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 “게임 중독은 마약 중독과 다를 것 없어”

반 “국민 기본권 제한…게임산업 위축 우려”

인터넷과 컴퓨터 보급이 일반화하면서 게임 중독이 커다란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게임 중독에 빠진 사람 중에는 식음을 전폐하다시피 하고 하루종일 게임에만 매달리는 경우도 많고 심한 경우는 현실과 게임 세계를 착각하는 일까지도 발생한다.

인터넷 게임에 몰두하던 부부가 어린 딸을 방치해 굶겨 죽이는 일이 있었는가 하면 한 20대가 게임을 말린다는 이유로 친어머니를 살해하는 충격적 사건도 발생했다.

게임 중독자가 얼마나 되는지 정확히는 알 수 없으나 행정안전부 조사 결과 인터넷 중독자 200여만명 중 상당수가 게임에도 중독돼 있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여기에는 청소년이 많이 포함돼 있는데 한국청소년상담원이 초 · 중 · 고교생 1564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29.3%가 게임 중독 증세를 보였다.

청소년 게임 중독은 학습을 방해하는 것은 물론 수면 부족 등으로 건강까지 해치는 경우도 많다.

이에 따라 문화체육관광부는 게임 중독을 막기 위한 '게임 과몰입 예방 및 해소대책'을 내놓았다.

오는 9월부터 18세 미만 청소년은 밤 12시 이후 심야에 일부 게임을 아예 못하게 하는 '셧다운제'를 도입하고 일정 시간 이상 게임을 계속하지 못하게 하는 '피로도 시스템'도 확대한다.

이 같은 정부 방침에 게임 중독의 부작용을 감안할 때 적절한 조치라는 평가가 있는 반면 실효성이 과연 있을지 의문이라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몇 개의 게임만 규제 대상으로 삼은 데 대해 업계의 반발도 만만치 않다.

정부의 게임 중독 대책을 둘러싼 논란을 분석해 본다.

⊙ 찬성 측, "게임 중독은 마약 중독과 같다"

한 번 게임을 시작한 사람은 쉽게 그만두지 못하는데 거기에는 다 이유가 있다.

분당서울대병원 김상은 교수 연구팀에 따르면 인터넷 게임 중독은 마약 중독과 같은 '의학적 질환'이다.

PET(양전자 방출 단층촬영)를 통해 인터넷 게임 '보통 사용자' 9명과 '과다 사용자' 11명의 대뇌를 측정 · 비교했더니 과다 사용자들의 경우 합리적 의사결정,충동 조절 등의 기능이 현저하게 떨어졌다고 한다.

게임 중독자와 마약 중독자의 대뇌신경학적 메커니즘이 비슷하다는 얘기다.

이처럼 지나친 게임 중독은 뇌 기능에 손상을 미치고 결과적으로 일상생활과 대인관계에까지 문제를 일으켜 우울증에 걸리기도 하고 감정 기복이 심해 쉽게 흥분하며 인내력이 약해지는 등 성격 변화에도 큰 영향을 주게 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스스로는 게임 중독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점이다.

한 전문의는 "게임 중독 증세가 심각한 사람은 체계적인 의학 치료를 받아야 하지만,문제는 본인 스스로가 자신이 게임 중독인지 아닌지 여부를 잘 판단하지 못하는 데 있다"면서 "자신 스스로가 게임에 중독됐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 않아 초기 증상은 바로 치료만 해주면 쉽게 좋아진다는 전문가들의 말은 그 사람들 앞에선 무용지물"이라고 설명한다.

⊙ 반대 측, "실효성이 없을 뿐더러 게임 산업을 위축시킬 수 있다"

일단 정부의 게임 규제책은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한다는 목소리가 있다.

게임을 즐기는 여부는 완전히 개인의 자유인데 이를 국가기관이 통제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주장이다.

이번에 정부가 내놓은 대책이 실제로는 실효성을 담보하지 못하는 '대책을 위한 대책'이 될 공산이 크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 규제를 어긴 업체에 대해 어떻게 제재할 것인지, 다른 사람의 아이디 등을 도용해 계속 게임을 하는 경우는 어떻게 대처할지 등에 대한 구체적 대안이 현재로선 없다.

또 다른 문제는 현 정부가 한편으로는 게임 산업을 비롯한 콘텐츠 산업을 적극 육성한다고 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게임 이용을 규제하는 것은 이율배반적이며 결과적으로 게임 산업의 위축을 불러올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정부 대책은 다중접속을 통한 역할수행게임 등 팀플레이 속성을 가진 온라인 게임의 특성을 감안하지 않은 것이라는 목소리도 있다.

여기에 사용자가 상대적으로 많은 게임이 주로 규제 대상이 된 데 대해 업계는 "게임 산업을 죽이는 것과 다름 없다"고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한국 온라인 게임의 경우 수출액이 영화 수출액의 50배가 넘을 정도로 경쟁력이 대단한데 게임 규제는 이런 경쟁력마저 말살하는 조치가 될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 일회성 대책이 아닌 장기적이고 실효적인 대책 세워야

게임 중독 문제가 제기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그런데 정부가 이번에 구체적인 규제책을 만든 것은 최근 게임 중독 관련 사건이 잇따른 데 대한 여론의 비판을 의식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한마디로 땜질씩 대책 성격이 농후하다는 얘기다.

물론 게임 중독의 심각성은 두말할 필요가 없을 정도이며 지금처럼 무작정 방치해서는 안 된다.

그렇긴 하지만 지금 같은 즉흥적 대책으로는 근본적인 문제 해결이 어려우며 현실을 반영한, 보다 더 근본적인 정책이 나와야 할 것이다.

또 게임의 역기능을 차단하되,순기능은 효율적으로 살려 콘텐츠 산업이 발전할 수 있는 방안 역시 요구된다.

그렇지 않아도 중국이 우리나라의 게임 산업을 맹추격하고 있는 와중에 효자 콘텐츠 사업인 게임 산업의 발목을 잡아서는 안 된다.

이와 함께 게임 중독자에 대한 체계적인 진단 및 치료 시스템도 서둘러 갖춰 나갈 필요성이 매우 크다.

김선태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kst@hankyung.com


용어풀이

셧다운제

게임 접속 제한 조치로 과도한 게임 중독으로부터 청소년을 보호하기 위해 온라인 게임 서비스 이용 시간을 일부 제한하는 제도다. 일정 시간이 넘으면 온라인 게임 화면에 경고문이 뜨면서 성인 인증을 받지 않은 계정의 접속을 차단한다. 태국과 중국에서는 이 제도를 도입해 시행하고 있다.

피로도 시스템

게임 이용 시간이 일정 시간 이상 지나면 아이템 취득을 어렵게 만들거나 경험치를 낮추는 등의 조치를 통해 게임의 흥미가 떨어지도록 함으로써 결과적으로 게임 이용을 자제토록 유도하는 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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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합뉴스 4월 12일자 보도기사

정부가 게임 과몰입을 막기 위해 청소년의 심야시간대 게임 이용 금지 대책을 실시한다.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화부)는 12일 청소년의 심야시간 게임 접속 제한 및 피로도 시스템 도입 확대 등 게임 과몰입 예방 및 해소 대책을 발표했다.

지난해부터 문화부가 게임 과몰입 대응 태스크포스(TF)를 통해 논의한 이번 대책은 국내 게임 산업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온라인게임에 대한 과몰입 대응을 주 내용으로 하고 있다.

이번 대책은 △게임이용시간 제한을 위한 예방적 기술조치 도입 △본인인증 강화를 통한 주민번호 도용 방지 △주민번호별 게임가입 확인 포털,자녀 게임이용 관리서비스 등 효율적인 게임이용 지도 및 관리 시스템 마련 △게임아이템 현금거래에 대한 합리적 규율 추진 △게임업계 자율로 연내 100억원 규모 '게임문화기금' 조성 등이다.

또한 △'게임 과몰입 대응 협의회' 운영 및 시민단체의 모니터링 지원 △과몰입 예방 및 해소 대책의 실효성 담보를 위한 법제도적 장치 마련 △게임산업의 지속성장을 위한 지원 확대 추진 △'건강한 게임문화 조성'과 '게임산업 지속성장 기반 강화'도 중점과제이다.

우선 문화부는 게임이용시간 제한을 위한 예방적 기술조치로 '피로도 시스템'과 '청소년 심야시간 접속제한' 등 대책을 추진하기로 했다.

'피로도 시스템'은 일정 시간이 지나면 게임아이템을 얻는 속도를 늦추는 등 장시간 게임이용을 막아주는 게임 내 시스템으로,현재 4개 롤플레잉게임(RPG)에 적용되고 있으며 연내 19개 게임으로 적용을 확대할 계획이다.

이들 19개 게임은 국내 RPG 시장의 79%를 차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