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는 창조적 파괴를 반복한다”
⊙ 손톱의 무게 vs 8t 30기가(Gigabyte) 정도의 용량을 가진 저장매체를 머릿속에 떠올리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최근의 컴퓨터들을 보았을 때도 대개 장착되어 나오는 하드디스크 용량은 300~500기가 정도의 공간을 가지고 있으니 말이다.
우리가 이동용으로 들고 다니는 USB 메모리를 본다면,더더욱 놀라게 된다.
이미 32기가는 어느 정도 상용화되어 8만원도 안 되는 돈으로 살 수 있다.
아직 널리 범용화되진 않았지만 휴대폰에 들어가곤 하는 Micro SD는 고작 손톱크기 정도로,떨어뜨리면 잃어버릴 수도 있을 정도로 작다.
하지만,1980년만 해도 30기가의 저장공간을 갖는다는 것은 일반적인 용도의 컴퓨터로는 꿈도 꿀 수 없는 것이었다.
30기가를 저장하기 위해서는 방안 한 가득,8t에 달하는 하드디스크 덩어리들이 묶여있어야 했다.
필요하더라도 살 수 없는 엄청난 고가였음을 두말할 필요가 없다.
이런 발전은 어떻게 가능했을까?
⊙ 소니의 몰락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확실히 소니(sony)는 접근할 수 없을 것만 같던 엄청난 벽이었다.
소니라는 이름이 갖고 있는 위치는 지금과는 사뭇 다른 것이었다.
전쟁이 끝난 다음해인 1946년부터 시작된 소니의 '최초 개발 시리즈'는 소니를 세계 최고의 전자제품업체로 키워준 힘이었다.
지금은 좀처럼 보기 힘든 테이프 레코더나 트랜지스터 라디오라든지,현대인의 생활 패턴을 바꾸어 놓았다는 평가를 받는 워크맨(walkman)(1979)이나 음악재생매체의 표준이었던 CD(Compact disk)(1982) 역시 그들의 작품이었다.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한물간 '소니'와는 확연히 다른 시절이었다.
여전히 소니는 영상기기나 가정용 오락기기에 있어 상대적 우위를 가지고 있지만,예전처럼 TV나 노트북,음악재생매체에 대한 우위를 잃은 지 오래다.
삼성전자가 2009년 7~9월에 3260억원을 벌어들일 동안,소니는 325억원의 손해를 봐야만 했다.
소니는 왜 무너진 것일까?
⊙ 창조적 파괴 (Creative destruction)
이 개념을 최초로 사용한 요셉 슘페터가 다소억울해할 수도 있겠지만,지금에 와서 창조적 파괴는 자본주의적 발전의 본질을 드러내는 개념으로 종종 언급되곤 한다.
요셉 슘페터가 애초에 그의 저작 <자본주의 사회주의 민주주의>에서 이 개념을 그렇게 사용한 것은 맞지만,궁극적으로 그는 자본주의가 가장 안정된 경제체제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그는 오히려 창조적 파괴로 이룩되는 자본주의적 발전의 성과가 자본주의를 살아남지 못하게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마르크스와는 다른 방법으로 자본주의의 종말을 보았다.
자본가와 노동자 간의 계급 대립과 갈등을 토대로 한 자본주의의 내부 모순이 피할 수 없는 폭력혁명을 견인한다고 보았던 마르크스와 달리,그는 자본주의 시스템을 그대로 인정하면서 오히려 칭찬까지 덧붙인다.
그 칭찬의 핵심적인 내용이 바로 자본주의가 가지고 있는 '창조적 파괴의 과정'이다.
기존의 몇몇 경제학자들이 과잉인구에 대해 잔뜩 겁을 먹었듯이,자본주의가 필연적으로 투자할 곳을 모두 소모한 후,돈을 벌 방법이 사라지게 된다면 그 운명을 달리해야 할 것이라는 주장을 내세운 것에 대해 슘페터는 단호히 대답한다.
"일단 벽에 부딪히더라도,자본주의는 또 다른 발전의 방법을 반드시 찾아내고야 말 것"이라고 말이다.
그리고 이 상황에서 기존의 틀을 깨부수고,혁명적인 진보를 이룩해내는 바로 그 과정에 대해 '창조적 파괴'라는 이름을 부여한 것이다.
그는 마르크스와 달리 자본주의에 대한 적대감을 표출하지 않았지만,한 명 사회과학도로서 "예스"나 "노"의 결론보다는 사실과 논증을 토대로 한 예견이 정확하게 이루어져야 한다고 보았으며,그 결론이 자본주의의 붕괴라고 본 것이다.
자본주의의 생리상 창조적 파괴를 반복할 수 있는 거대 기업의 독점이 등장할 것이고,그들 손에 의해 밀려난 이해관계의 당사자들이 서서히 이런 추동력에 대해 정치적 · 사회적 반기를 들게 된다는 것이다.
물론 슘페터의 결론과 상관없이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여전히 자본주의가 생생하게 살아있음을 말이다.
하지만,그가 염려한 자본주의의 궁극적 모습에 대해 여전히 미래는 열려 있다.
창조적 파괴가 진행되는 시기가 과연 어디까지인지,그 끝이 오면 과연 더 이상의 창조적 파괴는 진행되지 않을 것인지 말이다.
우리는 여전히 매일같이 창조적 파괴의 모습들을 보고 있다. 매일같이 새로 쏟아지는 신상품들,이전보다 더욱 나아진 과학기술,더욱 싸진 물건값.
우리를 놀라게 하는 이런 변화를 이제 좀 더 민감하게 살펴보자.
그렇다면,소니는 정말 그대로 몰락할까?
혹은 다시 스스로를 파괴하고,스스로 혁명의 핵심이 될 수 있을까?
☞ 관련 기출 제시문
▶ 2010년 건국대 모의논술문제
요셉 슘페터(Joseph Schumpeter)는 1942년 자신의 저서 <자본주의,사회주의 그리고 민주주의>에서 경제적 진보는 '창조적 파괴' 과정을 통해 달성된다고 하였다.
슘페터에 따르면 발전을 이룩하는 추진력은 새로운 제품,기존 제품을 생산하는 새로운 방법,또는 다른 혁신을 도입하려는 기업가로부터 나온다고 한다.
그러한 기업이 시장에 진입할 경우 혁신에 따른 어느 정도의 독점력을 갖게 되어,다음 세대의 혁신을 달성할 수 있는 다른 기업가에 의해 해당 제품이 대체될 때까지 높은 이윤을 얻을 수 있다.
역사적으로 보면 기술 진보를 통해 승자와 패자가 존재한다는 슘페터의 주장을 확인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영국에서 19세기 초 중요한 혁신은 낮은 비용으로 미숙련 노동자를 이용하여 섬유제품을 생산할 수 있는 기계를 발명하고 이를 확산시키는 것이었다.
보다 저렴하게 의류를 구입할 수 있게 된 소비자에게 기술 진보는 바람직한 것이었다.
하지만 영국의 섬유업종 숙련 노동자들은 새로운 기술로 인해 일자리를 위협받게 되었으며,폭력시위를 통해 이에 대응하였다.
기계파괴 운동가들이라는 의미를 갖는 '러다이트'라고 불리는 폭력시위 근로자들은 양털 및 면화공장에서 사용하는 베틀기를 부수고 공장 소유주의 집에 (창조적 파괴라고 보기는 어려운) 방화를 하였다.
오늘날 '러다이트'라는 용어는 기술 진보에 반대하는 사람이란 뜻으로 사용된다. <…중략…>
창조적 파괴의 희생자가 될 것으로 예상되는 기존의 기업들은 새롭고 보다 효율적인 경쟁기업이 진입하지 못하도록 정치적 해결책을 모색하곤 한다.
최초의 러다이트들은 정부가 새로운 섬유기술의 확산을 억제하여 자신들의 일자리를 보호해 주길 원하였다.
최근 들어 미국지역 소매업체들은 이와 유사하게 월마트가 자신들의 시장에 진입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토지사용을 규제하도록 시도하였다.
하지만 이렇게 진입을 제한할 경우 기술진보의 속도를 늦추게 하는 비용이 수반된다.
미국보다 진입규제가 더 심한 유럽의 경우 월마트와 같은 대규모 소매업체가 출연하기 어렵다.
따라서 소매업계의 생산성 성장도 훨씬 더디게 진행된다.
▶ 2009년 연세대 정시기출문제
자본주의는 본질상 경제 변화의 한 형태이거나 방법이다.
자본주의는 결코 정체되어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럴 수도 없다.
이러한 자본주의의 진화적 특성은 단순히 경제적 삶을 둘러싼 사회적,물리적 환경의 변화에 의해 경제행위의 내용이 바뀐다는 사실에서 기인하는 것만은 아니다.
이러한 사실은 중요하며,산업 변화는 종종 이러한 변화들(전쟁,혁명 등)에 의해 조절되기도 한다.
그렇지만 이 변화들이 산업 변화의 일차적 동인(動因)은 아니다.
자본주의 전개 과정의 진화적 특성은 인구와 자본의 자동적 증가나 금융시스템의 예측치 못한 변동에 기인하는 것도 아니다.
자본주의의 엔진을 작동시키고 이를 계속 움직이게 하는 근본적인 추진력은 새로운 상품,새로운 생산 방식 또는 수송 수단,새로운 시장,자본주의 기업이 창조해 낸 새로운 산업 조직의 구성 등으로부터 온다. <…중략…>
1760년에서 1940년 사이에 노동자의 수입은 단지 지속적으로 성장한 데 그치지 않고 질적인 변화를 겪었다.
마찬가지로 일찍이 윤작(輪作),쟁기질,거름주기와 같은 합리적 농법이 도입되었을 때부터 곡물 창고,철도 등과 연계된 오늘날의 기계화된 방식에 이르기까지 농업 생산체계의 역사는 잇단 혁명의 역사였다.
대장간 화덕에서 오늘날의 용광로에 이르는 철강 산업 생산체계의 역사도,물레방아에서 현대적인 발전소에 이르는 전력 산업 생산체계의 역사도,역마차에서 비행기에 이르는 수송의 역사도 그러하다.
해외 또는 국내에서 새로운 시장의 출현과 철공소에서 U.S. Steel로의 발전은 ―생물학의 용어를 쓴다면― 모두 산업적 돌연변이의 과정이며,이것은 쉴 새 없이 내부로부터 경제구조의 혁명을 일으키고,끊임없이 오래된 것을 부수며,멈추지 않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낸다.
이러한 '창조적 파괴'의 과정은 자본주의의 본질적 요소이다. 이것이 바로 모든 자본가가 주목해야 할 자본주의의 요체이다.
이용준 S · 논술 선임연구원 sgsgnote@gmail.com
⊙ 손톱의 무게 vs 8t 30기가(Gigabyte) 정도의 용량을 가진 저장매체를 머릿속에 떠올리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최근의 컴퓨터들을 보았을 때도 대개 장착되어 나오는 하드디스크 용량은 300~500기가 정도의 공간을 가지고 있으니 말이다.
우리가 이동용으로 들고 다니는 USB 메모리를 본다면,더더욱 놀라게 된다.
이미 32기가는 어느 정도 상용화되어 8만원도 안 되는 돈으로 살 수 있다.
아직 널리 범용화되진 않았지만 휴대폰에 들어가곤 하는 Micro SD는 고작 손톱크기 정도로,떨어뜨리면 잃어버릴 수도 있을 정도로 작다.
하지만,1980년만 해도 30기가의 저장공간을 갖는다는 것은 일반적인 용도의 컴퓨터로는 꿈도 꿀 수 없는 것이었다.
30기가를 저장하기 위해서는 방안 한 가득,8t에 달하는 하드디스크 덩어리들이 묶여있어야 했다.
필요하더라도 살 수 없는 엄청난 고가였음을 두말할 필요가 없다.
이런 발전은 어떻게 가능했을까?
⊙ 소니의 몰락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확실히 소니(sony)는 접근할 수 없을 것만 같던 엄청난 벽이었다.
소니라는 이름이 갖고 있는 위치는 지금과는 사뭇 다른 것이었다.
전쟁이 끝난 다음해인 1946년부터 시작된 소니의 '최초 개발 시리즈'는 소니를 세계 최고의 전자제품업체로 키워준 힘이었다.
지금은 좀처럼 보기 힘든 테이프 레코더나 트랜지스터 라디오라든지,현대인의 생활 패턴을 바꾸어 놓았다는 평가를 받는 워크맨(walkman)(1979)이나 음악재생매체의 표준이었던 CD(Compact disk)(1982) 역시 그들의 작품이었다.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한물간 '소니'와는 확연히 다른 시절이었다.
여전히 소니는 영상기기나 가정용 오락기기에 있어 상대적 우위를 가지고 있지만,예전처럼 TV나 노트북,음악재생매체에 대한 우위를 잃은 지 오래다.
삼성전자가 2009년 7~9월에 3260억원을 벌어들일 동안,소니는 325억원의 손해를 봐야만 했다.
소니는 왜 무너진 것일까?
⊙ 창조적 파괴 (Creative destruction)
이 개념을 최초로 사용한 요셉 슘페터가 다소억울해할 수도 있겠지만,지금에 와서 창조적 파괴는 자본주의적 발전의 본질을 드러내는 개념으로 종종 언급되곤 한다.
요셉 슘페터가 애초에 그의 저작 <자본주의 사회주의 민주주의>에서 이 개념을 그렇게 사용한 것은 맞지만,궁극적으로 그는 자본주의가 가장 안정된 경제체제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그는 오히려 창조적 파괴로 이룩되는 자본주의적 발전의 성과가 자본주의를 살아남지 못하게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마르크스와는 다른 방법으로 자본주의의 종말을 보았다.
자본가와 노동자 간의 계급 대립과 갈등을 토대로 한 자본주의의 내부 모순이 피할 수 없는 폭력혁명을 견인한다고 보았던 마르크스와 달리,그는 자본주의 시스템을 그대로 인정하면서 오히려 칭찬까지 덧붙인다.
그 칭찬의 핵심적인 내용이 바로 자본주의가 가지고 있는 '창조적 파괴의 과정'이다.
기존의 몇몇 경제학자들이 과잉인구에 대해 잔뜩 겁을 먹었듯이,자본주의가 필연적으로 투자할 곳을 모두 소모한 후,돈을 벌 방법이 사라지게 된다면 그 운명을 달리해야 할 것이라는 주장을 내세운 것에 대해 슘페터는 단호히 대답한다.
"일단 벽에 부딪히더라도,자본주의는 또 다른 발전의 방법을 반드시 찾아내고야 말 것"이라고 말이다.
그리고 이 상황에서 기존의 틀을 깨부수고,혁명적인 진보를 이룩해내는 바로 그 과정에 대해 '창조적 파괴'라는 이름을 부여한 것이다.
그는 마르크스와 달리 자본주의에 대한 적대감을 표출하지 않았지만,한 명 사회과학도로서 "예스"나 "노"의 결론보다는 사실과 논증을 토대로 한 예견이 정확하게 이루어져야 한다고 보았으며,그 결론이 자본주의의 붕괴라고 본 것이다.
자본주의의 생리상 창조적 파괴를 반복할 수 있는 거대 기업의 독점이 등장할 것이고,그들 손에 의해 밀려난 이해관계의 당사자들이 서서히 이런 추동력에 대해 정치적 · 사회적 반기를 들게 된다는 것이다.
물론 슘페터의 결론과 상관없이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여전히 자본주의가 생생하게 살아있음을 말이다.
하지만,그가 염려한 자본주의의 궁극적 모습에 대해 여전히 미래는 열려 있다.
창조적 파괴가 진행되는 시기가 과연 어디까지인지,그 끝이 오면 과연 더 이상의 창조적 파괴는 진행되지 않을 것인지 말이다.
우리는 여전히 매일같이 창조적 파괴의 모습들을 보고 있다. 매일같이 새로 쏟아지는 신상품들,이전보다 더욱 나아진 과학기술,더욱 싸진 물건값.
우리를 놀라게 하는 이런 변화를 이제 좀 더 민감하게 살펴보자.
그렇다면,소니는 정말 그대로 몰락할까?
혹은 다시 스스로를 파괴하고,스스로 혁명의 핵심이 될 수 있을까?
☞ 관련 기출 제시문
▶ 2010년 건국대 모의논술문제
요셉 슘페터(Joseph Schumpeter)는 1942년 자신의 저서 <자본주의,사회주의 그리고 민주주의>에서 경제적 진보는 '창조적 파괴' 과정을 통해 달성된다고 하였다.
슘페터에 따르면 발전을 이룩하는 추진력은 새로운 제품,기존 제품을 생산하는 새로운 방법,또는 다른 혁신을 도입하려는 기업가로부터 나온다고 한다.
그러한 기업이 시장에 진입할 경우 혁신에 따른 어느 정도의 독점력을 갖게 되어,다음 세대의 혁신을 달성할 수 있는 다른 기업가에 의해 해당 제품이 대체될 때까지 높은 이윤을 얻을 수 있다.
역사적으로 보면 기술 진보를 통해 승자와 패자가 존재한다는 슘페터의 주장을 확인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영국에서 19세기 초 중요한 혁신은 낮은 비용으로 미숙련 노동자를 이용하여 섬유제품을 생산할 수 있는 기계를 발명하고 이를 확산시키는 것이었다.
보다 저렴하게 의류를 구입할 수 있게 된 소비자에게 기술 진보는 바람직한 것이었다.
하지만 영국의 섬유업종 숙련 노동자들은 새로운 기술로 인해 일자리를 위협받게 되었으며,폭력시위를 통해 이에 대응하였다.
기계파괴 운동가들이라는 의미를 갖는 '러다이트'라고 불리는 폭력시위 근로자들은 양털 및 면화공장에서 사용하는 베틀기를 부수고 공장 소유주의 집에 (창조적 파괴라고 보기는 어려운) 방화를 하였다.
오늘날 '러다이트'라는 용어는 기술 진보에 반대하는 사람이란 뜻으로 사용된다. <…중략…>
창조적 파괴의 희생자가 될 것으로 예상되는 기존의 기업들은 새롭고 보다 효율적인 경쟁기업이 진입하지 못하도록 정치적 해결책을 모색하곤 한다.
최초의 러다이트들은 정부가 새로운 섬유기술의 확산을 억제하여 자신들의 일자리를 보호해 주길 원하였다.
최근 들어 미국지역 소매업체들은 이와 유사하게 월마트가 자신들의 시장에 진입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토지사용을 규제하도록 시도하였다.
하지만 이렇게 진입을 제한할 경우 기술진보의 속도를 늦추게 하는 비용이 수반된다.
미국보다 진입규제가 더 심한 유럽의 경우 월마트와 같은 대규모 소매업체가 출연하기 어렵다.
따라서 소매업계의 생산성 성장도 훨씬 더디게 진행된다.
▶ 2009년 연세대 정시기출문제
자본주의는 본질상 경제 변화의 한 형태이거나 방법이다.
자본주의는 결코 정체되어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럴 수도 없다.
이러한 자본주의의 진화적 특성은 단순히 경제적 삶을 둘러싼 사회적,물리적 환경의 변화에 의해 경제행위의 내용이 바뀐다는 사실에서 기인하는 것만은 아니다.
이러한 사실은 중요하며,산업 변화는 종종 이러한 변화들(전쟁,혁명 등)에 의해 조절되기도 한다.
그렇지만 이 변화들이 산업 변화의 일차적 동인(動因)은 아니다.
자본주의 전개 과정의 진화적 특성은 인구와 자본의 자동적 증가나 금융시스템의 예측치 못한 변동에 기인하는 것도 아니다.
자본주의의 엔진을 작동시키고 이를 계속 움직이게 하는 근본적인 추진력은 새로운 상품,새로운 생산 방식 또는 수송 수단,새로운 시장,자본주의 기업이 창조해 낸 새로운 산업 조직의 구성 등으로부터 온다. <…중략…>
1760년에서 1940년 사이에 노동자의 수입은 단지 지속적으로 성장한 데 그치지 않고 질적인 변화를 겪었다.
마찬가지로 일찍이 윤작(輪作),쟁기질,거름주기와 같은 합리적 농법이 도입되었을 때부터 곡물 창고,철도 등과 연계된 오늘날의 기계화된 방식에 이르기까지 농업 생산체계의 역사는 잇단 혁명의 역사였다.
대장간 화덕에서 오늘날의 용광로에 이르는 철강 산업 생산체계의 역사도,물레방아에서 현대적인 발전소에 이르는 전력 산업 생산체계의 역사도,역마차에서 비행기에 이르는 수송의 역사도 그러하다.
해외 또는 국내에서 새로운 시장의 출현과 철공소에서 U.S. Steel로의 발전은 ―생물학의 용어를 쓴다면― 모두 산업적 돌연변이의 과정이며,이것은 쉴 새 없이 내부로부터 경제구조의 혁명을 일으키고,끊임없이 오래된 것을 부수며,멈추지 않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낸다.
이러한 '창조적 파괴'의 과정은 자본주의의 본질적 요소이다. 이것이 바로 모든 자본가가 주목해야 할 자본주의의 요체이다.
이용준 S · 논술 선임연구원 sgsgnote@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