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토피아에서 사는 유일한 길은 무엇일까?
⊙ 천국과 지옥 사이
<당신들의 천국>은 1976년 처음 간행된 뒤 100쇄가 넘게 인쇄될 정도로 꾸준히 많은 사람의 관심을 받아온 작품이다.
이 작품이 이러한 사랑을 받게 된 것은 인간의 추구하고자 하는 자유의 문제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기 때문이다.
누구나 자유롭길 원하고 누구나 자유로운 정치체제를 만들길 원하지만 그것이 진정으로 이루어진 경우는 역사상 없었다.
그런데 이 책은 암울한 1970년대에 자유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며 어떠한 자세와 태도를 갖추어야 하는지 이야기하고 있다.
특히 이 소설은 소록도의 역사를 소재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추상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구체적인 현실의 문제로 읽힌다.
소설 속에 동상을 세우고 환자들에게 강제노역을 시켜 공원을 만들고 납골당을 만들었던 주정수 원장은 실제 인물을 모델로 하고 있으며 육군장교 출신의 조백현 원장 또한 실제 인물을 모델로 하고 있다.
이러한 구체적 현실을 소재로 소설적으로 재구성을 통해 인간의 보편적 문제인 자유와 권력의 문제,지배와 피지배의 문제를 끝까지 물고 늘어진다.
조백현 원장은 소록도에 부임하면서 환자들을 위한 천국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나 그의 노력은 환자들의 냉소와 동료직원들의 환대를 받지 못한다. 앞선 주정수 원장의 시대와 닮아 있기 때문이다.
주정수 원장 또한 환자들을 위한 유토피아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지만 결국 환자들에 대한 착취와 자신에 대한 숭배에 빠져들었다.
결국 주정수는 한 청년의 칼에 맞아 죽게 된다.
바로 조백현 원장의 노력은 그들에게 주정수를 떠올리게 만든다.
환자를 위한 유토피아를 만들게 되는 것은 결국 환자를 위한 유토피아가 아니라 주정수를 위한 유토피아가 될 것임을 그들은 알고 있기 때문이다.
경북대 2002 정시에서는 바로 이러한 상황에서 발생하는 폭력의 문제에 대한 해결방안을 묻는 문제가 나왔다.
⊙ 경북대 2002정시
"계속되는 노역과 학대 때문에 이젠 누구나 윗사람의 눈치를 살피지 않을 수 없게 되었거든. 그 평의회 사람들 말야,일은 고되지,먹을 것은 모자라지,게다가 병든 몸을 고칠 가망은커녕 무도한 채찍질로 상처만 날로 깊어가지… 눈치 안 보고 배겨낼 장사 있나. 사람들이 모두 그 지경이 되어 있을 때 심판의 날이 오고 만 거야…."
다름 아니라 주정수(일제 치하 소록도 나환자촌 4대 일본인 원장)는 마침내 그의 천국 건설의 장엄한 대미(大尾)를 자신의 동상으로 장식할 계획을 세운 것이었다. 마지막 배반극이 감행되기에 이른 것이다. …(중략)…
사토가 그를 대신해 모든 일을 추진해나갔다.
그리고 맨 처음 그 일을 제안하고 나섰던 이순구가 모금 운동에 앞장서 돌아다녔다.
모금 성적이 나쁜 부락 대표들에게는 갖가지 위협과 압력을 가했다. …(중략)…
동상이 세워지고 나서 원생들에게는 또 한가지 새로운 부담이 늘었다.
매월 20일을 새 '보은 감사일'로 정하고,이날이 되면 병사 지대의 모든 원생들은 공원 광장에 도열해 서서 동상을 참배해야 했다.
한 달에 한 번 20일만 되면 원생들은 남녀노소나 병세의 경중을 가릴 것 없이 공원 광장으로 모여와 살아 있는 주정수와 그의 동상 앞에 경례를 바치고 훈시를 들어야 했다. …(중략)…
그날도 마침 원생들은 주정수의 동상을 참배해야 하는 보은 감사일이었다.
원생들은 이날도 관례에 따라 아침부터 부락별로 열을 짓고 서서 이제나저제나 살아 있는 동상의 주인공이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동안 시간이 흐르고 나서 직원 지대로부터 승용차를 타고 내려온 주정수 원장이 수행원들과 함께 천천히 자신의 동상을 향해 대열 앞을 걸어가고 있었다.
그 주정수가 막 중앙리 원생들의 대열 앞을 지나가고 있을 때―,그때 대열 가운데서 한 청년이 벽력같은 소리를 지르며 갑자기 주정수 원장 앞으로 튀어나왔다. 청년은 비수를 감추고 있었다.
주정수 원장은 청년의 비수에 정통으로 심장을 맞고 그 자리에 쓰러졌다. 눈 깜짝할 사이의 일이었다.
도열해 있던 원생들이 소리를 듣고 머리를 들어보았을 때는 주정수를 쓰러뜨리고 난 청년이 두 번째 표적을 찾아 피 묻은 비수를 휘두르며,"사토,사토 나오너라"고 미친 듯이 악을 써대고 있었다.
원장을 뒤따르던 수행원들조차 미처 손을 써볼 틈이 없었다.
이러한 까닭에 유토피아를 향해간다고 해서 그 길이 진정으로 유토피아로 가는 길이 아닐 수 있다.
오히려 그 반대일 수도 있다.
목적이 옳다고 그 과정까지 언제나 옳은 것이 아니듯이 올바름을 향해 나아간다고 해서 그 과정이 항상 올바름에 근거해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그 길을 가야 하는지 이상욱 과장,조백현 원장,황희백 장로는 천국을 향해가는 올바른 길에 대해서 자신의 이야기를 펼친다.
특히 고려대 2006 정시 문제에서는 그것에 대한 이상욱 과장의 이야기가 나왔다.
⊙ 고려대 2006정시(일부)
전 사실 원장님 부임 직후부터 이 섬의 선의의 지배자로서의 원장님과 그에 대한 피치자로서의 원생들과의 사이에 어느 정도까지 협의적인 지배 질서가 가능할 것인지에 대해 지극히 깊은 관심을 가져왔습니다.
하지만 전 마침내 원장님에게서마저도 저의 그런 기대가 얼마나 부질없는 환상이었는가를 확인할 수 있었을 뿐이었습니다.
도대체 어떤 절대 상황 안에 격리된 인간 집단 안에서는 그 지배자와 피지배자 사이의 협의 관계에 의한 지배 질서란 궁극적으로 그 상황의 벽을 무너뜨리는 순교자적 용기와 희생 없이는 가능할 수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다스리는 자의 선의나 정의와는 상관없이 그리고 그의 지배권이 어디에서 연유했든 그것만은 끝끝내 절대 전제가 되어 있는 한,다스림을 받는 쪽은 항상 감당해낼 수 없는 상황 자체의 압력 때문에 스스로가 무력해져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런 불행한 사회의 질서란 우리가 흔히 믿고 있듯이 다중의 희망이나 기도 같은 것과는 일단 상관이 없이,우선은 그 지배자 한 사람의 책임과 각성에 의해 좌우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저의 슬픈 결론입니다.
기출된 제시문에서 알 수 있듯이 이상욱 과장은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에서 한쪽의 선의에 의해 행해지는 자유는 진정한 자유가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
이것은 애완견과 인간의 관계를 떠올려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주인의 사랑을 듬뿍 받는 애완견이 설령 자유롭다고 해도 그것은 진정한 자유가 아닐 것이다.
이상욱 과장은 조백현 원장이 건설하려는 선의의 유토피아는 '당신의 천국'이지 '우리들의 천국'은 아니라고 말한다.
그럼에도 조백현 원장은 자신의 의지와 환자들의 의지가 합쳐지면 환자들의 유토피아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결국 그는 다른 곳으로 발령이 나고 소록도의 환자들과 운명을 같이할 수 없음을 깨닫는다.
섬에서는 절대 권력자로 모든 것을 통제하고 관리할 수 있는 권력을 지녔지만 그 또한 거대한 사회의 속한 조그마한 개인에 지나지 않음을 알게 된다.
위의 두 사람과는 달리 환자들의 대표인 황희백 장로의 유토피아는 다른 모습을 띤다.
그는 자유는 결국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에서 피비린내나는 싸움에 이를 뿐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그에게 유토피아는 자유가 아니라 사랑의 실천이다.
사랑이 없는 자유는 결국 서로를 파괴하는 이기적 욕망으로 변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자유라는 건 싸워 빼앗는 길이 되어 이긴 자와 진 자가 생기게 마련이지만 사랑은 빼앗음이 아니라 베푸는 길이라서 이긴 자와 진 자가 없이 모두 함께 이기는 길이거든."
그래서 황희백 장로의 천국은 이상욱과는 다른 모습을 띤다.
⊙ 유토피아의 조건
이러한 깨달음을 얻은 조백현 원장이 섬으로 돌아온다.
섬 사람들과 운명을 같이하지 않으면 진정한 천국을 만들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는 여전히 유토피아를 건설하지 못하고 있다.
이제 그에게는 힘과 권력이 없기 때문이다. 그는 원장이 아니라 섬에 사는 한 명의 주민일 뿐이다.
올바른 길을 깨달았다고 확신하는 순간 그에게는 그것을 실현한 권능이 없다.
이렇듯 이들의 천국은 현실에서 실현되지 못한다. 그리고 이들이 천국을 향해가는 길은 각기 다르다.
어쩌면 각자의 천국이 있고 각자의 길이 있을 뿐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자신에게 주어진 길을 절대시해서 타인에게 강제되는 길은 타인에게는 지옥이 될 수도 있다.
소설에서 이야기 하듯 힘,사랑,자유는 삼각형의 세 꼭짓점을 이루듯 서로 멀리 떨어져 있다.
현실에서 어느 누구도 동시에 힘,사랑,자유를 실현하기란 힘들다.
그러나 이 세 가지를 함께 이뤄야 진정한 유토피아가 달성될 수 있다고 소설은 말하고 있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건 힘,사랑,자유의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서 각자의 길을 열심히 가는 것,그것이 천국을 사는 유일한 길일 것이다.
김법성 S · 논술 선임연구원 greennamou@hanmail.net
⊙ 천국과 지옥 사이
<당신들의 천국>은 1976년 처음 간행된 뒤 100쇄가 넘게 인쇄될 정도로 꾸준히 많은 사람의 관심을 받아온 작품이다.
이 작품이 이러한 사랑을 받게 된 것은 인간의 추구하고자 하는 자유의 문제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기 때문이다.
누구나 자유롭길 원하고 누구나 자유로운 정치체제를 만들길 원하지만 그것이 진정으로 이루어진 경우는 역사상 없었다.
그런데 이 책은 암울한 1970년대에 자유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며 어떠한 자세와 태도를 갖추어야 하는지 이야기하고 있다.
특히 이 소설은 소록도의 역사를 소재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추상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구체적인 현실의 문제로 읽힌다.
소설 속에 동상을 세우고 환자들에게 강제노역을 시켜 공원을 만들고 납골당을 만들었던 주정수 원장은 실제 인물을 모델로 하고 있으며 육군장교 출신의 조백현 원장 또한 실제 인물을 모델로 하고 있다.
이러한 구체적 현실을 소재로 소설적으로 재구성을 통해 인간의 보편적 문제인 자유와 권력의 문제,지배와 피지배의 문제를 끝까지 물고 늘어진다.
조백현 원장은 소록도에 부임하면서 환자들을 위한 천국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나 그의 노력은 환자들의 냉소와 동료직원들의 환대를 받지 못한다. 앞선 주정수 원장의 시대와 닮아 있기 때문이다.
주정수 원장 또한 환자들을 위한 유토피아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지만 결국 환자들에 대한 착취와 자신에 대한 숭배에 빠져들었다.
결국 주정수는 한 청년의 칼에 맞아 죽게 된다.
바로 조백현 원장의 노력은 그들에게 주정수를 떠올리게 만든다.
환자를 위한 유토피아를 만들게 되는 것은 결국 환자를 위한 유토피아가 아니라 주정수를 위한 유토피아가 될 것임을 그들은 알고 있기 때문이다.
경북대 2002 정시에서는 바로 이러한 상황에서 발생하는 폭력의 문제에 대한 해결방안을 묻는 문제가 나왔다.
⊙ 경북대 2002정시
"계속되는 노역과 학대 때문에 이젠 누구나 윗사람의 눈치를 살피지 않을 수 없게 되었거든. 그 평의회 사람들 말야,일은 고되지,먹을 것은 모자라지,게다가 병든 몸을 고칠 가망은커녕 무도한 채찍질로 상처만 날로 깊어가지… 눈치 안 보고 배겨낼 장사 있나. 사람들이 모두 그 지경이 되어 있을 때 심판의 날이 오고 만 거야…."
다름 아니라 주정수(일제 치하 소록도 나환자촌 4대 일본인 원장)는 마침내 그의 천국 건설의 장엄한 대미(大尾)를 자신의 동상으로 장식할 계획을 세운 것이었다. 마지막 배반극이 감행되기에 이른 것이다. …(중략)…
사토가 그를 대신해 모든 일을 추진해나갔다.
그리고 맨 처음 그 일을 제안하고 나섰던 이순구가 모금 운동에 앞장서 돌아다녔다.
모금 성적이 나쁜 부락 대표들에게는 갖가지 위협과 압력을 가했다. …(중략)…
동상이 세워지고 나서 원생들에게는 또 한가지 새로운 부담이 늘었다.
매월 20일을 새 '보은 감사일'로 정하고,이날이 되면 병사 지대의 모든 원생들은 공원 광장에 도열해 서서 동상을 참배해야 했다.
한 달에 한 번 20일만 되면 원생들은 남녀노소나 병세의 경중을 가릴 것 없이 공원 광장으로 모여와 살아 있는 주정수와 그의 동상 앞에 경례를 바치고 훈시를 들어야 했다. …(중략)…
그날도 마침 원생들은 주정수의 동상을 참배해야 하는 보은 감사일이었다.
원생들은 이날도 관례에 따라 아침부터 부락별로 열을 짓고 서서 이제나저제나 살아 있는 동상의 주인공이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동안 시간이 흐르고 나서 직원 지대로부터 승용차를 타고 내려온 주정수 원장이 수행원들과 함께 천천히 자신의 동상을 향해 대열 앞을 걸어가고 있었다.
그 주정수가 막 중앙리 원생들의 대열 앞을 지나가고 있을 때―,그때 대열 가운데서 한 청년이 벽력같은 소리를 지르며 갑자기 주정수 원장 앞으로 튀어나왔다. 청년은 비수를 감추고 있었다.
주정수 원장은 청년의 비수에 정통으로 심장을 맞고 그 자리에 쓰러졌다. 눈 깜짝할 사이의 일이었다.
도열해 있던 원생들이 소리를 듣고 머리를 들어보았을 때는 주정수를 쓰러뜨리고 난 청년이 두 번째 표적을 찾아 피 묻은 비수를 휘두르며,"사토,사토 나오너라"고 미친 듯이 악을 써대고 있었다.
원장을 뒤따르던 수행원들조차 미처 손을 써볼 틈이 없었다.
이러한 까닭에 유토피아를 향해간다고 해서 그 길이 진정으로 유토피아로 가는 길이 아닐 수 있다.
오히려 그 반대일 수도 있다.
목적이 옳다고 그 과정까지 언제나 옳은 것이 아니듯이 올바름을 향해 나아간다고 해서 그 과정이 항상 올바름에 근거해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그 길을 가야 하는지 이상욱 과장,조백현 원장,황희백 장로는 천국을 향해가는 올바른 길에 대해서 자신의 이야기를 펼친다.
특히 고려대 2006 정시 문제에서는 그것에 대한 이상욱 과장의 이야기가 나왔다.
⊙ 고려대 2006정시(일부)
전 사실 원장님 부임 직후부터 이 섬의 선의의 지배자로서의 원장님과 그에 대한 피치자로서의 원생들과의 사이에 어느 정도까지 협의적인 지배 질서가 가능할 것인지에 대해 지극히 깊은 관심을 가져왔습니다.
하지만 전 마침내 원장님에게서마저도 저의 그런 기대가 얼마나 부질없는 환상이었는가를 확인할 수 있었을 뿐이었습니다.
도대체 어떤 절대 상황 안에 격리된 인간 집단 안에서는 그 지배자와 피지배자 사이의 협의 관계에 의한 지배 질서란 궁극적으로 그 상황의 벽을 무너뜨리는 순교자적 용기와 희생 없이는 가능할 수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다스리는 자의 선의나 정의와는 상관없이 그리고 그의 지배권이 어디에서 연유했든 그것만은 끝끝내 절대 전제가 되어 있는 한,다스림을 받는 쪽은 항상 감당해낼 수 없는 상황 자체의 압력 때문에 스스로가 무력해져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런 불행한 사회의 질서란 우리가 흔히 믿고 있듯이 다중의 희망이나 기도 같은 것과는 일단 상관이 없이,우선은 그 지배자 한 사람의 책임과 각성에 의해 좌우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저의 슬픈 결론입니다.
기출된 제시문에서 알 수 있듯이 이상욱 과장은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에서 한쪽의 선의에 의해 행해지는 자유는 진정한 자유가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
이것은 애완견과 인간의 관계를 떠올려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주인의 사랑을 듬뿍 받는 애완견이 설령 자유롭다고 해도 그것은 진정한 자유가 아닐 것이다.
이상욱 과장은 조백현 원장이 건설하려는 선의의 유토피아는 '당신의 천국'이지 '우리들의 천국'은 아니라고 말한다.
그럼에도 조백현 원장은 자신의 의지와 환자들의 의지가 합쳐지면 환자들의 유토피아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결국 그는 다른 곳으로 발령이 나고 소록도의 환자들과 운명을 같이할 수 없음을 깨닫는다.
섬에서는 절대 권력자로 모든 것을 통제하고 관리할 수 있는 권력을 지녔지만 그 또한 거대한 사회의 속한 조그마한 개인에 지나지 않음을 알게 된다.
위의 두 사람과는 달리 환자들의 대표인 황희백 장로의 유토피아는 다른 모습을 띤다.
그는 자유는 결국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에서 피비린내나는 싸움에 이를 뿐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그에게 유토피아는 자유가 아니라 사랑의 실천이다.
사랑이 없는 자유는 결국 서로를 파괴하는 이기적 욕망으로 변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자유라는 건 싸워 빼앗는 길이 되어 이긴 자와 진 자가 생기게 마련이지만 사랑은 빼앗음이 아니라 베푸는 길이라서 이긴 자와 진 자가 없이 모두 함께 이기는 길이거든."
그래서 황희백 장로의 천국은 이상욱과는 다른 모습을 띤다.
⊙ 유토피아의 조건
이러한 깨달음을 얻은 조백현 원장이 섬으로 돌아온다.
섬 사람들과 운명을 같이하지 않으면 진정한 천국을 만들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는 여전히 유토피아를 건설하지 못하고 있다.
이제 그에게는 힘과 권력이 없기 때문이다. 그는 원장이 아니라 섬에 사는 한 명의 주민일 뿐이다.
올바른 길을 깨달았다고 확신하는 순간 그에게는 그것을 실현한 권능이 없다.
이렇듯 이들의 천국은 현실에서 실현되지 못한다. 그리고 이들이 천국을 향해가는 길은 각기 다르다.
어쩌면 각자의 천국이 있고 각자의 길이 있을 뿐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자신에게 주어진 길을 절대시해서 타인에게 강제되는 길은 타인에게는 지옥이 될 수도 있다.
소설에서 이야기 하듯 힘,사랑,자유는 삼각형의 세 꼭짓점을 이루듯 서로 멀리 떨어져 있다.
현실에서 어느 누구도 동시에 힘,사랑,자유를 실현하기란 힘들다.
그러나 이 세 가지를 함께 이뤄야 진정한 유토피아가 달성될 수 있다고 소설은 말하고 있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건 힘,사랑,자유의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서 각자의 길을 열심히 가는 것,그것이 천국을 사는 유일한 길일 것이다.
김법성 S · 논술 선임연구원 greennamou@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