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가 미래다] 바다를 지배하는 자 세계를 지배한다


① 세계를 지배한 해상 강국들

근대 세계사는 바다 쟁탈전으로 막을 열었다. 누가 세계 패권을 차지하느냐는 바다를 누가 지배하는가에 좌우됐다. 세계의 변방이었던 서구는 대항해시대 이후 세계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대양의 지배는 제국주의 시대에 대륙의 지배로 이어졌다.

이 시대의 가장 강력한 해양국가였던 영국이 '해가지지 않는 대영제국'을 건설했다.

결론적으로 서구가 바다를 지배하면서 현대사의 패자로 등극한 것이다.

# 로마와 카르타고의 지중해 쟁패전

서양문명은 대부분 강과 바다에 인접한 지역에서 출현하고 발전했다.

이를 근거로 독일의 지리학자 칼 리터는 인류문명이 하천문명에서 내해문명을 거쳐 대양문명으로 발전했다고 주장했다.

역사상 최초로 해군을 보유하고 식민지를 건설한 나라는 페니키아(오늘날 레바논과 시리아 해안 일대)다.

이들은 기원전 700년전경부터 지중해 무역을 독점하고 아프리카로 건너가 카르타고를 세웠다.

이어 아테네가 기원전 500년전경 페르시아 전쟁에서 승리한 후 강력한 함대를 건설해 해적을 소탕하고 지중해의 해상무역을 석권했다.

고대시대는 로마와 카르타고의 지중해 쟁패전으로부터 시작됐다.

로마는 기원전 265년까지 이탈리아 반도의 통일에 힘을 쏟았지만 인구가 증가하면서 차츰 바다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이전까지 지중해 무역을 독점하고 있던 카르타고와의 충돌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었다.

3차에 걸친 포에니 전쟁에서 한니발을 물리치고 승리한 로마는 카르타고로부터 해상무역권과 지중해의 제해권을 빼앗아 제국의 기틀을 마련한다.

로마의 유명한 연설가 키케로는 "해적으로부터 동맹도시를 지켜야 한다"며 강력한 함대를 건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로마는 이후 4세기 동안 지중해를 '우리 바다(Mare Nostrun)'로 부르며 로마의 평화시대 '팍스 로마나'시대를 열었다.

지중해는 경제적 측면에서 고전고대시대를 발전시키고 단일세계로 만드는 데 결정적 기여를 했다고 볼 수 있다.

# 해상무역 촉진한 바이킹

중세에는 바이킹이 새로운 해상의 강자로 떠올랐다.

노르웨이 덴마크 등 스칸디나비아 반도를 근거지로 했던 바이킹족은 북해와 발트해연안에서 8세기부터 상업활동을 하다가 영국과 세느강 유역을 침공하고 지중해 동부 해역으로 진출했다.

강을 타고 내륙지역까지 올라와 약탈을 일삼는 바이킹 때문에 전 유럽이 공포에 떨었다.

이들은 독특한 바이킹배를 타고 별의 위치, 해양생물, 바다 색깔 등을 지표로 삼아 원양까지 능숙하게 항해했다.

노르웨이계 바이킹들은 아이슬란드와 그린란드까지 진출했으며 일부는 아메리카 대륙까지 진출했다는 설도 있다.

바이킹의 활동은 북유럽의 상업을 촉진시켜 도시를 발달시키는 계기가 됐다.

이들 도시는 13세기 한자동맹을 체결하여 상거래를 독점했는데 18세기에는 80여개의 도시가 동맹에 참가했다.

이탈리아의 도시 국가들도 중세 이후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이슬람 세력이 융성하면서 육로를 통한 동방 무역이 막히자 홍해와 이집트를 통한 해상 무역이 활발해졌다.

베네치아는 11세기 아드리아 연안을 지배하고 세력을 지중해 동부까지 확장했으며 제노바는 리베라 연안을 장악한 후 코르시카와 샤르데냐를 점령했다.

르네상스는 이러한 이탈리아 도시 국가들의 활발한 해상 활동을 기반으로 꽃을 피웠다.

# 향료를 찾아 바다로..

지중해에서 이탈리아 도시 국가들이 전성기를 맞이할 무렵, 서부 유럽에도 대항해의 움직임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지도와 해도 제작술의 발달, 나침반의 전래, 항해 도구의 발달, 캐러벨 등 대형 범선의 등장과 같은 과학의 발전이 대항해를 가능하게 했다.

향료와 후추, 황금에 대한 열망과 기독교 세계의 선교 의지도 유럽인들의 마음을 바다로 이끌었다. 가장 먼저 해양 활동을 주도한 국가는 이베리아 반도의 스페인과 포르투갈이었다.

대항해시대는 포르투갈의 왕자였던 엔리케가 아프리카로 가는 항로를 개척하면서 시작됐다.

1492년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했고 1498년 바스코 다가마가 인도에 닿았다.

이베리아인들의 해양 활동은 16세기 전반 마젤란의 세계 일주로 절정에 이르렀다.

영국 · 프랑스 · 네덜란드 등은 16세기부터 대항해 활동을 전개했다.

그 결과 유럽은 거대한 식민지 제국을 형성할 수 있었으며 새로운 품종의 식물을 받아들여 주기적으로 반복되던 식량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다.

경제의 중심축도 지중해에서 대서양으로 이동했고 세계경제의 주도권이 유럽으로 넘어오게 됐다.

1610~1640년 유럽의 무역량은 10배로 늘어났다.

유럽국가들은 해상무역을 통제하고 보호하려는 목적으로 중상주의 정책을 펼쳤다.

후발주자였던 영국은 엘리자베스 여왕 시대에 스페인을 꺾고 해상무역의 선두자리에 올랐다.

대영제국의 서막이었다.

# 해군으로 세계를 지배한 대영제국

영국은 전 세계 곳곳의 식민지를 발판으로 18세기 후반 산업 혁명을 성공시켰다.

세계의 공장이 된 영국은 세계 제일의 부국으로 올라섰다.

빅토리아 여왕 시대의 영국은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불리며 전성기를 누렸다.

1880년대부터 아프리카가 열강의 각축장이 됐으며 이후 아시아 지역에서 식민지 전쟁이 벌어졌다.

식민지 경쟁은 해군력에 좌우됐다.

산업혁명의 여파는 전 유럽으로 번져 19세기에는 프랑스와 독일도 빠른 속도로 공업화 됐다.

산업혁명은 과학과 기술을 발전시켰고 그 결과 19세기 전반기 증기를 이용한 목조 외륜선이 등장했다.

1861년 수에즈 운하가 개통되면서 프로펠러 철선 시대가 막을 열었다.

식민지 경쟁과 군비 증강은 제1차 세계대전을 불렀다.

영국은 전쟁에서 승리했지만 막대한 전비를 쏟아부었고 독일의 무제한 잠수함 공격으로 상당한 타격을 입었다.

식민지들의 독립으로 통치영역도 줄어들었다. 그 결과 바다의 패권은 점점 미국으로 넘어가게 됐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은 해양 주도권을 상실했다.

# 끝나지 않은 해양전쟁

1980년대 소련의 해체로 냉전이 종식됐지만 세계의 갈등이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다.

세계 각국은 자국 경제를 보호하기 위해 경제적 블록을 형성하고 다른 국가의 시장을 열기 위해 여전히 포성 없는 전쟁을 하고 있다.

또한 지상 자원이 고갈되고 환경 오염이 심각해지면서 바다에서의 경쟁도 날로 치열해지고 있다.

한국과 일본이 독도를 두고 끊임없이 신경전을 벌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바다를 지배하는 자가 세계를 지배한다.

바다가 미래다.

역사가 증명하는 명제다.

최만수 한국경제신문 기자 bebo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