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기업에 대한 오해와 진실

[Focus] 대기업은 욕심 많은 공룡이라고?… 글쎄요!
“10대 그룹,3년간 빚 205조원 내 덩치 불렸다”

“상위 10대 그룹 계열사,5일마다 한개꼴로 늘어나”

“MB정부 들어 각종 규제완화 혜택 대기업이 고스란히”….

이명박 정부가 ‘공정(公正)사회 실현’을 국정의 최우선 과제로 삼은 이후 최근이처럼 대기업을 비판하는 기사들이 부쩍 쏟아지고 있다.

상당수 언론에서 대기업은 중소기업을 착취해 자신들의 배만 불리는 악덕 공룡기업쯤으로 그려진다.

정부도 대기업의 주식을 많이 갖고 있는 국민연금까지 동원해 기업 경영을 압박하려는움직임이다.

과연 대기업은‘거대한 악(惡)’일까.

# 빚 늘려 문어발식 확장에만 전념한다?

"상위 10대 민간 대기업 그룹의 전체 부채는 이 정부가 출범한 2008년 423조3390억원에서 올해 628조4140억원으로 205조750억원 늘어났다.

그러나 빚이 늘어나는 와중에도 10대 그룹의 현금성 자산은 2009년 말 현재 52조1461억원으로 1년 전보다 8조3419억원 증가했다.

또 계열사들은 2008년 405개에서 지난해 617개로 늘었다.

빚으로 덩치를 키운 셈이다. "

이 기사의 근거는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가 지난달 5일 발표한 '자산 5조원 이상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 55개 지정'이라는 자료다. 기사만 놓고 보면 대기업들은 정말 악덕이다.

하지만 공정위 자료를 꼼꼼히 읽어보면 이 기사가 엉터리라는 걸 금방 알 수 있다.

우선 자기자본에 비해 빚이 얼마나 많은가를 따지는 부채비율은 더 낮아졌다는 사실은 외면했다.

공정위가 경제력 집중을 막기 위한 목적으로 지정한 55개 대기업집단의 부채비율(자기자본 대비 부채의 비율)은 지난해 평균 109.0%로 전년(115.8%)보다 6.8%포인트 줄어들었다.

특히 토지주택공사 등 공기업을 제외한 민간 대기업의 부채비율은 94.6%로 100% 미만이다.

공기업의 경우 167.2%로 민간 대기업을 훨씬 웃돈다.

기업의 부채를 따질 때는 절대 규모만이 아니라 부채비율을 동시에 봐야 한다.

절대 규모는 기업이 성장해가고 자산이 늘어가면서 얼마든지 커질 수가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경영학에서 가르치듯 부채가 없는 게 꼭 좋은 것만도 아니다.

돈을 빌리는 데 들어간 비용(이자)보다 자금을 차입해 사업을 벌여 얻을 수 있는 이익이 크다면 기업가가 돈을 빌려 사업을 확장하는 건 당연하다.

현금 자산을 얼마나 보유할지,자금을 얼마나 차입할지는 경영전략에 속하는 일이다.

현금이 넘치는 상황에서 빚을 늘려 덩치를 키웠다는 주장은 난센스인 것이다.

또 계열사가 늘어난 것을 문제로 삼았는데 이는 일자리를 늘리기 위해선 대기업이 투자를 해야 한다는 주장과 배치된다.

# 중소기업 착취해 대기업 배만 불린다?

대기업의 사업 확장을 부정적으로 보는 데는 대기업들이 중소기업이나 영세 자영업자가 주로 해왔던 사업까지 진출하고, 협력업체들의 납품단가를 후려침으로써 서민들의 생계까지 위협하고 있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

사실 대기업의 영역 확장과 저가공세 등으로 피해를 보는 사람들도 적지않다 .

그렇지만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거래에서 중소기업이 손해만 보는 것일까?

한국은행이 매년 발표하는‘기업경영분석’에 따르면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이익률 격차는꾸준히 좁혀져 왔다.

2004년 대기업의 평균 영업이익률(매출액 대비 영업이익)은 9.4%인 반면 중소기업은 4.1%로 두 배 이상 차이가 났다.

그랬던 게 2009년엔 대기업 5.6% 중소기업 4.8%, 2010년엔 각각6.8%와 4.5%로 상당부분 축소됐다.

더군다나 대기업이라고 모두 영업이익률이 높은 것도 아니다.

삼성이나 현대차 SK 같은 몇 몇 대기업은 큰이익을 내고 있으나 적자 대기업도 상당수다.

중소기업들의 모임인 중소기업 중앙회의 지난해 5월 실태 조사에 따르면 국제 원자재가격 상승을 납품가에 전혀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응답한 기업이 44.2%에 이르렀다.

그러나 조사 대상 208개사 중 대기업 협력사중 대부분을 차지하는 종업원 200인 이상은 6개(2.9%)에 그쳤다.

대기업이 중소기업의 기술 및 인력을 강탈한다는 주장도 일부 그런 사례가 있겠지만 진실과는 거리가 있다.

삼성전자나 현대차 등 대기업들은 협력업체들에 연구-개발(R&D) 자금과 인력을 지원하고 돕는다.

삼성의 경우 매년 공장에서 협력업체들이 참가한 가운데 부품전시회를 열어 선진국 부품들과 장-단점을 비교한다.

협력업체들의 경쟁력이 높아지지 않고서는 글로벌 경쟁에서 이기기 힘들기 때문이다.

대기업 중에서도 이익을 많이 내는 기업과 적자를 내는 기업이 있는 것처럼 중소기업도 마찬가지다.

현대차에 램프와 섀시를 납품하는 SL(옛삼립산업)은 10년전 매출이 1900억원 이었으나 지난해 해외 법인과계열사를 포함해 2조4000억원으로 불었다.

순이익은 86억원에서 1063억원으로 늘어났다.

관건은 일본의 상당수 부품업체들이 엄청난 이익을 내면서 대기업과 협력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데서도 알 수 있듯 기업 규모가 아니라 경쟁력을 갖고 있느냐에 달려있다.

# 대기업은 글로벌 시장에서 싸우는 '戰士'

미국의 경제잡지인 포천이 선정하는 글로벌 500 우량기업에 낀 한국 회사는 1995년12개였다.

2009년엔 14개로 14년 동안 2개가 늘어난 데 그쳤다.

반면 같은 기간 중국은 2개에서 37개로,1995년 한 개도 없었던인도는 2009년 7개가 글로벌 기업에 포함됐다.

세계적으로 보면 한국의 대기업 중 상당수는 아직도 중소-중견기업규모에 불과하다.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한 중소기업들의 노력이 눈물겹지만 대기업들이라고 노는 게 아니다.

글로벌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한푼이라도 싸게 만들고, 한발이라도 빨리 신제품을 내놓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벌인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은 한배에 탄 공동운명체다.

정부의 기업정책도 대기업을 착취자로보고 각종규제를 가하는 방식이아니라 경쟁력이 있는 중소기업을 키우는데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그래야 경제발전의 원동력인 기업가 정신을 북돋을 수 있다.

이창양 KAIST 테크노경영대학원 교수는 “우리나라의 경제력 집중 문제는 재벌이 문어발식으로 확장했기보다는 중소기업의 육성이 제대로 안됐기 때문”이라며“대기업을 옥죄기보다는 중소기업을 제대로 키우는 정책이 절실하다”고 강조한다.

황인학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시장의 경쟁은 소비자의 관점에서 평가 해야한다”며 “국제규범과는 동떨어진 대기업 규제로는 발전할 수 없다”고 말했다.

영국의 총리였던 윈스턴 처칠은 “사회주의는 부자를 끌어내리고 자본주의는 가난한 자를 끌어올린다”고 했다.

정부의 기업정책은 잘나가는 기업은 더 잘나가게 하고,모자라는 기업은 적절한 지원으로 경쟁력있는 기업으로 커가게하는 방향이 돼야한다.

강현철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hc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