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드런과 유럽의 위기
재정위기로 신뢰 잃은 유럽 채권 '묻지마 팔자'

[강현철의 시사경제 뽀개기] 본드런과 유럽의 위기
유로본드 시장이 초비상이다. 은행·펀드들이 스페인·이탈리아 국채를 팔아치우고 있다. 요즘엔 덤핑(투매) 수준을 넘었다는 진단이다. ‘헤지펀드의 귀재’인 조지 소로스 소로스펀드 회장(81)은 “본드런(Bond Run)이 발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11월 24일 OO신문

☞ 그리스에서 시작된 유럽 재정위기가 전염병처럼 유럽 대륙에 번지고 있다. 이탈리아 포르투갈 스페인 등 남유럽 국가는 물론 헝가리와 프랑스 독일까지 번지는 모습이다.

‘본드런’은 투자자들이 앞다퉈 본드(채권)를 판다는 뜻을 가진 신조어다. 갑작스러운 대규모 예금 인출 사태를 뜻하는 ‘뱅크런(Bank Run)’, 펀드의 대규모 환매를 의미하는 ‘펀드런(Fund Run)’을 본뜬 말이다. 모두 다 금융위기와 관련이 있다. 헤지펀드 대부로 꼽히는 소로스는 지난 22일 “유럽 리더들은 유로화로 발행한 국채들이 여전히 안전한 줄 알지만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채권시장은 2008년과 비슷한 상황이라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며 본드런이란 용어를 사용했다.

본드런은 왜 발생할까? 뱅크런이나 펀드런과 마찬가지로 투자자들의 신뢰와 믿음이 깨졌기 때문이다. 뱅크런이나 펀드런은 예금이나 돈을 맡긴 은행과 증권사가 부실해져서 내가 맡긴 돈을 되찾지 못할 것이란 공포가 커질 때 나타난다. 때론 한두 대형 금융회사의 부실이 금융시스템에 대한 전반적 불신으로 확대돼 뱅크런을 초래하기도 한다. 본드런도 채권을 산 투자자들이 해당 채권을 발행한 국가나 기업이 부실해져 망할 가능성이 크다는 공포가 커질 때 ‘묻지마 팔자’에 나섬으로써 발생한다.

유럽 국가들이 발행한 국채에 대한 신뢰도는 크게 △발행시장에서 국채를 사려는 투자자가 얼마나 있는지 △유통시장에서 국채의 수익률(국채 가격)이 어느 정도인지 △그리고 국채 부도 위험을 어느 정도로 보는지에 의해 판단할 수 있다. 발행시장은 채권이나 주식 등을 발행하고 투자자를 모집하는 시장이며, 유통시장은 이렇게 발행한 유가증권이 매매되는 시장이다.

지난 23일 경제 강국인 독일이 국채 발행에 실패한 것은 유럽 국가들의 국채가 시장에서 어떻게 대접받는지를 잘 보여준다. 이날 독일 정부는 10년 만기 국채 60억유로어치를 발행할 예정이었으나 투자자들이 없어 목표 물량의 65%만 팔리는 데 그쳤다. 이제 독일도 믿지 못하겠다는 심리가 퍼지고 있는 것이다. 이에 앞서 스페인도 17일 실시한 10년물 국채 입찰에서 당초 40억유로 규모의 국채를 발행하려 했으나 35억6000만유로만 발행하는 데 그쳤다.

게다가 유럽 국채의 값은 수직낙하(국채 금리는 급등)하고 있다. 22일 발행한 스페인의 3개월짜리 국채 금리는 연 5.11%까지 치솟았다. 딱 한 달 전보다 두 배 높다. 유럽 국가들의 국채금리(10년물 기준)는 그리스가 연 29.04%(23일 기준)인 것을 비롯 △포르투갈 11.31% △이탈리아 6.97% △스페인 6.65% △프랑스 3.69% 등이다. 국채금리가 치솟으면 정부가 갚아야 할 이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국제 금융시장에서 연 7% 이상이면 사실상 정크본드(쓰레기채권) 취급을 받는다는 점을 감안하면 상당수 국가들의 국채가 위험 수위에 접어든 셈이다. 게다가 이들 국채의 부도 위험을 나타내는 CDS(신용부도스와프) 프리미엄(가산금리)도 치솟고 있다. 그리스가 무려 91.8%이며 △포르투갈 10.8% △아일랜드 7.4% △이탈리아 5.6% △스페인 4.9% 등이다. 한국(1.8%)보다도 훨씬 높은 것으로 그만큼 시장에서 국가 부도 위험을 높게 보고 있다는 뜻이다. CDS는 국채나 회사채 등의 부도 위험에 대비하기 위해 지급하는 일종의 보험료(수수료)다.

사정이 이러니 유럽연합(EU) 내에선 유로존 공통 국채(유로본드)를 발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유로본드를 발행하면 신용도가 나쁜 나라들도 보다 저렴한 비용으로 국채를 발행할 수 있다. 하지만 독일이 도덕적 해이 등을 들어 유로본드 발행에 반대하고 있어 실제로 유로본드가 도입될지는 미지수다.

---------------------------------------------------------

환율 이야기 (15) -원화 환율 추이와 변동성

환율 급변동은 실물경제 위축 시켜

[강현철의 시사경제 뽀개기] 본드런과 유럽의 위기
우리나라는 외환위기가 발생했던 1997년 12월 자유변동환율제도로 이행했다. 그 이후 원화 환율은 시장에서의 외환수급 사정이나 기초 경제여건, 국제 통화시세의 변동 및 시장참가자들의 기대 등을 반영해 등락하고 있다.

원화 환율은 1991년만 해도 미 달러당 730원대에서 움직였다. 1996년까지 700~800원대에서 움직이던 환율은 1997년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급등했다. 환율이 가장 높았던 것은(즉 원화의 가치가 가장 낮았던 것은) 1997년 말로 한때 1962원까지 뛰었다. 이후 꾸준히 하락해 2007년 910원선까지 떨어졌다가 2008년 9월 리먼 브러더스 파산으로 인한 글로벌 금융위기로 다시 1500원대까지 치솟았다. 이후 미국발 금융위기가 잦아드는 모습을 보이면서 현재는 달러당 1150원선에서 움직이고 있다.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환율이 크게 뛴 것은 외화유동성을 확보하기 위한 달러 수요가 늘어난 데다 정부가 수출 증대 등을 위해 고환율 정책을 취했기 때문이다. 환율이 안정적으로 상승하거나 하락하는 경우, 즉 환율변동폭이 적을 경우 경제에 미치는 충격은 크지 않다. 경제주체들이 환율전망에 맞춰 합리적인 선택을 하게 되며 국민경제 전체적으로도 안정성이 유지된다. 환율이 점진적으로 오르면 수출업체의 가격경쟁력을 강화시키고 반대로 환율이 점진적으로 내리면 수입물가를 낮출 수 있다. 하지만 환율이 급격하게 변동하는 경우에는 매우 위험하다. 환율이 급락하면 수출업체의 경쟁력이 추락하고, 환율이 급등하면 수입업체와 외화부채가 많은 기업들이 경영난에 처할 수 있다. 그래서 외환당국의 외환정책 초점은 환율을 예를 들어 1달러=1150원과 같은 특정 수준에 맞추기보다는 급격한 변동을 방지하는 데 두어진다.

환율, 다시 말해 외국돈과 비교한 우리돈의 가치가 얼마나 안정적인가를 나타내는 지표가 변동성이다. 환율의 변동성은 크게 △하루 중 환율의 최고가에서 최저가를 뺀 일중변동폭과 △그날 종가 환율에서 전일 종가 환율을 빼서 구하는 전일대비변동폭으로 측정한다.

원화 환율의 변동성은 외환위기 이전까지는 미미한 수준이었으나 자유변동환율제도로 이행한 이후 크게 확대되었으며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더 높아졌다. 외환위기 이후 환율이 1~2년에 걸쳐 20% 이상 큰폭으로 내리거나 뛰는 현상이 반복되고 있다. 이처럼 환율변동성이 커진 것은 세계적인 금융위기로 우리나라를 드나드는 자본유출입이 빈번해지고 여기에 분단상황이라는 지정학적 위험(리스크)이 가세한 데 따른 것으로 분석된다. 한국의 자본시장은 선진국에 가까운 개방도와 발전정도를 갖춰 국제금융이 안정된 때에는 자본유입이 활발하나 불안정해질 경우 자본이 급격히 유출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외환시장은 시장구조가 아직 충분히 발달하지 못해 이런 자본유출입의 충격을 흡수할 만큼 기능을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환율변동성이 커지면 수출과 투자가 위축되는 등 실물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국내 기업들의 환위험관리 능력이 아직 충분치 않아 환율변동성 증가가 수익 및 비용관련 불확실성 증대로 이어져서다. 또 물가상승 압력도 커진다. 환율 상승기에 변동성마저 확대되면 환율 상승분을 수입상품 가격으로 전가하는 사례가 많아지기 때문이다. 반면 환율변동성 확대는 외환시장의 기반확충에 도움이 되기도 한다. 실증분석 결과 환율변동성이 커지면 외환거래량은 대체로 비례적으로 늘어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강현철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hc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