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cus] 논쟁 후끈한 '반값 등록금' … 정치·사회적 의미는?
대학등록금 문제로 온 나라가 들썩이고 있다.

사실 3년간 수면 아래에 있던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후보자 시절 '반값 아파트'와 함께 '반값 등록금'을 대선 공약으로 내걸었다.

반값 아파트는 '보금자리주택'으로 구체화됐다.

서울과 수도권에선 반값은 아니지만 반값에 가까운 아파트로 현재 분양 중이다.

하지만 반값 등록금이라는 정책은 들리지 않았다.

"이 대통령이 당선되자 입을 씻었다"는 말도 그래서 나온다.

# OECE 2위의 '살인적 등록금'

문제는 심각하다.

구매력을 감안한 우리나라의 대학등록금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가운데 미국 다음으로 많다.

국민 소득규모가 49위인 점을 감안하면 '살인적인 등록금'이란 말도 틀리지 않아 보인다.

OECD 국가가 고등교육재정에 지원하는 금액은 GDP(국내총생산) 대비 평균 1.1%인 데 비해 우리나라는 절반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0.48%에 불과하다.

여기에 서울이나 수도권 대학생들은 생활비 부담까지 져야 한다.

지방에서 서울로 '유학'온 대학생들에겐 학교 앞 하숙비나 자취방의 월세 부담이 큰 편인데,서울지역 주요 대학의 인근이 서울시로부터 뉴타운 사업지구로 대거 지정돼 '살 집'을 구하기 힘들어진 것이다.

집세는 뛰었고 물가도 올랐다.

빚을 지고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며 대학을 졸업해도 취직은 힘든 세상이 된 것이다.

젊은이들은 분노했다.

이런 상황에서 이 대통령이 올초 TV에 나와 "반값 등록금 공약은 금액이 아니라 심정적인 부담을 완화하겠다는 취지"라는 발언은 불에 기름을 끼얹은 격이 됐다.

직접적인 분수령은 4 · 27 재보선이었다.

자리가 빈 국회의원과 시 · 도지사를 뽑는 4 · 27 재보선에서 '수도권의 대구'라고 여겨졌던 분당에서 여당인 한나라당이 패한 것이다.

한나라당이 분석한 패인 중 하나는 '젊은층의 민심 이반'이다.

국회의원 299명 중 172석을 차지하고 있는 거대여당의 지도부는 4 · 27재보선 패배에 대한 책임을 지고 모두 물러났다.

한나라당에는 노무현 탄핵 소동으로 17대 총선에서 패배한 이후 꾸려졌던 '비상대책위원회'도 다시 등장했다.

한나라당의 전통적 지지기반인 영남권 인사가 아닌 중립성향의 인천 출신 황우여 4선 의원이 한나라당 의원들을 이끌어갈 원내대표에 당선되는 이변도 생겼다.

# 민심달래기 vs 포퓰리즘

이런 분위기에서 황 원내대표가 젊은층의 민심을 달래기 위해 내놓은 게 반값 등록금 정책이다.

이 대통령이 대선 공약을 잠재우고 있는 사이 민주당이 내놓은 정책이기도 했다.

그때의 한나라당은 '민주당의 표퓰리즘(인기영합주의인 포퓰리즘과 표를 합성시킨 신조어)'이라고 공격했던 것이다.

한나라당은 민주당의 반값 등록금 정책과 다르다고 반박한다.

차이는 있다.

민주당이 보편적인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반값 등록금이라면 한나라당이 추진하는 반값 등록금은 차등적이다.

예컨대 민주당은 모든 소득계층에서 모든 대학생들의 등록금의 일부를 정부가 부담하도록 하고 있지만,한나라당은 소득과 성적에 따라 차등적으로 지급하자는 쪽으로 가닥을 잡고 있다.

한나라당의 정책은 소득이 절반 이상이 되는 순간부터 등록금 전액을 내야 한다.

두 당의 반값 등록금 정책에 대해선 시민단체나 대학생과 예비대학생을 둔 부모들은 일제히 환영하는 목소리다.

이러한 논의가 정치권에서 이뤄진 것도 상당히 진전이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과거엔 정당의 지지 요인 중 가장 큰 게 '고향'(지역기반)이었지만,이제는 정책이 주요 이슈가 되면서 정치가 선진화로 다가섰다는 분석도 있다.

# 문제는 재원·대학 모럴해저드

문제는 재원이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추진하는 '반값 등록금'은 무엇보다 돈이 필요하다.

돈은 세금이고 세금은 누군가가 내야 한다.

반값 등록금을 추진하기 위해선 적게는 2조원에서 8조원까지 들 수 있다.

매년 들어가는 돈이다.

아직 양당 모두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하지 않았기 때문에 금액은 차이가 난다.

민주당은 4대강을 비롯해 각종 개발 사업비를 줄여서 재원을 마련하겠다는 입장이다.

반면 한나라당은 증세 없는 반값 등록금을 추진하고 있다.

주요 방법으론 감세 철회나 세계 잉여금(세금을 쓰고 남은 돈) 활용, 4대강 사업비 축소 등이 거론되고 있다.

하지만 그 정도만으론 반값 등록금과 만 5세 무상교육,공무원 증원과 노후보장 등 연간 10조원이 필요한 '한나라표(表) 복지 정책'을 수행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포퓰리즘이라는 비판도 그래서 나온다.

반값 등록금이 대학 측의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를 부추길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대학이 막대한 돈을 쌓아놓으면서 등록금을 올릴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또한 대학의 구조조정 의지를 약화시켜 경쟁력의 하향평준화를 초래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김재후 한국경제신문 기자 h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