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적‘운’도 모두에게 공평해야 할까"
고려대는 올해 수시모집에서 전체 정원의 70%인 2586명을 선발하며 전년도와 다름없이 1차와 2차로 구분해 심층면접과 논술고사를 실시한다.
수시 1차의 특징은 입학사정관제의 확대인데,입학사정관이 지원학생이 있는 곳에 직접 파견돼 심층면접을 통해 수험생의 다양한 능력을 평가할 예정이라고 한다.
평가는 주로 학생부,자기소개서 등으로 이뤄지나 수능 최저요건을 갖추지 못할 경우 최종적으로 불합격 처리되는 경우가 많으므로 수능준비에도 힘써야 한다.
수시 2차의 특징은 논술전형의 확대라고 할 수 있다.
우선선발과 일반선발에서 내신과 논술의 반영률이 다르지만 내신 등급 간 격차가 2점 정도밖에 나지 않으므로 어떤 상황이든 논술이 당락을 결정한다고 해도 무방하다.
<제시문>
1 인간의 모든 행위와 선택은 어떤 좋음을 목표로 하는 것 같다.
그래서 세상 만물이 좋음을 추구한다는 규정은 온당하다.
좋음은 분야에 따라 각기 다른 양상을 띤다.
의술이 추구하는 좋음과 병법이 추구하는 좋음이 다르듯 기술마다 고유한 좋음이 존재한다.
각각의 좋음이란 그것을 위해 행위와 선택이 수행되는 것을 일컫는다.
가령 의술의 좋음은 건강이고 병법의 좋음은 승리이며 건축술의 좋음은 집이다. 분야마다 다른 행위와 선택을 통해 추구되는 목적이 곧 좋음이다.
인간은 그 목적을 이루고자 노력한다.
따라서 좋음은 행위로 성취되는 모든 목적일 것이다.
그런데 목적은 여러 가지이고 그 중 어떤 목적은 다른 목적을 위해 선택된다. 따라서 모든 목적이 다 완전할 수 없지만 최상의 좋음은 분명 완전한 그 무엇이다.
만일 어떤 하나만이 완전하다면 그 하나가 우리가 찾는 것이겠다.
여럿이 완전하다면,그것들 중 가장 완전한 것이 우리가 찾는 것이겠다.
우리는 그 자체로 추구되는 것이 다른 것 때문에 추구되는 것보다 완전하다고 말한다.
따라서 언제나 그 자체로 선택될 뿐 결코 다른 것 때문에 선택되지 않는 것이 완전하다.
그 무엇보다도 행복이 그렇게 완전한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행복을 언제나 그 자체 때문에 선택하지 다른 무엇 때문에 선택하지 않는다.
인간의 기능을 이성에 따른 영혼의 활동이라고 한다면,인간적인 좋음은 훌륭함에 따른 영혼의 활동이고,그 활동 자체가 곧 행복이다.
물론 행복은 외적인 좋음도 필요로 한다.
일정한 뒷받침이 없으면 고귀한 일을 행하기가 아예 불가능하거나 용이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좋은 태생,훌륭한 자식,준수한 용모와 같은 요소가 결핍되면 지극한 복에 흠집이 나기도 한다. 행복에는 그런 요소들이 더해져야 할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행운이 행복과 동일시되기도 한다.
행복은 배움,익힘 등과 같은 인간의 활동을 통해 획득되는가,아니면 신적인 운명이나 우연에 의해 생겨나는가?
신들이 인간에게 선물을 준다고 한다면,행복 또한 신들의 선물일 수 있다.
그러나 행복이 신들의 선물이 아니고 모종의 배움이나 익힘을 통해 생긴다 하더라도,그것은 여전히 인간 안의 신적인 것들 중 으뜸일 것이다.
행복은 훌륭함에 따른 인간 영혼의 활동이므로 인간의 행위로 성취되거나 소유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소나 말은 결코 행복할 수 없다.
동물은 행복을 추구하는 활동에 참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어린이 또한 행복한 사람이 아니다.
어린이는 나이가 어려서 아직 그러한 활동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어린이가 행복하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미래의 행복에 대한 희망을 말한 것일 뿐이다.
…중략…(지면사정 상 중략하니 반드시 확인하세요)
운에 따라 인간의 행복 여부를 판단해도 좋을까?
인간이 운에 의해 잘되고 잘못되는 것이 아니라,다만 운이 인간적 삶에 더해질 뿐이다.
훌륭함에 따르는 활동이 행복이고,그 반대의 활동은 분명 불행을 불러온다.
그러나 추가되면 좋을 것이 추가되지 않는다 하여 행복이 흔들리지는 않는다.
인간이 성취할 수 있는 것들 중 훌륭함에 따르는 활동만큼 안정성을 갖는 것은 없다.
그 활동은 학문적 인식보다 더 지속적인 것으로 보인다.
지극히 복된 사람들은 그 활동을 누리며 가장 연속적으로 그들의 삶을 이어간다.
그러한 활동에 대한 망각은 그래서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중략…
그러나 본성이 고귀한 사람은 그러한 불운들을 침착하게 견딘다.
그가 고통에 무뎌서가 아니라 고결하고 의연한 성품의 소유자이기에 그럴 수 있다.
인간의 삶에서 훌륭함을 따라가는 영혼의 활동이 결정적인 것이라면,지극히 복된 사람들 중 누구도 비참하게 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는 모든 운을 품위 있게 견디고 어떤 상황에서도 할 수 있는 한 가장 훌륭한 행위를 할 것이기 때문이다.
마치 훌륭한 장군이 주어진 부대를 전략적으로 가장 적절하게 꾸려가고,좋은 제화공이 자기가 가진 가죽으로 가장 훌륭한 구두를 만들어 내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므로 행복한 사람은,물론 프리아모스가 당한 것과 같은 비운이 덮친다면야 지극히 복될 수는 없겠지만,결코 비참하게 되지는 않는다.
행복한 사람은 실로 쉽게 변하지 않는다.
운수는 이리저리 몰아치며 변화무쌍한 얼굴을 드러내지만,완전한 훌륭함에 따라 활동하는 사람은 늘 그의 삶에서 가장 좋은 것만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이 특정한 기간만이 아니라 그의 온 생애에 걸쳐 행복하다.
2 추첨은 켄투리아회와 민중의회에서 누가 첫 번째로 투표하는지와 어떤 투표가 먼저 계산되는지를 결정하는 데 쓰였다.
켄투리아회는 5개의 계급에서 뽑힌 193개의 백인대(百人隊 · 투표의 단위)로 구성되었다.
기원전 3세기 말, 추첨을 통해 '우선투표 백인대'를 뽑는 관습이 정착되었다.
첫 번째로 투표할 백인대를 의미하는 우선투표 백인대는 상위계급 가운데 하나인 70개의 일급보병 백인대 중에서 추첨으로 뽑혔다.
그 추첨의 결과는 신의 계시로 여겨졌고,나아가 이 백인대가 투표하는 것 역시 종교적 의미를 가졌다.
우선투표 백인대의 투표는 최종적 결과를 미리 알려준다는 의미를 가졌을 뿐 아니라 그 뒤에 투표하는 백인대들의 선택까지도 규정하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결국 추첨은 우선투표 백인대의 투표 행위에 종교적 가치를 부여함과 동시에 투표 과정에서의 의견 불일치 혹은 경쟁을 피하게 하거나 완화시켰다.
왜냐하면 추첨은 적어도 계시적이고,중립적이며,불편부당한 무엇을 따른 것처럼 인정되었기 때문이다.
추첨은 민중의회에서도 사용되었다.
법률 제정이나 재판을 위한 민중의회의 모임에서,각 부족들은 차례차례 투표했다.
어떤 부족이 가장 먼저 투표할지는 추첨을 통해 결정되었고,이에 따라 나머지 부족들의 투표 순서도 결정되었다.
제일 먼저 투표하는 부족에게는 '첫 번째'라는 이름이 붙여졌는데,이는 어떤 점에서는 켄투리아회의 우선투표 백인대에 상응한다.
각 부족의 투표 결과는 그 부족이 투표를 행하자마자 발표되었으며,그 동안에도 다른 부족들의 투표는 계속되었다.
법안의 통과나 판결을 위한 과반수가 확보되자마자 투표는 종결되었다.
결과적으로 민중의회의 추첨은 켄투리아회의 추첨과 동일한 효과를 가졌다. 추첨의 종교적 성격과 중립성은 표가 첫 번째 투표 쪽으로 결집되도록 도왔으며,투표를 하지 못한 부족들로 하여금 그 결과를 좀 더 쉽게 받아들일 수 있게 했다.
3 운은 선택적 운과 비선택적 운으로 나뉠 수 있다.
선택적 운은 숙고와 계산을 거친 모험의 결과에 관련된다.
가령 주식 투자에서처럼 피할 수 있는 위험을 감수함으로써 수익을 거두거나 손실을 입는 경우가 선택적 운에 해당된다.
비선택적 운은 예측이 불가능하여 피할 수 없는 결과에 관련된다.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하거나 맑은 날 길을 걷다가 벼락을 맞는 경우가 비선택적 운에 해당된다.
사람마다 서로 다른 선택적 운 때문에 수입의 차이가 생기고 그로써 재산이 증감한다면 그것을 불공평하다고 할 수 있을까?
어떤 농부가 실패할 위험이 크지만 성공적으로 수확했을 경우 고수익이 보장된 작물을 심었고,다른 농부는 안전한 수확이 가능한 작물을 심었다고 하자.
그리고 전자의 농부는 나쁜 날씨에 대비해 보험에 들거나 들지 않을 수 있다고 하자.
그 경우 농부는 자신의 선택에 대한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안전을 지향하는 선택은 위험을 무릅쓰는 선택보다 더 큰 소득의 가능성을 포기하는 것이다.
따라서 농부가 선택한 작물의 종류와 보험 가입의 여부에 따라 사후적으로 발생하는 소득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을 이유는 없다.
그러나 비선택적 운이 초래한 결과는 선택적 운의 결과와 다르게 이해해야 한다.
매우 유사한 조건 속에서 살던 두 사람 중 하나가 갑자기 맹인이 된 경우를 생각해보자.
그 경우 맹인이 된 쪽이 애초에 위험을 감수하는 선택을 했다고 규정하면서 두 사람 사이에 생긴 수입의 차이를 인정하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
왜냐하면 맹인이 되는 것은 그 당사자의 선택과 무관하기 때문이다.
이상적인 상황에서는 보험 가입의 가능성을 통해 비선택적 운을 선택적 운으로 전환시킬 수 있다.
맹인이 될 가능성을 동등하게 지닌 두 사람이 그러한 가능성을 저마다 충분히 인식한다고 전제하고서 그들에게 보험에 가입할 기회가 똑같이 제공된다고 가정해보자.
그러한 가정 하에서 한 사람은 보험에 들고 다른 한 사람은 보험에 들지 않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
전자는 안전을 보장 받기 위해 비용을 지불한 셈이고 후자는 위험을 기꺼이 감수하는 선택을 한 셈이다.
그 경우 두 사람 모두 눈이 머는 최악의 사태가 발생한다면 그 어떤 온정주의적 관점을 도입하지 않고서는 자원 배분의 공평성을 주장하기 어렵다.
다시 말해 보험 가입자로부터 보험 미가입자에게 소득을 이전시키는 보상 방식을 주장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비록 두 사람이 비선택적으로 악운을 겪게 되지만,보험에 가입할 수 있는 상황이 양자 간의 소득 격차를 선택적 운에서 비롯된 것이 되도록 한다.
따라서 선택적 운에서 비롯한 결과를 교란시킬 근거가 없다는 기존의 주장은 여전히 성립한다.
그러한 주장은 앞에서 설정한 가정 하의 모든 경우에 합당하다.
동일한 위험에 당면한 사람들이 보험을 선택할 수 있다는 가정 하에서 선택의 결과는 분배의 공평성에 아무런 문제를 야기하지 않는다.
그러나 현실은 가정과 다르다.
모든 사람이 동일한 재앙의 위험 속에서 사는 것은 아니다.
선천적으로 장애를 갖고 태어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사회인으로 충분히 성장하기 전에 장애가 온 사람도 있다.
그들은 보험에 들 자금을 마련하기 전에 장애인이 되었다.
게다가 장애가 있는 사람은 보험에 들 수조차 없다.
장애를 가지게 될 가능성이 큰 사람들에게도 보험에 들 기회가 동등하게 주어지지 않는다.
보험 가입을 원하는 사람의 유전적 가족력까지 조사하는 보험회사는 그런 사람들에게 더 높은 보험료를 요구할 것이다.
재앙의 위험이 모두에게 동일하다고 가정한 보험의 상황은 현실에서 제기되는 공평성의 문제에 대해 좋은 지침을 제공한다.
사람들이 동등한 조건에서 보험을 들 경우에 누렸을 혜택을 전제하고 그 조건에 사람들을 위치시키는 복지체계를 통해 공평성은 확보될 수 있다.
사회가 그 구성원들을 진정으로 공평하게 배려하려면 동등하게 조성된 조건 속에서 그들이 할 수 있었을 선택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복지자원을 어떻게 분배해야 할까
4 그렇게 해야 마땅해서 그렇게 하는 것은 의(義)이고,그렇게 하지 않았는데도 그렇게 되는 것은 명(命)이다.
성인(聖人)은 의를 따르면 명이 자연히 그 가운데 있고,군자는 의를 행함으로써 명에 순응하며,보통 이상의 사람은 명이 있음을 앎으로써 의에 따라 행할 것을 결단하고,보통 이하의 사람은 명이 있음도 모르고 의를 행함도 없다.
그러므로 명을 모르고서 의를 편안하게 행할 수 있는 자는 드물고,의에 이르지 않고 명을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자는 없다.
명에 대해서는 언급할 것 없을 때가 있으나,의는 어떤 상황에서든 반드시 행해야 한다.
예컨대 효성스럽게 어버이를 섬겨야 함에 있어서 그 명이 어떤지 물을 것이 없고,충성을 다해 임금을 섬겨야 함에 있어서 그 명이 어떤지 물을 것이 없으며,경건하게 자신의 인격을 수양해야 함에 있어서 그 명이 어떤지 물을 것이 없고,부지런히 덕행을 쌓아야 함에 있어서 그 명이 어떤지 물을 것이 없는 것이다.
이처럼 명에 대해서 언급할 것 없을 때가 있지만,명을 말하지 않을 수 없을 때도 있다.
예컨대 곤궁함과 영달함은 명에 달려 있으니 자기 뜻대로 구할 수 없고,죽고 사는 것은 명에 달려 있으니 자기 뜻대로 죽음을 피할 수 없으며,귀하고 천한 것은 명에 달려 있으니 자기 뜻대로 좌우할 수 없고,가난하고 부유함 역시 명에 달려 있으니 자기 뜻대로 도모할 수 없는 것이다.
명은 성현의 마음을 흔들리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보통 사람을 그것으로 격려할 수는 있으며,일상적인 일을 처리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화복(禍福)을 그것으로 단정할 수는 있다.
명이 인위적으로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임을 안다면 내가 그것에 대해 잔꾀를 부릴 것이 없고,명이 의도적으로 계획할 수 없는 것임을 안다면 내가 그것에 대해 마음 쓸 것이 없다.
어깨를 움츠리고 아첨하는 웃음을 흘리며 부귀를 취하는 자가 있는가 하면,의를 견지하고 고난의 길을 걷다가 죽어간 자도 있다.
그러나 부귀해질 때가 이르면 도를 굳게 지키는 자도 영달한 자리에 오르게 되고,죽을 수밖에 없는 운을 만나면 살기 위해 아무리 수치스러운 짓을 마다하지 않는다고 해서 모두 목숨을 보전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명이란 본디 이와 같아서 그것을 뜻대로 바꿀 수 없다.
사람이 참으로 명이 이러함을 분명하게 알고 독실하게 믿는다면,어느 누가 이익을 구하는 데에만 온 마음을 쏟고 의에 어긋나는 수치스러운 짓을 하면서까지 구차하게 목숨을 부지하려 하겠는가?
그러므로 보통 사람에게 의를 따라 행해야 함을 가르치는 데 있어서,명이 있다는 것은 크게 도움이 된다.
명이 없다는 주장이 제기되고부터 명이 있음을 믿지 않는 사람이 많아졌다.
그러자 순박함은 사라지고 임기응변의 꾀만 늘어나 하늘의 도리는 허망해지고 사람의 일은 혼탁해져서,벼슬자리나 구하고 잇속만 차리며 구차하게 목숨을 탐하고 죽음을 두려워하는 무리들이 불어나 천하가 어지러워졌다.
이것이 바로 명이 없다는 주장으로 인해 생긴 폐해이다. 명이 없이도 의를 따르는 삶을 살 수 있는 사람은 오직 군자뿐이다.
5 다음 세 가지 요인이 개인의 후생수준을 결정하는 경우를 고려하자.
첫째는 개인적 배경의 차이에서 오는 '배경자원'의 수준(x)이고,둘째는 정부로부터 배분되는 '복지자원'의 수준(y)이며,셋째는 개인의 '노력수준'(z)이다.
최종적인 후생수준(u)은 배경자원과 복지자원의 합에 노력수준을 곱한 값이라고 하자. 즉, u=(x+y)z.
한 국가의 국민이 다음과 같이 구성되어 있다고 가정하자.
배경자원이 1이고 노력수준이 1인 사람들이 25% (집단1)
배경자원이 1이고 노력수준이 3인 사람들이 25% (집단2)
배경자원이 3이고 노력수준이 1인 사람들이 25% (집단3)
배경자원이 3이고 노력수준이 3인 사람들이 25% (집단4)
또한 정부는 개개인의 배경자원과 노력수준을 고려해 복지자원을 배분할 수 있고,이렇게 배분될 총 복지자원의 크기는 고정되어 있으며,만약 정부가 복지자원을 모든 국민들에게 균등하게 배분한다면 국민 일인당 4의 복지자원을 받게 된다고 가정하자.
배경자원은 개인이 선택할 수 없는 것이고 제시문 (3)의 '비선택적 운'에 해당한다.
공평성의 관점에서는 이러한 비선택적 운으로 인한 후생 격차를 없앨 것을 요구하지만,노력수준과 같이 개인이 선택한 결과로 발생하는 후생 격차의 교정을 요구하지는 않는다.
한편 공리주의적 관점에서는 복지자원의 배분을 통해 모든 국민의 후생수준의 총합을 높일 것을 요구한다.
<문제>
I. (1)을 500자 내외로 요약하시오. (20점)
Ⅱ. '운의 사회적 의미'라는 관점에서 (2)와 (3)을 비교하고,이를 참고하여 (4)의 주장을 논평하시오. 그리고 '운'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밝히시오. (50점)
Ⅲ. (5)에서 정부가 취할 분배정책과 관련하여 아래의 세 제안이 있을 수 있다.
제안 A:개인이 사용할 배경자원과 복지자원의 합(x+y)이 사람들 사이에 균등하게 되도록 복지자원이 배분되어야 한다.
제안 B:노력수준이 같은 사람들 사이에 배경자원의 차이로 인한 후생격차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되,노력수준이 다른 사람들 사이에 후생격차가 극대화되도록 복지자원이 배분되어야 한다.
제안 C:모든 국민의 후생수준의 총합이 극대화되도록 복지자원이 배분되어야 한다. 각 제안 하에서 집단별로 1인당 배분될 복지자원의 크기를 구하고, (5)에 나타난 공평성의 관점과 공리주의적 관점에서 세 제안을 비교하시오. (30점)
⊙ 고대 논술의 특징
고대 논술은 전통적으로 다른 대학들의 논술문제와의 차별성을 유지하면서도 우리나라 대입논술을 선도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08학년도부터 유지해 온 논술유형 역시 통합적 사고력을 평가하기 위해 완성도 높은 문제를 출제해 왔다고 학교 측의 자부심 역시 대단하다. 물론 그만큼 문제를 풀어야 하는 수험생의 입장에서는 접근하기 쉽지 않은 문제이기도 하다. 하지만 최근 몇 년간 동일한 유형을 유지하고 있으며,최근 치러진 2011학년도 대비 예시문제에서도 1문항이 늘어나기는 했으나 내용적으로 큰 변화가 없다고 봐도 무방하므로 어떻게 접근하고 작성해야 하는지를 정확하게 숙지한다면 생각만큼 어려운 논술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일단,1번 문항은 요약형 문제로 출제되고 있다. 여기서는 대체로 장문의,내용적으로도 상당한 난이도를 보이는 제시문을 얼마나 객관적으로,정확하게 이해했는지를 평가하는 것이 주목적이다.
고대논술자료집에 의하면 요약문이라고 하더라도 자신의 글이므로 전달자의 태도를 취하지 말고 제시문의 필자가 정리하듯 작성해야 한다.
요약이란 단순하게 짧게 간추리는 것이 아니라 필자의 의도를 정확하게 간파해 그 주장의 내용이 무엇인지를 정리하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제시문은' '~라고 주장한다' 등과 같은 전달자적 태도를 드러내는 문장 형식은 지양해야 하며,
자신의 평가적인 태도를 드러내는 표현 역시 감점요소가 될 뿐이다. 물론 제시문이 무슨 내용인지 파악이 안된다면 형식적으로 요약문의 형태를 취하더라도 소용이 없다.
고대 출제진이 학생들의 독해력을 평가하는 데 요약문만큼 명확한 문제는 없다고 인식하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이 문항을 제대로 작성하지 못한다면 다른 문항 역시 접근하는 게 어렵다.
따라서 고대를 지원하고자 하는 학생들은 제시문을 정확하게 독해하는 능력을 갖추는 데 힘써야 할 것이다.
2번 문항은 고대 문제 중 배점이 가장 높고 요구하는 분량 역시 1000~1400자로 길다.
여기서는 크게 비교,해설(설명),자기견해를 서술해야 하는데,주어진 제시문의 난이도가 1번 제시문에 비해 떨어지는데도 불구하고 분량 때문에 많은 수험생들이 힘들어 한다.
또한 세 가지 작업의 논리적 연관성,자연스러운 논의 전개 등 전체적인 구성능력까지 중요하게 평가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다작(多作)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
각각의 요구를 어떻게 충족시키는지 그 방법론에 대해서는 논제 해제시 자세히 다루도록 하겠다.
많은 수험생들이 문제 자체만 읽고 포기할 정도로 접근 자체를 어려워하는 게 3번 문항이다.
수리문제라고 인식하는 수험생들이 많으나 사실 수리적 사고능력을 평가하는 추리논증문제로 보는 것이 더 정확한 분석이라고 보인다.
물론 풀이과정에서 수학적 접근이 필요한 경우가 많다는 점에서 기본적인 수학능력이 필수적으로 필요하다.
하지만 수학적 계산을 선행해야 할 경우에는 그와 관련한 수학공식에 대한 정보를 제시해 주므로 크게 부담 가질 필요가 없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논리적 사고능력이다.
주어진 조건들을 정확하게 분석하고 그것들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파악하는 것,그리고 그 과정을 객관적으로 서술하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
답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답을 정확하게 맞히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과정이 적절치 않다면 제대로 된 답안으로 평가받지 못하므로 논리적 전개과정을 서술하는 데 신경 써야 한다.
김은희 S · 논술 선임 연구원 Jinenji1@naver.com
※ 2010학년도 고대 수시 문제에 대한 자세한 해제는 생글생글 249호(6월 21일자)에서 다룹니다.
고려대는 올해 수시모집에서 전체 정원의 70%인 2586명을 선발하며 전년도와 다름없이 1차와 2차로 구분해 심층면접과 논술고사를 실시한다.
수시 1차의 특징은 입학사정관제의 확대인데,입학사정관이 지원학생이 있는 곳에 직접 파견돼 심층면접을 통해 수험생의 다양한 능력을 평가할 예정이라고 한다.
평가는 주로 학생부,자기소개서 등으로 이뤄지나 수능 최저요건을 갖추지 못할 경우 최종적으로 불합격 처리되는 경우가 많으므로 수능준비에도 힘써야 한다.
수시 2차의 특징은 논술전형의 확대라고 할 수 있다.
우선선발과 일반선발에서 내신과 논술의 반영률이 다르지만 내신 등급 간 격차가 2점 정도밖에 나지 않으므로 어떤 상황이든 논술이 당락을 결정한다고 해도 무방하다.
<제시문>
1 인간의 모든 행위와 선택은 어떤 좋음을 목표로 하는 것 같다.
그래서 세상 만물이 좋음을 추구한다는 규정은 온당하다.
좋음은 분야에 따라 각기 다른 양상을 띤다.
의술이 추구하는 좋음과 병법이 추구하는 좋음이 다르듯 기술마다 고유한 좋음이 존재한다.
각각의 좋음이란 그것을 위해 행위와 선택이 수행되는 것을 일컫는다.
가령 의술의 좋음은 건강이고 병법의 좋음은 승리이며 건축술의 좋음은 집이다. 분야마다 다른 행위와 선택을 통해 추구되는 목적이 곧 좋음이다.
인간은 그 목적을 이루고자 노력한다.
따라서 좋음은 행위로 성취되는 모든 목적일 것이다.
그런데 목적은 여러 가지이고 그 중 어떤 목적은 다른 목적을 위해 선택된다. 따라서 모든 목적이 다 완전할 수 없지만 최상의 좋음은 분명 완전한 그 무엇이다.
만일 어떤 하나만이 완전하다면 그 하나가 우리가 찾는 것이겠다.
여럿이 완전하다면,그것들 중 가장 완전한 것이 우리가 찾는 것이겠다.
우리는 그 자체로 추구되는 것이 다른 것 때문에 추구되는 것보다 완전하다고 말한다.
따라서 언제나 그 자체로 선택될 뿐 결코 다른 것 때문에 선택되지 않는 것이 완전하다.
그 무엇보다도 행복이 그렇게 완전한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행복을 언제나 그 자체 때문에 선택하지 다른 무엇 때문에 선택하지 않는다.
인간의 기능을 이성에 따른 영혼의 활동이라고 한다면,인간적인 좋음은 훌륭함에 따른 영혼의 활동이고,그 활동 자체가 곧 행복이다.
물론 행복은 외적인 좋음도 필요로 한다.
일정한 뒷받침이 없으면 고귀한 일을 행하기가 아예 불가능하거나 용이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좋은 태생,훌륭한 자식,준수한 용모와 같은 요소가 결핍되면 지극한 복에 흠집이 나기도 한다. 행복에는 그런 요소들이 더해져야 할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행운이 행복과 동일시되기도 한다.
행복은 배움,익힘 등과 같은 인간의 활동을 통해 획득되는가,아니면 신적인 운명이나 우연에 의해 생겨나는가?
신들이 인간에게 선물을 준다고 한다면,행복 또한 신들의 선물일 수 있다.
그러나 행복이 신들의 선물이 아니고 모종의 배움이나 익힘을 통해 생긴다 하더라도,그것은 여전히 인간 안의 신적인 것들 중 으뜸일 것이다.
행복은 훌륭함에 따른 인간 영혼의 활동이므로 인간의 행위로 성취되거나 소유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소나 말은 결코 행복할 수 없다.
동물은 행복을 추구하는 활동에 참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어린이 또한 행복한 사람이 아니다.
어린이는 나이가 어려서 아직 그러한 활동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어린이가 행복하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미래의 행복에 대한 희망을 말한 것일 뿐이다.
…중략…(지면사정 상 중략하니 반드시 확인하세요)
운에 따라 인간의 행복 여부를 판단해도 좋을까?
인간이 운에 의해 잘되고 잘못되는 것이 아니라,다만 운이 인간적 삶에 더해질 뿐이다.
훌륭함에 따르는 활동이 행복이고,그 반대의 활동은 분명 불행을 불러온다.
그러나 추가되면 좋을 것이 추가되지 않는다 하여 행복이 흔들리지는 않는다.
인간이 성취할 수 있는 것들 중 훌륭함에 따르는 활동만큼 안정성을 갖는 것은 없다.
그 활동은 학문적 인식보다 더 지속적인 것으로 보인다.
지극히 복된 사람들은 그 활동을 누리며 가장 연속적으로 그들의 삶을 이어간다.
그러한 활동에 대한 망각은 그래서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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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본성이 고귀한 사람은 그러한 불운들을 침착하게 견딘다.
그가 고통에 무뎌서가 아니라 고결하고 의연한 성품의 소유자이기에 그럴 수 있다.
인간의 삶에서 훌륭함을 따라가는 영혼의 활동이 결정적인 것이라면,지극히 복된 사람들 중 누구도 비참하게 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는 모든 운을 품위 있게 견디고 어떤 상황에서도 할 수 있는 한 가장 훌륭한 행위를 할 것이기 때문이다.
마치 훌륭한 장군이 주어진 부대를 전략적으로 가장 적절하게 꾸려가고,좋은 제화공이 자기가 가진 가죽으로 가장 훌륭한 구두를 만들어 내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므로 행복한 사람은,물론 프리아모스가 당한 것과 같은 비운이 덮친다면야 지극히 복될 수는 없겠지만,결코 비참하게 되지는 않는다.
행복한 사람은 실로 쉽게 변하지 않는다.
운수는 이리저리 몰아치며 변화무쌍한 얼굴을 드러내지만,완전한 훌륭함에 따라 활동하는 사람은 늘 그의 삶에서 가장 좋은 것만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이 특정한 기간만이 아니라 그의 온 생애에 걸쳐 행복하다.
2 추첨은 켄투리아회와 민중의회에서 누가 첫 번째로 투표하는지와 어떤 투표가 먼저 계산되는지를 결정하는 데 쓰였다.
켄투리아회는 5개의 계급에서 뽑힌 193개의 백인대(百人隊 · 투표의 단위)로 구성되었다.
기원전 3세기 말, 추첨을 통해 '우선투표 백인대'를 뽑는 관습이 정착되었다.
첫 번째로 투표할 백인대를 의미하는 우선투표 백인대는 상위계급 가운데 하나인 70개의 일급보병 백인대 중에서 추첨으로 뽑혔다.
그 추첨의 결과는 신의 계시로 여겨졌고,나아가 이 백인대가 투표하는 것 역시 종교적 의미를 가졌다.
우선투표 백인대의 투표는 최종적 결과를 미리 알려준다는 의미를 가졌을 뿐 아니라 그 뒤에 투표하는 백인대들의 선택까지도 규정하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결국 추첨은 우선투표 백인대의 투표 행위에 종교적 가치를 부여함과 동시에 투표 과정에서의 의견 불일치 혹은 경쟁을 피하게 하거나 완화시켰다.
왜냐하면 추첨은 적어도 계시적이고,중립적이며,불편부당한 무엇을 따른 것처럼 인정되었기 때문이다.
추첨은 민중의회에서도 사용되었다.
법률 제정이나 재판을 위한 민중의회의 모임에서,각 부족들은 차례차례 투표했다.
어떤 부족이 가장 먼저 투표할지는 추첨을 통해 결정되었고,이에 따라 나머지 부족들의 투표 순서도 결정되었다.
제일 먼저 투표하는 부족에게는 '첫 번째'라는 이름이 붙여졌는데,이는 어떤 점에서는 켄투리아회의 우선투표 백인대에 상응한다.
각 부족의 투표 결과는 그 부족이 투표를 행하자마자 발표되었으며,그 동안에도 다른 부족들의 투표는 계속되었다.
법안의 통과나 판결을 위한 과반수가 확보되자마자 투표는 종결되었다.
결과적으로 민중의회의 추첨은 켄투리아회의 추첨과 동일한 효과를 가졌다. 추첨의 종교적 성격과 중립성은 표가 첫 번째 투표 쪽으로 결집되도록 도왔으며,투표를 하지 못한 부족들로 하여금 그 결과를 좀 더 쉽게 받아들일 수 있게 했다.
3 운은 선택적 운과 비선택적 운으로 나뉠 수 있다.
선택적 운은 숙고와 계산을 거친 모험의 결과에 관련된다.
가령 주식 투자에서처럼 피할 수 있는 위험을 감수함으로써 수익을 거두거나 손실을 입는 경우가 선택적 운에 해당된다.
비선택적 운은 예측이 불가능하여 피할 수 없는 결과에 관련된다.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하거나 맑은 날 길을 걷다가 벼락을 맞는 경우가 비선택적 운에 해당된다.
사람마다 서로 다른 선택적 운 때문에 수입의 차이가 생기고 그로써 재산이 증감한다면 그것을 불공평하다고 할 수 있을까?
어떤 농부가 실패할 위험이 크지만 성공적으로 수확했을 경우 고수익이 보장된 작물을 심었고,다른 농부는 안전한 수확이 가능한 작물을 심었다고 하자.
그리고 전자의 농부는 나쁜 날씨에 대비해 보험에 들거나 들지 않을 수 있다고 하자.
그 경우 농부는 자신의 선택에 대한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안전을 지향하는 선택은 위험을 무릅쓰는 선택보다 더 큰 소득의 가능성을 포기하는 것이다.
따라서 농부가 선택한 작물의 종류와 보험 가입의 여부에 따라 사후적으로 발생하는 소득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을 이유는 없다.
그러나 비선택적 운이 초래한 결과는 선택적 운의 결과와 다르게 이해해야 한다.
매우 유사한 조건 속에서 살던 두 사람 중 하나가 갑자기 맹인이 된 경우를 생각해보자.
그 경우 맹인이 된 쪽이 애초에 위험을 감수하는 선택을 했다고 규정하면서 두 사람 사이에 생긴 수입의 차이를 인정하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
왜냐하면 맹인이 되는 것은 그 당사자의 선택과 무관하기 때문이다.
이상적인 상황에서는 보험 가입의 가능성을 통해 비선택적 운을 선택적 운으로 전환시킬 수 있다.
맹인이 될 가능성을 동등하게 지닌 두 사람이 그러한 가능성을 저마다 충분히 인식한다고 전제하고서 그들에게 보험에 가입할 기회가 똑같이 제공된다고 가정해보자.
그러한 가정 하에서 한 사람은 보험에 들고 다른 한 사람은 보험에 들지 않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
전자는 안전을 보장 받기 위해 비용을 지불한 셈이고 후자는 위험을 기꺼이 감수하는 선택을 한 셈이다.
그 경우 두 사람 모두 눈이 머는 최악의 사태가 발생한다면 그 어떤 온정주의적 관점을 도입하지 않고서는 자원 배분의 공평성을 주장하기 어렵다.
다시 말해 보험 가입자로부터 보험 미가입자에게 소득을 이전시키는 보상 방식을 주장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비록 두 사람이 비선택적으로 악운을 겪게 되지만,보험에 가입할 수 있는 상황이 양자 간의 소득 격차를 선택적 운에서 비롯된 것이 되도록 한다.
따라서 선택적 운에서 비롯한 결과를 교란시킬 근거가 없다는 기존의 주장은 여전히 성립한다.
그러한 주장은 앞에서 설정한 가정 하의 모든 경우에 합당하다.
동일한 위험에 당면한 사람들이 보험을 선택할 수 있다는 가정 하에서 선택의 결과는 분배의 공평성에 아무런 문제를 야기하지 않는다.
그러나 현실은 가정과 다르다.
모든 사람이 동일한 재앙의 위험 속에서 사는 것은 아니다.
선천적으로 장애를 갖고 태어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사회인으로 충분히 성장하기 전에 장애가 온 사람도 있다.
그들은 보험에 들 자금을 마련하기 전에 장애인이 되었다.
게다가 장애가 있는 사람은 보험에 들 수조차 없다.
장애를 가지게 될 가능성이 큰 사람들에게도 보험에 들 기회가 동등하게 주어지지 않는다.
보험 가입을 원하는 사람의 유전적 가족력까지 조사하는 보험회사는 그런 사람들에게 더 높은 보험료를 요구할 것이다.
재앙의 위험이 모두에게 동일하다고 가정한 보험의 상황은 현실에서 제기되는 공평성의 문제에 대해 좋은 지침을 제공한다.
사람들이 동등한 조건에서 보험을 들 경우에 누렸을 혜택을 전제하고 그 조건에 사람들을 위치시키는 복지체계를 통해 공평성은 확보될 수 있다.
사회가 그 구성원들을 진정으로 공평하게 배려하려면 동등하게 조성된 조건 속에서 그들이 할 수 있었을 선택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복지자원을 어떻게 분배해야 할까
4 그렇게 해야 마땅해서 그렇게 하는 것은 의(義)이고,그렇게 하지 않았는데도 그렇게 되는 것은 명(命)이다.
성인(聖人)은 의를 따르면 명이 자연히 그 가운데 있고,군자는 의를 행함으로써 명에 순응하며,보통 이상의 사람은 명이 있음을 앎으로써 의에 따라 행할 것을 결단하고,보통 이하의 사람은 명이 있음도 모르고 의를 행함도 없다.
그러므로 명을 모르고서 의를 편안하게 행할 수 있는 자는 드물고,의에 이르지 않고 명을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자는 없다.
명에 대해서는 언급할 것 없을 때가 있으나,의는 어떤 상황에서든 반드시 행해야 한다.
예컨대 효성스럽게 어버이를 섬겨야 함에 있어서 그 명이 어떤지 물을 것이 없고,충성을 다해 임금을 섬겨야 함에 있어서 그 명이 어떤지 물을 것이 없으며,경건하게 자신의 인격을 수양해야 함에 있어서 그 명이 어떤지 물을 것이 없고,부지런히 덕행을 쌓아야 함에 있어서 그 명이 어떤지 물을 것이 없는 것이다.
이처럼 명에 대해서 언급할 것 없을 때가 있지만,명을 말하지 않을 수 없을 때도 있다.
예컨대 곤궁함과 영달함은 명에 달려 있으니 자기 뜻대로 구할 수 없고,죽고 사는 것은 명에 달려 있으니 자기 뜻대로 죽음을 피할 수 없으며,귀하고 천한 것은 명에 달려 있으니 자기 뜻대로 좌우할 수 없고,가난하고 부유함 역시 명에 달려 있으니 자기 뜻대로 도모할 수 없는 것이다.
명은 성현의 마음을 흔들리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보통 사람을 그것으로 격려할 수는 있으며,일상적인 일을 처리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화복(禍福)을 그것으로 단정할 수는 있다.
명이 인위적으로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임을 안다면 내가 그것에 대해 잔꾀를 부릴 것이 없고,명이 의도적으로 계획할 수 없는 것임을 안다면 내가 그것에 대해 마음 쓸 것이 없다.
어깨를 움츠리고 아첨하는 웃음을 흘리며 부귀를 취하는 자가 있는가 하면,의를 견지하고 고난의 길을 걷다가 죽어간 자도 있다.
그러나 부귀해질 때가 이르면 도를 굳게 지키는 자도 영달한 자리에 오르게 되고,죽을 수밖에 없는 운을 만나면 살기 위해 아무리 수치스러운 짓을 마다하지 않는다고 해서 모두 목숨을 보전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명이란 본디 이와 같아서 그것을 뜻대로 바꿀 수 없다.
사람이 참으로 명이 이러함을 분명하게 알고 독실하게 믿는다면,어느 누가 이익을 구하는 데에만 온 마음을 쏟고 의에 어긋나는 수치스러운 짓을 하면서까지 구차하게 목숨을 부지하려 하겠는가?
그러므로 보통 사람에게 의를 따라 행해야 함을 가르치는 데 있어서,명이 있다는 것은 크게 도움이 된다.
명이 없다는 주장이 제기되고부터 명이 있음을 믿지 않는 사람이 많아졌다.
그러자 순박함은 사라지고 임기응변의 꾀만 늘어나 하늘의 도리는 허망해지고 사람의 일은 혼탁해져서,벼슬자리나 구하고 잇속만 차리며 구차하게 목숨을 탐하고 죽음을 두려워하는 무리들이 불어나 천하가 어지러워졌다.
이것이 바로 명이 없다는 주장으로 인해 생긴 폐해이다. 명이 없이도 의를 따르는 삶을 살 수 있는 사람은 오직 군자뿐이다.
5 다음 세 가지 요인이 개인의 후생수준을 결정하는 경우를 고려하자.
첫째는 개인적 배경의 차이에서 오는 '배경자원'의 수준(x)이고,둘째는 정부로부터 배분되는 '복지자원'의 수준(y)이며,셋째는 개인의 '노력수준'(z)이다.
최종적인 후생수준(u)은 배경자원과 복지자원의 합에 노력수준을 곱한 값이라고 하자. 즉, u=(x+y)z.
한 국가의 국민이 다음과 같이 구성되어 있다고 가정하자.
배경자원이 1이고 노력수준이 1인 사람들이 25% (집단1)
배경자원이 1이고 노력수준이 3인 사람들이 25% (집단2)
배경자원이 3이고 노력수준이 1인 사람들이 25% (집단3)
배경자원이 3이고 노력수준이 3인 사람들이 25% (집단4)
또한 정부는 개개인의 배경자원과 노력수준을 고려해 복지자원을 배분할 수 있고,이렇게 배분될 총 복지자원의 크기는 고정되어 있으며,만약 정부가 복지자원을 모든 국민들에게 균등하게 배분한다면 국민 일인당 4의 복지자원을 받게 된다고 가정하자.
배경자원은 개인이 선택할 수 없는 것이고 제시문 (3)의 '비선택적 운'에 해당한다.
공평성의 관점에서는 이러한 비선택적 운으로 인한 후생 격차를 없앨 것을 요구하지만,노력수준과 같이 개인이 선택한 결과로 발생하는 후생 격차의 교정을 요구하지는 않는다.
한편 공리주의적 관점에서는 복지자원의 배분을 통해 모든 국민의 후생수준의 총합을 높일 것을 요구한다.
<문제>
I. (1)을 500자 내외로 요약하시오. (20점)
Ⅱ. '운의 사회적 의미'라는 관점에서 (2)와 (3)을 비교하고,이를 참고하여 (4)의 주장을 논평하시오. 그리고 '운'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밝히시오. (50점)
Ⅲ. (5)에서 정부가 취할 분배정책과 관련하여 아래의 세 제안이 있을 수 있다.
제안 A:개인이 사용할 배경자원과 복지자원의 합(x+y)이 사람들 사이에 균등하게 되도록 복지자원이 배분되어야 한다.
제안 B:노력수준이 같은 사람들 사이에 배경자원의 차이로 인한 후생격차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되,노력수준이 다른 사람들 사이에 후생격차가 극대화되도록 복지자원이 배분되어야 한다.
제안 C:모든 국민의 후생수준의 총합이 극대화되도록 복지자원이 배분되어야 한다. 각 제안 하에서 집단별로 1인당 배분될 복지자원의 크기를 구하고, (5)에 나타난 공평성의 관점과 공리주의적 관점에서 세 제안을 비교하시오. (30점)
⊙ 고대 논술의 특징
고대 논술은 전통적으로 다른 대학들의 논술문제와의 차별성을 유지하면서도 우리나라 대입논술을 선도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08학년도부터 유지해 온 논술유형 역시 통합적 사고력을 평가하기 위해 완성도 높은 문제를 출제해 왔다고 학교 측의 자부심 역시 대단하다. 물론 그만큼 문제를 풀어야 하는 수험생의 입장에서는 접근하기 쉽지 않은 문제이기도 하다. 하지만 최근 몇 년간 동일한 유형을 유지하고 있으며,최근 치러진 2011학년도 대비 예시문제에서도 1문항이 늘어나기는 했으나 내용적으로 큰 변화가 없다고 봐도 무방하므로 어떻게 접근하고 작성해야 하는지를 정확하게 숙지한다면 생각만큼 어려운 논술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일단,1번 문항은 요약형 문제로 출제되고 있다. 여기서는 대체로 장문의,내용적으로도 상당한 난이도를 보이는 제시문을 얼마나 객관적으로,정확하게 이해했는지를 평가하는 것이 주목적이다.
고대논술자료집에 의하면 요약문이라고 하더라도 자신의 글이므로 전달자의 태도를 취하지 말고 제시문의 필자가 정리하듯 작성해야 한다.
요약이란 단순하게 짧게 간추리는 것이 아니라 필자의 의도를 정확하게 간파해 그 주장의 내용이 무엇인지를 정리하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제시문은' '~라고 주장한다' 등과 같은 전달자적 태도를 드러내는 문장 형식은 지양해야 하며,
자신의 평가적인 태도를 드러내는 표현 역시 감점요소가 될 뿐이다. 물론 제시문이 무슨 내용인지 파악이 안된다면 형식적으로 요약문의 형태를 취하더라도 소용이 없다.
고대 출제진이 학생들의 독해력을 평가하는 데 요약문만큼 명확한 문제는 없다고 인식하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이 문항을 제대로 작성하지 못한다면 다른 문항 역시 접근하는 게 어렵다.
따라서 고대를 지원하고자 하는 학생들은 제시문을 정확하게 독해하는 능력을 갖추는 데 힘써야 할 것이다.
2번 문항은 고대 문제 중 배점이 가장 높고 요구하는 분량 역시 1000~1400자로 길다.
여기서는 크게 비교,해설(설명),자기견해를 서술해야 하는데,주어진 제시문의 난이도가 1번 제시문에 비해 떨어지는데도 불구하고 분량 때문에 많은 수험생들이 힘들어 한다.
또한 세 가지 작업의 논리적 연관성,자연스러운 논의 전개 등 전체적인 구성능력까지 중요하게 평가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다작(多作)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
각각의 요구를 어떻게 충족시키는지 그 방법론에 대해서는 논제 해제시 자세히 다루도록 하겠다.
많은 수험생들이 문제 자체만 읽고 포기할 정도로 접근 자체를 어려워하는 게 3번 문항이다.
수리문제라고 인식하는 수험생들이 많으나 사실 수리적 사고능력을 평가하는 추리논증문제로 보는 것이 더 정확한 분석이라고 보인다.
물론 풀이과정에서 수학적 접근이 필요한 경우가 많다는 점에서 기본적인 수학능력이 필수적으로 필요하다.
하지만 수학적 계산을 선행해야 할 경우에는 그와 관련한 수학공식에 대한 정보를 제시해 주므로 크게 부담 가질 필요가 없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논리적 사고능력이다.
주어진 조건들을 정확하게 분석하고 그것들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파악하는 것,그리고 그 과정을 객관적으로 서술하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
답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답을 정확하게 맞히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과정이 적절치 않다면 제대로 된 답안으로 평가받지 못하므로 논리적 전개과정을 서술하는 데 신경 써야 한다.
김은희 S · 논술 선임 연구원 Jinenji1@naver.com
※ 2010학년도 고대 수시 문제에 대한 자세한 해제는 생글생글 249호(6월 21일자)에서 다룹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