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깔 다른 보수-자민당 연정 출범…335조원 재정적자‘발등의 불’

[Global Issue] 200년만에 최연소 총리 캐머런…‘영국病’ 치유할까
"막대한 재정적자와 뿌리 깊은 각종 사회문제,개혁을 요하는 정치 시스템까지 지금 영국에는 처리해야 할 도전과제들이 산적해 있다.

이에 따라 보다 밝은 미래를 만들기 위해 보수당과 자유민주당은 연정을 결정했고,함께 문제를 해결해 나갈 것이다.

"(캐머런 영국 신임총리 런던 다우닝가 10번지 총리관저 앞 연설)

데이비드 캐머런 보수당 당수(43)가 지난 11일 영국의 새 총리로 임명됐다.

일간지 더 타임스 등 영국 언론들은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이 고든 브라운 총리가 사퇴한 뒤 캐머런 보수당 당수를 총리에 임명하고 내각 구성을 요청했다"고 보도했다.

13년간의 노동당 집권시대가 막을 내리고 영국 헌정사상 2차 대전 후 첫 연정인 보수당과 자유민주당의 연립정부가 들어선 것이다.

영국 새정부는 곧바로 조각에 들어갔고 재정적자 문제 등에 대한 대대적인 개혁에 착수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벌써부터 정책 차이가 적지 않은 두 정당 간 '무지개 연정'이 영국을 경제위기에서 제대로 구해낼 수 있을지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 보수당 집권 위해,첫 단추부터 양보

가디언과 BBC방송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43세의 캐머런 신임총리는 200여년 만에 가장 젊은 총리로 영국을 이끌게 됐다.

그는 보수당 최연소 당수에 오른 지 5년 만에 집권까지 성공하면서 '보수당의 개혁가'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튼스쿨과 옥스퍼드대를 최우수 성적으로 졸업한 '정통 엘리트'로 시장을 중시하면서도 분배와 약자를 고려하는 '온정적 보수주의'로 보수당의 외연을 넓히고 활력을 불어 넣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1634억파운드(약 335조원)라는 사상 최대의 재정적자 부담을 해결해야 할 캐머런 총리의 대외적 정치환경은 그다지 녹록하지 않은 상황이다.

영국에서 보수당의 승리는 글로벌 경제위기 후 유럽 전역에서 우파정당들이 약진하고 있는 흐름과도 궤를 같이 한다.

우파정당들은 경제성장과 감세,일자리 창출,공공 부문 구조 조정,복지지출 삭감 등을 전면에 내세우며 약진하고 있다.

2008년부터 이탈리아,독일,헝가리 총선과 유럽의회 선거에서 모두 보수정당이 승리를 거둬 현재 유럽연합(EU) 국가 중 좌파정당이 집권한 국가는 스페인과 그리스 등 두 나라에 불과한 상황이다.

이번 총선에서 어느 정당도 과반을 차지하지 못하는 '헝 의회(Hung Parliament)'가 탄생하면서 정치색깔이 상이한 자유민주당과 연정을 통해 집권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헝 의회'라는 용어는 1974년 영국의 일간 가디언이 과반정당이 없는 당시 총선결과를 놓고 "마치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것처럼 불안하다"고 비유한 뒤부터 널리 퍼졌다.

더타임스는 8일 "클리프행어(cliffhanger · 절벽에 매달린 것처럼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초접전) 끝에 '헝 의회'가 도래했다"고 보도했다.

⊙ 초접전 끝에 탄생한 '헝 의회'

비례대표제와 강력한 지역정당이 있어서 중앙 의회에 절대 다수당이 없는 상황이 늘상 발생하는 독일 이탈리아 아일랜드 캐나다 같은 나라에선 '헝 의회'란 말 대신 '연정''소수정부'와 같은 용어를 주로 사용하고 있다.

현재 독일 스페인 이탈리아 네덜란드 노르웨이 오스트리아 등 대부분 유럽 국가가 연정 형태로 정부를 구성하고 있다.

하지만 양당제의 전통이 확고하게 자리잡은 영국에선 대부분의 총선에서 노동당이나 보수당이 과반의석을 차지해 단독으로 정권을 잡아와 '헝 의회'가 결코 낯익은 상황은 아니다.

다른 유럽 국가들과 달리 과반 의석을 확보해야 집권당으로 인정하는 관례가 유지돼 왔기 때문에 '헝 의회'가 발생할 경우,정부 구성을 둘러싼 논란은 늘 분분할 수밖에 없었다.

보통 제1당이 집권하는 게 자연스럽지만 연정을 거치면 어느쪽이 집권하던 정통성에 상처를 입고 오래가지 못했다.

이렇듯 영국에서 정치 불안정이 심화되던 시기나,정치 지형이 크게 변하던 시기에 간헐적으로 등장하던 '헝 의회'가 이번에 재현되면서 경제위기에 직면해 있는 '영국호'의 향방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실제 보수당은 닉 클레그 자민당 당수에게 새 정부의 부총리직을 맡기고 자민당 의원 4명을 연정내각의 각료로 임명했다.

차관급 직책 상당수도 자민당에 돌아갔다.

특히 연정 구성을 위해 첫 단추부터 보수당만의 '색깔'이 들어간 정책을 상당부분 철회하거나 양보해야 했다.

당장 보수당은 상속세를 부과하는 기준금액을 100만파운드로 상향 조정하겠다는 공약을 철회했고 가디언은 "캐머런이 연정구성을 위해 보수당의 핵심공약을 희생했다"고 평가했다.

여기에 소득세 면세점도 현행 연소득 6000파운드에서 1만파운드로 높이자는 자민당 공약을 수용했다.

재정적자 감축이 시급한 상황에서 상당 수준의 세원이 줄어드는 어려움을 집권을 위해 감내키로 한 것이다.

또 각종 선거 관련 제도 개편에서도 자민당의 의견을 대폭 수용했다.

⊙ 연정 내 불협화음 어떻게 조율할지 과제

반면 영국 언론들은 보수당이 △핵억제력 유지 △원자력 지원책 실시 △이민자 수 제한 등 사소한 분야에서만 '승리'를 거뒀다고 꼬집었다.

더 타임스는 "어려운 과제는 이제부터 시작"이라며 보수 · 자민연정의 앞날에 험로가 놓였음을 예고했다.

보수당 정책의 핵심인 재정적자 개혁안 실시에도 암초가 적지 않다.

일단 보수 · 자민 양당은 재무부와 영국중앙은행(BOE)의 조언을 받아 올해 비핵심 공공 서비스 분야에서 60억파운드(10조원)의 지출을 삭감한다는 점에 합의를 이뤘다.

당장 올해부터 과감한 재정지출 축소에 들어간다는 보수당의 계획이 반영된 것이다.

연정 내각의 초대 재무장관에 내정된 조지 오스본은 "60억파운드 공공 부문 지출 삭감을 위한 긴급 예산안을 50일 안에 마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자민당이 그동안 "공공 부문 지출을 갑자기 삭감하면 경기회복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며 내년부터 재정감축을 실시할 것을 주장해온 만큼 양당이 향후 추가적인 감축 노력에서도 원만히 정책공조를 이룰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이와 함께 일단은 양당 간 교통정리를 이룬 모습이지만 대유럽정책이나 이민정책 등에서도 양당 간 이견이 분출될 가능성은 매우 높다는 게 일반적인 분석이다.

아프간전 철군 문제도 연정 내 불협화음의 원인이 될 가능성이 높다.

김정은 한국경제신문 기자 likesmile@ha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