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고 합리적인 이상 사회는 없다
[실전 고전읽기] 65. 토마스 모어「유토피아」
우리는 가끔씩 이런 의문을 갖게 된다.

상품 생산량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경상수지와 자본수지는 흑자를 기록하고 더불어 국민 소득도 증대한다는데,그렇다면 그 흑자와 증가분은 도대체 어디로 간 걸까?

벌어들인 돈이나 재화가 있다면 그것이 어떤 형태로든 개인에게 체감이 되어야 할 텐데 왜 사는 게 갈수록 힘들어진다는 사람만 자꾸 늘어나는 것일까?

예컨대 한 가정에서 아버지의 수입이 늘면 자연히 그 결과로서 살림살이도 좀 나아지고 밥상에 고기반찬도 자주 올라오고 자식들 용돈도 더 챙겨주고,그럼으로써 가족의 화목이 점층적으로 도모되고,그래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국제적으로 국격이 높아지고 세계 몇 위의 경제대국이 되었다는 보도를 지겹도록 접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성과의 콩고물은 전혀 우리에게 떨어지지 않으니 참으로 미스터리한 일이다.

이렇게 무언가 불공정하고 억울하고 불편한 세상에 내동댕이쳐졌다는 느낌을 가지면 가질수록 우리는,지금 여기에 없지만 있기만 하다면 당장에 그곳으로 이민이라도 가고 싶은 이상향을 꿈꿔 보게 마련인데,500여년 전의 토머스 모어도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았던 모양이다.

유토피아인들은 하루를 24시간으로 나눠 그 중 여섯 시간만을 일할 시간으로 배정하고 있습니다.

정오까지 세 시간 일하고,정오가 되면 점심을 먹으러 갑니다. 점심 후에 두 시간 쉬고 나서,다시 세 시간 일합니다.

그러고 나서 저녁을 먹고,저녁 여덟시께에 잠자리를 들어 여덟 시간 동안 잠을 잡니다.

일하는 시간,잠자는 시간,밥 먹는 시간 이외의 낮 시간은 누구나 자기 마음대로 쓸 수 있습니다.

다만 이 자유시간을 술 마시고 떠들거나 빈둥빈둥 노는 데 허비하는 것이 아니라,자기가 선택한 어떤 일을 하는 데 제대로 쓴다면 말입니다.

보통 이런 빈 시간은 지적 활동에 이용됩니다. 그곳에서는 매일 아침 일찍 공개 강의를 하는 것이 정착된 관습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 강의에는 학문에 전념하도록 특별히 선발된 사람들은 반드시 출석하도록 되어 있습니다만,그 밖의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 남녀를 막론하고 아주 많이 강의를 들으러 모여듭니다.


각자의 취향에 따라 이 강의 또는 저 강의를 들으러 갑니다.

그러나 지적 생활이 적성에 맞지 않는 많은 사람들처럼,이런 나머지 시간을 차라리 자기가 종사하는 일에 더 사용하고 싶은 사람은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실은 이런 사람들은 나라에 아주 유익한 사람들이라고 해서 칭찬을 받습니다.

저녁을 먹고 나면 한 시간 동안을 오락으로 보냅니다. 여름은 정원에서,겨울은 식사를 하는 공회당에서 즐깁니다.

거기서 그들은 음악을 연주하거나 담소를 나누며 즐겁게 지냅니다. 주사위 놀음이나 그 밖의 다른 어리석고 해로운 놀이는 전혀 모릅니다. (중략)

여섯 시간밖에 일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어쩌면 생필품의 공급이 부족할 것이라 생각하실지 모르겠습니다만,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의 작업시간은 생필품과 생활에 편리한 물품까지 실컷 쓰고 남을 정도로 만들어 내는 데 충분하기 때문입니다.

다른 나라에서는 전체 인구 중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지내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를 생각해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2008 동국대 정시>

토머스 모어의 이상 세계에서 가장 눈에 띄는 점은 시간의 활용이다.

하루에 6시간밖에 노동을 하지 않고도 생활에 부족함이 없이 재화를 소비할 수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우리의 마음은 충분히 들뜬다. 얼마나 행복할 것인가?

OECD 국가 가운데 최고의 노동 시간을 자랑하는 우리로서는,6시간 일하고 남은 시간에는 담소나 나누었음에도 불구하고 생활에 아무런 불편함이 없다는 그곳으로 당장 내달려가 버리고 싶은 심정이다.

직업 하나로도 모자라서 두 개,세 개씩 이리저리 뛰어다녀야 그나마 미래를 기획해볼 수라도 있는 사람들이 인구의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는 현실을 우리는 지금 살고 있다.

인생의 즐거움과 삶의 인간적 목적이 무엇인지에 대하여 생각하는 것은 금지되고 얼마의 연봉과 몇 평짜리의 아파트와 어떤 배경을 가진 배우자 등에 관하여 고민하는 것만이 오로지 권유되는 세상에서 우리는 살고 있다.

대학이 대기업의 하청 업체로 전락하고,지성의 발달과 정신 생활의 고양에 매진해야 할 학생들은 더 많은 자격증과 더 훌륭한 스펙을 위해 밤낮없이 노력한 결과 대부분 다시 더 많은 자격증을 따고 더 훌륭한 스펙을 쌓기 위해 새로 시작한다.

그렇게 계속 새로 시작할 수밖에 없었던 학생들이 세월이 가면 도대체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게 어딘가로 증발해 버리고 만다.

그리고 학생들은 계속 공급되고 이 과정은 무한히 반복된다.

교육과 노동과 생산 체계가 이와 같은 방식으로 일관되면 세계 전체와 그 세계 속의 인간들의 가치 지향 전체가 질적으로 변화할 수밖에 없다.

이쯤 되면 매일 아침 열리는 공개 강의를 들으러 다니며 시간을 지적 생활에 이용한다는 것은 꿈도 못 꿀 일이거나 꿈 속에서나 가능한 일이 된다.

토머스 모어의 꿈 속 이야기는 다음과 같이 계속된다.

이러한 자들을 모두 헤아려 보면 인간에게 필요한 물건들이 당신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적은 수의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입니다.

중요하지 않은 직종에 종사하고 있는 노동자들을 유익한 일자리에 배치하고 게으름을 피우는 사람들에게 생산적인 일을 맡긴다면 인간에게 필요하고 유용하고 즐거운 물건을 만들어 내는 데 짧은 시간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을 쉽게 깨달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들이 이 국가 체제를 구성한 주요 목적은,모든 시민들이 나라에서 꼭 필요로 하는 일 말고는 가능한 한 많은 시간을 육체 노동에서 벗어나 마음의 개발에 전념하도록 하는 데 있습니다.

그들은 바로 거기에 삶의 행복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지요.

한편,그들이 사는 도시는 동일한 규모의 네 개 구역으로 나뉘어 있는데 각 구역의 한복판에 시장이 있습니다.


각 가구에서 만들어 내는 물품들이 이곳으로 운반되어 창고에 보관되는데,각 물품은 각기 정해진 장소에 놓여 있습니다.

각 가구의 가장은 여기에서 자신과 자기 가족에게 필요한 물품을 찾아서,값을 치르거나 어떤 보상을 하지 않고 그냥 가져갑니다.

그가 아무것이나 가져오지 못할 이유는 전혀 없습니다.

모든 물품이 풍족하기 때문에 필요 이상으로 청구해서 가져갈 위험도 없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어떤 물건이든 언제나 풍족하게 공급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필요 이상의 물품을 저장해 둘 필요가 없습니다.

결핍의 공포가 없는 한 짐승조차도 천성적으로 탐욕을 부리지 않는 법입니다.

<2010 중앙대 수시2>

노동 시간이 현저하게 적은데도 불구하고 생필품이 넘쳐나는 이유를 이제 알 수 있다.

대개의 경우 우리와 마찬가지로 생활에 필요한 물건을 만드는 사람들은 생각보다 그 수가 적다.

토머스 모어가 살았던 당시에는 인구의 반을 차지하고 있는 여자,성직자,귀족 계급 등이 일하지 않는 자들에 속했다.

이들이 모두 같이 일을 하면 인간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물건을 풍족하게 얻지 못할 이유가 없다.

지금 우리는 많은 여자들이 일을 하고자 하며 실제로도 하고 있고 성직자 수는 그 시대보다 상대적으로 적으므로,귀족 계급 정도가 일하지 않는 자가 되겠다.

어떤 자들이 현대의 귀족 계급에 속하는지는 말할 필요도 없겠거니와,큰 문제는 서두에서 이야기했던 성장의 수확물이 왠지 이 일하지 않는 귀족 계급에게 아주 많이 돌아가고 있음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는 데 있다.

유토피아에서는 노동이 사회적으로 공평하게 계획되어 이루어지고 노동의 성과로서의 재화가 공정하면서도 자유롭게 배분되기 때문에 결핍이 발생하지 않는다.

결핍은 과잉일 때 발생하는 것이다.

과잉이 생산되지 않고 과잉이 소유되지 않으며 과잉을 축적하지 않으면 결코 결핍은 발생하지 않는다.

주택 보급률이 100%를 초과해도 주택을 과잉 소유하는 자들이 있기 때문에 주택 결핍에 늘 허덕이는 사람들이 생겨나는 것이다.

더불어 평생을 노동에만 봉사하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노동과는 거의 무관한 사람들도 많은 사회적 노동의 불균형 역시 문제를 심화시킨다.

대개의 경우 후자 쪽이 더 부자인 이 상황을 딱히 어찌해 볼 바 없다는 점에서 우리의 분통은 더욱 터진다.

결과적으로 성장도 생산도 이익도 과잉인데,죽어라 노동해서 이 모든 것들을 몸으로 가능케 한 사람들에게는 그 콩고물조차 떨어지지 않고 오히려 토머스 모어적 국면에서의 일하지 않는 자들에게 그 떡이 돌아가고 마는 현실 때문에 모어 이후 500년이 지나도 우리 현실은 이 모양이다.

토머스 모어는 당대 영국의 경제 정치 상황을 비판할 목적으로 「유토피아」를 집필했다.

노동 시간과 조건에 대한 회의와 개선,사회적 합리성에 기초한 노동 인구의 배분,자본에의 맹렬한 경도와 황금만능에 대한 비판,토지와 주택의 과잉 소유에 대한 문제 제기,지적 성장과 정신적 삶에의 추구 등 시대와 장소를 막론하고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그 내용적 측면에서 거의 예언적 지침서 수준에 다름 아니다.

그러나 슬픈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유토피아는 '유토피아'에 불과하다는 사실이다.

Utopia의 어원은 그리스어 Outopos다. ou는 '없다'는 뜻이고,topos는 '장소'라는 뜻이다.

진리영 S · 논술 선임연구원 furyfury13@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