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아노미 현상 ··· 급격한 변화에 따른 가치관 혼란과 소외감이 원인

[Focus] 인기 스타 자살 신드롬? ··· 인간은 왜 자살을 할까
최근 탤런트 박용하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어 자살이 다시 사회 문제로 부상하고 있다.

2005년 이은주씨, 2007년 유니씨, 2008년 최진실 안재환씨,그리고 올 들어 최진영씨 등 연예인 자살 소식은 해마다 한두 건씩 터져나와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주고 있다.

연예인뿐 아니다.

입시 공부가 버겁고,취업이 어렵고,사업 실패로 인한 좌절 등으로 인해 일반인 자살도 크게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통계에 따르면 한국은 인구 10만명당 21.5명이 자살하는 '자살공화국'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해 우리나라 전체 사망자중 자살률은 5%(1만 4579명)에 달한다.

외환위기가 우리나라를 휩쓸고 지나갔던 1997년 이래 2배 가량 증가한 수치다.

OECD 평균보다는 2배나 높은 것이다.

특히 젊은층의 자살률이 높아 10대 청소년 사망 원인 중 20.2%가 자살이라고 한다.

평소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도 많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서울대 의대와 성균관대 의대 교수팀이 최근 국내 6,510명의 성인을 대상으로 역학조사를 실시한 결과 남녀 성인 15.2%가 평생 한 번이라도 자살을 심각하게 고민했던 것으로 조사됐다.

자살에 대한 고민을 한 사람이 자살을 시도하기 까지는 1~2년밖에 걸리지 않는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자살을 시도한 연령은 계획여부에 따라 24~26세로 낮게 나타났다.

자살은 뇌혈관질환, 허혈성질환에 이어 주요 사망 요인 3위에 랭크되어 있다.

그만큼 우리 사회에 자살이 확산되고 있다는 의미이다.

흔히 자살은 각박하고 빈곤한 삶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통계를 보면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한 자살률은 12.3%에 불과하고 가족 갈등(37.9%)이나 이성문제(19.7%) 등의 비중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자살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오래 살고 싶어하는 인간 고유의 욕망을 저버리는 극단적인 행동이다.

따라서 외부로 나타나는 이러한 경제문제 가족문제 등의 요인으로는 설명하기 힘든 부분도 있다.

에밀 뒤르켐(Emil Durkheim,1858~1917 프랑스)은 1897년 펴낸 <자살론>에서 자살에 관한 깊이 있는 분석을 내놓은 바 있다.

현대 사회학의 창시자인 그는 사회를 개인의 모임과는 별도로 존재하는 실체로 보고, 인간의 개인행동은 사회구조의 영향을 받는다고 보았다.

따라서 개인적 행동으로 보이는 자살이 사실은 사회 구조의 영향을 받아 나타나는 현상이라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예를 들어 가톨릭 신자가 개신교 신자보다 자살률이 낮게 나타나는데 이는 가톨릭이 강력한 공동체를 갖고 있어 개인주의 성향에 반대하는 분위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뒤르켐은 자살을 크게 이기적 자살과 이타적 자살,숙명적 자살 아노미적 자살로 분류했다.

이기적 자살이란 자신만 구원되기를 기원하는 자살을 말한다.

이기적 자살은 주로 소속감이 없어지고 허무주의에 빠지면서 나타난다.

산업혁명후 먹고 살기 위해 밤낮으로 일할 필요가 없어지면서 급격히 증가했는데 이는 허무주의,염세주의 철학자들이 등장한 시기와 일치한다는 것이다.

빈곤층보다는 부유층이,기혼자보다는 미혼자가,전시(戰時)보다는 평화시에 자살이 빈번한 것도 이런 기준으로 설명할 수 있다.

빈곤층의 자살률이 상대적으로 낮은 것은 기본적 욕구를 채우고 보자는 본성이 자살 충동보다 강하기 때문이다.

부양해야 할 가족이 있을 경우 책임감이 커지고, 전쟁과 같이 한 사회가 같은 목적을 가지고 움직이는 경우 사회적 유대감이 급격히 증가하면서 자살은 낮아진다고 뒤르켐은 설명한다.

이타적 자살은 사회나 국가가 자신보다 더 가치 있는 것으로 여길 때 일어나는 것이다.

이기적 자살과 반대로 조직에 대한 연대감이 지나치게 강할 때 나타나는 현상이다. 세계 2차대전 당시 일왕과 일본의 승전을 위해 폭탄을 장착한 전투기에 몸을 싣고 미군 함대를 공격했던 가미가제 특공대,최근의 중동지역 자살 폭탄테러 등이 그 예다.

숙명적 자살은 돌파구를 찾지 못하는 노예가 마지막으로 택하는 자살 같은 숙명적인 현상을 말한다.

숙명적 자살은 극단적인 통제가 있는 사회에서 발생한다.

현대사회에서 자살을 사회문제로 이야기할 때는 '아노미'로 인한 자살을 의미한다.

아노미란 개인의 부적응과 이탈 소속감의 상실로 인해 일상생활에서 규범과 규칙이 실종되는 상태를 가리킨다.

[Focus] 인기 스타 자살 신드롬? ··· 인간은 왜 자살을 할까
뒤르켐은 산업사회에서 아노미가 증가하고 있다고 보았다. 급격한 변화로 삶의 안정성이 파괴되고 가치관이 혼란를 겪고있다는 것이다.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충분한 이행기를 거치지 못한 채 그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삶을 포기하게 된다는 것이다.

특히 우리 나라처럼 산업화가 급격하게 진행된 경우 사회적 부적응과 가치관의 혼란이 자살률을 촉진하기도 한다.

또 사업 실패,가족의 갑작스러운 사망,이혼 등에 의한 정서적 혼란도 자살을 부르는 원인이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흥미로운 것은 로또에 당첨돼 하루아침에 일확천금을 획득했거나, 직장을 아주 열심히 다닌 사람이 많은 퇴직금을 받고 은퇴해 안락한 생활을 누리게 되었을 때도 자살률이 높게 나타난다고 한다.

이 같은 현상은 오랫동안 반복되어 온 질서가 바뀌면서 이에 적응하지 못해 발생하는 '아노미적 자살'의 한 형태라고 볼 수 있다.

뒤르켐은 자살률을 줄이기 위해서는 사회 구성원들이 스스로 소속감 내지 연대감을 가질 수 있도록 사회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뒤르켐은 '자살은 도와달라는 마지막 호소다. 그러나 너무 늦은…'이라며 도움의 손길이 필요함을 역설했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 일고 있는 기부 등 나눔의 운동도 사회적 연대감을 높일 수 있는 정책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살다보면 누구나 자살을 하고 싶을 만큼 어려움이 닥칠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자살할 용기로 살아가라'는 말이 있듯이 목숨을 끊을 용기를 갖고 어려움을 헤쳐 간다면 극복하지 못할 역경은 없을 것이다.

생의 끈을 놓으려는 사람으로선 한없는 절망속에서 빠져 나올 길이 보이지 않겠지만 조금만 달리 생각하면 도움을 호소할 곳은 있다.

자살이 미수에 그치는 경우 86%는 다시 시도하지 않는다는 조사 결과가 있는 것만 봐도 그렇다.

순간적인 충동으로 고귀한 생명을 끊는 어리석음은 피해야 할 것이다.

서정훈 한경경제교육연구소 인턴기자 jh3fast@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