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cus] 광우병 촛불2년…과학의 용어로 미신을 포장할 때
2년 전인 2008년 5월.광우병 공포가 촉발시킨 촛불시위로 온 나라가 떠들썩했다.

패닉이라고도 할 만한 히스테리가 전국을 휩쓸었다.

미국에서 수입되는 쇠고기를 먹으면 광우병에 걸린다는 막무가내식 공포감이 거대한 먹구름처럼 형성되었다.

일부 전문가들까지 여기에 가세해 광우병 공포를 증폭시켰다.

어린 여학생들은 '저 아직 15년밖에 못 살았어요'라고 쓴 피켓을 들고 울먹였다.

어린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시위에 동참한 '유모차 부대'도 등장했다.

그러나 지금 광우병 공포는 거의 자취를 감추었다.

사실 광우병 공포 자체가 수없는 가정에 과장을 덧대고 오류의 정보로 범벅된 것이었다.

미국에서는 지금까지 사람은 물론 소도 광우병 발병 사례가 없다.

사실 광우병의 진원지 영국이나 다른 어느 나라에서도 광우병 문제를 놓고 우리처럼 대중의 공포를 만들어 낸 나라는 없다.

지금 국내 마트들마다 미국산 쇠고기가 아무런 문제 없이 잘 팔리고 있다.

왜 이런 상황이 벌어졌을까.

우선 병든 소가 마구 고꾸라지는 장면의 TV 화면이 공포심을 키웠다.

이어 인터넷을 통해 '미국 쇠고기를 먹으면 뇌에 구멍이 송송 뚫려 죽는다''광우병 성분이 생리대나 분유에도 들어간다' 등의 루머가 퍼졌다.

단순한 루머에 그치지 않고 가짜 '과학'이 가세했다.

과학적 연구라는 이름을 내건 오도된 자료들이 이를 증폭시켰다.

주저앉는 소는 우유를 짜는 젖소가 늙으면 생기는 일반적인 현상이다.

우리나라 젖소들도 같은 운명을 맞는다.

광우병에 대해서는 사실 우리나라는 별로 할 말이 없다.

미국이나 일본이 자신들이 키우는 소들에 대해 치밀한 광우병 조사를 실시했지만 한국은 아예 조사도 하지 않았다.

광우병 유발 물질인 육골분 사료는 한국도 많이 먹였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한국 정부는 광우병 조사도 하지 않았다.

광우병이 진정 무서웠다면 먼저 한국 소들에 대해서도 조사했어야 했지만 한국은 당시까지 제대로 조사한 적도 없었다.

그래서 광우병 공포에는 일종의 반미감정이 가세했다는 설명도 있다.

대중의 광기에다 이명박 정부에 반대하는 세력들이 불을 질렀다는 설명 외에는 달리 합리적인 설명이 불가능했다.

이런 현상은 불행히도 역사에 종종 되풀이 된다. 우리나라만 그런 것도 아니다.

⊙ '과학의 이름으로' 공포 만들기

광우병 촛불집회가 3개월 가까이 대한민국을 뒤흔드는 동안 광우병의 위험성을 강조하는 쪽에선 '과학의 이름으로' 자신들의 주장의 객관성과 타당성을 강조했다.

이들은 "정부의 해명은 사실과 다르다. 인간광우병에 걸린 사람이 거의 없다며 위험을 과소평가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이는 과학적 무지에서 비롯된 잘못된 생각"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광우병은 미량으로도 감염되고,가열을 통해서도 병원이 잘 죽지 않으며, 광우병에 걸린 쇠고기 섭취나 수혈 등을 통해 인간에게도 전이될 뿐 아니라 일단 발병되면 100% 사망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말 그대로 거대한 암흑의 재앙이 닥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지난 2년간 광우병 공포는 현실화되지 않았다.

아니 그 이전부터 세계 어디서도 그런 대중적 공포는 존재하지 않았다.

육골분 사료 금지,광우병 검색 체계 등 광우병 통제 수단이 효과를 발휘하면서 인간광우병에 걸려 사망할 확률이 그 어느 인수공통전염병(인간과 동물 모두에게 전염되는 병)보다 낮은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사이비 과학이 대중매체를 타고 증폭될 때 대중들은 자연스레 히스테리에 빠져들었다.

게다가 광우병의 유래,잠복기,인간광우병에 걸릴 확률,특정 유전자 특징이 인간광우병 발발에 미치는 영향,특정위험물질의 범위 등과 관련해서는 지금도 각기 다른 이론과 예측이 여전히 경쟁을 벌이고 있는 실정이다.

광우병의 원인에 대한 이론만 하더라도 바이러스설, 프리온 단백질설 등 다양한 의견이 제시됐다.

이 가운데 1999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프루즈너 박사의 프리온 단백질설이 정설로 인정되고 있지만, 여전히 다른 연구결과와 주장이 나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일부 과학자들의 위험성 경고를 무한 확대 해석해 대중의 공포심을 자극하는 것은 자신의 주장에 과학의 외피를 덧씌우는 꼴이다.

과학자들 사이에 전반적인 합의가 도출되지 않은 사실을 '과학'이라며 자신의 논거로 이용하는 것은 분명 잘못이다.

⊙ 과학은 미신을 만들기도

과학적 지식이 악용되거나 오용될 경우엔 참담한 결과를 낳는다.

인류 역사엔 과학이 대중에게 전달되면서 과장되고 오해를 불러일으키면서 거대한 대중적 '미신'이라는 참담한 결과를 만들어낸 사례가 적지 않다.

다윈의 진화론이 나치의 인종주의에 악용된 게 대표적이다.

진화론은 프랜시스 골턴의 우생학을 거쳐 나치로 연결된다.

골턴은 선택에 의해 특별한 재능을 갖추게 되는 종족은 진보할 것이라며 우생학을 주장했다.

나치는 우생학을 바탕으로 게르만족이 가장 우수한 종족이기 때문에 다른 민족을 지배할 사명을 가지고 있다고 천명했다.

이와 반대로 유대인은 아무리 환경을 개선하고 교육을 실시하더라도 천성적인 열등성과 해악성이 나아지지 않기 때문에 그들로부터 감염되지 않으려면 그들을 격리시키거나 절멸시켜야만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유대인 강제수용소와 대학살(Holocaust)의 만행을 정당화시키는 논리였다.

미국에서도 우생학이 만연했다. 사회의 낙오자들은 거세 수술을 받는 지경에 이르렀다.

파스퇴르의 세균학이 대중에게 처음 알려질 때도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

자연에서 세균의 존재를 알게 되자 사회에서 범죄자 등 낙오자를 '세균'으로 취급했던 것이다.

언뜻 과학 지식은 객관성과 진리의 표상으로 생각된다.

하지만 어떤 과학 지식이 진정으로 그런 대접을 받으려면 많은 과학자들의 엄밀한 검증은 물론 긴 시간이 필요하다.

그런 과정을 통과하지 않은 것에 섣불리 '과학'의 외피를 입히는 일은 삼가야 한다. 문제는 성숙하지 못한 사회일수록 대중 선동이 잘 먹힌다는 것이다.

⊙ 불량식품 사고들

불량식품으로 낙인 찍히는 경우들도 그렇다.

오래 전의 일이지만 모 식품회사가 미국에서 공업용으로 쓰는 우지(쇠 기름)를 들여와 라면에 넣는다는 TV보도로 라면 쇼크가 전국에 확산되었다.

우지에 적용하는 미국의 기준은 세계에서 엄격하기로 유명해 우리가 보통 식용으로 쓰는 기름보다 고급의 기름이었지만 이 라면 회사는 거의 망할 지경까지 여론 재판을 받았다.

소꼬리만 하더라도 미국에서는 비식용이었지만 한국인들은 꼬리곰탕을 많이 먹고 있다.

미국의 기준을 가지고 와서 한국에서 일어난 우스꽝스런 히스테리였던 것이다.

쓰레기 만두는 법원에서 무죄판결을 받았고 소위 포르말린 통조림 사건도 역시 무죄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이 통조림 회사는 망했다.

얄팍한 과학적 지식이 종종 대중의 히스테리를 만들어 내고 광우병 촛불은 그 본보기였던 셈이다.

장경영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longr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