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는 내 친구] (7) 스토리 & 에피소드
국산기술 열정이 빚어낸 ‘LPi 하이브리드차’

2004년 가을.일본의 한 자동차 회사가 현대자동차에 특별한 제안을 해왔다.

닛산이나 포드처럼 현대차와도 하이브리드차 기술은 물론 부품까지 공유하자는 것이었다.

하이브리드차 시장이 점차 커지고 있는 상황이었기에 최고 기술을 자랑하는 회사의 제안을 거절하기란 쉽지 않았다. 그 제안에 대해 내부적인 검토가 시작됐다.

그냥 손쉽게 기술을 받아들일 것이냐,아니면 독자 개발을 할 것이냐. 기술 제휴를 하면 쉽게 시장에 진출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 현대차의 입지가 좁아질 수밖에 없고,독자 개발을 하기에는 투자해야 할 비용과 시간이 만만치 않았다.



#제휴 유혹 뿌리친 하이브리드 기술

경영층과 실무자들이 수많은 회의를 하며 기술 제휴를 포기하는 쪽으로 결론을 냈다.

단기간에 개발하기는 어렵겠지만 기존의 내연기관을 대체할 차세대 동력 장치인 하이브리드 기술이 종속되면 미래가 없다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사실 현대차가 한국의 자동차산업을 이끌어 갈 수 있던 원동력은 독자적인 기술 개발이었고,1990년대의 엔진 독자개발을 시작으로 차근차근 우리만의 기술력을 쌓아 왔기에 지금의 현대차가 있을 수 있었다.

달콤한 유혹을 뿌리치고 험난한 독자 개발의 길을 선택한 것이 궁극적으로 현대차의 브랜드 가치를 높인 것이다.

개발 초기에는 경쟁사들과 마찬가지로 가솔린 하이브리드차 개발을 추진했다.

경쟁사와 비슷한 수준의 가솔린 하이브리드차 기술을 확보했지만 “후발 주자로서 경쟁차와 동등한 수준의 차량을 출시할 경우 과연 누가 주목해 줄까?”는 의문이 여기저기에서 터져 나왔다.

후발주자이기에 뭔가 차별화할 수 있는 영역이 필요했다. 특별한 해법이 필요했고,이를 해결하기 위해 현대차의 기술력을 재검토했다.

그러던 중 “세계 유수의 업체들이 탐내는 최고의 기술력을 가진 LPI 엔진과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합치면 어떨까”는 의견이 나오기 시작했다.

우리나라는 폴란드와 더불어 세계 최대의 LPG 차량보유국으로 LPG 인프라가 잘 되어 있고, 더군다나 LPG 가격은 정책적으로 가솔린 가격의 절반 수준을 유지하게 되어 있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현대차 최초로 시판되는 하이브리드차 모델을 가솔린차에서 LPI 차로 바꾸게 되었다.



#최고수준 배터리도 독자개발

2004년부터 2007년까지 하이브리드차를 개발할 당시 현대차는 일본업체에서 공급하는 니켈수소(NI-MH) 배터리를 이용했다. 이 업체는 도요타와 혼다 등에 납품하는 업체로 현대차에 비협조적이었다.

시험모델의 성능 개선을 위해 기술협의를 갖자고 하면 기술자를 파견할 수는 없으니 차를 보내면 자신들이 알아서 맞춰주겠다고 할 정도였다.

언제까지 이런 업체에서 배터리를 공급받을 수는 없었다. 여기저기 다른 업체를 수소문한 결과 한국에서도 차세대 배터리인 리튬이온폴리머(Lithium-ion Polymer Battery) 배터리를 개발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업체를 찾아가 차량용 배터리의 공동연구를 제안했다.

하지만 차량용 배터리의 개발은 처음 시도하는 것이었기에 성공을 확신할 수 없던 상황이었다. 그러던 중 좋지 않은 소식이 들려왔다.

2008년 차세대 리튬이온폴리머 배터리 탑재를 공언했던 일본 경쟁사가 개발상의 문제로 탑재를 2010년으로 연기한다는 것이었다.

‘최대 경쟁사가 힘들어 하는 일을 우리가 잘 해낼 수 있을까’는 의구심이 들기도 했다.

얼마 후 일본의 배터리업체가 다시 현대차를 찾아와 괜히 검증도 안 된 리튬이온폴리머 배터리를 개발한다고 애쓰지 말고 자신들의 니켈수소 배터리를 사용하라고 했다.

그리고 ‘정확히 1주일의 시간을 줄 테니 그 시간이 지나면 10배 가격을 준다고 해도 팔지 않을 것’이라며 으름장을 놓고 떠나버렸다. 협박 아닌 협박이었다.

하지만 이를 계기로 연구원들은 더욱 기술 개발에 전념해야겠다고 결심했다. 그 결과 리튬이온폴리머 배터리는 세계 최고 수준의 차량용 배터리로 새롭게 태어났고,우리 차량에 세계 최초로 탑재됐다.

또한 GM을 비롯하여 다른 선진업체에서도 탑재를 원하고 있다. 얼마 전 학회에서 일본 배터리업체의 담당자를 다시 만났는데,이번에는 30% 할인된 가격으로 배터리를 공급해준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하이브리드차로 명량대전

현대차에서 하이브리드차 개발 검토가 시작된 것은 2003년 말에서 2004년 초이고,본격적인 개발이 시작된 것은 2005년 초였다. 개발 초기,연구원들의 수는 겨우 30명에 불과했으나 밤늦은 야근과 휴일 근무도 마다 않고 부품 국산화 연구에 몰두했다.

단순히 국산화를 이룬다는 차원을 넘어,성능은 뛰어나면서 부피가 작고 무게는 가벼운 제품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그 결과 아반떼 LPi 하이브리드차를 출시하게 됐다.

2000명이 넘는 일본의 경쟁사 대비 20%도 되지 않는 연구인력으로 세계 최초의 LPi 하이브리드차를 만들었다.

이는 마치 이순신 장군이 13척의 전선으로 왜선 122척과 맞서 싸운 명량대전과 유사하다고 생각된다.

현대차 연구원들이 밤낮없이 하이브리드차에 매달려 흘린 무수한 땀방울이 세계 자동차 업계가 감탄할만한 결실을 맺은 것이다.

김완승 현대자동차 연구개발 기획조정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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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놀라게 한 명작 ‘제네시스’


[자동차는 내 친구] (7) 스토리 & 에피소드
미술 음악 문학 등 예술 작품뿐 아니라 건축 가구 패션 등 우리 사회의 모든 부문에서 많은 사람들이 명작을 만들겠다는 꿈을 꾼다.

현대자동차는 1967년 처음 설립 되었을 때 디자인조차 스스로 할 수 없었던 후발업체에 불과했다. 하지만 언젠가는 명작을 만들겠다는 꿈이 있었다.

설립 후 30년이 2004년에 드디어 오랫동안 꿈꿔왔던 명작을 만들기 위한 첫발을 내디뎠다.

자체 기술력으로 뒷바퀴 구동방식의 고급 세단을 만들기로 한 것이다.

엄청난 투자비와 셀 수 없는 개발회의를 통해 세계적인 고급차를 만들어내는 일은 그 어떤 차를 만드는 것보다 어려운 것이었다.

하지만 명차를 만들어 내겠다는 열망은 현대차의 개발담당자들을 포기할 수 없게 만들었다.

그 결과 4년여가 2008년 1월 신차를 출시하게 됐다.

현대차는 신 모델에 ‘제네시스’라는 이름을 붙였는데,이는 ‘기원’ ‘창시’ ‘시작’이라는 의미로 본 모델이 고급 세단의 신 기원이 되길 바라는 현대차의 염원이 반영됐다.

제네시스는 한국차 최초,대형차로는 아시아 최초로 ‘2009년 미국의 올해의 차 (2009 North American Car of the Year)’에 선정되는 영광을 안았다.

제네시스는 세계로 뻗어 가야 할 현대차에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 중요한 첫 단추다.

현대차는 첫 단추에 만족하지 않고 세계시장을 누비는 명차들을 줄줄이 탄생시키기 위해 더욱 노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