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재 가격 급등으로 인플레 심각…“성장 발목 잡는다” 우려도

[Global Issue] "성장보다는물가잡기가 먼저"…유럽·아시아 국가들 줄줄이 금리인상
유럽과 아시아를 중심으로 각국이 금리 인상에 나섰다.

금리가 오르면 은행 예금이자와 대출이자가 오른다. 사람들은 소비보다는 저축을 선호하게 된다.

결국 시장에 풀리는 돈이 줄어들고 이는 제품,서비스 등 재화에 대한 수요 감소를 초래한다.

각국이 금리를 인상한 것은 경제 성장보다는 물가 안정에 무게를 두겠다는 뜻이다.

최근 석유 곡물 비철금속 등 원자재 가격이 고공행진을 하면서 글로벌 인플레이션이 우려되자 대대적으로 물가 단속에 나선 것이다.

전문가들은 원자재 가격 상승이 금리 인상을 초래해 글로벌 경제 성장을 둔화시킬 수도 있다고 지적한다.



⊙ 경기 회복보다 물가 안정 택하는 국가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국제사회는 경기 부양을 위해 저금리를 유지해왔다.

그러나 최근 물가 안정에 중점을 두고 금리를 인상하는 국가들이 늘고 있다.

유럽중앙은행(ECB)은 7일 기준금리를 1%에서 1.25%로 0.25%포인트 인상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맞아 금리를 4.25%에서 낮추기 시작한 ECB는 2009년 5월 기준금리를 1%까지 내렸다. 이후 23개월만의 인상이다.

ECB의 금리 인상은 포르투갈 아일랜드 그리스 등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일부 국가에서 재정위기 우려가 지속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플레이션을 잡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지난 달 유로존 물가상승률은 2.6%로 2008년 10월 이후 가장 높았다.

로이터통신은 "ECB가 연내 기준금리를 두 차례 더 올려 1.75%까지 조정할 가능성도 있다"고 분석했다.

한국을 포함해 중국 인도 등 아시아 신흥국들은 이미 지난해부터 금리 인상에 나섰다.

중국은 최근 올들어 두번째로 금리를 0.25%포인트 인상했다.

지난 10월 이후로 금리인상을 네번이나 단행했다.

중국의 물가상승률은 1,2월 정부 목표치인 4.0%를 훨씬 넘는 4.9%를 기록했다.

인도는 금융위기 이후 기준금리를 8차례 올려 현재 금리는 6.75%다.

대만은 지난 달 올들어 세번째로 금리를 0.125%포인트 올렸다.

베트남도 최근 기준금리를 13%로 1%포인트 올렸다.

지난해 11월 이후 일곱번째다.

미국에서도 연내 금리 인상설이 나오고 있다.

나라야나 코처라코타 미국 미니애폴리스 연방준비은행 총재는 "기준 금리를 올해 하반기에 0.75%까지 올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토머스 호그니 미국 캔자스시티 연방은행 총재도 "기준 금리를 1%로 인상한 뒤 시장이 진정되도록 기다렸다가 2%로 추가 인상하는 방안을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미국 금리는 사실상 '제로' 수준인 0~0.25%다.

⊙ 원자재 가격 급등…글로벌 인플레이션 가속화

최근 금리 인상은 국제 유가와 곡물 가격의 급등에 기인했다.

리비아 예멘 시리아 코트디부아르 등 중동 · 북아프리카 지역의 정정불안으로 석유 공급이 불안정해졌다.

미국 호주 브라질 등 세계 곡창지대에서의 기상이변으로 곡물 생산량도 줄었다.

반면 중국과 인도 등 신흥국의 성장,최근 미국 내 고용 확대로 경기에 대한 낙관적인 전망 등으로 수요는 늘어났다.

일본 도호쿠(東北) 대지진 이후 도시 재건을 위해 원자재 수요가 늘어나고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폭발로 방사성 물질에 노출되지 않은 식품에 대한 수요가 늘어날 것이란 전망이 원자재 가격 상승에 기름을 부었다.

글렌 맥과이어 소시에테제네랄 아시아태평양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일본의 공급망이 파괴되면서 현재도 인플레이션을 겪고 있는 아시아 신흥국들이 영향을 크게 받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서부텍사스원유(WTI) 5월물 가격(이하 12일 종가 기준)은 배럴당 106.25달러로 금융위기 이후 최고치인 112.79달러(8일)보다는 내렸지만 여전히 연초보다 16.1% 오른 수준이다.

런던 국제선물거래소(ICE)에서 북해산 브렌트유 5월물 가격은 배럴당 120.92달러로 전년 대비 42.6% 뛰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WTI 가격이 100달러를 넘으면 지금과 같은 경기 회복 속도에 제동이 걸릴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시카고상품거래소(CME)에서 옥수수 5월물 가격은 부셸당 752.5센트로 사상 최고치 776센트(11일)보다는 소폭 하락했지만 여전히 지난해보다 두배 이상 높다.

밀가루 5월물 가격도 부셸당 759.5센트로 전년 대비 62.4% 올랐다.

런던금속거래소(LME)에서 구리 3개월물 가격은 t당 9690.5달러로 1년 전보다 21.9% 올랐다.

⊙ 세계 경제 성장에 제동 걸릴까

영국 일간지 텔레그래프는 "유가가 '위험수위(danger point)'인 배럴당 120달러를 돌파하면 세계 국내총생산(GDP) 중 석유 가격이 차지하는 비중이 5.5%를 넘어서게 돼 경제 성장을 방해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국제 유가가 배럴당 10달러씩 증가할 때마다 세계 경제 성장률은 0.2%씩 줄어든다"고 분석했다.

원자재 가격 상승은 세계 지역내총생산(GDP) 1,2위국인 미국과 중국에 영향을 크게 미칠 것으로 분석됐다.

최근 파이낸셜타임스(FT)는 어닝시즌(기업들의 실적이 집중적으로 발표되는 시기)을 맞은 미국의 1분기(1~3월) S&P500 기업의 전년 대비 주당 수익(EPS) 증가율이 13.6%로 지난해 증가율 41%에 크게 못 미칠 것이라 전망했다.

FT는 "경기에 민감한 소비재나 식료품을 다루는 기업의 EPS은 평균에 못 미치는 10%가량만 증가할 것"이라며 "수도 · 전기 · 가스 등 공공재 기업은 EPS 증가율이 4.7% 하락할 것"으로 전망했다.

원자재 가격 상승은 중국 무역수지에도 영향을 미쳤다. 중국 해관총서(관세청)에 따르면 중국의 무역수지는 지난 1분기 10억2000만달러 적자를 기록,2004년 1분기 이후 7년 만에 처음으로 적자를 냈다.

1분기 수출은 전년 동기보다 26.5% 증가한 반면 수입이 32.6% 늘어난 탓이다.

톰슨로이터에 따르면 1분기 중국의 원유 수입량은 2009년 1분기 대비 11.9% 늘었지만 수입액은 39.1% 증가했다.

철광석 수입량은 14.4% 늘었는데 수입액은 82.5%나 급등했다. 밀 · 밀가루 수입량은 29.0% 줄었으나 수입액은 2.7% 늘었다. 천연고무 수입량도 4.6% 감소했으나 수입액은 65.9%나 올랐다.

왕 타오 UBS 중국 이코노미스트는 "위안화 절상,인건비 상승,인플레이션 등이 겹쳐 수출액은 줄어드는 반면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수입액은 늘었다"며 "올해 중국의 무역수지는 1500억달러로 지난해보다 20% 줄어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HSBC는 원자재 가격 상승을 이유로 영국의 올해 성장률을 기존 전망치인 1.7%에서 1.4%,내년 성장률을 1.8%에서 1.6%로 각각 내려잡았다.

강유현 한국경제신문 기자 yh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