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軍2인자’로 추대… 김정일 건강악화로 서둘러 후계구도 공식화
[Focus] 北, 김정은 세자책봉 ‘3대 권력세습’ … 정말 걱정되네!
북한이 마침내 전 세계 현대사에 유례가 없는 '3대 권력세습'에 나섰다.

북한은 9월28일 평양에서 44년 만에 노동당 대표자회를 열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셋째 아들 김정은(27세 추정)을 '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에 선출했다.

하루 전 '인민군 대장'계급을 받은 김정은이 신설된 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으로 선임돼 김 위원장에 이어 군사분야의 명실상부한 '2인자'로 떠오른 것이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김정은에게 대장 칭호를 부여한 데 이어 당 중앙군사위의 부위원장직을 새로 만들어 임명하고 이를 발표한 것은 대내외에 공식 후계자 지위를 분명히 한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북한 노동당의 기존 직제에는 중앙군사위의 부위원장직이 없었지만 이번에 김정은을 위해 신설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당 대표자회가 28일 김정일 동지께서 참석한 가운데 평양에서 성대히 진행됐으며 김정일 동지를 조선노동당 총비서로 추대하는 추대사를 김영남이 했다"며

"대표자회는 김정일 동지께서 당 정치국 상무위원회 위원,당 중앙위원회 위원,중앙군사위원회 위원장으로 추대되셨음을 선포했다"고 밝혔다.

이로써 북한의 유일 권력자 김정일은 3남 정은을 후계자로 공식 지명,3대 세습 작업에 본격 돌입했다.

3대 세습은 독재국나나 사회주의 국가에서도 전례가 없다.

봉건왕조 이후 20~21세기를 통틀어 전 세계에 유례가 없는 일이다.

김일성 · 김정일의 부자세습 기간만 따져도 벌써 62년을 통치하고 있다.

그것도 부족해 3대 세습을 획책하고 나서자 전 세계가 경악하고 있다.

이처럼 3대 세습이 전 세계의 조롱거리가 됨에도 불구하고 김정일이 무리수를 둔 것은 그 만큼 절박한 상황이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1994년 김일성 사망한 후 1인자로 올라선 김정일은 핵 개발과 미사일 발사 등으로 국제사회의 제재와 고립을 자초했다.

대외지원이 끊어지고 교역이 줄어들자 북 경제는 점차 오그라들었다.

국제사회에서의 '외톨이'나 다름 없는 초라한 신세로 전락한 셈이다.

경제를 살리기 위해 작년 말 화폐개혁을 전격 실시했지만 물가 폭등과 민심의 동요를 불러와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또 천안함 도발로 미국을 비롯한 서방국가들의 제재는 더욱 심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독재자 김정일은 2008년 뇌졸중으로 쓰러지는 등 건강이 급속도로 악화되고 있다.

북한 소식통들은 "왼쪽 팔의 마비증세가 심각하고 정신을 잃어버릴 때도 많다"며 "그의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았을 것이라는 공공연한 이야기마저 떠돌고 있다"고 전했다.

대북 전문가들은 김정일의 건강악화가 후계체제를 서둘러 공식화한 가장 큰 원인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고유환 동국대 교수는 "김정일의 건강악화로 인해 머지않아 북한이 급변사태 또는 붕괴될 것이란 전망이 국제사회뿐만 아니라 북한 권력층 내부에도 퍼져 있었다"며 "후계구도를 조기 공식화한 것은 그가 사망해도 체제가 붕괴되지 않는다는 점을 서방에 분명히 각인시키겠다는 의지"라고 설명했다.

다시 말해 "내가 죽더라도 북한 체제는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다"는 것을 대내외에 알리면서 체제안정을 꾀하겠다는 김정일의 승부수라는 이야기다.

김정은의 후계 공식화는 아버지 김정일의 세습과정에 비춰보면 속전속결로 이뤄졌다.

김정일은 22세에 당 조직지도부 지도원으로 일해오다가 32세에 정치국 위원,비서국 비서에 오르면서 후계자로 내정됐다.

그로부터 6년 뒤인 38세(1980년)에 정치국 상무위원,당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에 임명되면서 공식 후계자로 등극했다. 총 16년이 걸렸다.

이에 비해 20대 후반인 김정은은 작년 1월 김정일이 내린 노동당 교지를 통해 내부적으로 후계 지명을 받았으며 그로부터 1년 9개월 만에 후계자로 공식 추대됐다.

김정은은 당 대표자회에서 공식 후계자로 확정됐지만 아직 베일에 싸여 있다.

북한이 그의 신상정보나 얼굴 사진을 전혀 공개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름도 지난해까지는 '정운'으로 잘못 알려져 언론은 물론 정부도 엉뚱한 이름을 쓰다가 뒤늦게 바로잡았을 정도다.

그는 김정일의 셋째 부인 고영희씨(2004년 사망)와의 사이에서 태어났다.

김정일의 3남이자 막내 아들이다.

당초 1984년 1월8일생으로 알려졌지만 최근에는 1982년생으로 바꿔 외부에 퍼뜨린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김일성의 출생연도(1912년) 끝 자릿수에 맞춰 김 위원장의 출생연도를 1942년(원래 1941년)으로 꾸민 것처럼 북한 특유의 후계를 위한 정당화 명분 쌓기라는 분석이다.

김정은은 1993~1998년 스위스 베른의 리베펠트 정치학교 등에서 공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스위스 유학에서 돌아온 그는 2002년부터 2007년까지 군 간부 양성기관인 김일성군사종합대 특설반에서 공부했다.

이후 김정일의 군부대 시찰을 비롯한 공식석상에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10년여간 김정일의 전속 요리사로 일했던 일본인 후지모토 겐지씨는 저서 '김정일의 요리사'를 통해 "김정은은 만능 스포츠맨에 통솔력 있고 호쾌한 성격이며 김 위원장과 외모와 체형,성격까지도 빼닮았다"고 말했다.

신장 175㎝에 몸무게가 90㎏이 넘어 20대 후반임에도 불구하고 고혈압을 앓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김정은은 그러나 김정일 유고 시 곧바로 권력을 장악할 만큼 당과 군내의 기반이 강하지 않다.

김정일이 이번 당대표자회에서 김정은에게 '대장' 칭호를 부여하고 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에 임명한 것은 군을 장악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주고 군부의 충성을 끌어내기 위한 포석으로 보인다.

양무진 교수는 "김정은에게 당 중앙군사위 위원장인 김정일 바로 아래 자리를 줘 군에 대한 장악력을 높여나가도록 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북한은 또 당 대표자회에서 권력실세에 대한 물갈이 인사를 단행했다. 핵심은 김 국방위원장의 후계자로 공식화된 김정은의 친정체제 구축이다.

우선 김정일의 여동생인 김경희가 '인민군 대장' 칭호를 받은 데 이어 당 최고 지도기관인 '정치국 위원' 자리에 올랐다.

김경희의 남편 장성택 국방위원회 부원장은 정치국 후보위원과 중앙군사위 위원에 이름을 올렸다.

건강이 좋지 않는 김정일이 사망할 경우 장성택 · 김경희 부부가 '섭정체제'를 할 것이란 분석도 나오고 있다.

김정은의 나이가 지나치게 어린 데다 지도력도 전혀 검증되지 않았다.

심각한 경제난까지 겹친 상황이어서 권력 장악 과정에서 내부 권력투쟁이 벌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특히 권력 장악 과정에서 내부 갈등을 외부로 돌리려 시도할 가능성이 높은 만큼 한국으로서는 당분간 지정학적 리스크도 커질 수 있다.

장진모 한국경제신문 기자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