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케이션은 무엇이고 왜 필요한가?
가 오전 1시 21분 13초,우리는 부기장이 말하고자 했던 것을 알고 있다.
"기장님,후행 대책 없이 시계 접근을 하겠다고 하셨지만 바깥 날씨가 끔찍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말하지 못했다. …(중략)… 기관사도 아마 이렇게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육안에만 의존해서 착륙을 시도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닙니다. 기상 레이더에 뜬 걸 보세요. 계속 가면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중략)…
오전 1시 41분 59초,부기장이 혼잣말을 했다. "안 보이잖아?"
오전 1시 42분 19초,부기장이 말했다. "착륙,포기합시다."
그는 결국 힌트를 주다가 동료에게 권유하는 방식으로 어조를 높였다. 그는 착륙을 취소하고 싶었던 것이다.
훗날 조사를 통해 그 시점에 부기장이 조종권을 넘겨받고 조종간을 당겼더라면,니미츠 힐에 충돌하지 않고 재착륙을 시도할 수 있는 충분한 여유가 있었음이 확인되었다.
부기장은 기장이 명백히 잘못하고 있을 경우,그렇게 행동하라고 훈련을 받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교실에서 배우는 내용일 뿐이고 하늘에서 벌어지는 일은 엄연히 달랐다.
실수를 하면 손으로 등을 얻어맞을 수도 있는 것이 조종실의 현실이었다.
오전 1시 42분 20초,기관사가 말했다. "안 보이잖아."
결국 재앙이 그들 앞에 얼굴을 드러낼 때가 되어서야 부기장과 기관사가 입을 열었다.
그들은 기장이 '고 어라운드'하기를,조종간을 당겨 다시 착륙을 시도하기를 바랐다. 하지만 너무 늦었다.
엄격한 위계질서를 중시하는 문화 속에서 조종사,부조종사,기관사 간의 커뮤니케이션은 단절되었고 1997년 8월 5일,괌 사고는 이렇게 발생했다.
2000년,대한항공은 데이비드 그린버그를 비행 담당 임원으로 영입한다.
그린버그가 처음으로 한 일은 그가 대한항공의 문제를 뿌리부터 파악하고 있지 않았다면 내놓을 수 없던 것이었다.
그린버그는 '대한항공의 공용어는 영어다. 만약 대한항공의 조종사로 남고 싶다면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할 수 있어야 한다'는 규칙을 세웠다.
"케네디공항의 러시아워에 손짓,발짓으로 대화할 수 없지요. 어디까지나 대화로 풀어가야 하므로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잘 이해하고 있다는 걸 보여줘야 합니다. 물론 한국 사람들끼리 영어로 말할 필요는 없겠죠. 그러나 외국인과 중요한 의사소통을 해야 하는 경우라면 영어는 매우 중요해집니다."
그린버그는 조종사들에게 또 다른 정체성을 심어주고자 애썼다.
그들이 문화적 유산의 함정에 빠져 있다는 것을 심각한 문제로 보았기 때문이다.
일단 조종석에 앉았을 때는 기존의 역할로부터 벗어날 필요가 있었고,언어는 그 전환을 이끌어내는 열쇠였다.
영어로는 한국어의 복잡한 경어체계를 사용할 수 없지 않은가.
그린버그의 개혁에서 가장 결정적인 것은 '그가 하지 않은 일'에 있었다.
그는 절망에 빠진 대한항공 조종사들을 몽땅 해고하고 권력 간격이 낮은 문화권의 조종사로 대체하지 않았다.
그는 문화적 유산이 문제이고,그 힘은 강력하고 널리 퍼져 있으며 본래의 유용성이 사라진 후에도 오래도록 지속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문화적 유산을 떨쳐낼 수 없는 것으로 보지는 않았다.
그는 한국인이 스스로의 문화적 기원에 솔직해지고 항공 세계와 맞지 않는 부분과 정면으로 대결할 의향이 있다면 그것을 바꿀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결국 그는 하키선수로부터 소프트웨어 재벌,인수 · 합병 변호사까지 모든 이들이 누렸던 기회를 대한항공 파일럿에게도 제공했다.
일과 삶의 관계를 재정립할 수 있는 기회를 말이다.
-말콤 글래드웰,「아웃라이어」
나 "정 그렇다면,백성들에게 어떤 제도가 더 좋은지 여론조사를 실시하는 것이 어떻겠소?" …(중략)…
허를 찔린 신하들은 허둥거렸지만 세종은 침착하게 여론조사를 준비했다.
여론조사 기관에서 집집마다 찾아가 백성들에게 의견을 물어본 결과 찬성이 9만8000여 가구,반대가 7만4000여 가구였다. 찬성이 우세했다.
찬성이 압도적인 곳은 삼남과 같은 단위면적당 생산량이 높은 지역이었고,반대가 많은 곳은 척박한 농지가 많은 한강 이북의 지역이었다.
그런데 이처럼 지역적으로 이해관계에 얽혀 편차가 심하고 신하들도 반대하자 세종은 공법개혁을 일단 유보했다.
세종은 반대하는 신하들의 심리를 어느 정도는 이해하고 있었다.
이유는 명확했다. 공법개혁을 하게 되면 세금을 더 많이 걷을 수 있어 국가재정은 튼튼해지지만 문제는 누구도 세금을 더 많이 내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특히 부유한 관리들은 세금을 덜 내고 싶어 했기 때문에 강력히 반대했다.
다시 1년이 지나자 세종은 공법개혁 문제를 또 꺼냈다. …(중략)…
세종도 물러서지 않았다. 거듭 개혁안의 수정을 지시했다.
세금처럼 민감한 문제일수록 반대편의 동의 없이는 성공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세종은 조급해 하지 않았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꼼꼼하게 챙겼다.
마침내 공법개혁을 제안한 지 15년 만에,즉 세종 24년에 토질과 수확량에 따라 세금을 거두는 새로운 제도가 통과되었다.
손실답험법과 정액세제를 절충하여 '연분 9등-전분 6등'이라는 새로운 징수기준이 마련된 것이다.
만장일치로 이뤄낸 결과였기에 그 의미는 더욱 컸다.
세종은 프로젝트를 언제나 중장기적으로 모두가 동의하는 방향으로 진행했다.
그리고 프로젝트를 시행하기 전에 전문가로 하여금 충분히 연구하게 했다.
또 연구 결과가 나오고 프로젝트의 성공과 그 영향에 대해 확신이 설 때까지 그 문제를 중신들끼리 충분히 논의하도록 했다.
그리고 중신들의 의견이 하나로 결집되지 않으면 여론조사를 통해 백성들의 의견을 모았다.
세종은 대화를 통한 상호이해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깊게 인식한 왕이었던 것이었다.
이렇게 해서 새로운 정책과 제도를 채택했고,채택을 한 경우에도 한꺼번에 실시하는 것이 아니라 차츰차츰 시행했다.
-정도상 & 최재혁,「백성을 섬긴 왕,세종이 꿈꾼 나라」
다 E. H. 카는 "역사는 역사가와 사실과의 상호작용의 부단한 과정이며 현재와 과거와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했지만,그 상호작용,대화의 성격과 질이 문제의 핵심이다.
'대화'보다는 넒은 의미의 '커뮤니케이션'이라는 단어가 더 적합하다. 역사는 커뮤니케이션이다. …(중략)…
어떤 주제를 다루더라도 커뮤니케이션의 관점에서 보자는 게 커뮤니케이션사의 취지다.
역사를 선의로 이용할 경우에도 일반적인 역사 기술 방법 자체에서 비롯되는 문제가 있다.
역사가들은 역사의 객관성 확보와 자료 활용의 용이성 때문에 주로 명시지(明示知)에 의존하며 암묵지(暗默知)를 배척한다.
명시지는 구체적으로 명문화하기 쉬운 지식인 반면,암묵지는 그렇게 하기 어려운 지식이다.
객관성을 소중하게 여기는 역사가들이 명시지를 선호하는 건 당연하지만,암묵지를 전면 배척할 경우 의도하지 않은 역사 왜곡이 발생할 수 있다.
체제,제도,법,규칙,선거,사건,사고 등은 명시지의 영역인 반면,정신,자세,의식,전통,습속,관습,관행,기질 등은 암묵지의 영역이다.
역사가 후자를 무시하고 전자 위주로 기록된다고 생각해보라.
왜곡이 발생하는 것도 문제지만,그런 역사 기술은 인간을 왜소하게 만들고 성찰을 무의미한 것으로 여기게끔 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달리 말하자면,기존 역사 기술은 커뮤니케이션과 과정을 소홀히 하면서 구조와 결과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거대담론의 폭력성'을 은연중 드러낸다고 볼 수 있다.
-강준만,「역사는 커뮤니케이션이다」
<문제 1>
제시문 [가]와 [나]에서 그린버그와 세종이 거둔 성공의 공통 요인을 찾아 이를 구체적으로 논하라. (30%,500~600자)
⊙ 문제 1번 풀이
20세기 최고의 지성 중 한 명으로 손꼽히는 막스 베버는 관료제(Bureaucracy)라는 단어를 만들어 낸 학자로도 유명하다.
우리가 흔히 피라미드 형태의 조직구조를 떠올리곤 하는 관료제는 고전적인 조직체의 하나로서 그 장점인 합리성과 전문성,효율성으로 인하여 여전히 많은 조직에서 사용되고 있는 제도이다.
일반적인 정부,회사,학교,군대 등 일정한 계급에 따라 역할을 분담하여 일을 처리하는 모든 기관은 관료제 집단이라고 볼 수 있다.
「사회 및 경영조직의 이론들」(1947)에서 베버는 관료제가 조직의 능률과 합리성을 높일 수 있는 최고의 조직제도라고 주장한다.
하지만,반대로 그 특성을 유지하다보면 예기치 않았던 부작용 또한 생길 수 있다는 것도 지적하였다.
예를 들어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도입했던 법규나 분업체계,계급화 때문에 결국 목표와 수단의 가치 전도나 형식주의,무사안일주의,보수주의화가 올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이 문제를 풀기 위해 생각해봐야 할 것은 계급화에 관련된 부분이다.
군대와 같이 계급이 일정하게 정해져있고,하급자가 상급자의 명령에 무조건 복종해야 하는 조직형태에서는 결정까지 걸리는 시간이 다수협의체에 비해 상대적으로 매우 짧지만,그 결정이 과연 합리적이거나 효과적인지에 대해서는 장담하기 어렵다.
인간은 신이 아니기에 불완전한 결정을 내릴 수도 있는 것이다.
베버는 이러한 점이 관료제에 있어서 큰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런 우려는 실제로 여러 역사적 사례들을 통해 구체적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가령 엄격한 계급사회일수록 불합리한 일들이 일상적으로 자행되는 것이 오히려 더 쉽다.
하급자의 경우,상급자의 명령에 그대로 따르기만 하면 될 뿐이므로 책임 또한 크게 지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본연의 도덕성을 잃어버리는 일이 발생하는 것이다.
인문학에 관심이 많은 학생들이라면 한번쯤 들어봤음 직한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1963)이나 라인홀드 니부어의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1932)와 같은 책들은 바로 이런 내용을 다루고 있다.
더군다나 한국 사회와 같이 유교적 전통이 여전히 강하게 남아 있는 특수 사회(?)에서는 직장이나 군대가 아니더라도 나이라는 계급에 따라 위아래가 결정되곤 한다.
"너 몇 살이야?"라는 물음 속에 담겨져 있는 묘한 계급의식은 한국 사람들이 태생적으로 안고 살아가야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어찌 보면 관료제도 속에서의 계급과 일상생활에서의 계급(나이)이 분리된 한국 사회는 이중의 계급이 존재하는 완전한 계급사회일 수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이러한 엄숙한 계급의식이 점차 사라지고,나이나 계급에 상관없이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는 사회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는 것은 분명 다행스러운 일이다.
하고 싶은 말을 한다는 것은 지난 시절 어른들이 그토록 싫어하던 '말대꾸'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것이 계급 간,세대 간 대화의 시작인 것이다.
'그것은 제게 맞지 않아요' '그것은 제 생각에 틀린 것 같아요'와 같은 표현들은 상대방의 결정에 대해 이견을 드러내는 것인 동시에,반대로 상대방의 불완전한 결정을 좀 더 합리적인 방향으로 이끌어 가주길 요구하는 표현이기도 하다.
우리는 좀 더 나은 결정을 위해 이견에,반론에,말대꾸에,불평불만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우리가 이미 잘 알고 있듯,계급이 높다고 마땅히 옳을 리는 없기 때문이다.
제시문 (가)를 읽으면서도 많은 이들이 그것을 깨달았을 것이다.
수백 명의 생명이 왔다갔다 하는 순간에도 위계질서의 굴레를 벗어던지지 못했던 1997년의 그들은 아쉽게도 최악의 결과를 맞이하고 말았다.
2000년 대한항공의 비행 담당 임원으로 임명된 그린버그는 이 문제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다.
위계질서에 따른 소통의 단절이 그날의 사고를 불러왔다는 것을 말이다.
그래서 그가 했던 일은 궁극적으로,타인과의 소통을 원활하게 하는 것이었다.
영어를 회사 내 공용어로 규정한 일은,외국인들과의 의사소통뿐만 아니라,한국인들끼리의 의사소통 역시 선명하게 할 수 있도록 배려한 일이었다.
위에서 이미 말했듯,이중의 계급을 지니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 나이도 많고,계급도 높은 사람에게 자신의 뜻을 완벽하게 전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제시문 (나)의 세종 역시 소통을 강조하는 군주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한 나라의 왕으로서 세종은 가장 강한 힘을 갖고 있었지만,막무가내로 일을 밀어붙이지 않았다.
더군다나 결과적으로 보았을 때 올바른 판단임에도 불구하고,그는 반대파의 동의까지 구해내기 위해 기다렸다.
그리고 실제로 그 정책의 수혜자가 될 국민들의 여론까지 꼼꼼하게 살폈다.
그렇게 되었을 때야 비로소 정책이 빛을 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은 것이다.
제시문의 말미에 친절하게 제시하고 있듯,<대화를 통한 상호이해>야말로 세종의 성공요인이었다.
그리고 이것이 그린버그가 궁극적으로 회사 내 영어공용화 정책으로 이루려고 했던 바이기도 했다.
두 제시문 모두가 강조하듯,상대방을 이해하려는 수평적인 대화의 노력이 더 나은 결론에 이르게 한 것이다.
<문제 2>
제시문 [다]의 논거를 활용하여 제시문 [가]에 나타난 그린버그의 문제 해결 과정을 논하라. (30%,500~600자)
⊙ 문제 2번 풀이
우리가 무엇인가를 안다고 생각할 때,그게 과연 무엇을 안다는 것일까?
가령 제시문 (나)에 등장하는 세종대왕을 생각해보자.
당장 1만원짜리 지폐에 그려져 있는 그분의 얼굴이나 광화문 광장에 앉아계신 그분의 동상,혹은 그분의 업적으로서의 한글 등을 떠올릴 것이다.
그리고 또 떠올려 보면 알겠지만,우리가 아는 것들이란 그저 가시적으로 드러난 것들이 대부분이다.
우리는 결과적으로 드러난 X라는 사태나 사건을 알고 있을 뿐이다.
마찬가지로,대다수의 역사책은 실적 중심이자 결과 중심이다.
지금 당장 국사책을 꺼내보아도 알 수 있듯 역사책이란 것은 체제,제도,법,규칙,선거,사건,사고를 중심으로 서술되어 있을 뿐이다.
하지만 우리가 세종대왕을 안다고 할 때 세종의 업적만을 나열해서는 안 되는 것처럼,마치 우리가 누군가를 안다고 할 때 그의 생일과 전화번호,집주소 따위의 정보만을 나열해서는 안 되는 것처럼,온전한 지식을 이루기 위해서는 눈에 보이지 않는 영역의 구성 또한 필요하다.
그것이 바로 정신,자세,의식,전통,습속,관습,관행,기질과 같은 것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제시문 (다)의 필자는 승리한 자만을 위한 몇몇의 결과나 업적으로 역사를 보려는 행위를 '거대담론의 폭력'이라 규정지으며 그 안에 숨겨져 있는 다양한 정신적 요소를 살필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이 문제를 푸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다)의 제시문에는 이미 (가)를 읽기 위한 독해의 룰로서의 명시지와 암묵지가 등장하고 있다.
이렇게 친절하게 2개의 대비되는 기준을 제공해주고,이에 따라 그린버그의 방식을 나눠보기만 해도 답은 찾아진다.
그린버그는 눈에 보이는 규칙을 바꿈으로써 눈에 보이지 않는 상호이해의 소통을 가능하게 했다.
우리는 그를 이해하기 위해서 단지 결과적으로 '영어공용화라는 규칙을 규정했다'고 볼 것이 아니라,'문화적 유산으로서의 위계질서의 함정'이 갖는 폐해를 극복하기 위해 이런 규칙을 활용한 것이라고 보아야 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린버그는 위계질서의 함정을 무너뜨리기 위해 조종사를 대체함으로써 결과를 이룰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지 않았다.
보이지 않는 암묵적인 가치로서의 문화적 유산이 갖는 힘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조종사들 스스로가 직업적으로 불합리하고 불필요한 문화적 관습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한 것이다.
결국,그는 암묵지의 가치를 존중하고,명시지를 통해 이를 최대한 자연스럽게 조종사에게 필요한 암묵지로 자리잡도록 견인한 것이라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이용준 S · 논술 선임연구원 leroy7@hanmail.net
가 오전 1시 21분 13초,우리는 부기장이 말하고자 했던 것을 알고 있다.
"기장님,후행 대책 없이 시계 접근을 하겠다고 하셨지만 바깥 날씨가 끔찍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말하지 못했다. …(중략)… 기관사도 아마 이렇게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육안에만 의존해서 착륙을 시도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닙니다. 기상 레이더에 뜬 걸 보세요. 계속 가면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중략)…
오전 1시 41분 59초,부기장이 혼잣말을 했다. "안 보이잖아?"
오전 1시 42분 19초,부기장이 말했다. "착륙,포기합시다."
그는 결국 힌트를 주다가 동료에게 권유하는 방식으로 어조를 높였다. 그는 착륙을 취소하고 싶었던 것이다.
훗날 조사를 통해 그 시점에 부기장이 조종권을 넘겨받고 조종간을 당겼더라면,니미츠 힐에 충돌하지 않고 재착륙을 시도할 수 있는 충분한 여유가 있었음이 확인되었다.
부기장은 기장이 명백히 잘못하고 있을 경우,그렇게 행동하라고 훈련을 받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교실에서 배우는 내용일 뿐이고 하늘에서 벌어지는 일은 엄연히 달랐다.
실수를 하면 손으로 등을 얻어맞을 수도 있는 것이 조종실의 현실이었다.
오전 1시 42분 20초,기관사가 말했다. "안 보이잖아."
결국 재앙이 그들 앞에 얼굴을 드러낼 때가 되어서야 부기장과 기관사가 입을 열었다.
그들은 기장이 '고 어라운드'하기를,조종간을 당겨 다시 착륙을 시도하기를 바랐다. 하지만 너무 늦었다.
엄격한 위계질서를 중시하는 문화 속에서 조종사,부조종사,기관사 간의 커뮤니케이션은 단절되었고 1997년 8월 5일,괌 사고는 이렇게 발생했다.
2000년,대한항공은 데이비드 그린버그를 비행 담당 임원으로 영입한다.
그린버그가 처음으로 한 일은 그가 대한항공의 문제를 뿌리부터 파악하고 있지 않았다면 내놓을 수 없던 것이었다.
그린버그는 '대한항공의 공용어는 영어다. 만약 대한항공의 조종사로 남고 싶다면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할 수 있어야 한다'는 규칙을 세웠다.
"케네디공항의 러시아워에 손짓,발짓으로 대화할 수 없지요. 어디까지나 대화로 풀어가야 하므로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잘 이해하고 있다는 걸 보여줘야 합니다. 물론 한국 사람들끼리 영어로 말할 필요는 없겠죠. 그러나 외국인과 중요한 의사소통을 해야 하는 경우라면 영어는 매우 중요해집니다."
그린버그는 조종사들에게 또 다른 정체성을 심어주고자 애썼다.
그들이 문화적 유산의 함정에 빠져 있다는 것을 심각한 문제로 보았기 때문이다.
일단 조종석에 앉았을 때는 기존의 역할로부터 벗어날 필요가 있었고,언어는 그 전환을 이끌어내는 열쇠였다.
영어로는 한국어의 복잡한 경어체계를 사용할 수 없지 않은가.
그린버그의 개혁에서 가장 결정적인 것은 '그가 하지 않은 일'에 있었다.
그는 절망에 빠진 대한항공 조종사들을 몽땅 해고하고 권력 간격이 낮은 문화권의 조종사로 대체하지 않았다.
그는 문화적 유산이 문제이고,그 힘은 강력하고 널리 퍼져 있으며 본래의 유용성이 사라진 후에도 오래도록 지속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문화적 유산을 떨쳐낼 수 없는 것으로 보지는 않았다.
그는 한국인이 스스로의 문화적 기원에 솔직해지고 항공 세계와 맞지 않는 부분과 정면으로 대결할 의향이 있다면 그것을 바꿀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결국 그는 하키선수로부터 소프트웨어 재벌,인수 · 합병 변호사까지 모든 이들이 누렸던 기회를 대한항공 파일럿에게도 제공했다.
일과 삶의 관계를 재정립할 수 있는 기회를 말이다.
-말콤 글래드웰,「아웃라이어」
나 "정 그렇다면,백성들에게 어떤 제도가 더 좋은지 여론조사를 실시하는 것이 어떻겠소?" …(중략)…
허를 찔린 신하들은 허둥거렸지만 세종은 침착하게 여론조사를 준비했다.
여론조사 기관에서 집집마다 찾아가 백성들에게 의견을 물어본 결과 찬성이 9만8000여 가구,반대가 7만4000여 가구였다. 찬성이 우세했다.
찬성이 압도적인 곳은 삼남과 같은 단위면적당 생산량이 높은 지역이었고,반대가 많은 곳은 척박한 농지가 많은 한강 이북의 지역이었다.
그런데 이처럼 지역적으로 이해관계에 얽혀 편차가 심하고 신하들도 반대하자 세종은 공법개혁을 일단 유보했다.
세종은 반대하는 신하들의 심리를 어느 정도는 이해하고 있었다.
이유는 명확했다. 공법개혁을 하게 되면 세금을 더 많이 걷을 수 있어 국가재정은 튼튼해지지만 문제는 누구도 세금을 더 많이 내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특히 부유한 관리들은 세금을 덜 내고 싶어 했기 때문에 강력히 반대했다.
다시 1년이 지나자 세종은 공법개혁 문제를 또 꺼냈다. …(중략)…
세종도 물러서지 않았다. 거듭 개혁안의 수정을 지시했다.
세금처럼 민감한 문제일수록 반대편의 동의 없이는 성공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세종은 조급해 하지 않았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꼼꼼하게 챙겼다.
마침내 공법개혁을 제안한 지 15년 만에,즉 세종 24년에 토질과 수확량에 따라 세금을 거두는 새로운 제도가 통과되었다.
손실답험법과 정액세제를 절충하여 '연분 9등-전분 6등'이라는 새로운 징수기준이 마련된 것이다.
만장일치로 이뤄낸 결과였기에 그 의미는 더욱 컸다.
세종은 프로젝트를 언제나 중장기적으로 모두가 동의하는 방향으로 진행했다.
그리고 프로젝트를 시행하기 전에 전문가로 하여금 충분히 연구하게 했다.
또 연구 결과가 나오고 프로젝트의 성공과 그 영향에 대해 확신이 설 때까지 그 문제를 중신들끼리 충분히 논의하도록 했다.
그리고 중신들의 의견이 하나로 결집되지 않으면 여론조사를 통해 백성들의 의견을 모았다.
세종은 대화를 통한 상호이해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깊게 인식한 왕이었던 것이었다.
이렇게 해서 새로운 정책과 제도를 채택했고,채택을 한 경우에도 한꺼번에 실시하는 것이 아니라 차츰차츰 시행했다.
-정도상 & 최재혁,「백성을 섬긴 왕,세종이 꿈꾼 나라」
다 E. H. 카는 "역사는 역사가와 사실과의 상호작용의 부단한 과정이며 현재와 과거와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했지만,그 상호작용,대화의 성격과 질이 문제의 핵심이다.
'대화'보다는 넒은 의미의 '커뮤니케이션'이라는 단어가 더 적합하다. 역사는 커뮤니케이션이다. …(중략)…
어떤 주제를 다루더라도 커뮤니케이션의 관점에서 보자는 게 커뮤니케이션사의 취지다.
역사를 선의로 이용할 경우에도 일반적인 역사 기술 방법 자체에서 비롯되는 문제가 있다.
역사가들은 역사의 객관성 확보와 자료 활용의 용이성 때문에 주로 명시지(明示知)에 의존하며 암묵지(暗默知)를 배척한다.
명시지는 구체적으로 명문화하기 쉬운 지식인 반면,암묵지는 그렇게 하기 어려운 지식이다.
객관성을 소중하게 여기는 역사가들이 명시지를 선호하는 건 당연하지만,암묵지를 전면 배척할 경우 의도하지 않은 역사 왜곡이 발생할 수 있다.
체제,제도,법,규칙,선거,사건,사고 등은 명시지의 영역인 반면,정신,자세,의식,전통,습속,관습,관행,기질 등은 암묵지의 영역이다.
역사가 후자를 무시하고 전자 위주로 기록된다고 생각해보라.
왜곡이 발생하는 것도 문제지만,그런 역사 기술은 인간을 왜소하게 만들고 성찰을 무의미한 것으로 여기게끔 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달리 말하자면,기존 역사 기술은 커뮤니케이션과 과정을 소홀히 하면서 구조와 결과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거대담론의 폭력성'을 은연중 드러낸다고 볼 수 있다.
-강준만,「역사는 커뮤니케이션이다」
<문제 1>
제시문 [가]와 [나]에서 그린버그와 세종이 거둔 성공의 공통 요인을 찾아 이를 구체적으로 논하라. (30%,500~600자)
⊙ 문제 1번 풀이
20세기 최고의 지성 중 한 명으로 손꼽히는 막스 베버는 관료제(Bureaucracy)라는 단어를 만들어 낸 학자로도 유명하다.
우리가 흔히 피라미드 형태의 조직구조를 떠올리곤 하는 관료제는 고전적인 조직체의 하나로서 그 장점인 합리성과 전문성,효율성으로 인하여 여전히 많은 조직에서 사용되고 있는 제도이다.
일반적인 정부,회사,학교,군대 등 일정한 계급에 따라 역할을 분담하여 일을 처리하는 모든 기관은 관료제 집단이라고 볼 수 있다.
「사회 및 경영조직의 이론들」(1947)에서 베버는 관료제가 조직의 능률과 합리성을 높일 수 있는 최고의 조직제도라고 주장한다.
하지만,반대로 그 특성을 유지하다보면 예기치 않았던 부작용 또한 생길 수 있다는 것도 지적하였다.
예를 들어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도입했던 법규나 분업체계,계급화 때문에 결국 목표와 수단의 가치 전도나 형식주의,무사안일주의,보수주의화가 올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이 문제를 풀기 위해 생각해봐야 할 것은 계급화에 관련된 부분이다.
군대와 같이 계급이 일정하게 정해져있고,하급자가 상급자의 명령에 무조건 복종해야 하는 조직형태에서는 결정까지 걸리는 시간이 다수협의체에 비해 상대적으로 매우 짧지만,그 결정이 과연 합리적이거나 효과적인지에 대해서는 장담하기 어렵다.
인간은 신이 아니기에 불완전한 결정을 내릴 수도 있는 것이다.
베버는 이러한 점이 관료제에 있어서 큰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런 우려는 실제로 여러 역사적 사례들을 통해 구체적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가령 엄격한 계급사회일수록 불합리한 일들이 일상적으로 자행되는 것이 오히려 더 쉽다.
하급자의 경우,상급자의 명령에 그대로 따르기만 하면 될 뿐이므로 책임 또한 크게 지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본연의 도덕성을 잃어버리는 일이 발생하는 것이다.
인문학에 관심이 많은 학생들이라면 한번쯤 들어봤음 직한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1963)이나 라인홀드 니부어의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1932)와 같은 책들은 바로 이런 내용을 다루고 있다.
더군다나 한국 사회와 같이 유교적 전통이 여전히 강하게 남아 있는 특수 사회(?)에서는 직장이나 군대가 아니더라도 나이라는 계급에 따라 위아래가 결정되곤 한다.
"너 몇 살이야?"라는 물음 속에 담겨져 있는 묘한 계급의식은 한국 사람들이 태생적으로 안고 살아가야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어찌 보면 관료제도 속에서의 계급과 일상생활에서의 계급(나이)이 분리된 한국 사회는 이중의 계급이 존재하는 완전한 계급사회일 수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이러한 엄숙한 계급의식이 점차 사라지고,나이나 계급에 상관없이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는 사회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는 것은 분명 다행스러운 일이다.
하고 싶은 말을 한다는 것은 지난 시절 어른들이 그토록 싫어하던 '말대꾸'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것이 계급 간,세대 간 대화의 시작인 것이다.
'그것은 제게 맞지 않아요' '그것은 제 생각에 틀린 것 같아요'와 같은 표현들은 상대방의 결정에 대해 이견을 드러내는 것인 동시에,반대로 상대방의 불완전한 결정을 좀 더 합리적인 방향으로 이끌어 가주길 요구하는 표현이기도 하다.
우리는 좀 더 나은 결정을 위해 이견에,반론에,말대꾸에,불평불만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우리가 이미 잘 알고 있듯,계급이 높다고 마땅히 옳을 리는 없기 때문이다.
제시문 (가)를 읽으면서도 많은 이들이 그것을 깨달았을 것이다.
수백 명의 생명이 왔다갔다 하는 순간에도 위계질서의 굴레를 벗어던지지 못했던 1997년의 그들은 아쉽게도 최악의 결과를 맞이하고 말았다.
2000년 대한항공의 비행 담당 임원으로 임명된 그린버그는 이 문제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다.
위계질서에 따른 소통의 단절이 그날의 사고를 불러왔다는 것을 말이다.
그래서 그가 했던 일은 궁극적으로,타인과의 소통을 원활하게 하는 것이었다.
영어를 회사 내 공용어로 규정한 일은,외국인들과의 의사소통뿐만 아니라,한국인들끼리의 의사소통 역시 선명하게 할 수 있도록 배려한 일이었다.
위에서 이미 말했듯,이중의 계급을 지니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 나이도 많고,계급도 높은 사람에게 자신의 뜻을 완벽하게 전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제시문 (나)의 세종 역시 소통을 강조하는 군주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한 나라의 왕으로서 세종은 가장 강한 힘을 갖고 있었지만,막무가내로 일을 밀어붙이지 않았다.
더군다나 결과적으로 보았을 때 올바른 판단임에도 불구하고,그는 반대파의 동의까지 구해내기 위해 기다렸다.
그리고 실제로 그 정책의 수혜자가 될 국민들의 여론까지 꼼꼼하게 살폈다.
그렇게 되었을 때야 비로소 정책이 빛을 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은 것이다.
제시문의 말미에 친절하게 제시하고 있듯,<대화를 통한 상호이해>야말로 세종의 성공요인이었다.
그리고 이것이 그린버그가 궁극적으로 회사 내 영어공용화 정책으로 이루려고 했던 바이기도 했다.
두 제시문 모두가 강조하듯,상대방을 이해하려는 수평적인 대화의 노력이 더 나은 결론에 이르게 한 것이다.
<문제 2>
제시문 [다]의 논거를 활용하여 제시문 [가]에 나타난 그린버그의 문제 해결 과정을 논하라. (30%,500~600자)
⊙ 문제 2번 풀이
우리가 무엇인가를 안다고 생각할 때,그게 과연 무엇을 안다는 것일까?
가령 제시문 (나)에 등장하는 세종대왕을 생각해보자.
당장 1만원짜리 지폐에 그려져 있는 그분의 얼굴이나 광화문 광장에 앉아계신 그분의 동상,혹은 그분의 업적으로서의 한글 등을 떠올릴 것이다.
그리고 또 떠올려 보면 알겠지만,우리가 아는 것들이란 그저 가시적으로 드러난 것들이 대부분이다.
우리는 결과적으로 드러난 X라는 사태나 사건을 알고 있을 뿐이다.
마찬가지로,대다수의 역사책은 실적 중심이자 결과 중심이다.
지금 당장 국사책을 꺼내보아도 알 수 있듯 역사책이란 것은 체제,제도,법,규칙,선거,사건,사고를 중심으로 서술되어 있을 뿐이다.
하지만 우리가 세종대왕을 안다고 할 때 세종의 업적만을 나열해서는 안 되는 것처럼,마치 우리가 누군가를 안다고 할 때 그의 생일과 전화번호,집주소 따위의 정보만을 나열해서는 안 되는 것처럼,온전한 지식을 이루기 위해서는 눈에 보이지 않는 영역의 구성 또한 필요하다.
그것이 바로 정신,자세,의식,전통,습속,관습,관행,기질과 같은 것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제시문 (다)의 필자는 승리한 자만을 위한 몇몇의 결과나 업적으로 역사를 보려는 행위를 '거대담론의 폭력'이라 규정지으며 그 안에 숨겨져 있는 다양한 정신적 요소를 살필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이 문제를 푸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다)의 제시문에는 이미 (가)를 읽기 위한 독해의 룰로서의 명시지와 암묵지가 등장하고 있다.
이렇게 친절하게 2개의 대비되는 기준을 제공해주고,이에 따라 그린버그의 방식을 나눠보기만 해도 답은 찾아진다.
그린버그는 눈에 보이는 규칙을 바꿈으로써 눈에 보이지 않는 상호이해의 소통을 가능하게 했다.
우리는 그를 이해하기 위해서 단지 결과적으로 '영어공용화라는 규칙을 규정했다'고 볼 것이 아니라,'문화적 유산으로서의 위계질서의 함정'이 갖는 폐해를 극복하기 위해 이런 규칙을 활용한 것이라고 보아야 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린버그는 위계질서의 함정을 무너뜨리기 위해 조종사를 대체함으로써 결과를 이룰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지 않았다.
보이지 않는 암묵적인 가치로서의 문화적 유산이 갖는 힘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조종사들 스스로가 직업적으로 불합리하고 불필요한 문화적 관습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한 것이다.
결국,그는 암묵지의 가치를 존중하고,명시지를 통해 이를 최대한 자연스럽게 조종사에게 필요한 암묵지로 자리잡도록 견인한 것이라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이용준 S · 논술 선임연구원 leroy7@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