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는 내 친구] (1) 자동차의 역사


현대차의 '성공 스토리'...세계가 깜짝 놀라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자동차 강국이다.

미국 승용차 시장에선 일본 업체들을 제치고 아시아 최대 자동차 강국으로 발돋움했다.

재정위기 탓에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는 유럽에선 유일하게 한국산 신차만 늘어나고 있다.

‘메이드 인 코리아’하면 ‘싼차’라는 이미지가 연상되던 것도 옛 얘기다.

마이너리그 때나 통했던 ‘저렴한’이미지는 이미 털어버린 지 오래고 어느덧 한국 자동차는 ‘연비 좋고 오래 가는 차’로 탈바꿈했다.한국차가 이렇게 급성장한 배경은 뭘까.

로마가 하루 아침에 이뤄지지 않았듯 한국차도 어느날 아침에 일어나보니 유명해진 게 아니다.뼈깎는 노력과 혁신의 결과다.한국 자동차 역사를 보면 그 일단을 볼 수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자동차는?


‘최초’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여러 답이 나올 수 있다.

가장 먼저 한국에서 볼 수 있던 차는 1903년 고종 황제의 포드 자동차다.고종 즉위 40주년을 맞아 미국 공관을 통해 들어온 의전용 어차였다.

물론 이전에 비공식적으로 들여온 차도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공식 기록으론 고종 어차가 ‘우리나라 1호차’다.

일제 강점기로 넘어가면서 조선총독부가 고종의 환심을 사기 위해 여러 차를 들여왔다.

1913년이후 임금뿐 아니라 국가 대신들과 일본인들이 자가용을 몰고 다니면서 우리나라에 자동차 시대가 열렸다고 할 수 있다.이후 승합버스가 들어와 국내에서 운송사업도 시작됐다.

하지만 당시 버스 요금은 쌀 한 가마니 값이었다.버스가 일부 부유층의 전유물이었던 셈이다.

해방 이후 우리나라 자동차 산업은 ‘수입’일변도에서 ‘조립’으로 한 차원 업그레이드 됐다.1955년엔 미군이 남기고 간 지프를 개조한 승용차가 나왔다.

국내 자동차 개발의 시발점이 됐다 해서 붙여진 이름 ‘시발’이 그것이다.국산화율이 50%나 됐다는 역사적 의미도 있다.한 대 만드는데 4개월이나 걸려 희소성도 있었다.때문에 이 차를 사려는 부유층 사이에선 ‘계’까지 성행했다.

그래도 여전히 우리나라 자동차산업은 영세했다.그나만 1962년에 기아산업(현 기아자동차)이 최초의 3륜 화물차인 K-360을 생산한 데 이어 1967년 현대자동차가 설립되면서 국내 자동차산업의 기틀이 마련됐다고 할 수 있다.

◆포니가 역사를 바꾸다

우리 기술이 ‘조립’단계에서 ‘자체 생산’으로 진일보한 시점은 ‘포니’가 양산된 1976년이었다.

현대차는 포니의 설계부터 생산까지 전 과정을 국내 기술로 이뤄냈다.국산화율을 단숨에 90%까지 끌어올렸다.

뿐만 아니라 과테말라와 엘살바도르에 수출하면서 자동차 수입국에서 수출국으로도 첫 데뷔를 했다.

포니는 국내에서도 판매 첫해에 1만726대가 팔려나간 뒤 국내 승용차 시장의 60%이상을 차지했다.

그 여세를 몰아 현대차는 1984년에 후속작 ‘포니2’로 캐나다에서 수입차 판매 1위에 오르기도 했으며 1985년엔 포니엑셀을 양산해 ‘포니 전성시대’를 이어갔다.

현대차가 국내 승용차 역사를 이끌었다면 기아차는 승합차 발전사를 써나갔다.기아차는 1980년에 1t 봉고 트럭을 생산한 뒤 농촌형 트럭 세레스와 승합차 베스타로 인기를 끌었다.

1987년엔 스테디셀러 소형차 프라이드를 내놓았다.

이어 대우자동차가 1991년에 국내 최초의 경차 ‘티코’를 생산해 자동차 대중화에 힘을 보탰다.

이에 힘입어 1997년에 국내 자동차 등록대수가 1000만대를 돌파해 ‘1가구 1차량’ 시대가 시작됐다.

2000년대 들어 우리나라는 명실상부한 글로벌 플레이어로 성장했다.현대는 아반떼와 쏘나타 판매 호조로 2003년에 연간 수출 100만대를 돌파한 데 이어 2004년에 누적 수출 1000만대라는 진기록을 달성했다.기아차도 2003년에 세계 누적 수출 400만대와 미국 누적 판매 100만대를 동시에 넘어섰다.

이 시기에 자동차 생산 뿐 아니라 자동차 회사 소유 구조도 글로벌화됐다.

2000년에 삼성자동차가 프랑스 르노에 인수되면서 르노삼성으로 간판을 바꿔달았고 2002년엔 대우자동차가 미국 GM으로 넘어가며 이름이 GM대우(현 한국GM)로 바뀌었다.

◆글로벌 플레이어로 비상


한국차가 세계적 자동차 메이커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된 때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다.

미국과 유럽의 자동차 회사들이 경기 침체로 몸살을 앓았고,일본 업체들은 대규모 리콜과 대지진으로 성장통을 앓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우리 자동차 기술과 디자인 능력이 무섭게 성장한 게 고속 성장의 가장 큰 요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미 현대·기아차는 1990년대부터 해외 공장을 지어 글로벌 플레이어로 비상할 수 있는 틀을 마렸해왔다.

앞으로는 적은 연료로 오래 가는 ‘고연비’와 공해를 덜 유발하는 ‘친환경’에서 승리하는 업체가 미래 자동차 경쟁에서 주도권을 쥘 가능성이 높다.그런 면에서 국내 자동차 업체들의 발전 가능성은 높은 편이다.

현대·기아차는 1991년에 전기차를 개발해 미래에 대비해왔다.

현대·기아차는 휘발유로 가는 엔진과 전기로 움직이는 배터리가 함께 달려 있는 하이브리드카 부문에서 큰 성공을 거두고 있다.실제 현대 쏘나타 하이브리드,기아 K5 하이브리드는 미국 시장에서 상위권에 올라 있다.

한국경제신문 정인설 산업부 기자 surisur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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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휘발유 자동차 1885년에 등장

자동차의 기본을 바퀴라 한다면 세계 자동차 기원은 물레방아나 수레로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하지만 ‘스스로 움직인다’는 자동차의 정의를 생각하면 최초의 자동차는 17세기 후반에 등장했다고 할 수 있다.1678년에 플랑드르의 성직자가 중국 황제를 위해 60cm의 작은 증기 자동차를 만들었다.

1769년엔 프랑스의 한 공병장교가 2기통 3륜 증기 자동차를 성공적으로 시연해 보였다.

하지만 증기 자동차는 현재의 자동차 모습과 많이 달랐다.

지금처럼 휘발유로 가는 자동차는 1885년에 등장했다.

벤츠가 3륜 휘발유 자동차를 양산한 것이다.곧이어 1889년에 고트리브 다임러가 휘발유 내연기관을 장착한 1기통 4륜 자동차를 만들었다.하지만 이 차의 최고 시속은 16㎞에 불과했다.

처음으로 시속 100㎞가 넘는 차를 만든 주인공은 벨기에인이었다.까뮈 제나치라는 사람이 1899년에 만든 전기자동차는 자갈길 코스에서 최고 103㎞ 속도로 달렸다.

독일인이 내연기관 자동차를 처음 만들었지만 최초의 자동차 회사는 프랑스에서 나왔다.프랑스인 에밀 르바소는 1889년에 세계에서 처음으로 ‘파나르 르바소’라는 자동차 회사를 설립해 세계 최대 메이커로 발돋움했다.

하지만 2차 세계 대전 이후 경영악화로 프랑스 시트로엥(현 푸조시트로엥)에 흡수됐다.

자동차 회사다운 면모를 처음 갖춘 곳은 미국 포드사였다.포드는 1903년에 그 유명한 컨베이어시스템을 도입해 자동차 대량생산의 시대를 열었다.

자동차 양산 체제가 구축되면서 자동차는 급속도로 보급됐다.

1942년 2차 세계 대전 발발로 승용차 양산이 중단되고 군용차량으로 쓰이는 4륜 구동차 지프가 대량 생산됐다.

전후 복구로 세계 경제가 어려웠던 1950년대에는 작은 차가 유행했고 경제가 어느 정도 회복된 1960년대에는 화려한 장식의 큰 차가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석유파동으로 1970년대에 다시 소형차가 급부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