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상품 · 새 서비스 창출 과정에서 일자리 늘려
[Cover Story] "시장은 끊임없이 발전하는 생물과 같은 것 ··· 포화 상태란 없어"
경제는 선택이고 모든 선택에는 항상 대가(비용)가 있는 것처럼 시장경제의 발전에도 비용이 따른다.

대표적인 사례가 혁신에 불가피하게 동반되는 경쟁력 없는 산업이나 시장,일자리의 도태다.

광범위한 혁신이 새로운 시장과 새로운 상품,새로운 서비스를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낡은 시장과 상품,뒤떨어진 서비스는 점차 시장에서 퇴출되게 마련이다.

경쟁력이 낮은 산업이나 서비스의 일자리가 줄어들고,이 분야 종사자들의 저항이 뒤따르기도 한다.

19세기 자본주의 종주국인 영국에서 처음 방직기가 출현했을 때 나타났던 기계파괴 운동(러다이트 운동)이 그랬고,1920~1940년대 미국에서 벌어졌던 앤티 체인 운동(Anti Chain Movement)도 그랬다.

하지만 시장경제는 이 같은 갈등을 극복하면서 경제 전체 파이를 늘리고 소비자 후생,즉 인간 삶의 질을 발전시켜왔다.



⊙ 시장은 동태적(動態的)

최근 영세 상인과의 갈등을 불러일으킨 롯데마트의 '통큰 치킨' 판매와 관련해서 롯데의 치킨 판매가 골목상권을 죽일 것이라는 목소리가 적지 않았다. "그렇지 않아도 업체 수가 너무 많아 포화 상태인 치킨 시장에까지 대기업이 끼어들면 중소 상인들은 설자리가 없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이는 시장을 정태적(靜態的)으로만 보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현실에서 시장은 현재의 규모 그대로 정체돼있는 게 아니라 늘 변화한다. 살아있는 생물처럼 커가기도 하고 쪼그라들어 사그라지기도 한다.

기능이나 서비스가 획기적인 상품이 나오면 소비자들이 몰리면서 시장의 크기가 커지게 되는 것이다.

의류시장을 들어보자."옷 시장은 이미 수많은 업체가 난립한 포화 상태로 대기업이 끼어들면 많은 업체가 문을 닫게 될 것"이라는 얘기는 과연 맞을까.

이는 혁신이 이뤄질 경우 시장 규모 자체가 커진다는 사실을 모르거나 아니면 일부러 외면하고 있다.

창업 26년 만에 매출 10조원이 넘는 글로벌 의류회사로 성장한 일본 유니클로의 경우만 해도 그렇다.

지방의 작은 양복점 주인에서 출발한 야나이 다다시 회장(창업자)은 "언제 어디서든 누구나가 입을 수 있는 고품질 베이직 캐주얼을 시장 최저 가격으로 제공한다"는 모토를 실천함으로써 소비자들이 싸고 좋은 옷을 사 입을 수 있게 만들고 의류 시장을 키웠다.

유니클로가 거대 기업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중소 의류업체들이 대거 문을 닫았다는 소리는 들어보지 못했다.

운동화 시장도 마찬가지다. 수많은 업체(그 가운데는 대기업도 있고 중소기업,영세기업도 있다)이 경쟁하면서 기능과 디자인이 좋은 새 상품이 나오고 그 덕분에 시장은 커간다.

'롯데 치킨' 판매가 중단되지 않았더라면 치킨 시장에 혁신의 바람이 불었을 수도 있다. 혁신의 바람을 타는 데 성공했다면(그러니까 더 나은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해 소비자들의 지갑을 여는 데 성공했다면) 대기업이든 중소상인이든 살아남고 발전한다.

시장은 동태적이다.

혁신으로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가 등장하면 파이가 늘어나고 소비자들의 후생도 커진다.

⊙ 독점으로 제품 가격이 하락하기도

'통큰 치킨' 반대자들이 내세우는 또다른 논리는 대기업이 일단 해당 시장을 장악하면 독점을 무기로 가격을 제맘대로 올려 결국엔 소비자들이 피해를 볼 것이라는 것이다.

얼핏 맞는 말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역사적 사실을 살펴보면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경제가 성장할수록,시장경제가 발전할수록 혁신에 성공하는 기업이 자주 등장하게 되고 이런 기업들이 시장을 독점하면서 보다 좋은 상품을 낮은 가격에 공급하는 경우도 많이 있다.

19세기 북미 대륙 구석구석에 철도를 깔고 수많은 중소 철도회사를 합병해 미국의 철도왕이 된 윌리엄 벤더빌트,역사상 최고의 부자로 평가받는 스탠더드오일의 존 록펠러,철강왕 앤드루 카네기 등은 '강도귀족(Robber Baron)'으로 불리기도 했다.

새로운 방식으로 사업을 하면서 철도와 석유,철강시장을 독점하다 보니 중소 사업자들의 눈에는 악덕 자본가로 비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벤더빌트가 '강도'가 되는 와중에 철도 요금은 90%나 내렸다.

20세기 초 록펠러는 석유 시장을 독점해 결국 나중에 회사 분할 명령을 받기도 했지만 그 과정에서 석유제품 가격을 80%나 떨어뜨리기도 했다.

한때 중소상인의 적으로 몰렸던 월마트가 한 도시에 들어가면 소비제품 가격은 평균 13% 하락했다.

월마트 덕분에 미국 소비자들은 연평균 1354달러씩 한 해 2000억달러의 이득을 보고 있다는 보고서도 나왔다.

1990년대 미국 생산성 향상의 4분의 1이 월마트가 불러온 유통혁명 덕분이라는 분석도 있다.

인간의 창의성은 한 기업이나 개인의 장기적인 시장 독점을 용인하지 않는다.

시장엔 늘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가 등장하고,조금이라도 더 많은 이익을 내기 위해 치열한 경쟁이 벌어진다.

1980년대 세계 시장을 장악했던 소니의 워크맨은 MP3에 밀렸고,MP3는 이제 스마트폰에 자리를 내주고 있다. 인터넷의 보급으로 비디오카세트레코더(VCR)와 비디오테이프는 시장에서 퇴출되는 추세다.

노트북PC도 넷북으로,또 테블릿 PC로 무게중심이 옮겨가고 있다.

소득증가로 소비자들의 선택권이 넓어지면서 대체 상품이 증가하고 있는 점도 독점력을 약화시킨다.

철도가 항공기 고속버스와 경쟁하면서 독점 시비는 옛말이 됐다.

⊙ "혁신에서 일자리가 생긴다"

거대 기업의 횡포로 중소 소매점들이 다 죽는다는 건 컴퓨터가 나오면 타자수들이 다 죽고,이메일이 등장하면서 우편배달업이 망했으며,버스 카드가 도입된 이후 버스 안내양들이 다 실직했다고 하는 소리나 같은 얘기다.

타자수나 버스 안내양들은 다 죽은 게 아니라 새로운 시장,다른 시장으로 옮겨간 것이다.

경쟁력이 떨어지는 업종이나 산업은 퇴출된다. 이를 산업 구조조정이라고 한다.

이처럼 구조조정이 이뤄지면서 한 나라 경제는 저부가 시장과 제품에서 고부가 시장과 제품 중심으로 자연스레 고도화된다. 물

론 그 과정에는 일시적 비용이 따른다. 때론 러다이트 운동처럼 갈등이 분출되기도 한다.

하지만 기계를 부순다고 일자리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혁신은 일자리를 줄이는 게 아니라 늘린다.

새로운 상품과 새로운 산업,서비스의 출현으로 인해 사라지는 일자리보다는 늘어나는 일자리가 훨씬 많다.

혁신이 활발한 곳에서는 언제나 새로운 직업이 나온다.

미국에는 액추어리(Actuary)란 직업이 있다. 커리어 사이트에서 올해 직업랭킹 베스트 1위로 꼽힌 액추어리는 사망,질병,상해,불구,실업,은퇴에 따르는 상실 확률과 화재나 도난,사고 등으로 집이나 재산 등이 상실되는 확률 등을 계산해주는 일을 한다.

보험계리사(보험수리사)라고 불리는 이 직업은 아직 한국에선 미국만큼 일반화돼 있진 않다.

미국의 직업수는 대략 2만5000개,캐나다는 2만개,한국은 1만2000~1만3000개 수준으로 파악되고 있다.

반면 철저한 통제경제인 북한의 직업수는 통계 자료가 아예 없어 구체적인 수치를 파악하긴 힘들지만 대한민국의 10분의 1 수준에도 못 미칠 것이라는 게 학자들의 분석이다.

직업의 가짓수가 많다는 건 그만큼 경제 규모가 크고 발전했다는 것과 같은 의미다.

덴마크는 국가 차원에서 '기업가정신 지수(Entrepreneurship Index)'를 개발,정부가 기업가정신 제고를 위해 개선이 필요한 문제점을 찾아내고 해결하려고 노력한다.

많은 나라들이 기업가정신을 높이 사는 이유는 경제학자 조지프 슘페터가 강조했듯이 "새로운 제품과 프로세스를 개발하려는,기업가정신에 충만한 도전형 기업이 시장경제를 움직이는 근본적인 엔진"이기 때문이다.

강현철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hc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