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곳곳 지방정부 재정 위기 ··· 중앙정부로 확산될까 '전전긍긍'
회복되는 기미를 보이던 글로벌 경제가 '지방정부 파산'이라는 암초를 만났다.
글로벌 경기침체와 표심을 노린 포퓰리즘 정책 등이 맞물리면서 파산위기에 빠진 지방정부가 세계 곳곳에서 돌출하고 있다. '돈은 있지만 당장 갚기는 버겁다'는 경기도 성남시는 나은 편이다.
돈이 없어 죄수를 조기 석방하는 사례(미국 캘리포니아)까지 등장했다. 지자체의 파산이 중앙정부의 재정위기로 연결되는 지자체발(發) 파산 도미노가 현실화할 수 있다는 '최악의 시나리오'까지 나온다.
⊙ "금고 비었다"…죄수까지 풀어줘
14일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미국 일리노이주는 연방정부의 승인을 받아 9억달러(1조800억원)의 채권을 발행키로 했다.
돈이 없어 양로원 등 복지시설에 보내지 못한 예산이 지난해(28억달러)의 두 배인 50억달러로 늘어나는 등 막다른 골목에 이른 결과다. 재정적자는 135억달러(16조2000억원)나 된다.
채권발행의 성공여부는 미지수다. 신용등급이 50개 주 가운데 최하위권이기 때문에 시장의 참여를 확신할 수 없는 처지다.
세계 최대 선물 · 옵션 거래소인 CME그룹의 자회사인 CMA데이터비전에 따르면 일리노이주의 부도 확률은 24%로 전 세계 국가 및 지방정부 중 8위를 차지했다. 전 세계에서 여덟 번째로 부도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이는 전 세계 국가와 지방정부의 5년물 신용부도스와프(CDS) 가산금리 변화를 분석한 결과다.
부도 위험에 대비하기 위한 일종의 신용파생상품인 CDS의 가산금리가 높을수록 부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캘리포니아주는 일리노이주보다 상황이 더 안 좋다. 재정적자율(세수 대비 재정적자 규모)이 56%로 일리노이주(41%)보다 높다.
적자 규모가 190억달러에 달하고,실업률도 12.6%로 치솟았다.
캘리포니아 주정부는 최근 잔여 형기가 60일 이하인 수감자들을 조기 석방했다.
1인당 연간 4만5000달러에 달하는 수용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운 탓이다.
문제는 캘리포니아주의 재정 부실이 가져올 충격파다. 주 정부의 경제 규모는 1조8000억달러다.
브라질(1조5720억달러)을 웃돌고,이탈리아(2조1128억달러)에 맞먹는다. 웬만한 국가들보다 더 큰데 해결책이 마땅치 않다. 손벌릴 곳은 연방정부 밖에 없다.
그러나 연방정부 역시 재정적자와 무역적자, 즉 '쌍둥이 적자'에 허덕이고 있다.
시카고에 있는 투자사인 지글러의 트리엣 응위엔 지방채 트레이더는 "일리노이주의 채권발행이 실패할 경우 미국 경제는 하반기에 힘겨운 상황에 처할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에선 일리노이주와 캘리포니아주뿐 아니라 디트로이트,펜실베이니아주 해리스버그,앨라배마주 제퍼슨 카운티 등도 문제의 도시로 꼽히고 있다.
⊙ 국가 신용등급에까지 직격탄
중국과 유럽 일부 국가도 부실한 지방정부의 급증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중국 경제주간에 따르면 지난해 말 현재 전체 31개 지방정부 중 부채비율이 60% 이하인 곳은 7곳에 불과하며 10곳은 100%를 초과했다.
현 단위의 중소도시 일부는 400%를 넘어 사실상 파산 상태에 도달했다.
중국 중앙정부가 대규모 경기부양책을 실시하면서 지방정부에 적극적인 개발과 투자를 권장하자 상업은행들이 무분별하게 대출을 해준 것이 주원인이다.
이 때문에 중앙정부는 지방정부의 개발 프로젝트 대출보증을 전면 무효화하는 한편 지방정부의 지출 규제를 대폭 강화하고 있다.
유럽도 곳곳이 지뢰밭이다.
재정위기의 진앙지인 그리스 다음으로 채무위기 가능성이 큰 것으로 예상되는 스페인은 지방정부의 채무 급증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2007년 재정수입의 40%에 불과했던 지방정부의 채무가 5년 만에 세 배 가까이 급증했다.
국제 신용평가기관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에 따르면 2012년엔 110%를 웃돌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탈리아 지방정부들도 지난해 말 기준으로 350억유로를 파생상품(스와프)에 투자했다가 수십억 유로의 손실을 내고 재정위기에 처한 상태다.
게다가 이탈리아 각 지방정부가 기업 홍보,문화행사,비정부기관 간 교류 등을 이유로 해외 178개국에 연락사무소를 두고 있는 것도 재정난 악화의 원인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지방정부의 부실은 국가신용등급과도 연결될 수 있다는 점에서 각국의 우려가 커진다.
스페인이 대표적이다.
영국 일간지 텔레그래프에 따르면,무디스는 이달 초 스페인의 5개 지방정부 신용등급을 강등하면서 '국가신용등급 하향조정' 가능성을 내비쳤다.
지방정부의 부실을 고려할 때 앞으로 수년간 중앙 정부의 재정적자 해결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 때문이다.
복지에 초점을 맞춘 스페인 지자체의 방만한 경영은 유럽에서도 악명이 높다. 8000개 기초지자체의 5%정도인 400여곳 이상이 전기세와 수도세,통신비도 내지 못할 정도다.
⊙ 혹독한 대가 치른 유바리시의 교훈
값비싼 수업료를 낸 대표적인 국가가 일본이다.
홋카이도의 지방소도시인 유바리시가 2006년 파산하는 바람에 홍역을 치렀다.
유바리시는 1890년대부터 탄광업이 발달한 석탄도시였다.
그러나 1980년대 탄광 대신 관광도시를 만들겠다는 목표 아래 대규모 리조트를 건설한 것이 화근이 됐다.
호텔 인수와 석탄박물관 건설 등 47개 관광정비 사업에 무려 176억엔가량을 쏟아붓는 바람에 재정상태가 악화된 것.
특히 2001년부터 지방 교부세가 삭감되면서 재무상태가 악화되자 시는 적자를 감추기 위해 분식회계를 하고 차입금을 끌어다 썼다. 이것이 결국 파국으로 치달았다.
파산의 대가는 혹독했다.
공무원 수를 절반까지 감축한 것은 물론 급여도 기본급의 평균 30%를 감축하는 등 허리띠를 졸라매야 했다.
시민들 삶의 질은 악화일로를 걸었다. 공공요금이 대폭 상승한 가운데 시민세와 고정자산세도 전국 최고 수준으로 올라섰다.
유바리시는 18년에 걸쳐 353억엔의 빚을 중앙정부 등 채권자들에게 갚겠다는 계획을 수립하고서야 급한 불을 끌 수 있었다.
일본 정부는 유사 사례를 막기 위해 안전장치 마련에 발빠르게 나섰다. '지방 공공단체의 재정 건전화에 관한 법률'을 제정한 것.
이에 따르면 실질 적자 비율이 3.75% 이상,실질 공채 비율이 25% 이상,장래 부담 비율이 400%에 달하는 광역 지방자치단체는 '재정 건전화 단체'로 지정해 재정재건 계획을 제출하고,외부 감사도 의무적으로 받아야 한다.
유바리시가 일본 중앙정부에 일종의 백신역할을 한 셈이다.
강경민 한국경제신문 기자 kkm1026@hankyung.com
글로벌 경기침체와 표심을 노린 포퓰리즘 정책 등이 맞물리면서 파산위기에 빠진 지방정부가 세계 곳곳에서 돌출하고 있다. '돈은 있지만 당장 갚기는 버겁다'는 경기도 성남시는 나은 편이다.
돈이 없어 죄수를 조기 석방하는 사례(미국 캘리포니아)까지 등장했다. 지자체의 파산이 중앙정부의 재정위기로 연결되는 지자체발(發) 파산 도미노가 현실화할 수 있다는 '최악의 시나리오'까지 나온다.
⊙ "금고 비었다"…죄수까지 풀어줘
14일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미국 일리노이주는 연방정부의 승인을 받아 9억달러(1조800억원)의 채권을 발행키로 했다.
돈이 없어 양로원 등 복지시설에 보내지 못한 예산이 지난해(28억달러)의 두 배인 50억달러로 늘어나는 등 막다른 골목에 이른 결과다. 재정적자는 135억달러(16조2000억원)나 된다.
채권발행의 성공여부는 미지수다. 신용등급이 50개 주 가운데 최하위권이기 때문에 시장의 참여를 확신할 수 없는 처지다.
세계 최대 선물 · 옵션 거래소인 CME그룹의 자회사인 CMA데이터비전에 따르면 일리노이주의 부도 확률은 24%로 전 세계 국가 및 지방정부 중 8위를 차지했다. 전 세계에서 여덟 번째로 부도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이는 전 세계 국가와 지방정부의 5년물 신용부도스와프(CDS) 가산금리 변화를 분석한 결과다.
부도 위험에 대비하기 위한 일종의 신용파생상품인 CDS의 가산금리가 높을수록 부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캘리포니아주는 일리노이주보다 상황이 더 안 좋다. 재정적자율(세수 대비 재정적자 규모)이 56%로 일리노이주(41%)보다 높다.
적자 규모가 190억달러에 달하고,실업률도 12.6%로 치솟았다.
캘리포니아 주정부는 최근 잔여 형기가 60일 이하인 수감자들을 조기 석방했다.
1인당 연간 4만5000달러에 달하는 수용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운 탓이다.
문제는 캘리포니아주의 재정 부실이 가져올 충격파다. 주 정부의 경제 규모는 1조8000억달러다.
브라질(1조5720억달러)을 웃돌고,이탈리아(2조1128억달러)에 맞먹는다. 웬만한 국가들보다 더 큰데 해결책이 마땅치 않다. 손벌릴 곳은 연방정부 밖에 없다.
그러나 연방정부 역시 재정적자와 무역적자, 즉 '쌍둥이 적자'에 허덕이고 있다.
시카고에 있는 투자사인 지글러의 트리엣 응위엔 지방채 트레이더는 "일리노이주의 채권발행이 실패할 경우 미국 경제는 하반기에 힘겨운 상황에 처할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에선 일리노이주와 캘리포니아주뿐 아니라 디트로이트,펜실베이니아주 해리스버그,앨라배마주 제퍼슨 카운티 등도 문제의 도시로 꼽히고 있다.
⊙ 국가 신용등급에까지 직격탄
중국과 유럽 일부 국가도 부실한 지방정부의 급증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중국 경제주간에 따르면 지난해 말 현재 전체 31개 지방정부 중 부채비율이 60% 이하인 곳은 7곳에 불과하며 10곳은 100%를 초과했다.
현 단위의 중소도시 일부는 400%를 넘어 사실상 파산 상태에 도달했다.
중국 중앙정부가 대규모 경기부양책을 실시하면서 지방정부에 적극적인 개발과 투자를 권장하자 상업은행들이 무분별하게 대출을 해준 것이 주원인이다.
이 때문에 중앙정부는 지방정부의 개발 프로젝트 대출보증을 전면 무효화하는 한편 지방정부의 지출 규제를 대폭 강화하고 있다.
유럽도 곳곳이 지뢰밭이다.
재정위기의 진앙지인 그리스 다음으로 채무위기 가능성이 큰 것으로 예상되는 스페인은 지방정부의 채무 급증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2007년 재정수입의 40%에 불과했던 지방정부의 채무가 5년 만에 세 배 가까이 급증했다.
국제 신용평가기관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에 따르면 2012년엔 110%를 웃돌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탈리아 지방정부들도 지난해 말 기준으로 350억유로를 파생상품(스와프)에 투자했다가 수십억 유로의 손실을 내고 재정위기에 처한 상태다.
게다가 이탈리아 각 지방정부가 기업 홍보,문화행사,비정부기관 간 교류 등을 이유로 해외 178개국에 연락사무소를 두고 있는 것도 재정난 악화의 원인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지방정부의 부실은 국가신용등급과도 연결될 수 있다는 점에서 각국의 우려가 커진다.
스페인이 대표적이다.
영국 일간지 텔레그래프에 따르면,무디스는 이달 초 스페인의 5개 지방정부 신용등급을 강등하면서 '국가신용등급 하향조정' 가능성을 내비쳤다.
지방정부의 부실을 고려할 때 앞으로 수년간 중앙 정부의 재정적자 해결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 때문이다.
복지에 초점을 맞춘 스페인 지자체의 방만한 경영은 유럽에서도 악명이 높다. 8000개 기초지자체의 5%정도인 400여곳 이상이 전기세와 수도세,통신비도 내지 못할 정도다.
⊙ 혹독한 대가 치른 유바리시의 교훈
값비싼 수업료를 낸 대표적인 국가가 일본이다.
홋카이도의 지방소도시인 유바리시가 2006년 파산하는 바람에 홍역을 치렀다.
유바리시는 1890년대부터 탄광업이 발달한 석탄도시였다.
그러나 1980년대 탄광 대신 관광도시를 만들겠다는 목표 아래 대규모 리조트를 건설한 것이 화근이 됐다.
호텔 인수와 석탄박물관 건설 등 47개 관광정비 사업에 무려 176억엔가량을 쏟아붓는 바람에 재정상태가 악화된 것.
특히 2001년부터 지방 교부세가 삭감되면서 재무상태가 악화되자 시는 적자를 감추기 위해 분식회계를 하고 차입금을 끌어다 썼다. 이것이 결국 파국으로 치달았다.
파산의 대가는 혹독했다.
공무원 수를 절반까지 감축한 것은 물론 급여도 기본급의 평균 30%를 감축하는 등 허리띠를 졸라매야 했다.
시민들 삶의 질은 악화일로를 걸었다. 공공요금이 대폭 상승한 가운데 시민세와 고정자산세도 전국 최고 수준으로 올라섰다.
유바리시는 18년에 걸쳐 353억엔의 빚을 중앙정부 등 채권자들에게 갚겠다는 계획을 수립하고서야 급한 불을 끌 수 있었다.
일본 정부는 유사 사례를 막기 위해 안전장치 마련에 발빠르게 나섰다. '지방 공공단체의 재정 건전화에 관한 법률'을 제정한 것.
이에 따르면 실질 적자 비율이 3.75% 이상,실질 공채 비율이 25% 이상,장래 부담 비율이 400%에 달하는 광역 지방자치단체는 '재정 건전화 단체'로 지정해 재정재건 계획을 제출하고,외부 감사도 의무적으로 받아야 한다.
유바리시가 일본 중앙정부에 일종의 백신역할을 한 셈이다.
강경민 한국경제신문 기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