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 수출 감소 '아우성'···日정부,경기부양책 실시 결정
[Global Issue] 달러당 80엔대···‘엔高쇼크’에 살길 찾는 일본
일본 정부는 지난 9월15일 외환시장에 전격 개입을 선언했다.

1달러당 엔화 가치가 83엔대로 근 15년 내 최고 수준이다.

일본 당국이 외환시장에 개입한 것은 2004년 3월 이후 6년6개월 만이다.

일본 정부는 시장에서 엔화를 풀고 달러를 사들이는 식으로 시장에 개입했다.

하지만 환율은 2010년 3월 이후 급속하게 진행,정부 개입이 있기 직전인 9월10일엔 1달러에 82엔대를 기록했다. 일본 정부가 2조엔 규모의 자금을 풀며 시장개입을 실시했지만,시장의 반응은 차가웠다.

환율은 2엔 정도 잠시 주춤하는 데 불과했다. 엔화 가치는 오히려 80엔으로 상승,엔고 현상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일본 주요 수출기업들은 15년 최고 수준으로 뛰어오른 엔화 가치가 회사 실적에 반영되기 시작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나섰다.

캐논과 후지쓰 등 일본 주요 수출기업이 엔고 현상에 따라 오는 4분기부터 매출이 감소할 것으로 전망된다.

캐논은 올해 회사 전체 매출이 3조7100억엔을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앞서 제시한 전망치 3조7500억엔 대비 하향조정된 결과다.

캐논은 4분기 달러 · 엔 환율이 80엔대를 유지하는 한편 엔 · 유로 환율 역시 110엔대를 기록,환율 효과에 따른 판매 부진이 시작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다나카 토시조 캐논 부사장은 "미국 경제 회복 둔화와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추가 양적완화 등 효과로 엔고 현상은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후지쓰 역시 올해 매출 전망을 기존의 4조8000억엔에서 4조6700억엔으로 낮췄다.

후지쓰는 "하향조정된 1300억엔 가운데 600억엔이 향후 예상되는 엔고 효과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금융 전문가들은 현재의 엔화 강세 행진이 장기화되면 일본 경제가 다시 '잃어버린 10년'에 빠질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일본은행이 지난 9월15일 6년여 만에 처음으로 환시장에 개입한 후 금리를 제로로 낮추고 국채매입 기금도 설치했으나,어느 것도 효과를 내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이렇게 엔고 현상이 지속되면서 일본 수출기업들은 올초 1달러 90엔 정도로 상정했던 환율을 80~85엔으로 수정했다.

정밀기기를 생산하는 니콘은 1달러에 90엔이라는 하반기의 상정환율을 수정했으며,소니도 90엔에서 80엔대 전반으로의 바꿨다.

닌텐도는 95엔에서 85엔으로,혼다 계열의 자동차 부품메이커인 에프테크도 85엔에서 82엔으로 수정했다.

자동차 업체 마쓰다는 엔고 현상으로 인해 제조 생산 등의 과정에서 400엔가량의 추가 비용이 필요할 것이라고 전망하면서 이를 상쇄하기 위해 비용절감 등 대책을 강구하고 있다.

1엔의 엔고로 상장기업 400사의 경상이익은 1345억엔,비율로는 0.6% 감소할 전망이다.

이는 소니의 경우 1엔이 오르면 연간 20억엔,니콘은 7억엔의 영업이익이 감소한다.

일본 정부의 고민은 커지고 있다. 일본 정부가 앞으로 취할 단호한 조치에 정부가 직접 나서서 엔화를 풀고 달러를 사들이는 식의 외환시장 개입이 포함될 경우 국제사회의 시선이 차가워질 것이라는 점에서다.

지난 23일 경주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 · 중앙은행 총재 회의에서 환율전쟁을 피하기로 합의한 것과 관련,일본 언론은 앞으로 일본의 외환시장 개입이 어려워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산케이신문은 24일 이번 회의에서 '경제 펀더멘털이 반영될 수 있도록 시장 결정적인 환율제도로 이행하고 경쟁적인 통화 절하를 자제한다'고 합의한 것이 일본의 외환시장 개입을 어렵게 만들 것으로 예상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이 현재의 엔화 환율을 '중기적인 경제 펀더멘털에 대체로 일치한다'고 보는 만큼 일본이 엔화 값을 낮추려고 시장에 개입하는 데 대해 국제사회의 이해를 얻는 일이 더 어려워지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게다가 미국이 이번 회의에서 경상수지 수치 목표를 설정하자고 주장한 것도 일본의 시장 개입에 결과적으로 악영향을 줄 것이라고 예상했다.

미국의 주장이 중국을 겨냥한 것이나 이런 논의가 이뤄지는 상황에서 경상수지 흑자국이면서 주요 통화를 발행하는 일본이 시장에 개입하기는 쉽지 않다. 신문은 이번 회의에서 "일본만 혼자 손해를 봤다"고 평가했다.

아사히신문도 "일본이 이번 회의에서 엔고를 저지할 수 있는 '유효한 방법'을 손에 넣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일본 정부는 이 같은 평가를 불식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노다 요시히코 재무상은 23일 회의 직후 기자회견에서 "엔고가 정착 및 장기화하는 것은 좋지 않다.

환율의 과도한 변동은 악영향을 줄 수 있다. 이를 억제하는 관점에서 9월15일 외환시장에 개입했다"며 "필요할 때에는 단호한 조치를 취한다는 일본의 자세에는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일본 당국이 엔고 현상을 좌시하진 않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상했다.

당국이 엔고를 좌시한다면 투자자들은 일본 정부가 엔고 저지를 포기한 것으로 간주하고 엔화를 더욱 공격적으로 사들일 것이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는 최근 고심 끝에 외화 융자 확대라는 엔고 대책을 꺼내들었다.

엔고 대책의 하나로 국제협력은행(JBIC)의 해외 투 · 융자 규모 확대 계획을 발표한 것이다. 일본의 JBIC는 한국의 수출입은행과 비슷한 역할을 하는 기관이다.

재무성은 내달 중순까지 시행령을 개정해 JBIC가 외국환자금 특별회계(외국환평형기금과 비슷) 자금을 이용,외화 융자를 1조5000억엔만큼 더 할 수 있게 할 방침이다.

일단 융자 폭을 늘려놓으면 JBIC는 비상시에 동원할 외화 융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엔화를 팔고 달러화를 사들여야 한다.

JBIC에 달러를 쌓아둘 수 있는 셈이다.

장성호 한국경제신문 기자 ja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