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왕에 도전하는 게임왕...'꿈꾸는 피터팬'

[기술이 국력이다] 이공계 CEO 열전1-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
기술은 국가경쟁력의 바로미터다.


산업혁명으로 인류의 삶이 한 단계 풍요로워진 것은 결국 기술의 힘이다.

21세기 들어 글로벌화가 화두가 된 것도, 글로벌경제에서 차지하는 금융의 비중이 갈수록 늘어나는 것도 궁극적으론 정보기술(IT)의 힘이다.

기술은 우리의 삶과 정신을 풍요롭고 자유롭게 하는 근원이다.

기술의 낙후는 곧 경제의 낙후요, 문화의 낙후를 의미한다.

세계 각국이 앞다퉈 기술 개발에 나서는 이유이고, 우리가 기술에 대한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겨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생글생글의‘기술이 국력이다’시리즈가 ‘기술 마인드’를 확산시키는 데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44)는 세상에 ‘재미’를 판다.

온라인 게임 리니지, 길드워, 아이온 등으로 사람들에게 새로운 ‘재미’를 선사했다.

올해는 창원을 연고로 하는 프로야구 제9구단을 창단해 ‘사람들을 즐겁게 만든다’는 기업 목표를 오프라인까지 확대하고 있다.

그런데 김 대표는 참 재미없는 사람이다. 말솜씨도 변변찮고 화제도 빈곤하다.

지나치게 꼼꼼한 성격 때문에 직원들이 노이로제에 걸릴 정도라고 한다.

그러면서도 히트작을 잇따라 내놓으며 엔씨소프트를 글로벌 게임기업으로 키워냈다.

이 회사의 지난해 매출은 6497억원, 영업이익은 2429억원이다.

2000년 코스닥시장에 상장한 엔씨소프트는 현재 시가총액 7조원이 넘는다.

김 대표는 지난 10일 국내 25대 부호에 12위(1조8251억원)로 이름을 올렸다.

비결이 뭘까. 한마디로 그는 외곬이다. 게임 외에는 관심도 열정도 없어 보인다.

외부에 모습도 잘 드러내지 않는다.

밤새 자신이 만든 게임을 하고 책을 읽는 등 자기만의 시간을 즐긴다.

# 대학생 때 소프트웨어 개발

김 대표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단어는 ‘꿈’이다.

‘누구나 꿈꿀 권리가 있고 꿈을 향해 도전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열정’이라는 말을 달고 산다.

그는 서울대 전자공학과 재학시절 ‘컴퓨터연구회’라는 동아리 활동을 하며 이찬진 드림위즈 사장 등과 함께 ‘아래아한글’을 공동 개발했다.

또 한메소프트를 창립해 도스용 ‘한메타자교사’를 개발하는 등 소프트웨어 개발자로 명성을 떨쳤다.

세계에서 소프트웨어를 가장 많이 파는 회사를 만드는 것, 끊임없이 창의적인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것이 그의 꿈이었다. 게임업계는 그에게 ‘꿈꾸는 피터팬’이라는 별명을 붙여줬다.

김 대표는 지난해 이화여대 강연에서 “대학생 시절 리포트를 제출해야 하는데 당시 컴퓨터는 한글 입력이 안 돼 불편했다.

누구나 자유롭게 한글을 쓰면 좋겠다는 소망이 한메타자나 아래아한글을 만들게 된 원동력”이라며 “창의는 어려운 개념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현재의 소망이 미래의 나를 만들고 미래가 현재의 나를 평가해줄 것이다. 지금은 꿈을 갖는 것에 매진할 때”라고 덧붙였다.

게임 개발자로서 김 대표의 상상력과 창의력은 전 세계에서 인정받는 한국형 온라인 게임을 개발하는 원동력이다.

그는 한국이 게임산업의 불모지였던 시절, 일본 유럽 북미의 비디오 게임을 본떠 만들지 않고 자신만의 프로그래밍 기법과 세계관을 담아 새로운 게임을 만들었다.

게임 개발은 단순히 기술적인 능력뿐 아니라 방대한 역사적 지식, 인문학적 소양이 필요한 콘텐츠 사업이기 때문에 다방면의 지식이 필수적이다.

김 대표는 1년에 100만마일리지에 달하는 해외 출장을 소화하는 빡빡한 일정 속에서도 1주일에 4~5권의 책을 읽으며 역사 철학 등의 분야에서 방대한 지식을 섭렵하고 있다.

김 대표는 “정보통신이나 전자산업이 성숙한 지금은 학문적인 토대를 요구하고 있다”며 “학문적 토대 위에서 변화를 모색해야지 단순히 재치싸움으로 창업하면 망하기 쉽다”고 말했다.

그는 리니지, 아이온은 물론이고 북미와 유럽에서 서비스 중인 ‘길드워’와 ‘시티 오브 히어로’ 등 엔씨소프트가 만든 거의 모든 게임을 직접 플레이하고 있다.

리니지 시리즈는 상위 10% 안에 드는 높은 레벨을 유지하고 있고 아이온은 출시 한 달 만에 30레벨을 넘어섰다. 직접 게이머 입장에서 게임을 해봐야 무엇이 부족하고 불편한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엔씨소프트 직원들은 밤새 게임한 뒤 부스스한 모습으로 오전 회의에 들어오는 김 대표를 이젠 자연스럽게 여길 정도다.

# 동영상 크레디트 챙기는 '김 대리'

김 대표의 별명은 ‘김 대리’다. 세세한 부분까지 신경 쓰고 일일이 챙기는 모습이 사장보다는 실무자에 가깝다고 해서 직원들이 붙여준 애칭이다. 꼼꼼하기로는 그를 따라올 직원이 없다.

아이온의 핵심 개발이 끝나고 모든 개발진이 이젠 쉬어야겠다고 한숨을 돌리고 있을 때, 김 대표는 “잘 만들었으니 이제 멋지게 마무리해 보자”며 홍보 동영상의 엔딩 크레디트까지 챙겼다.

프로젝트 매니저인 김 대표와 개발팀 전원의 이름은 물론 비공개 시범 서비스에 참여했던 3000여명의 게이머 이름까지 크레디트에 넣은 것도 김 대표의 주문 때문이었다.

그는 송재경 엑스엘게임즈 사장이 아이네트에서 근무하던 시절, 송 사장이 만든 리니지와 아이네트의 게임사업팀을 엔씨소프트에 영입하면서 리니지 서버의 아키텍처(컴퓨터 시스템 설계방식)를 직접 수정하기도 했다.

# 프로야구 도전...꿈은 계속된다

엔씨소프트는 올 4월 경남 창원을 연고로 프로야구단 ‘NC 다이노스’를 창단했다.

창단 배경에는 김 대표의 각별한 야구 사랑이 한몫했다.

그는 얼마 전 작고한 전설적 투수 최동원이 어린시절 우상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해왔다.

특히 IMF가 터졌을 때 박찬호 선수를 보며 야구가 얼마나 힘이 되는지를 깨달았다고 했다.

평소 게임산업의 사회 기여 방안을 모색하던 김 대표는 자신이 좋아하던 야구에 이를 접목할 생각을 오래전부터 해왔다.

구단 창단을 놓고 고심하던 지난 가을, 바쁜 시간을 쪼개 인천 문학구장에서 열린 한국시리즈를 직접 관전하고 야구장의 뜨거운 열기를 확인한 뒤 추진 방침을 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온라인뿐 아니라 오프라인에서도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겠다는 김 대표의 철학이 실현된 것이다.

엔씨소프트는 세계적인 게임업체 닌텐도가 대주주인 메이저리그 시애틀 매리너스, 역시 게임업체가 구단주인 일본프로야구 라쿠텐 골든 이글스의 사례를 연구하고 있다.

김 대표의 좌우명은 ‘이 또한 지나가리라’다.

지금의 성공에 자만하지 말고 늘 노력해야 하며 어려움을 겪더라도 그 역시 지나갈 테니 열심히 해나가자는 것이다.

그는 성공 비결에 대해 “나는 아직 배가 고프다고 말한 히딩크처럼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항상 굶주려야 하고 도전하면 성공한다”고 강조했다.

얼마 전 작고한 스티브 잡스의 좌우명 ‘Stay Hungry, Stay Foolish’와 일맥상통한다.

김 대표는 NC를 네버엔딩 체인지(Never-ending Change)로 해석한다.

김택진의 벤처 신화는 아직 진행 중이다.

최만수 한국경제신문 기자 bebo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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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택진 대표 프로필



▶1967년 서울 출생

▶1989년 서울대 전자공학과 학사

▶1989년 한글 워드프로세서

‘한글’ 개발

▶1989년 한메소프트 창립

▶1991년 서울대 전자공학과 석사

▶1997년 엔씨소프트 창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