창업이었다. 졸업 당시인 1996년은 디지털 물결이 일던 무렵이어서 박 사장은 대기업 취업을 손쉽게 할 수 있었다. 명문대 컴퓨터학과 졸업생이면 골라서 직장을 잡을 수 있을 정도였다. 좋은 직장에 들어가 직장생활을 하기를 바라는 부모님의 걱정을 감안하면 취업이 안정적이었다.

#24살에 빚만 2억5000만원

1998년 7월 과 동기인 박지영, 이영일과 기숙사에서 알게 된 현유진 등 3명은 각각 500만원씩 보태 옥탑방에서 창업했다. 회사 이름은 컴투스(come to us). 컴퓨터와 옥탑방을 구하고 남은 돈은 얼마 되지 않았다. 일단 돈부터 벌어야 했다. MP3플레이어를 해보겠다고 나섰으나 제조 생산 기반이 없어 무리였다. 이후 MP3 음악파일 다운로드 서비스와 웹호스팅(인터넷 홈페이지 운영 서비스), IP(PC통신망을 통해 정보를 제공해주고 대가를 받는 사업), PC통신망 통합검색엔진, DDR게임 등에 손을 댔지만 다 실패했다. MP3 음악 다운로드는 저작권에 걸렸고, 웹페이지를 만드는 기업들도 없었으며, 통합검색엔진은 나중에야 네이버가 성공하는 등 타이밍이 맞지 않았다.

이렇게 각종 사업을 하면서 진 빚이 2억5000만원에 달했다. “몸무게가 37㎏까지 빠졌어요. 샤워를 하면서 거울에 비친 나를 봤는데 갈비뼈가 앙상하게 보였어요. 너무 고민이 많아 앞이 캄캄했지요.” 하지만 훗날 이런 시행착오와 경험은 소중한 자산으로 남았다. 기업을 경영하기 위해 해야 할 준비가 무엇인지, 최고경영자(CEO)가 가져야 할 가치관과 결단력이 무엇인지 배우는 소중한 기회가 됐다.

#모바일 게임으로 성공가도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고 했던가. 박지영과 이영일 커플에게 번뜩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오랜 고행 끝에 깨달음이 오는 것처럼. 다가올 무선인터넷 시대에 대비해 모바일 게임 콘텐츠를 개발해야 한다는 생각이 가슴에 박혔다. 학창시절 좋아하던 게임이 무선인터넷과 접목되는 순간이었다. 마침 모바일 게임에 뛰어든 이들이 없다는 점에도 박 사장은 매력을 느꼈다.

당시 휴대폰은 흑백이어서 게임도 흑백그림으로 단순했다. 몇 개의 게임을 재빨리 만들어 무선인터넷을 처음 시작한 LG텔레콤에 공급했다. 반응이 좋았다. 이어 SK텔레콤 KTF, 한솔, 신세계통신에도 서비스했다. 단순한 게임이었지만 이동통신 가입자들이 즐겼다. 2000년 5월 3개 창업투자자문사로부터 40억원을 유치했다. “타이밍이 좋았어요. 투자할 곳을 못찾던 자금이 모바일 게임을 발견한 거죠.”

SK텔레콤과 손잡고 서비스한 국내 최초 모바일 RPG ‘춘추열국지’가 대박을 터뜨렸다. 컴투스는 벽돌깨기 게임인 ‘테트리스’ 라이선스도 확보했다. 박 사장은 테트리스 관계자를 만나기 위해 하와이로 날아갔다. 경쟁 업체도 테트리스 라이선스를 가져가기 위해 막후 노력 중이었다. 박 사장은 계약금을 파격적으로 제시하고 테트리스를 세 가지 버전으로 만든다는 계획을 내밀었다. 테트리스 회사는 마침내 박 사장의 손을 들어줬다. 라이선스를 확보한 것을 확인한 박 사장은 그제서야 하와이 물놀이를 즐겼다.

#스마트폰의 등장

컴투스의 매출은 2002년 32억원에서 2003년 100억원가량으로 급성장했다. 테트리스를 서비스한 2002년 8월 이후 6개월 만에 이용자가 급증한 덕분이었다. 돈을 잘 번다는 소문이 나면서 모바일 게임 시장으로 뛰어드는 사업자가 늘어났다. 과열 경쟁이 벌어진 것. 2003년 성장세를 앞세워 코스닥 상장을 추진했으나 실패했다. 과열 경쟁으로 마케팅 비용이 치솟는 등 상황이 악화한 게 이유였다. 돌파구는 해외 진출에서 찾았다. 8개월간 동분서주한 끝에 박 사장은 미국 벤처투자자들로부터 800만달러 투자를 얻어냈다. 성장세가 다시 이어지고 외자유치에 성공하면서 2007년 7월 모바일 게임 업체로는 처음 코스닥에 상장했다.

스마트폰이 등장한 것도 성장 배경이다. 2008년 애플 앱스토어에서 유료게임 1위에 올라 화제를 뿌렸다. 아이폰 등 스마트폰이 안겨준 성과는 놀라웠다. ‘홈런 배틀 3D’는 2010년 애플이 뽑은 최고의 애플리케이션 50위에 올랐고 ‘슬라이스 잇’은 출시 보름 만에 미국 전체 유료앱 순위 2위를 기록했다. 일본 영국 독일 오스트리아 스웨덴 등에서는 국가별 1위 자리를 꿰찼다. ‘가지 않은 길’을 선택한 그는 두 아이의 위대한 엄마이기도 하다.

고기완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dadad@hankyung.com

박지영 사장 프로필

▶ 1975년 경남 창원 출생

▶ 고려대 컴퓨터학과 졸업

▶ 1998년 컴투스 창업

▶ 2003년 세계 14대 기술대가 선정

▶ 2007년 세계 톱 50 여성 경영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