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이란 다만 임금의 이름으로 갖는 것이 아니라,그 이름에 맞는 행동과 책임을 다할 때 임금이다.
개개인들이 이러한 틀을 깨려고 했기 때문에 일어난 혼란이기에 공자는 이러한 틀을 다시 만들어 놓는 것이다.
나아가 공자는 정명을 위한 구체적인 방법론을 내세우는데,그것이 바로 친친(親親)과 존존(尊尊)이다.
흐트러진 질서관계를 되찾는 두 가지 방법,그 중 친친이란 '마땅히 친해야 할 사람과 친하게 지낸다'란 뜻이며,존존이란 '마땅히 존중해야 할 사람을 존중한다'는 뜻이다.
즉 친친이란 모든 대상과의 관계에 있어 친함과 친하지 않음을 정확히 구별해 '우리'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며,존존이란 상하관계에 있어 그 질서를 규율함으로써 위아래가 바뀌는 폐단을 막고자 한 것이다.
어찌보면 친친이란 유교적 온정주의의 바탕이 되는 것이며,한편으론 온갖 비리의 근원이 되는 사고방식이기도 하다.
하지만 반대로 '팔은 안으로 굽는다는 인간의 극히 자연스러운 본성'을 확인한 것이기도 하다.
마찬가지로 존존은 '어른 공경'의 직접적인 근거도 되지만 반대로 권위주의적인 질서체계를 잉태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하기도 한다.
⊙ 영원히 이 질서 그대로,인(仁)과 덕(德)
흐트러진 질서를 바로잡았으니,이제 잘 형성된 질서는 다시 어찌 유지할 것인가도 문제가 된다.
물론 '다움의 철학'을 공고히 하여 위아래가 바뀌지 않는 것이 중요하겠지만,그렇다고 하더라도 일방적인 상명하복의 시스템이 결코 최선의 결과를 가져오지 않는다는 것은 21세기의 우리나 그때 그 시절의 공자나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통치방식으로의 인(仁 · 어짊,너그러움)이며,덕(德 · 훌륭함의 지향가치)이 등장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그것들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명확하게 밝히고 있지는 않지만,제자들의 질문에 등장하는 그것들의 이미지는 대략 다음과 같은 구절들에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사리사욕을 극복하여 예의 규칙으로 돌아가는 것(극기복례)이 인이다. 하루만이라도 극기복례한다면 천하가 인으로 귀의할 것이다. 子曰 克己復禮爲仁 一日克己復禮 天下-歸仁焉." (『論語』「顔淵」1)
"정치는 덕이라고 말한다. 이는 비유컨대 북극성이 제자리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뭇 별들이 그것을 향하는 것과 같다. 子曰 爲政以德 譬如北辰居其所而衆星共之." (『論語』「爲政」1)
☞ 2009년 인하대 수시기출문제 중에서
공자는 자신이 바라는 바를 미루어 다른 이를 대하는 원리에 기초한 인의 사상을 제시하였다.
그는,엄격한 법치는 백성들 사이에 정해진 죄만 짓지 않으면 된다는 식의 기회주의적 속성을 조장할 뿐 진정으로 부끄러워하는 마음을 갖게 하지 못하므로 바람직하지 않다고 보았다.
부끄러움을 모르면 사회 질서를 바로 세울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군주는 오직 덕으로써 백성을 너그럽게 대해야 본래의 착한 본성을 일깨우고 조화로운 인간 사회를 이룩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맹자에 의해 계승,발전된 이러한 공자의 이념은 과거 우리 민족의 전통 문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웃의 선의에 대한 믿음에 토대를 둔 끈끈한 공동체 의식이 협업에 기초한 벼농사 중심의 농경생활 양식과 결합함으로써 상부상조와 협동 단결을 가장 큰 특징으로 하는 전통 문화가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이다.
두레,품앗이,계,향약 등이 그 구체적인 예가 되는데,이러한 것들은 인과 예를 근간으로 하는 덕치가 단순한 사회질서 유지 차원을 넘어 한층 더 아름다운,'인간적인' 인간관계를 가능케 했음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할 수 있다.
☞ 2009년 숭실대 수시 기출문제 중에서
공자가 말하였습니다. "법률이나 명령 같은 것으로 백성들을 제재하고,그래도 잘 안 되어 형벌로써 백성들을 억눌러 무자비하게 다스리면,백성들은 형벌만을 모면하려고 겉으로만 추종한다. 당장에는 법령에 걸리지 않고 형벌을 모면하겠지만,실상에 있어서 백성들은 가슴 속에서 진심으로 우러나는 양심적인 수치심은 느끼지 않게 된다. 이러한 표면적이고 강제적인 방식이 아니라 덕으로써 백성들을 평등하게 다스리면 저마다 마음속으로부터 참 인간으로서 양심적인 수치심을 느끼고 올바르게 행동하여 끝내는 선에 이르게 될 것이다."
행정명령으로 백성을 이끌어가려고 하거나 형벌로써 질서를 바로 세우려 한다면 백성들은 그러한 규제를 간섭과 외압으로 인식하고 진심으로 따르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될 수 있으면 처벌받지 않으려고 할 뿐이라는 것이지요.
그뿐만 아니라 부정을 저지르거나 처벌을 받더라도 그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이와 반대로 덕으로 이끌고 예로 질서를 세우면 부끄러움도 알고 질서도 바로 서게 된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