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G20정상회의 개최 의의는…
[Cover Story] 세계 경제질서 세우는 최상위협의체 …국가 브랜드가치 높일 '절호의 기회'
2008년 9월 미국의 대형 투자은행 리먼 브러더스가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의 영향으로 파산하면서 전 세계는 충격에 빠졌다.

증시는 곤두박질쳤으며 금융사들은 너도나도 돈을 회수했다.

문을 닫는 기업들이 줄을 이었으며 실업률은 치솟았다.

대공황의 공포가 세계에 몰아닥칠 무렵 미국은 1997년 아시아에 불어닥친 외환위기 직후 결성된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 회의 참가국 정상들을 워싱턴으로 초청,국제 금융위기 극복방안을 논의했다.

이것이 G20 정상회의의 출발이다.



⊙ G20의 태동-글로벌 파워 시프트

G20에서 G란 그룹(group)의 약자로 모임을 뜻한다.

세계 리더국들의 모임인 G7에서 따왔다. 주요 20개국 모임으로 번역되는 G20은 미국 일본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캐나다 등 기존 서방 선진 7개국 모임인 G7에다 유럽연합(EU),한국 중국 인도 브라질 등 신흥국 12개국을 포함해 1999년 재무장관 및 중앙은행총재 회의로 만들어졌다.

G20이 정상회의로 격상되고 세계의 주목을 받은 것은 2008년 미국발 경제위기 이후다.

G20의 부상은 세계 질서의 변화를 반영하고 있다. 미국발 금융위기 이전만 하더라도 세계는 선진 7~8개국의 이너서클(Inner-Circle · 소수의 핵심권력집단)에 의해 지배되는 구조였다.

1975년 오일쇼크 대응책을 마련하기 위해 G5(미국 프랑스 영국 독일 일본)가 탄생했으며 여기에 이탈리아(1975년),캐나다(1976년)가 합류해 G7 체제가 정착되었고 1997년 러시아가 가입하면서 G8이 됐다.

G7,G8 정상들은 수시로 모여 세계적 이슈를 논의하고 어떻게 할지를 결정했다. 정상들과는 별도로 G7,G8 재무장관 · 중앙은행 총재들이 따로 만나 세계 경제의 현안과 정책 방향을 협의해왔다.

이렇게 결정된 사항은 전 세계에 막강한 영향을 미쳤다.

대표적 사례가 1985년 G5 재무장관들이 뉴욕 플라자호텔에 모여 결정한 '플라자 합의'다.

플라자 합의 이후 달러 가치는 떨어지고 일본 엔화와 독일 마르크화 가치는 급속히 오르면서 세계 경제를 들썩거리게 만들었다.

이처럼 세계를 움직여온 G7이 이제 그 권력을 G20에 물려주고 있는 것이다. 일종의 파워 시프트(권력이동)다.

선진국들의 발언권이 약화된 반면 신흥국들의 힘이 커진 데에는 금융위기 이후 뚜렷해진 경제성장 속도의 차이가 자리잡고 있다.

금융위기 이후 미국이나 유럽,일본이 맥을 못추는 데 비해 중국이나 인도 브라질 한국 등 신흥국들은 경제 규모를 하루가 다르게 키워가고 있는 것이다.

G20은 세계 경제 규모의 85%,인구의 3분의 2를 차지한다. 따라서 G20 정상회의는 사실상 지구촌의 미래를 좌우하는 모임인 셈이다.

⊙ 서울 회의에선 뭘 논의하나

G20 정상회의는 2008년 11월 워싱턴에서 첫 모임을 가진 이후 지금까지 모두 네 차례 열렸다.

워싱턴 회의 때는 금융감독 · 규제 개선,국제금융기구 개혁,금융시장 신뢰성 제고 등 금융시장 개혁을 위한 5개 원칙을 확인하고 무역에서 보호주의 장벽 설치 금지를 선언하는 등 세계경제 회복을 위한 거시정책 공조에 합의했다.

2009년 4월엔 런던에서 2차 회의를 갖고 세계경제 회복을 위해 재정지출을 국내총생산(GDP)의 2%까지 늘리고 금융시장 개혁을 위해 금융안정위원회(FSB)를 발족시키기로 결정했다.

같은 해 미국 피츠버그에서 열린 3차 회의 때는 G20을 세계경제를 논의하는 최상위 포럼으로 하고 매년 정기적으로 개최한다는 데 합의했으며 올 6월 캐나다 토론토 4차 회의에선 은행 자본 규제와 대형 금융사 규제,개도국 경제개발 지원 등을 논의했다.

오는 11~12일 열리는 서울 회의(G20 Seoul Summit)는 단군 이래 국내에서 열리는 최대 규모의 국제행사다. 오바마 미 대통령,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룰라 다 실바 브라질 대통령,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스티븐 하퍼 캐나다 총리,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만모한 싱 인도 총리,반기문 유엔 사무총장,도미니크 스트로스 칸 국제통화기금(IMF) 총재 등이 참석한다.

여기에 공식 수행원과 취재진,경호요원 등을 더하면 1만명 이상 방한이 예상된다.

회의 의제는 크게 둘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그동안 네 차례 정상회의를 거치면서 논의가 진행 중인 기존의제로서 △거시경제정책 공조 △금융규제 개혁 △국제금융기구 개편 등을 들 수 있다.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환율전쟁을 종식시킬 수 있는 방안도 협의된다. 둘째는 G20이 위기 대응을 넘어 명실상부한 전 세계 최상위 경제포럼으로 자리잡을 수 있도록 우리나라가 새로이 제시하는 '개발 이슈'와 '글로벌 금융안전망'이다.

개발 이슈는 G20이 진정한 최상위 포럼이 되기 위해 G20에 참가하지 못한 개발도상국과 저개발국들에 대한 지원 방안을 논의하자는 것이다. 또 글로벌 금융안전망은 금융위기 재발을 막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 기대 효과는

G7이 아닌 국가로 G20 정상회의를 개최하는 것은 대한민국이 처음이다.

구한말인 1907년 이준 특사는 고종 황제의 밀명을 받고 제2차 만국평화회의가 열리는 네덜란드 헤이그 땅을 밟았지만 회의장에 들어가 보지도 못한 채 이국 땅에서 외롭게 분사해야 했다.

2차 세계대전 뒤 설립된 유엔은 전 세계 대부분 국가가 회원으로 가입했지만 대한민국은 건국 이후 43년이 지난 1991년에야 가입할 수 있었다.

이런 대한민국이 지구촌의 좌장으로 G20 정상회의를 개최하게 됐다는 것은 외교사적으로도 기념비적인 일이라 할 수 있다.

G20 정상회의는 세계경제 질서를 관리하고 규칙을 만드는 최상위 협의체다.

나라별 이해관계가 다르고 규칙을 어겼을 때 뾰족한 제재 수단이 없다는 점에서 평가절하하는 전문가들도 있으나 지키지 않았을 때 가해지는 회원국들의 보이지 않는 압력은 G20을 단순한 권고가 아니라 재정 공조,금융 규제 등 문제에서 구속력을 갖는 협의를 이끌어내는 기구로 전환시키고 있다.

지금까지 대한민국은 선진국이 만든 규칙을 받아들이고 지키는 입장이었으나 이제는 '규칙 준수자(rule taker)'에서 '규칙 제정자(rule maker)'로 도약한 것이다.

이번 서울 회의는 국가 브랜드 가치를 높이고 더 큰 대한민국으로 업그레이드시키는 기회이기도 하다. 우리나라는 그동안 낮은 국가 브랜드로 인해 국제사회에서 코리아라는 이름이 붙으면 실제보다 저평가되는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받아왔다.

G20 정상회의 개최는 이를 '코리아 프리미엄'으로 역전시킬 수 있는 전기이기도 하다.

'코리아 디스카운트'에서 '코리아 프리미엄'으로 위상이 달라진다는 것은 상당히 의미가 있다.

예를 들어 그동안 한국산이라는 이유로 수출 제품값의 1%를 디스카운트받았다면 이게 없어져 제값만 받게 되면 연간 40억달러의 수출 증대 효과를 볼 수 있다.

정부는 이번 회의를 성공적으로 끝마칠 경우 국제무대 리더십에서 한국이 중심에 설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한국무역협회는 서울회의의 개최로 31조3000억원의 경제적 효과를 예상했으며,삼성경제연구소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19위인 국가 브랜드 순위가 2~3단계 오를 것으로 전망했다.

강현철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hc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