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 국가 신용등급 3단계 강등…스페인도 두단계 낮춰

그리스 위기가 또다시 글로벌 금융시장에 충격파를 던졌다.

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가 지난달 27일 그리스의 국가신용등급을 정크본드 수준으로 낮추고 포르투갈의 신용등급도 두 단계 내리면서 한동안 잠잠하던 유로존 국가의 연쇄 부도 공포가 되살아나고 있다.

게다가 경제 규모가 유로존(유로화 사용 16개국) 4위인 스페인마저 신용등급이 한 계단 내려가면서 그리스발 재정위기 쇼크는 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S&P는 그리스의 신용등급을 3단계 낮춰 정크본드(투기채권) 등급인 'BB+'로 강등했다.

S&P는 그리스에 대해 "정부의 재정적자 감축 노력이 처한 정치적,경제적,재정적 위험들에 대한 평가를 바탕으로 등급을 하향 조정했다"고 설명했다.

S&P는 또 포르투갈의 국가 신용등급도 'A+'에서 'A-'로 두단계 하향 조정했다.

S&P는 포르투갈의 신용등급 하향 조정과 관련,"포르투갈이 직면한 재정 리스크가 증폭되고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라며 "포르투갈 정부가 비교적 높은 수준의 부채를 2013년까지 기준에 맞춰 낮추는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고 밝혔다.

포르투갈은 그리스의 재정위기가 확산될 경우 가장 타격을 받기 쉬운 국가로 꼽혀 왔다.

포르투갈의 지난해 재정적자는 국내총생산(GDP)의 9.4%로 증가했으며 국가 부채도 1260억유로로 GDP의 76.6%에 달했다.

S&P의 칼날은 스페인으로도 향했다.

S&P는 그리스와 포르투갈의 신용등급을 낮춘 지 하루 만인 28일 스페인의 신용등급을 'AA+'에서 'AA'로 한 단계 낮춘다고 밝혔다.

S&P는 "스페인이 장기간에 걸쳐 경기성장 둔화를 겪을 것으로 전망된다"며 "스페인의 재정 위기가 더 악화될 경우 신용등급을 추가로 떨어뜨릴 수 있다"고 밝혔다.

스페인은 20%를 넘는 높은 실업률과 주택시장 붕괴,GDP 대비 11.4%에 달하는 막대한 재정적자와 국가부채 등으로 유로존의 연쇄부도를 촉발할 수 있는 잠재적 '뇌관'으로 간주돼 왔다.

이로써 최근 유로존 최악의 재정적자를 기록하는 나라들인 이른바 'PIGS(포르투갈,이탈리아 · 아일랜드,그리스,스페인) 중 이탈리아와 아일랜드를 제외한 세 나라의 신용등급이 한꺼번에 내려가면서 시장의 불안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특히 이번 위기의 진원지로 지목되는 그리스는 유럽연합(EU)과 국제통화기금(IMF)이 몇 달째 재정위기 진화에 나섰는 데도 불구하고 도무지 상황이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주요 외신 보도와 전문가들의 분석을 종합해 보면 그리스는 △위기의식이 미약하고 자구노력을 충분히 기울이지 않는 데다△산업과 금융 등 경제 기반도 취약하고△위기 이전이나 지금이나 투명성을 결여해 시장 신뢰를 잃었으며△악재를 해결해 나갈 나라 안팎의 리더십이 부족하다는 '네 가지 공백'이 겹쳤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그리스 노동계는 정부의 긴축안에 반발해 또다시 총파업에 뛰어들었다.

그리스 최대 공공부문 노조단체인 공공노조연맹(ADEDY) 소속 아테네 대중교통조합은 추가 재정긴축안에 항의해 지난달 27일 파업에 돌입했다.

조합원 50만명의 ADEDY는 아테네 도심에서 가두시위까지 벌였다.

최대 민간부문 노조단체인 그리스노동자연맹(GSEE)도 같은 이유로 총파업에 들어갈 태세다.

IMF 구제금융에 대해서도 국민들의 70%가 요구 조건이 심하다며 반대한다.

1997년 말 외환위기를 맞아 온 국민이 금 모으기까지 벌이며 혹독한 구조조정을 벌였던 한국과 매우 대조적이다.

"관광업 운송업 외에 특별한 수익원도 없는 허약한 경제 현실에 어울리지 않게 방만하게 공공부문 지출을 늘리다 심각한 재정난을 야기했다"(파이낸셜타임스)는 지적이 이어지지만 그리스 정부의 대응은 미온적이다.

2004년부터 2009년까지 공무원을 5만명이나 늘렸고,과도한 연금제도는 정부의 채무 부담을 가중시켰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투자전략팀장은 "대규모 재정 축소 등 혹독한 자구책을 마련해야 할 상황"이라며 "(지원해봤자) 결국 '밑빠진 독에 물붓기'가 될 위험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무책임과 더불어 '투명성' 문제도 사태 악화의 요인이다.

최근 유로스타트는 그리스의 재정 적자가 국내총생산의 13.6%라고 밝혔는데 이는 그리스 정부가 앞서 발표한 12.9%보다 훨씬 높다.

유로존이 사태 해결 과정에서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한 점도 사태를 꼬이게 했다.

'최대주주' 격인 독일은 특히 부정적인 국내 여론을 의식,미적지근한 태도로 시간만 끌면서 사건을 키워버렸다.

그리스가 유로화를 사용하느라 독자적인 통화 및 외환 정책을 펼 수 없었다는 것도 한계점이었다.

포르투갈의 경우 그리스보다는 그나마 형편이 나은 편이지만 속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포르투갈 정부는 공무원 임금 동결 등을 통해 2013년까지 재정적자를 GDP의 3% 이하로 낮추겠다고 공언하고 있지만 시장의 불신은 여전하다.

집권 사회당 연립정부가 재정적자 감축 목표를 실현시킬 만큼 정치력을 갖추지 못했다는 것이다.

IMF와 유럽중앙은행(ECB) 등은 포르투갈과 그리스의 상황이 다르다고 강조해왔지만 충분한 설득력을 얻지 못하고 있다.

15~16세기 해양 강국 포르투갈은 2005년만 해도 세계경제포럼(WEF)의 국가경쟁력 순위에서 22위에 올랐지만 방만한 복지정책 등으로 재정지출이 통제하기 힘든 수준으로 늘어나면서 쇠락의 길을 걸어왔다.

유로존 내 세 나라가 한꺼번에 신용등급이 하향 조정되면서 유로존 최대 경제국인 독일과 ECB, IMF는 사태 해결을 위해 머리를 맞대고 있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와 도미니크 스트로스-칸 IMF 총재,장 클로드 트리셰 ECB 총재는 4월28일 그리스에 대한 신속한 구제방침을 확인했다.

메르켈 총리는 이날 베를린에서 스트로스-칸 총재와 회담한 뒤 기자회견을 열어 "그리스 정부와 EU 집행위원회, IMF의 협상이 더욱 속도를 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점은 아주 명백하다"며 "유로존의 안정이 위기에 처해 있는 만큼 독일도 그리스 구제를 위해 독일의 몫을 하겠다"고 약속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도 이날 메르켈 총리와 전화통화를 하고 그리스 사태 해결을 위한 IMF와 유럽 국가들의 '시의적절한 지원'이 중요하다는 입장을 재차 확인했다고 백악관이 밝혔다.

IMF와 EU는 오는 10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그리스 구제안을 최종 확정할 예정이다.

이미아 한국경제신문 기자 mi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