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과 경제의 만남] 경기 변동과 튤립
지난 40여 년간 우리나라의 실질 국내총생산(GDP) 추세선은 우상향하는 모습을 보여 왔다.

물론 1970년대의 석유파동부터 최근의 글로벌 금융위기에 이르기까지 성장이 주춤했거나 떨어진 적도 있었지만,실질 GDP 추세선이 우상향한 것은 장기적 관점에서 경제성장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져 왔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실질 GDP 추세선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직선이 아닌 상승과 하락이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구불구불한 모습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생산이나 소비와 같은 경제활동이 때로는 활발했지만 일정 기간은 침체되었기 때문으로,우리는 이러한 경제활동의 변동과정을 가리켜 '경기변동(business fluctuation 또는 business cycle)'이라고 한다.

수요·공급 변화가 주요 원인

경기변동은 경제활동이 어떠한 패턴으로 변화하고, 또한 변화의 원인은 무엇인지를 고찰하는 경제학의 이론으로,자본주의 경제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현상이다.

사회주의 경제는 생산수단을 공유하고 국유화하여 정부가 국가경제의 전반을 계획, 관리하기 때문이다.

경기변동이 발생하는 원인으로는 우선 수요 측면에서의 변화를 들 수 있다.

다시 말해 기업이 미래에 대해 어떻게 전망하고 있느냐에 따라 투자가 늘거나 줄어 경기가 변동한다는 말이다.

통화당국의 통화량 조절도 경기변동의 한 원인으로 언급된다.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밀튼 프리드먼(M. Friedman)은 통화정책이 금융시장의 각종 변수를 변동시키고,이것이 실물경제에 영향을 미쳐 경기변동을 초래한다고 주장하였다.

이 외에도 불완전한 정보하에서 이루어지는 거래나 기술 및 생산성의 향상과 같은 공급 측면의 변화가 경기변동의 원인으로 꼽힌다.

위와 같은 변화가 경제에 발생하면 경제는 네 단계의 단기적인 움직임을 순환하는 양상을 띠게 된다.

첫 번째 단계는 호황기로,이 시기에는 대부분의 경제활동이 상승 국면을 나타낸다. 생산과 소비가 증가하고,물가와 임금도 상승한다. 또한 재고가 감소하여 기업의 이윤이 높아지고,이로 인해 투자도 보다 더 활발해진다.

이와 같은 현상이 지속되어 경기의 호황이 최고점에 도달하면 경제는 후퇴기를 맞이하게 된다.

두 번째 단계인 후퇴기에 경제는 활력을 잃기 시작하는데,과잉생산이 일어나 재고가 쌓이고 소비와 투자가 감소하기 시작한다. 또한 호황기에 상승한 물가와 임금이 하락하고,실업률도 차츰 높아지게 된다.

후퇴기가 지속된 경제는 불황기로 돌입하게 된다. 불황기에는 투자와 생산활동이 극심한 침체 현상을 보이게 되고,도산하는 기업도 속출하게 마련이다.

또한 물가와 임금의 하락세가 가속화되고 주가도 후퇴를 계속하게 된다.

호황이 지속되면 경제가 최고점에 도달하듯이 지속적인 불황은 경제를 경기의 최저점에 도달하게 만들게 된다.

경기의 최저점에 머물던 경제는 일정 기간이 지나면 경기변동의 마지막 단계인 회복기에 진입하게 된다.

회복기를 맞이한 경제는 생산과 소비가 차츰차츰 상승세를 보이고,실업이 감소하고 물가와 임금이 상승하게 된다.

이러한 상태로 경제가 지속되면 경기는 다시 첫 번째 단계인 호황기로 접어들게 되어 경기변동의 하나의 사이클(cycle)을 마무리하게 된다.

경기변동의 흐름을 명확하게 파악하고 이를 통한 경기예측이 현실적이기 위해서는 실물부문의 움직임이 정상적이어야 한다.

즉,실물부문에 과대평가나 과열양상이 존재해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하지만 특수한 경우 경기 국면이 실물부문과 괴리되어 실제보다 왜곡되어 나타나기도 한다.

이러한 현상을 가리켜 '버블경제(또는 거품경제)'라고 하며,버블경제는 일반적인 재화나 서비스시장보다는 주식이나 부동산 같은 자산시장에서 주로 발생한다.

자산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는 데 비하여 공급이 부족하게 되면 자산의 가격은 상승하게 되는데,이때 자산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미래의 기대이익이 클 것으로 예상되면 투기적 수요가 동반되기 십상이다. 이로 인해 만들어지는 것이 바로 '버블경제'다.

버블경제의 효시 '튤립광풍'

경제학에서 버블경제의 효시로 언급되는 사건은 17세기 네덜란드에서 발생한 '튤립광풍(Tulip mania)'이다.

당시의 네덜란드는 전 세계 해상무역의 지배권을 장악하면서 유럽 국가들 중 1인당 국민소득이 가장 높았을 정도로 경제의 호황을 누렸다.

꽃에 대한 사랑이 유별났던 민족적인 특성에 경제적인 부(富)가 더해지면서 희귀한 꽃은 부와 계급의 상징처럼 되었고,이러한 꽃의 가격은 천정부지로 뛰어올랐다.

특히 꽃잎에 독특한 줄무늬가 있는 튤립의 인기가 높았는데,이러한 튤립의 값은 같은 무게의 금보다도 비쌀 정도였다.

이렇게 되자 양파 모양의 튤립 뿌리 하나 가격이 4억원에 달할 정도로 튤립 투기는 극에 달하였다.

가격이 지나치게 비싸고 공급량이 부족해지자 튤립 뿌리를 살 수 있는 권리를 파는 선물거래까지 등장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영원히 지속될 것만 같았던 튤립광풍도 그 끝을 보이기 시작했다.

지나치게 높은 가격을 인지한 사람들이 너도나도 튤립을 내다팔기 시작하면서 가격이 폭락했던 것이다.

1673년 1월 튤립의 가격은 26배나 상승했지만,한 달도 채 되지 않아 가격은 95%나 폭락하였다.

가격 폭락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하루 만에 반값이 되기도 하였고,심지어는 이전 가격의 1000분의 1 수준으로 떨어지기도 하였다.

전 재산을 털어 튤립광풍에 뛰어든 사람들은 하루아침에 파산상태에 이르렀고,이로 인해 생산과 소비가 감소하여 네덜란드 경제는 불황의 늪에 빠져들게 되었다.

일부에서는 네덜란드의 '튤립광풍'이 경제대국의 칭호를 영국으로 넘겨주는 계기가 되었다고 주장한다.

부동산 시장 거품 논쟁 거세

네덜란드에 튤립광풍이 불었다면 우리나라에는 부동산 투기 바람이 시장을 휩쓴 적이 있었다.

이때 형성된 부동산시장의 거품이 곧 붕괴할 것이라는 공방이 현재도 치열하다.

급랭한 부동산시장이 거품 붕괴의 전조라는 일부의 주장에 대해 일시적인 단기적 가격조정에 불과하다는 반론이 등장한 상태다.

어느 주장이 맞든 간에 가계대출의 대부분이 주택과 관련된 대출이라는 점에서 쉽게 넘길 문제는 아닐 것이다.

부동산시장이 붕괴되면 경제 전체가 흔들리고 장기불황에 빠질 것이 불을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부동산시장이 네덜란드의 튤립광풍과 같은 버블경제의 또 다른 예가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정원식 KDI 전문연구원 kyonggi96@kdi.re.kr


경제용어 풀이

경기 변동

경제가‘호황-후퇴-불황-회복’의 경기 국면을 주기적으로 순환하는 것으로,주요 파동으로는 ‘콘드라티예프파동’ ‘쥐글라르파동’ ‘키친파동’이 있다. 옛소련의 경제학자 콘드라티예프의 이름을 딴 ‘콘드라티예프파동’은 경기변동이 기술혁신에 의해 50년을 주기로 장기적으로 순환한다고 설명한다. 반면 ‘쥐글라르파동’은 가장 표준적인 경기변동론의 하나로,경기변동이 생산활동의 변화에 의해 10년을 주기로 순환한다고 규정한다. 마지막으로 ‘키친파동’은 미국의 경제학자 J.kitchin이 재고의 순환적 변동에서 발견한 경기의 파동으로,그 주기가 40개월로 가장 짧은 것이 특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