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lobal Issue] 도마에 오른 신용평가社…글로벌 증시의 뇌관?
"신용평가사는 죽음의 밤을 활보하는 뱀파이어와 같다(빌 그로스 핌코 회장)."

미국 3대 신평사가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무디스,피치가 공정하지 못한 평가를 내리거나 등급을 잘못 매겨 글로벌 금융위기를 확산시키고 있다는 비판이다.

지난달 S&P가 미국 신용등급을 AAA에서 AA+로 한 단계 강등하면서 이 같은 논란은 더 확산되고 있다. 미 정부는 S&P가 미국의 부채 규모를 산정하는 과정에서 2조달러의 착오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S&P는 이런 지적이 맞다는 것을 인정하지만 강등 결정에 큰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고 반박했다.

티머시 가이트너 미 재무장관은 "S&P의 끔찍한 판단"이라고 평가했다.

진 스펄링 백악관 국가경제회의 의장도 "2조달러라는 엄청난 차액에도 S&P는 결론을 미리 내려놓고 자신의 주장을 끼워 맞추려 한다"고 비판했다.

워런 버핏 벅셔해서웨이 회장은 "S&P의 결정을 받아들일 수 없으며 말도 안 되는 일"이라며 "만약 AAAA 등급이 있다면 미국은 그것을 받아 마땅하다"며 가세했다.

신평사들은 올 들어 그리스 포르투갈 아일랜드의 신용등급을 잇따라 하향 조정하며 미국뿐만 아니라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의 재정위기를 부채질하고 있다는 비난도 받고 있다.

지난 7월 무디스가 포르투갈 신용등급을 정크 수준으로 강등하자 하이너 플라스베크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 세계화담당 국장은 "신평사들이 더 많은 피해를 입히기 전에 해체시키거나 국가 신용등급을 못 매기게 해야 한다"며 신평사 폐지를 주장하기도 했다.

주제 마누엘 바로수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은 "이는 경제적 테러나 마찬가지"라고 주장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신평사들이 지난 35년간 각국의 디폴트(채무불이행) 위기를 사전에 제대로 예측하지 못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S&P는 1975년 이후 디폴트에 빠진 15개 국가 중 디폴트 발생 1년 전에 12개 국가의 신용등급을 'B등급이나 혹은 이보다 더 높은 등급'으로 책정했다.

S&P는 그동안 역사적으로 B등급이 1년 내 디폴트에 빠질 가능성은 평균 2%밖에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1년 이내에 이들 국가의 80%가 디폴트에 빠졌다.

무디스도 등급을 매긴 13개 국가가 1년 안에 디폴트에 빠졌으나,이 중 11개 국가에 B등급 혹은 이보다 높은 등급을 매겼다.

WSJ는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을 신용평가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을 보여주는 가장 좋은 예라고 평가했다.

2001년 1월 두 국가 모두 S&P로부터 'BB-' 등급을 받았다.

하지만 1년 후 아르헨티나는 디폴트에 빠졌고 브라질은 호황을 누렸다.

선진국과 신흥국에 이중 잣대를 적용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재정상태가 양호한 신흥국의 신용등급이 채무에 허덕이는 선진국보다 더 낮은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S&P가 중국에 부여한 신용등급은 'AA-'로 국가부채가 GDP의 225%가 넘는 일본과 같은 등급이다.

미국보다는 3단계 낮다.

S&P는 헨리 바넘 푸어가 1868년에 미국 철도 매뉴얼을 출판하면서 출발했다.

1941년에 통계업체였던 스탠더드스테틱스가 푸어스출판사를 인수하면서 오늘날의 S&P가 탄생했다.

1966년에는 대형 출판업체인 맥그로힐에 인수됐다.

무디스는 1909년 출판업자인 존 무디가 존무디앤컴퍼니를 설립하면서 시작됐다.

무디스는 철도 투자를 위한 평가보고서를 발간하며 성공 발판을 마련했다.

피치는 1913년 존 놀스가 뉴욕에서 설립한 피치퍼블리싱컴퍼니를 세우며 출발했다.

3대 신평사는 1975년부터 막강한 권력을 갖게 됐다.

미 증권거래위원회(SEC)는 오일쇼크가 일어나자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투자은행과 증권사의 안정성을 평가하면서 이들 3사에 국가공인통계평가기관(NRSRO)의 지위를 주었던 것이다.

증권을 발행하고자 하는 업체들은 반드시 이들의 신용평가를 받아야만 했다.

3사는 주요국의 국채에 신용등급을 부여하는 역할도 맡았다. 하지만 2008년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 사태로 인한 금융위기를 사전에 예측하지 못했다는 비난을 받으며 위상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S&P와 무디스는 엔론과 리먼브러더스가 파산하기 직전에 이들 회사채 등급을 투자 적격 등급으로 제시하기도 했다.

딘 베이커 미국 경제정책연구센터 소장은 "이런 신용평가 이력은 최악에 가깝다"고 질타했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미 프린스턴대 교수도 이를 이유로 최근 S&P가 미 신용등급을 하향 조정한 것을 비판하기도 했다.

크루그먼은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채권 부실도 제대로 예상하지 못했던 S&P가 미국의 재정정책을 평가하는 것은 터무니없다"고 지적했다.

김희경 한국경제신문 기자 hkk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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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신평사 만들자”...유럽 등 독자설립 '목청'

신용평가사에 대한 불만이 고조되면서 각국이 대책 마련에 분주하다.규제를 강화하는 한편 독자적으로 신평사를 세울 준비도 서두르고 있다.

미국 의회는 지난해 증권거래위원회(SEC) 내에 신평사를 감독하는 신용평가국을 신설했다.신평사의 고의 또는 부주의로 빚어진 평가 업무와 관련해 투자자가 손해를 입었을 경우 소송을 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했다.최악의 경우에는 신용평가사의 자격이 박탈될 수도 있다.미 정부는 이들 업체가 2008년 금융위기 당시 부실채권에 대한 신용등급을 한발 늦게 하향 조정해 위기를 더욱 심화시켰다는 것에 대해서도 조사를 하고 있다.

유럽에서도 이들에 대항할 신평사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은 전했다.유럽에서는 유럽증권시장청(ESMA)이 신평사 감독·조사권에 대한 세부 사항을 검토하고 있다.독자 신평사 설립도 추진하고 있다.주제 마누엘 바로수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은 “EU는 3대 신평사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는 방안을 올해 안에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푸틴 러시아 총리도 3대 신평사가 러시아 신용등급을 낮게 평가하고 있는 것을 비판하고 나섰다.그는 러시아 등 옛 소련 국가들이 독립된 신평사를 세워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중국도 3대 신용평가사의 기준이 지나치게 선진국에 맞춰져 있다며 이들만의 신용 평가 기관을 설립하기도 했다.지난해 세워진 중국 신평사 ‘다궁’은 미국 이외 국가에서는 최초로 국채를 평가하고 있다.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