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과 경제의 만남] 기업 로고와 그리스 신화
1998년 지금은 부도로 사라진 범양식품이 콜라 독립을 외치며 '8 · 15 콜라'를 시장에 내놓았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의 콜라 시장 역시 세계적 음료브랜드인 코카콜라와 펩시콜라가 양분하고 있었다.

범양식품은 후발주자로서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인지도를 높이는 데 주력했다.

태극기를 활용한 애국심 마케팅 전략을 구사했고,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서 시음회를 열기도 하였다.

시음회의 목적은 품질과 맛에서는 결코 뒤지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8 · 15콜라,코카콜라,펩시콜라를 구분이 안 되는 종이컵에 각각 따르고 눈을 가린 채 시음한 후 어느 회사 제품인지를 맞히는 식으로 시음회는 진행되었다.


머리속에 쉽게 각인 돼야

짧게는 수년,길게는 수십년간 한 종류의 콜라만을 마셔온 소비자들은 구분할 수 있음을 확신하며 시음행사에 참여했다. 하지만 결과는 예상 밖이었다.

맛을 본 콜라가 어느 회사 제품인지를 맞힌 소비자들은 절반에도 못 미쳤던 것으로 기억된다.

사실 비슷한 공정을 통해 만들어진 유사한 쓰임새의 포장되지 않은 제품들을 구별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어쩌면 생산을 담당한 직원들을 제외하고는 구별하는 것이 불가능할지도 모르겠다.

이런 이유로 기업들은 다른 기업이나 제품과의 차별화를 위해 독특한 형식의 특정한 문자 결합을 활용한다.

이러한 문자의 결합을 '로고(logo)'라고 한다. 로고는 자신과 자신의 제품을 다른 기업의 것과 구별되도록 하는 동시에 기업의 이미지나 제품의 특성을 소비자에게 전달하기 위해 사용된다.

따라서 로고는 기업이나 제품이 지니는 의미를 쉽게 전달하고,소비자들의 머릿속에 깊이 각인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나이키 성공엔 로고도 한 몫

1986년 국내에 처음 소개된 '나이키'는 시장에 나오자마자 아이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었다.

나이키 운동화를 신은 아이는 부러움의 대상이 되었고,시장에는 '나이스'라는 이름의 짝퉁 신발도 등장하였다.

어쩌면 80년대 아이들의 눈에는 밤하늘의 초승달도 나이키의 로고로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렇다. 얼핏 보면 나이키의 로고는 초승달을 연상시킨다.

하지만 'swoosh'로 불리는 나이키의 로고는 실제로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승리의 여신 '니케(Nike)'의 날개를 옆에서 본 모습을 형상화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나이키'라는 이름 역시 니케의 영어식 발음이다.

티탄 신족의 하나인 팔라스와 저승에 흐르는 강의 여신 스튁스(Styx) 사이에서 태어난 니케는 등에 커다란 날개가 있고 종려나무의 가지와 방패를 가진 모습을 하고 있다.

니케는 페르시아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조국에 소식을 전하기 위해 42.195㎞를 달린 그리스 병사가 기도를 드린 대상으로 유명하다.

현재 프랑스 파리의 루브르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니케상'은 1863년 북 에게해 사모트라케섬의 돌무더기에서 발견된 조각들을 복원해 놓은 것이다.

뛰어난 품질과 기능,아름답고 독창적인 디자인,유명 운동선수를 모델로 내세운 광고와 캠페인 등 나이키를 세계적인 스포츠브랜드로 성장시킨 마케팅 요인은 수도 없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여신 니케의 이름이 갖는 의미와 니케상의 용도만큼 스포츠브랜드에 어울리는 이름과 로고는 없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오늘날의 나이키를 세계적인 기업으로 만든 일등 공신은 어쩌면 나이키 이름을 창업자에게 제안한 제프 존슨이라는 직원과 'swoosh' 로고를 디자인하고,이를 단돈 35달러에 나이키에 넘긴 포틀랜드주립대학교 여대생 캐럴린 데이비슨일지도 모르겠다.

그리스 신화를 기업의 로고에 사용한 것은 비단 나이키뿐만이 아니다. 세계적인 패션 종합 브랜드인 '베르사체'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괴물인 '메두사(Medusa)'를 로고로 사용한다.

메두사는 고르곤의 세 자매 중 한 명으로,원래는 눈부실 정도의 미모를 갖고 태어난 여성이었다.

하지만 메두사가 포세이돈(Poseidon · 바다의 신)의 사랑을 독차지하자,이를 시기한 아테네(Athene · 전쟁과 지성의 여신)가 저주를 내려 메두사의 머리카락을 뱀으로 만들고,메두사를 직접 본 사람은 모두 돌로 변하게 만들었다.

이로 인해 메두사는 사람들에게 두려움과 공포의 대상이 되었다.

하지만 영화나 소설 속에 나오는 메두사는 때로는 치명적인 매력을 소유한 팜파탈로도 그려진다.


그리스 신화 로고로 활용

베르사체를 설립한 '지아니 베르사체'는 메두사와 같은 그리스 문화를 쉽게 접할 수 있는 이탈리아 남부의 칼라브리아 지방에서 태어났다.

그래서인지 그는 그리스 신화에서 모티브를 얻은 고전적인 디자인에 현대적인 아름다움을 가미한 작품으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 왔다.

화려한 원색을 사용한 현란한 무늬의 베르사체 제품들은 그리스 신화 속 여신들의 아름다움에도 충분히 견줄 만하다.

또한 이러한 아름다움은 베르사체를 명품의 반열에 올려놓을 정도로 압도적이기에 충분하다. 아마도 베르사체는 메두사를 통해 자신이 추구하는 디자인 철학을 이야기했던 것으로 보인다.


스타벅스 3차례나 변신

세계적인 커피전문점 '스타벅스'는 1971년 미국 서부 시애틀의 작은 상점으로 출발하였다. 커피의 재료인 원두를 유통하는 회사로 시장에 등장한 스타벅스가 커피를 주원료로 하는 음료를 판매하는 현재의 모습으로 변모한 것은 1987년 현재의 CEO인 하워드 슐츠가 스타벅스를 인수하면서부터다.

집과 사무실을 벗어난 제3의 공간으로서,일상을 풍요롭게 하는 특별한 경험을 고객들에게 전달하고자 노력해온 스타벅스는 현재 50여 개국 1만7000여 매장에서 매일 수백만 명의 고객들에게 최고 품질의 커피를 제공함과 동시에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는 역할도 수행하고 있다.

스타벅스의 로고는 사업을 시작한 이후 총 세 차례의 변화를 거쳐 지금의 모습을 띠고 있다. 하지만 로고의 커다란 줄기는 초창기 그대로다.

녹색(초창기에는 갈색) 원 안의 정체불명의 여인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원 안의 여인은 사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꼬리가 두 개 달린 인어 '사이렌(Siren)'이다.

사이렌은 아름다운 여성의 얼굴에 독수리 몸을 가진 전설의 동물로,아름다운 노랫소리로 항해 선원들을 유혹하여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선원 자신의 몸을 배의 돛대나 기둥에 묶고 귀에는 밀납을 부어 소리를 듣지 못하게 해야 유혹에서 벗어날 수 있을 정도로 사이렌의 노랫소리는 천상의 목소리 그 자체였다.

스타벅스의 로고에 사이렌이 등장하는 것은 아마도 사이렌이 노래로 선원들을 유혹하듯이 커피로 고객들을 유혹하겠다는 스타벅스의 의지가 담겨 있는 듯하다.

이 외에도 그리스 신화를 기업의 로고로 활용한 예는 수없이 많다. 우리나라의 화장품브랜드인 '헤라'는 태초의 생명과 최고의 아름다움을 상징하는 그리스 신화 속 여신 '헤라(Hera)'의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였다.

그렇다면 기업들이 회사와 제품의 로고에 그리스 신화를 사용하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정체성 전달하는 이미지

기업은 로고를 통해 자신들이 지향하는 바와 정체성을 대중에게 이야기한다. 따라서 기업의 로고는 대중에게 친근하면서도 특별해야 한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신들의 이미지가 바로 이러하다.

우리는 어린 시절부터 동화나 소설을 통해,혹은 영화나 만화를 통해 그리스 신화 속의 신들을 접해왔다. 비록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허구 속의 존재들이지만,신화 속의 신들은 우리에게 더 이상 낯선 이방인들이 아닌 것이다.

그렇지만 신화 속의 신들이 친근한 것만은 아니다. 탄생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신들의 삶은 인간들의 그것과는 분명히 다르다.

한마디로 그들의 삶은 특별하다. 또한 신들은 고유한 기술과 힘을 가지고 있으며,자신의 분야에서만큼은 남들보다 뛰어나다.

기업들은 이러한 신들의 속성이 투영된 로고를 통해 끊임없이 대중들과 소통하고,자신들의 이미지와 제품을 사람들의 머릿속에 각인시키는 것이다.

정원식 KDI 경제정보센터 전문연구원 kyonggi96@kdi.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