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 "인도적 차원과 남북관계 해빙 위해서도 필요"

반 "북한측 사과없이 무작정 쌀을 보내선 안돼"

북한이 남북 간 적십자 채널을 통해 쌀과 중장비,시멘트를 지원해줄 것을 요청해 옴에 따라 북한에 쌀을 지원하는 문제가 본격 논의되고 있다.

천안함 사태 이후 대치 상태를 지속해 온 남북은 북한이 최근 큰 수해를 입은 것을 계기로 조금씩 대화모드에 접근하고 있다.

우리 측은 지난달 26일 대한적십자사를 통해 대북 수해 지원을 제의한 데 이어 다시 지난달 31일에는 100억원 상당의 수해 지원을 하겠다고 재차 밝혔다.

당시 정부는 라면 등 비상식량과 생활용품, 의약품 등을 제시했는데 북측은 이에 대해 이왕이면 쌀 시멘트 중장비를 달라는 내용의 통지문을 보내왔다.

북한은 이와 함께 지난주 초 나포 30일 만에 대승호와 선원 7명을 송환해 화해 제스처를 보이기도 했다.

북한의 이런 요구에 대해 정부는 고민 중이다.

아직 천안함 폭침의 충격이 완전히 가시지도 않은 상태에서 선뜻 대북 쌀 지원에 나서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정부는 대북 쌀 지원 문제는 전반적인 남북관계 개선을 고려해 전략적으로 판단하겠다고 밝힌 만큼 북한의 이런 제의를 바로 수용하는 것이 곤란하다는 입장이다.

이 같은 사정 때문에 정부는 민간이 모금한 돈으로 소량의 쌀을 북한에 보내는 것은 허용할 방침이라는 소극적인 태도를 아직 견지하고 있다.

정부 차원의 공식적인 대북 쌀 지원은 남북관계의 전향적인 발전에 대한 북한의 의지가 있어야 가능하다는 게 통일부의 기본적인 입장인 셈이다.

일각에서는 그러나 인도적인 차원에서나 경색된 남북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대북 쌀 지원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대북 쌀 지원을 둘러싼 논란을 알아본다.


⊙ 찬성 측, "인도적 차원에서도, 남북관계 해빙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정치권은 여야 할 것 없이 모두 대북 쌀 지원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안상수 한나라당 대표가 얼마 전 대북 쌀 지원의 필요성을 언급한 데 이어 구상찬 한나라당 의원도 "남북 간 계속되는 위기 고조 상태를 국민이 원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당으로서도 매우 부담스런 상황"이라며 "꼬일대로 꼬인 남북관계를 풀고 해빙 무드로 갔으면 하는 게 당의 솔직한 입장"이라며 쌀 지원에 대해 원칙적으로 찬성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도 "우리 농민을 위해서나 인도적 차원에서 대북 쌀 지원을 민간 차원에서 조금씩 하는 것을 정부가 허용할 것이 아니라 최소 50만~60만t을 인도적 혹은 경협 차원에서 조속히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북한의 극심한 수해와 식량난 해결을 위해 우리의 대북 쌀 지원이 여야를 막론하고 국민적 관심 사항으로 대두되고 있다"며

"우리는 쌀 적정 재고인 72만t의 배가 넘은 150만t을 보유하고 있는 데다 올해 추수가 끝나면 재고량이 200만t을 상회해 보관할 창고도 예산도 없다"며 대북 쌀 지원 필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민주당 민주노동당 자유선진당 등 야 4당은 지난주 대북 지원 촉구 결의안을 공동 발의해 국회에 제출하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오는 11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앞두고 남북관계를 안정적으로 관리해야 하는 만큼 차제에 쌀 지원을 계기로 남북관계를 자연스럽게 개선해 나갈 필요성이 있다고도 지적하고 있다.

⊙ 반대 측, "북한의 아무런 사과나 재발방지 조치가 없는 상황에서 위험한 발상이다"

천안함 폭침으로 46명의 무고한 장병들이 숨진 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이에 대해 북한 측의 사과조차 받지 못한 상태에서 북한에 쌀을 지원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특히 금강산 관광에 나섰다가 어처구니없이 사망한 박왕자씨 사건에 대해서도 북한 측의 성의 있는 재발방지 노력이 없는 상황에서 또다시 북한 측에 일방적으로 끌려가는 것은 결코 남북관계의 미래를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는 목소리도 나오는 상황이다.

반대하는 사람들은 또 전에 우리가 북측에 지원했던 쌀이 군용으로 전용된 사례가 있는 만큼 인도적인 차원의 지원이라고 무작정 쌀을 보내고 보자는 식의 생각은 매우 위험한 발상이라고도 한다.

여당 내에서도 개인적으로 쌀 지원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있다.

홍준표 한나라당 최고위원은 "쌀을 북한에 보내기에 앞서 우리나라 극빈자와 저소득층에 먼저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한국사회에 밥을 굶는 기초수급자와 차상위계층이 250만명이 있다"며 "2002년부터 30만~50만t을 북한에 보냈는데 정작 중요한 국내의 극빈자 계층에는 그동안 정부가 눈을 돌리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홍 최고위원은 "특히 쌀이 매년 남아서 보관비용으로 660억원이 든다"며 "정부와 협의해 북한에 쌀 보내기 운동을 하기 이전에 한국 내에서 어떻게 할 것인지를 우선 돌아보는 게 순서"라고 강변했다.

⊙ 쌀이 다른 목적으로 전용되지 않는다는 보장 있어야

대북 쌀 지원 재개 여부는 여러 가지 측면을 고려해야 하는 어려운 문제다.

물론 같은 동포인 북한 주민들을 어느 나라보다 먼저 우리가 도와야 한다는 인도적 차원의 생각이 드는 것은 당연하지만 우리가 쌀을 지원할 경우 그것이 우리의 의도대로 식량난을 겪고 있는 북한 주민들에게 그대로 전달될지도 의문이다.

더욱이 북한이 우리 측에 요구한 쌀 이외에 중장비나 시멘트는 수해복구를 위해 필요할 수도 있지만 군수용품으로 언제든지 전용될 수도 있는 만큼 이들에 대한 지원은 하지 않는 것이 옳다.

결국은 쌀을 정부 차원에서 대량 지원하는 문제가 남는데 중요한 점은 우리나라에 쌀이 남아돌고 저장비용이 많이 든다는 것은 북한에 대한 쌀 지원 여부를 결정하는 결정적 요소가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보다는 우리가 쌀을 보낼 경우 그것이 다른 용도로 전용되지 않고 굶주린 북한 동포들의 실제 식량으로 쓰일 수 있도록 확인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시급하다.

어떤 용도로 사용될지 확인하기도 어려운 상황에서 무조건 북한 동포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쌀을 보내는 것은 재고할 필요가 있다.

더욱이 천안함 사태로 인한 유가족들의 아픔이 아직 채 가시지도 않은 상황임을 감안해야 한다.

김선태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ks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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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경제신문 9월8일자 A2면

정부는 북한에 쌀과 시멘트 등을 지원하는 방안을 긍정 검토하고 있다.

북한이 최근 남북 적십자 채널을 통해 수해 복구 지원을 요청해 온 데 따른 것이다.

통일부는 7일 "북측 조선적십자회는 지난 4일 대한적십자사 앞으로 쌀과 중장비,시멘트 지원을 요구하는 통지문을 보내왔다"면서 "정부는 한적과 함께 지원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북한의 수해지원 요청은 8월26일 한적이 신의주 지역 등의 수해 복구를 위해 긴급 구호물자를 지원하겠다고 밝힌 데 대한 화답으로 풀이된다.

정부는 북한이 8 · 26 지원 제의에 대해 아무런 반응이 없자 8월31일 재차 100억원 상당의 수해복구 지원을 하겠다는 내용의 전통문을 보낸 바 있다.

북한은 이번 통지문을 통해 "남측이 수해물자를 제공할 바에는 비상식량,생활용품,의약품 같은 것보다는 쌀과 수해복구에 필요한 장비와 물자를 제공했으면 좋겠다"고 구체적으로 지원 품목을 지정했다.

대북 소식통에 따르면 최근 수해를 입은 북한 신의주 일대에서는 돈이 있어도 쌀을 살 수가 없어 종전보다 주민들의 생활고가 더 깊어지면서 민심이 흉흉하다.

44년 만의 노동당 대표자회를 앞두고 북한 당국의 정책을 비난하는 주민들의 낙서 · 전단 등도 빈번하게 나돌고 있다는 전언이다.

정부는 북측의 지원 요청을 어느 수준에서 수용할지를 두고 고심하고 있다. 통일부 당국자는 "정부와 한적이 신중히 검토 중에 있으며,민간단체의 대북 쌀지원에 대해서는 전향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발언은 대북 쌀지원을 천안함 사태에 대한 북한의 사과와 직접 연계시키지는 않겠다는 입장을 내비친 것으로 보인다.

이준혁 한국경제신문 기자 rainbo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