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경제주체들은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 경제적 활동을 한다"
[경제교과서 뛰어넘기] (15) 경제적 이윤의 극대화
철학은 인간의 행동 규범과 가치 판단의 근거를 제공하기 위한 일련의 과정 속에서 발전해 왔다.

일례로 기독교적 윤리관이 지배하던 중세시대에는 종교적 가치관에 근거하여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었지만, 중세시대가 종언을 고하고 종교적 가치관이 설득력을 잃게 됨에 따라 새로운 가치 판단의 근거가 필요하게 되었다.

이에 수많은 근대 철학자들이 등장하여 인간의 이성을 강조하거나 경험을 강조하는 등의 방법을 통해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려고 노력하였다.

이와는 달리 경제학에서는 인간의 행동을 바라볼 때 그 태동부터 지금까지 일관된 견해를 줄곧 유지해 왔다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경제학에서는 각 경제 주체가 자신의 경제적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 행동한다고 전제하고 있다.

사전적 의미의 이윤은 '기업의 총수입에서 일체의 생산비, 곧 지대(地代) · 임금 및 이자 등을 공제한 잉여소득'을 말하는데, 이는 정확히 회계적 이윤을 말한다.

우리가 오늘 논의할 경제적 이윤은 이러한 회계장부상의 이윤이나 상거래에서 흔히 말하는 마진과는 다른 개념이다.

경제적 이윤이 회계상의 이윤과 구분되는 이유는 비용 계산 방식에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회계적 이윤을 계산하기 위해 사용하는 비용의 개념은 명시적 비용이라 부르는데, 회계적 비용을 명시적 비용이라 부르는 이유는 실제 화폐를 이용하여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항목들로 비용이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경제적 비용은 이러한 명시적 비용에 잠재적 비용을 추가한 개념으로 여기서 말하는 잠재적 비용이란 생산활동에 투입한 생산요소의 기회비용을 말한다.

예를 들어 갑이란 사람이 연봉 1억원을 받고 있는 회사를 그만두고 빵가게를 차려 사업을 시작했다고 하자.

1년 동안 빵가게를 운영하여 벌어들인 수익이 총 3억원이고, 1년 동안 빵가게를 운영하기 위해 지출한 재료비, 임금, 월세 등의 총비용(회계적 비용)이 1억원이라고 한다면, 빵가게를 운영하여 벌어들인 회계적 이윤은 3억원의 수익에서 1억원의 회계적 비용을 차감한 2억원이 된다.

하지만 경제적 이윤을 계산하기 위해서는 빵가게를 운영하기 위해 개인이 포기해야만 했던 연봉 1억원을, 즉 잠재적 비용을 추가해야 한다.

따라서 경제적 이윤은 총 수입 3억원에서 회계적 비용 1억원과 잠재적 비용 1억원을 모두 차감한 금액인 1억원에 해당된다.

경제적 이윤이 무엇인지 이해한 지금 남아 있는 한 가지 의문은 각 경제 주체들이 자신이 경제적 이윤 극대화를 달성하고 있는 상황인지 아닌지를 무엇으로 판단할 수 있느냐 하는 부분일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한 가지 추가로 설명해야 할 개념이 있는데 한계수입과 한계비용이 그것이다.

한계수입과 한계비용은 특정 경제 행위를 한 단위 추가할 때 발생하는 수입과 비용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커피숍의 경우에는 커피 한 잔을 추가로 판매함에 따라 벌어들이는 수입이 한계수입에 해당하며, 커피 한잔을 만들기 위해 들어간 비용이 한계비용이라 말할 수 있다.

이윤 극대화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한계수입과 한계비용 같아지는 수준에서 경제활동이 이루어져야 한다.

만약 한계비용이 한계수입보다 작으면 이는 경제 행위를 1단위 추가적으로 수행할 경우 발생하는 비용이 수입에 비해 더 적다는 사실을 의미하므로, 경제 행위를 추가적으로 수행할 때 한계수입과 한계비용의 차이만큼의 이윤을 획득할 수 있다.

반면 한계비용이 한계수입보다 클 경우에는 경제 행위를 추가적으로 수행할 경우 이로 인해 발생하는 수입보다 비용이 더 크므로 한계비용과 한계수입의 차액만큼 이윤이 줄어들게 된다.

따라서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한계수입과 한계비용이 같아지는 수준에서 경제 활동이 이루어져야 한다.

예를 들어, 백화점에 옷가게를 열 예정인 사람이 있다고 하자.

그 사람은 매장 면적을 어느 정도 규모로 가게를 열어야 이윤을 극대화할 수 있는지 고민하고 있다고 가정하자.

이 경우 역시 한계비용과 한계수입이 같아지는 수준에서 매장 면적을 결정하는 것이 이윤을 극대화하는 방법이 된다.

가게 매장 면적을 한 평 늘릴 경우 매장이 그만큼 넓어져 더 많은 손님이 방문하여 수입이 늘어나게 되지만, 매장을 늘리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추가 비용 또한 발생한다.

합리적인 가게 주인이라면 가게 매장을 한 평 늘리기 위해 들어가는 비용인 한계비용과 가게 매장을 한 평 늘려 기대되는 수입의 증가, 즉 한계수입을 비교해야 할 것이다.

매장 면적 한 평을 늘리기 위해 들어가는 비용에 비해 이로 인해 기대되는 수입의 증가가 더 적을 경우에는 매장을 더 이상 확장하면 안된다.

반대로 매장 면적을 늘릴 경우 발생하는 비용에 비해 이로 인해 기대되는 수입이 더 크다면 가게 주인은 매장을 확장해야 할 것이다.

애덤 스미스 이후로 지금까지 경제 주체가 이윤 극대화를 추구한다는 사실은 대부분의 경제 논의에서 가장 널리 채택되고 있는 기본적인 가정이다.

대부분의 교과서나 경제학 서적들 역시 이러한 전제하에 기술되어 있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목격하고 있는 일련의 경제적 사건들이 모두 이윤극대화를 추구한 결과라고 보기는 어렵다.

일례로 자신의 경제적 이윤의 극대화만을 추구한다면 해외 여행 도중에 들른 레스토랑의 종업원에게 팁을 줄 이유가 없다.

평소에 집 근처에 자주 다니는 레스토랑이라면 보다 좋은 서비스를 받기 위해 종업원에게 팁을 줄 수도 있겠지만, 해외 여행 도중에 들른 레스토랑이라면 평생 두 번 다시 방문하기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이와 유사한 일련의 경제적 의사결정들은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이는 경제적 이윤 극대화를 개인의 만족 극대화라는 보다 광의의 개념으로 해석할 경우 많은 부분이 설명된다.

해외 여행 도중에 들른 레스토랑에서 팁을 주지 않을 경우 그만큼 비용을 절약할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팁을 주지 않아 받게 될 주변 사람으로부터의 차가운 시선이나 팁을 주면서 유지될 수 있는 자신의 사회적 지위와 뿌듯함 등에 대한 감정적 보상을 금액으로 환산할 수 있다면 이 역시도 개인이 자신의 만족 극대화를 추구한 사건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일상생활에서 목격되는 모든 사건이 전부 이윤극대화의 결과물은 결코 아니다.

각 경제 주체가 이윤 극대화를 추구한다 하더라도 정보가 부족하다든지 불확실한 상황에 놓여 있다든지 혹은 자신의 제한된 합리성으로 인해 올바른 선택을 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또한 현대 경제 이론에서는 각 경제 주체의 경제 활동을 획일적으로 이윤 극대화를 추구하는 과정으로만 설명하지도 않는다.

대표적으로 허버트 사이먼 카네기멜론대 교수는 각 경제 주체들은 자신이 바라는 어느 정도 수준의 적절한 이윤이 확보될 경우 이를 초과하는 더 큰 이윤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열심히 노력하지 않는다는 이론을 제시한 바도 있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자신의 일상생활을 돌이켜 볼 때 자신이 내리는 경제적 의사결정의 대부분이 어떻게 하면 나의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으로부터 비롯되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사실로 비추어 볼 때 아직까지 경제학적인 측면에서 각 경제 주체가 자신의 경제적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대전제는 경제학의 태동부터 지금까지 유지될 만큼 충분히 유효한 전제임이 분명하다.

박정호 KDI 책임전문원 aijen@kdi.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