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과 경제의 만남] 영화 '딥 임팩트'와 자원의 희소성
'블록버스터(Blockbuster)'는 제2차 세계대전 때 영국군이 사용한 폭탄의 이름이었다.

2차 대전 당시 영국 공군은 독일 본토를 폭격할 때 4~5t가량의 폭탄을 사용하였는데 이 폭탄의 위력이 한 '구역(block)'을 송두리째 '파괴(bust)'할 정도로 엄청나다고 하여 '블록버스터'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하지만 '블록버스터'라는 단어가 우리에게 친근하게 다가오는 것은 다름 아닌 영화 때문이다.

영화계에서는 엄청난 제작비와 배급력을 바탕으로 큰 성공을 거둔 영화를 일컬어 '블록버스터'라고 한다.

일반적으로 캐나다와 미국을 포함한 북미 지역에서는 1억달러 이상,전 세계적으로는 4억달러 이상의 흥행수익을 기록한 영화를 '블록버스터'라고 한다.

'블록버스터'는 매년 전 세계 영화시장을 융단 폭격하며 영화계에 천문학적인 경제적 이득을 가져다주고 있다.

그렇지만 그 등장은 아이로니컬하게도 위기의 순간에서 비롯되었다.

위기때 등장한 '블록버스터'

1960년대 텔레비전이 급속도로 보급되면서 영화사들은 흥행에서 고전을 면치 못했다.

궁지에 몰린 영화사들은 위기를 타계하기 위해 할리우드를 중심으로 새로운 제작시스템을 도입하게 되었는데, 그 시스템이 바로 대규모의 투자로 화려한 볼거리를 제공하고 스타 배우들을 등장시켜 관객을 극장으로 불러 모으는 '블록버스터'의 제작이었다.

하지만 '블록버스터'라는 의미에 진정으로 부합하는 영화가 등장한 것은 1975년에 이르러서였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연출한 '죠스(Jaws)'가 흥행수입 1억달러를 돌파하면서 블록버스터의 시작을 알렸고, 2년 후 조지 루카스의 '스타워즈(Star Wars)'가 개봉하면서 영화계는 본격적인 블록버스터의 시대로 진입하게 되었다.

스필버그는 '죠스' 이후에도 수많은 '블록버스터'를 직접 연출하면서 영화사의 흥행기록을 새롭게 써내려갔다. 그는 때로는 제작자나 기획자로서도 블록버스터 제작에 관여하여 왔다.

미미 레더 감독의 1998년 작품 '딥 임팩트(Deep Impact)'도 그가 기획한 작품 중 하나다.

영화는 미국 버지니아 주 리치몬드에서 레오 베이더만이라는 14세 소년이 지구와의 충돌궤도에 진입한 미확인 혜성을 발견하면서 시작한다. 이 혜성의 크기는 뉴욕시와 비슷하며,무게는 무려 5천억t에 달한다.

이에 따라 미국과 소련 정부는 혜성 충돌로 인한 인류의 종말을 막기 위하여 혜성을 폭파시켜 궤도를 변경시킬 프로젝트를 비밀리에 추진한다. 하지만 프로젝트는 결국 실패로 끝나고,미국 정부는 인간의 삶을 계속 영속시키기 위한 마지막 계획을 발표하게 된다.

미국 미주리 주의 석회암 동굴 속에 만들어진 지하요새에 혜성 충돌로 인한 재앙이 끝난 후 신세계를 건설할 사람들을 대피시킨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문제는 지하요새의 수용인원이 100만명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따라서 이미 선발된 20만 명의 과학자,의사,교사,군인,기술자,예술가 등을 제외하고는 미국 시민 가운데 단지 80만명만이 지하요새로 피신할 수 있다. 그리고 그 80만명은 컴퓨터에 의한 무작위 추첨으로 결정된다.

목숨이 걸린 가혹한 선택

어찌 보면 이 계획은 너무나도 가혹하게 들린다.

과학자의 목숨이 구멍가게 주인의 목숨보다 더 고귀하다고 할 수 있을까? 아니면 사람을 치료하는 기술이 고장난 전자제품을 수리하는 것보다 더 가치 있고 훌륭한 것일까?

어느 누구도 어느 한쪽이 더 낫다고 장담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더군다나 사람의 생명이 좌지우지되는 상황이라면 더욱 그러할 것이다.

그러나 다르게 생각해보면 어쩌면 가장 현명한 선택일지도 모르겠다.

한정된 공간에 일부의 사람들만 대피시킬 수 있고,그 사람들을 활용하여 새로운 세계를 건설해야 하는 정부의 입장에서 생각해본다면 말이다.

만약 후자의 의견에 동감한다면 분명 그것은 경제학적인 사고에 영향을 받은 결정일 것이다.

어느 경제학 책이든 그 첫머리에는 의사결정, 즉 사람이 살아가면서 수없이 직면하게 되는 선택에 대한 설명이 담겨 있다.

이는 한 사회가 가지고 있는 자원은 제한되어 있지만 충족하고자 하는 욕구는 무한히 많기 때문으로, 일반적으로 경제학은 이러한 자원의 희소성을 활용하여 욕구를 최대한 충족시키는 합리적인 선택을 연구하는 학문으로 정의된다.

다시 말해 주어진 자원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경제학의 핵심이라는 말이다.

'딥 임팩트'의 내용으로 돌아가 보자. 미국 정부는 100만명이라는 제한된 수용인원(희소한 자원)을 활용하여 신세계 건설(욕구 충족)이라는 목표를 달성해야만 한다.

이를 위해 미국 정부는 지하요새에 들어갈 수 있는 100만개의 티켓을 국민(시장)의 자율적인 선택에 맡기지 않는다.

이는 신세계 건설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과학과 의료같이 특정한 지식과 능력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이유는 국민의 선택에 맡길 경우 엄청난 혼란과 그로 인해 발생하는 손실로 신세계 건설이 좌절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를 경제학적으로 설명하면 시장이 자유롭게 기능하도록 맡겨둘 경우 자원 배분이 비효율적으로 이루어져 시장실패가 발생할 수도 있기 때문에 정부의 시장개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희소한 자원 활용해 최대효과

영화에서 미국 정부는 결국 20만 명의 꼭 필요한 사람들에게 '노아의 방주'와 같은 지하요새에 들어갈 수 있는 권리를 임의로 부여한다.

그리고 나머지 80만개의 티켓은 공평성의 차원에서 컴퓨터 추첨을 통해 무작위로 분배한다.

앞에서 말했듯이 이러한 미국 정부의 선택은 생명의 존엄성 차원에서 도덕적인 비난의 대상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주어진 희소한 자원을 활용하여 최대의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 경제학적으로는 효율적인 선택은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정원식 KDI 전문연구원 kyonggi96@kdi.re.kr


경제용어 풀이

희소성의 원칙(law of scarcity)

인간이 충족하고자 하는 욕구는 무한한데 반하여 사용할 수 있는 자원은 제한되어 있는 현상

효율성(efficiency)

최대의 효과를 얻을 수 있도록 주어진 자원을 활용하는 한편 특정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사용하는 자원의 양을 최소화하는 것

공평성(equity)

주어진 자원을 활용하여 얻어진 혜택을 사회구성원에게 중립적이고 공정하게 분배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