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들 "자유와 빵을 달라" 카다피42년 철권 통치에 항거

[Focus] '리비아 쇼크'로 유가 치솟고 금융시장 요동…휘청대는 세계경제
전 세계가 '리비아 쇼크'로 휘청이고 있다.

벤 알리 전 튀니지 대통령과 호스니 무바라크 전 이집트 대통령을 삼킨'재스민 혁명'의 불꽃이 세계 최장수 통치자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원수까지 집어삼킬 기세다.

국제사회는 패닉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배럴당 90달러대에 머물던 유가가 110달러까지 폭등,3차 오일쇼크 우려를 높이고 있으며 국내외 주가는 연일 2~3%씩 맥없이 추락하고 있다.

한동안 고개를 들던 달러화 가치가 다시 떨어지는 등 금융시장도 요동친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 42년 철권통치 염증에 배고픔 겹쳐

리비아는 이집트 시민혁명과 닮은 모습이다.

자유와 빵을 갈망하는 시민들이 오랜 독재에 지쳐 있었다는 얘기다.

카다피 원수의 독재는 세계 최장수로 기록돼 있다. 무려 42년간이다.

그는 1969년 9월 육군 대위의 신분으로 친서방 성향의 이드리스왕이 해외여행을 간 사이 무혈 쿠데타를 일으킨 이후 줄곧 리비아를 통치해왔다.

미국의 정치전문지 포린폴리시에 따르면 튀니지에서 시민봉기로 벤 알리 대통령이 야반도주한 직후 "다음 순서는 이집트의 무바라크나 리비아의 카다피"라고 말했을 정도로 독재에 대한 리비아 사회의 염증은 곪을대로 곪아 있었다.

리처드 닉슨 전 미국 대통령은 카다피를 '중동의 미친 개'라고 부르기도 했다.

시민들이 항거하게 된 가장 큰 배경은 폭압정치다.

카다피는 집권 후 의회제도와 헌법을 폐지했다.

왕정이나 다름없는 절대군주 형태로 독재를 해온 셈이다.

자신의 뜻에 반대하는 경우 무자비하게 숙청하고 살해하는 것도 잘 알려진 그의 특기다.

1996년 벵가지 아부 슬림 감옥에 수용돼 있던 정치범 1200명을 학살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

"피 한방울이 남을 때까지 폭도들과 싸우다 죽겠다"며 시위대에 피의 보복을 다짐하는 지난 22일의 TV 연설도 그의 무자비한 잔인성을 보여준다.

그가 강조해온 혁명철학은 사실상 어떤 정치세력도 반대할 수 없게 고안됐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시민들은 특히 그와 가족들의 부패 및 부정축재를 혐오하고 있다. AFP통신은 "아들 7명과 1명의 딸이 리비아의 전체 산업을 장악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전했다.

석유 가스 통신 유통 관광 등 대다수의 '달러박스'가 가족들 손에 좌지우지되고 있다.

이들은 한 해 수백억달러가 넘는 이익을 보지만,정작 국민들은 극심한 기아에 시달리고 있다는 게 문제다.

더욱이 카다피는 차남에게 권력을 물려주려는 시도까지 함으로써 전형적인 독재자의 길을 택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실업률이 30%에 가까운 상황에서 전체 인구의 35%가량이 하루 2달러도 안되는 돈으로 끼니를 이어가고 있다.

80만명은 아예 집도 없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전세계를 강타한 인플레이션으로 식료품과 연료가격 등이 폭등하자 참았던 불만이 폭발한 것이다.

⊙ '부족 생존본능'이 초강경 진압 불러

국제사회는 특히 리비아가 이집트나 튀니지처럼 대통령이 퇴진하는 수준에서 마무리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우려한다.

리비아 시위사태가 종국엔 부족 간 내전으로 번질 조짐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리비아엔 14개 대부족과 여기서 갈라진 약 500개의 크고 작은 부족이 존재하며 카다피에게 충성하는 카다파와 이에 맞서는 주와야,와르팔라 부족 등이 전쟁을 벌이는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리비아 정부는 시위 진압 과정에서 박격포와 전투기,무장헬기의 기총소사 등 상상을 초월하는 방식을 동원했는데,이 배경이 바로 부족의 생존본능에 따른 것이라는 해석이다.

시사주간지 타임은 이번 시위가 부족의 불만과 관련이 있는데다 이를 방치하면 다른 부족들의 반란이 이어질 것이라는 두려움이 카다피 정권을 짓누르고 있다고 전했다.

현재 러시아가 체첸의 분리주의 움직임이 포착될 때마다 강경진압에 나서는 것과 맥락이 비슷하다는 얘기다.

카다피와 그의 차남 사이프 알이슬람이 '내전(內戰)'을 운운하며 시위대에 격한 반응을 보이는 것도 이런 부족 간 긴장관계에서 비롯된 것으로 풀이된다.

뉴욕타임스는 "리비아가 겉으론 현대 국가 형태를 갖춘 듯하지만 정서적으로는 부족적 전통에 기반을 두고 있다"며 "한정된 자원을 놓고 목숨을 걸고 싸울 수밖에 없는 운명적 긴장감이 상존한다"고 진단했다.

'상대 부족을 완전히 멸해야 훗날 보복당하지 않는다'는 생존본능이 작용하고 있다는 얘기다.

⊙ "원유 어쩌나" … 화들짝 놀란 지구촌

국제사회가 사태 추이를 예의주시하고 있는 것은 리비아 사태의 폭발력 때문이다.

부족 간 내전이라는 파국으로 치달을 경우 글로벌 경제는 직격탄을 맞을 수밖에 없다.

가장 큰 우려가 원유 수급 차질이다. 리비아는 전세계 원유 생산량의 1.7%에 해당하는 하루 165만배럴의 원유를 생산하고 있다.

이 중 약 80%를 해외에 수출한다. 상황이 최악으로 치닫게 되면 130만~140만배럴량이 꽁꽁 묶이게 되는 셈이다.

파이낸셜타임스는 "혼란상황이 극에 달할 경우 시아파들이 주로 맡고 있는 원유 시추시설과 정제공장,송유관 등에서 파업이 일어나거나 유전이 폭파되는 사태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미 가즈프롬과 에니,레프솔 등 대형 석유회사들도 현지 시추활동을 멈춘 상태다.

AFP통신은 "이탈리아계 석유회사인 에니는 현지 진출 회사 가운데 최대인 하루 24만배럴을 생산하고 있어 시추중단 파장이 작지 않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현재 하루 생산량의 20%가량이 줄어든 것으로 알려졌다"고 전했다.

국제사회는 보복의 악순환을 불러올 수 있는 리비아 내전을 막기 위해 머리를 맞대고 있지만 흥분한 독재자를 진정시키기에는 역부족인 것으로 보인다.

크리스천사이언스모니터는 사설을 통해 "국제사회가 방관할 경우 리비아 사태는 대규모 집단 학살이 자행됐던 캄보디아나 르완다 · 수단 등의 비극을 재연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러나 카다피가 요청하기 전에는 유엔평화유지군을 파견할 수 없다.

유엔군 파견 규정에 분쟁을 겪고 있는 주체가 요청을 해올 경우로 제한하고 있기 때문이다.

카다피가 바로 그 주체인 탓이다.

미국이 본격적으로 개입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일단 경제적 여력이 없다.

'제코가 석자'라는 얘기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리비아의 초강경 진압은 충격적이며 절대 용납될 수 없다"며 미국 내 리비아 자산동결 등 모든 가능한 수단을 동원해 제재하겠다고 나섰다.

하지만 국제사회의 동조와 협력,군 동원이라는 물리적 해결수단을 현실화하기까지는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이관우 한국경제신문 기자 leebro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