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왜 일을 해야 하는가 ?

[실전 고전읽기] 66. 막스 베버「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고등학교 사회문화 중 관료제에 대한 부분이 있다.

보통은 네트워크 집단과 관료제 집단을 비교해서 공부하게 되는데,관료제라는 개념을 만들어 낸 사람을 베버라고 알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고등학생들에게 있어서 막스 베버는 관료제와 연관된 인물일 뿐 그가 사상사에서 얼마나 중요한 사람인지를 잘 모르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막스 베버는 현대 사회학의 아버지라고 불릴 만큼 아주 중요한 인물이다.

그의 사상은 관료제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많이 사용하고 있는 '카리스마'라는 말을 고안해 냈으며,현대 사회과학의 방법론 -이론적 틀을 사전에 마련하고 이에 맞춰 사회 현상을 분석하는 방법이 아닌 다양한 사회 현상과 역사적 사실로부터 하나의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이론을 이끌어 내는 방법,쉽게 말해 사회학에서 객관성과 과학성을 도입한 방법- 을 새롭게 정립한 20세기의 가장 뛰어난 사상가 중 한 명이다.

막스 베버(Max Weber · 1864~1920년)는 독일의 튀링겐주 에르푸트르에서 상인 출신의 국회의원 아들로 태어났다.

그 후 독일 각지의 4개 대학에서 철학,역사학,경제학을 공부하였고 1892년 베를린대를 시작으로 강의와 연구에 종사하게 된다. 이후 수많은 저작을 남기다 1905년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을 쓰게 된다.

⊙ "프로테스탄티즘 윤리가 자본주의 정신을 낳게 했다"

사회학자들의 관심은 사회현상에 대한 설명이다.

예를 들어 2002년 월드컵에서 한국 사람들은 길거리로 뛰쳐나와 모두 똑같은 빨간 옷을 입고 열정적으로 응원한 사회현상에 대해 설명하고 싶어하는 것이다.

왜 동시대에 다른 나라에서는 이러한 사회현상이 일어나지 않았을까,다시 말해 왜 한국에서만 이러한 사회현상이 발생했는가를 설명하려고 하는 것이다.

이러한 관심을 당연히 가장 유능한 사회학자 중의 한 명인 베버가 가진 것은 당연했다.

그의 관심은 "왜 자본주의는 서구에만 있는가"였다. 2002년의 거리응원을 분석하기 위해 한국인의 문화와 사상,그리고 역사를 살펴봐야 하는 것처럼 베버 역시 서구의 문화와 사상,역사를 되짚는 것에서 생각을 발전시켜 나간다.

베버가 보기에 서구에만 자본주의가 있는 이유는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라고 보았다.

그렇다면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란 무엇인가?

16세기 루터로 대표되는 가톨릭에 대한 대대적인 저항운동,즉 종교개혁이 있었고 사제 없이도 하느님과 인간은 만날 수 있다는 교리를 중심으로 갖는 교회,즉 'protestant church'로부터 프로테스탄티즘,지금의 개신교(改新敎)가 발생하게 된다.

이러한 움직임 중 가장 파급력이 강했던 것 중 하나가 제네바에서 종교개혁을 성공시킨 프랑스의 종교개혁가 장 칼뱅(Jean Calvin)이었다.

그의 핵심 사상은 '소명설'로,소명설이란 모든 사람들이 내세가 신의 뜻에 의해 이미 결정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입장에 따르게 되면,인간은 불안에 빠질 수밖에 없게 된다.

쉽게 말해 내가 구원받았는지 그렇지 않았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간은 구원에 대한 확실한 표식을 원했고,신이 정해준 소명을 잘 따르는 것이 바로 불안을 제거하고 구원에 대한 확실한 답이 된다.

칼뱅은 모든 직업이 하느님의 거룩한 부름에 의한 것이므로 목사나 사제뿐만 아니라 일반적인 직업도 하느님이 허락한 거룩한 일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자신의 직업에 충실하고 성실하게 일하면 되는 것이다.

주로 칼뱅의 사상이 상공업자들에게 크게 영향을 주었다는 것을 감안하면,칼뱅을 따르는 사람들은 성실하고 근면하게 부를 축적하는 것이 거룩한 부름에 의한 것이므로 이들은 구원을 받을 수 있게 된다.

그런데 기존의 대부분 종교에서 부의 축적은 터부시되어 왔다.

부자가 천국에 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만큼 어렵다는 말처럼 기독교 초기와 기독교가 지배한 유럽의 중세까지만 하더라도 부의 축적은 부정적으로 받아들여졌다.

마찬가지로 불교, 유교 모두 부의 축적에 대해 부정적이거나 혹은 장려되는 일은 아니었다.

물론 힌두교의 경우 부의 축적에 대해 어느 정도 인정하지만, 인간의 궁극적인 목표는 해탈이다.

부단하고 지속적이며 체계적인 세속적 직업노동을 최고의 금욕적 수단이자 동시에 신앙의 진실성에 대한 가장 확실하고 분명한 증거로 보는 종교적 입장이 '자본주의 정신'이라 불리는 생활 태도를 형성시켰다.

소비 억제와 근로 활동은 필연적으로 금욕주의적 절약 행위를 통한 자본 형성을 초래한다. 재산의 소비 억제는 자본의 생산적 투자를 가능하게 하여 궁극적으로 소비를 증가시키게 된다.

이러한 영향이 얼마나 강했던 것인가를 통계적으로 정확히 규명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나 엄격한 칼뱅주의가 7년간 지배했던 네덜란드에서는 종교적으로 독실한 사람들이 거대한 부(富)에도 불구하고 매우 소박한 생활을 해서 막대한 자본을 축적했다.

또한 모든 시대,모든 곳에 존재했었고 20세기 초 독일에도 뚜렷하게 목격되는 시민적 재산의 '귀족화' 경향이 봉건적 생활 형태에 대한 청교도주의의 반감 때문에 상당한 저지를 당했다는 것도 분명하다.

17세기 영국의 중상주의 저술가들은 네덜란드의 자본력이 영국을 능가하게 된 원인을,영국과는 달리 네덜란드에서는 새로 벌어들인 재산을 대체로 토지에 투자하지 않았다는 데서 찾았다.

하지만 이것은 단순히 토지를 구입하지 않았기 때문만은 아니다.

또 다른 중요한 원인은 네덜란드에서 귀족적인 봉건적 삶의 양식이 향유되지 않았다는 데 있다.

왜냐하면 이로 인해 자본주의적 투자가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17세기 이후의 영국사회는 '좋았던 옛날의 영국'을 대표하는 '지주계급'과 사회적 영향력을 가진 청교도로 양분되었다.

별 생각 없이 삶을 즐기는 것과 엄격히 통제되고 억제된 자기 규제와 관습적인 윤리적 구속,이 두 특징은 영국인의 민족성에 나란히 나타나 있다.

마찬가지로 북미 식민지의 초기 시절에도 연한(年限)계약 노동자의 노동력으로 농장을 건설하고 영주처럼 살려했던 '모험가'와 특별히 중산층적 삶을 지향하는 청교도가 날카롭게 대립한 바 있다.

- 2002학년도 고려대 정시 기출문제 중에서

따라서 베버는 바로 이러한 칼뱅의 소명설의 영향이 다른 지역이 아닌 서구에서만 자본주의가 나타나게 된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서구사회의 부의 축적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더 나아가 종교적인 윤리로 인해 부는 끊임없이 축적되고 소비는 억제되었고 그 결과 자본의 축적으로 인해 자본주의가 등장하게 되었다고 베버는 말한다.

이러한 영향을 받은 유럽인이 신대륙으로 건너가 만든 미국 역시 자본주의가 놀랍도록 발전한 것은 베버의 입장에서 보면 당연한 것이다.

실제로 미국 주류 계층은 WASP(White Anglo-Saxon Protestant)로 불린다.

명심하라, '시간'은 돈이다.

하루 노동으로 10실링을 버는 자가 산책을 하거나 방 안에서 한나절을 게으르게 보냈다면 설사 6펜스밖에 쓰지 않았더라도 단지 그것만을 쓴 게 아니라 그에 더해서 5실링을 더 지출한,아니 내다버린 셈이다. (……)

명심하라,신용에 영향을 미칠 만하면 아무리 사소한 행동이라도 주의해야 한다.

채권자가 오전 5시나 저녁 8시에 그대가 작업하는 망치 소리를 듣는다면,그는 앞으로 반년이라도 흔쾌히 참아줄 것이다.

그러나 마땅히 노동해야 할 시각에 그대를 당구장에서 발견하든가 선술집에서 그대의 목소리를 듣는다면, 그는 다음날 아침이 되자마자 그대가 준비할 형편이 되든 안 되든 당장 돈을 요구하러 달려올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런 일은 네가 채무를 기억하고 있는 증표이며, 네가 주의 깊고도 성실한 사람이라는 점을 남에게 보여주어,그로써 너의 신용은 증대될 것이다.

(프랭클린) - 2008학년도 인하대 모의 논술 중에서

이는 마르크스가 말한 인간의 욕심으로 인해 태동된 자본주의와는 전혀 다른 접근이라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자본주의라 하면 욕심에 의한 부의 축적, 혹은 물질적 생활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한 수단과 같은 부정적인 입장이 지배적이지만 베버는 서구 자본주의를 수단이 아닌 삶의 목적 그 자체, 더 나아가 '도덕' '정신'이라 명명하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것은 베버가 프로테스탄티스트들이 자본주의를 만들어 내려고 하지는 않았다고 말한 부분이다.

베버는 프로테스탄티즘에서 자본주의의 연결을 '의도하지 않은 결과,즉 선택적 친화성'이라고 부르는데, 프로테스탄티즘과 자본주의가 우연히 친화성을 갖고 상호작용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 왜 이 책을 읽어야 할까?

베버의 얘기를 듣다보면 한가지 의문이 생기게 된다.

현재 우리가 받아들이고 마치 진리처럼 따르고 있는 자본주의와는 무언가 다르다는 점이다.

우리의 자본주의 역시 서구의 자본주의와 동일하다.

그런데 왜 부동산 투기,정경유착,빈부격차,노동문제 등은 발생하는 것일까?

베버가 지금 살아있다면 뭐라고 말할까?

베버는 이를 모두 천민 자본주의라고 이미 불렀다.

즉,금욕적 생활방식과 노동과 직업에 대한 소명의식 없이 욕심으로 가득찬 부의 집착은 단지 천할 뿐이라는 것이다.

베버의 이러한 목소리는 '천민 자본주의'가 지배하고 있는 현재의 한국사회에 하나의 목소리로 작동될 수 있을 것이다.

천민 자본주의가 아니라 '노동의 합리적인 자본주의적 조직화'와 '정기적 시장에 맞추어진 합리적 산업조직의 존재'를 갖는 합리적 자본주의는 사람들의 생활양식과 사고 모두 변화해야 하기 때문이다.

강현정 S · 논술 선임연구원 basekanggun@lyco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