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 “모욕적이고 비방적인 폭로 발언까지 면죄부줘선 안돼”

반 “헌법에 위배되고 정적 탄압 수단으로 악용될수 있어”


민주당 강기정 의원이 국회 국정감사에서 남상국 대우조선해양 사장 연임 로비의 '몸통'으로 이명박 대통령 부인 김윤옥 여사를 지목함에 따라 여야관계가 급속히 냉각된 것은 물론 국회의원의 면책특권을 둘러싼 논란이 다시 가열되고 있다.

어디까지를 면책특권으로 봐야 하고 현행 면책특권 제도가 과연 합리적이냐는 등의 논의가 여야 정치권을 중심으로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 헌법 제45조는 국회의원의 면책특권에 대해 '국회의원은 국회에서 직무상 행한 발언과 표결에 관하여 국회 외에서 책임을 지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면책특권은 '회기 중 국회의원은 현행범인 경우를 제외하고 국회 동의 없이 체포 또는 구금되지 않는다'는 헌법 제44조의 불체포특권과 함께 국회의원이 누리는 대표적인 특권 중 하나다.

17세기 영국 의회에서 생겨나기 시작한 면책특권은 지금은 미국 · 독일 등의 헌법에도 규정돼 있다.

상당수 나라에서 국회의원에게 면책특권을 주는 이유는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가 행정부를 견제하기 위해서는 부당한 권력의 간섭에서 벗어나 민 · 형사상 일정한 책임에서 자유로운 독립적 지위를 보장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면책특권이 부당한 권력으로부터의 직무상 독립이 아닌, 상대 정파를 공격하고 정치적으로 상처입히기 위한 목적으로 마구잡이식으로 남용된다는 데 있다.

국회의원의 면책특권을 둘러싼 논란을 알아본다.

⊙ 일정한 제한이 불가피하다는 측, "상대방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줄 수 있다"

이 대통령은 강 의원의 발언에 대해 "국회의원이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면책특권을 이용해 아니면 말고 식의 무책임한 발언을 하는 것이 더 이상 용납돼서는 안 된다"면서 "국회가 스스로 자율적인 조치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황식 국무총리도 "면책특권은 국회의원의 소신 있는 행동을 보호하자는 취지이지 결코 이를 남용해 개인 명예훼손이나 피해를 가져오자는 제도가 아니다"며 "제도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 총리는 특히 독일에도 면책특권이 있지만 비방적, 모욕적 행위는 인정이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하기도 했다.

한나라당 역시 비슷한 입장으로 강 의원을 국회 윤리위원회에 제소했다.

현행 면책특권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측은 근거 없는 폭로가 한국 정치의 고질병처럼 돼 버린 데는 면책특권이 적지 않은 역할을 했다고 주장한다.

과거 여러 차례 이런 식의 '폭로정치'가 계속됐고 나중에 설사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지더라도 당사자들에게는 개인적으로, 정치적으로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기는 것이 보통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국회에서 국회의원이 한 발언에 대해 국회 밖에서 책임을 지우지 않는 면책특권이 있다고 해서 의원들이 확인되지 않은 루머를 무차별 폭로하는 것까지 면책특권으로 보호하는 것은 곤란하다는 입장이다.

독일 형법처럼 비방적, 모욕적 행위 등 면책특권이 적용되지 않는 행위를 국회법이나 형사소송법 등에 열거하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 면책특권 제한은 곤란하다는 측, "정적 탄압의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

강 의원 발언이 문제가 되자, 야당 측에서는 청와대가 지나치게 예민하게 반응한다며 반박하고 있다.

손학규 민주당 대표는 "국회의원 발언을 대통령이 문제 삼고 헌법에 보장된 면책특권을 없애야겠다고 말하는 것은 민주주의 국가에선 있을 수 없다"고 대응하고 나섰다.

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도 "대통령이 나서 영부인을 보호하고 면책특권 운운하는 것은 도가 지나치다"며 "국회의원 스스로 자정 노력을 해야겠지만 면책특권은 헌법상 보장돼 있어 개헌하지 않고는 바꾸지 못한다"며 "아무리 대통령이 말씀하셔도 그 자체가 헌법 위반"이라고 주장했다.

민주당은 또 국회의원의 특정 발언이 루머를 폭로하는 수준인지, 사실인지는 나중에 밝혀지는 경우가 많은데 영부인 이야기를 했다고 해서 사실 여부를 따지기도 전에 면책특권을 넘어선 발언이라며 입막음을 시도하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고 강변하고 있다.

박 대표는 "청와대는 사실일 경우 수사하고 사실이 아니면 해명하면 될 일"이라는 입장이다.

과거 야당 시절 한나라당 의원들도 이번에 강 의원이 언급한 것과 유사하게 당시 영부인 배후설을 국회에서 제기한 적이 있는데 이제 여당이 된 한나라당이 민주당의 의혹 제기에 대해서 문제를 확대해 면책특권의 범위를 지나치게 좁게 해석하려는 것은 정치탄압이 될 수 있고 이는 결과적으로 '야당 길들이기'가 될 수 있다는 견해도 있다.

⊙ 고양이 목에 아무도 방울을 달지 않는 게 문제

면책특권을 둘러싼 논란이 계속되는 이유는 관련법 규정이 애매하기 때문이다.

헌법 규정이 상징적인 데다 면책특권의 예외를 규정한 국회법 제146조는 '의원은 본회의 또는 위원회에서 다른 사람을 모욕하거나 다른 사람의 사생활에 대한 발언을 할 수 없다'고만 규정, 역시 명쾌한 해석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더구나 국회법 146조를 위반한 경우 벌칙을 정한 국회법 155조는 '윤리특별위원회의 심사를 거쳐 그 의결로써 이를 징계할 수 있다'고만 돼 있어 민 · 형사상 책임을 추궁하기 어렵다.

실제 대법원은 2007년 1월 이호철 당시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이 허태열 한나라당 의원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발언 내용이 직무와 아무 관련이 없음이 분명하거나 명백히 허위임을 알면서도 허위의 사실을 적시해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경우 등까지 면책특권의 대상이 된다고 할 수는 없다"고 판시했지만 정작 국회 발언으로 처벌을 받은 사례는 거의 없다.

1987년 유성환 의원의 "국시는 반공이 아니고 통일이 돼야 한다"는 이른바 '국시 발언'과 관련해 대법원은 1992년 면책 특권을 인정, 무죄 선고를 내렸다. 1997년 11월 추미애 의원이 국회에서 '국민신당의 부산 건설업체 자금 유입설' 관련 자료를 사전 배포,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된 것과 관련해 검찰도 공소권 없음 처분을 내린 바 있다.

면책특권 제한이 현실적으로 어려운 결정적 이유는 결국 법 개정은 국회가 해야 하지만 국회의원들이 좀체로 스스로를 옥죄는 일은 하려 들지 않는다는 데 있다.

상대방을 비난할 때는 면책특권 제한을 이야기하지만 정작 국회의원 전체의 이해가 걸린 문제에 대해서는 여야를 초월해 일치단결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김선태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ks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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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경제신문 11월 4일자 A14면

이재오 특임장관과 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가 국회의원의 면책특권 남용 문제를 놓고 신경전을 벌였다.

이 장관은 3일 국회 민주당 원내대표실로 박 원내대표를 방문한 자리에서 "국회의원의 면책특권은 헌법에 보장된 권한이지만 여야가 무차별적으로 이용하면 안 된다"며 "여야 간에 면책특권 자정 선언 같은 것을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 원내대표는 "면책특권 자정에 전적으로 공감한다"면서도 "특임장관이 국회 윤리위 (처벌을) 강화하자고 여야 원내대표를 만나서 얘기하는 건 반대한다. 국회에 맡겨야 한다"고 반박했다.

박 원내대표는 "과거에 한나라당이 면책특권을 갖고 당시 정부여당을 비판했다고 우리도 같이 그럴 문제는 아니다.

상대에게 피해를 주는 건 국회의원 스스로 자제가 필요하다"면서도 "면책특권은 헌법상 권리인데 대통령이 직접 이 문제를 거론하는 건 헌법 위반"이라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