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속의 시대가 낳은 새로운 인간과 삶
세상 사람을 둘로 나누면?
글쎄,혹시 이건 어떨까. '온라인 중인 사람'과 '오프라인 중인 사람'. (왠지 '온라人' '오프라人'이라는 언어유희도 그럴듯해 보인다.)
인터넷,통신 관련 기술 발달이 낳은 새로운 정보화 혁명은 산업혁명의 몇 배에 달하는 엄청난 변화라고 말한다.
컴퓨터가 켜지고 인터넷에 접속하는 순간,내 전화기의 전원을 켜는 순간 내 삶은 세상 속으로 들어가고 나는 세상 속에 존재하기 시작한다.
컴퓨터 통신과 휴대폰이 세상에 나타나 삶을 바꾸어가던 초창기 시절인 1995년,미국 사회사상가 제레미 리프킨은 자신의 대표작 「소유의 종말」로 세상 사람들에게 접속의 시대를 내다보도록 도와준다.
이 책은 출판된 지 아직 20년도 되지 않았지만 현대의 대표 고전에 올라 있고 지난 10년간의 논술 빈출 목록을 정리한다면 꼭 포함될 것이다.
잠시 생글생글에 접속해 소유가 종말을 고한 시대,접속의 시대를 읽고 생각해보자.
⊙ "나는 접속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위급한 순간을 하나 가정해 보자.
이게 웬일,우리 집에 불이 났다. 당장 뛰어 나가면 안전하다. 집안에서 내가 들고 나갈 수 있는 것은 딱 한 가지 있다.
나는 지금 안절부절못하고 있다. (걱정 말기를 옷은 입고 있는 상황이다) 자,그렇다면 무엇을 들고 나가겠는가?
무슨 이상한 심리테스트용 질문 아니니 걱정 말고 아무거나 이거다 싶은 것을 말해보자.
무엇을 들고 뛰어나갔는가? 배고플지 몰라 냉장고를 번쩍 들고…추울 것 같아 두꺼운 외투?
으흠,혹시 주저없이 휴대폰과 같은 통신 매체를 선택하지는 않았나? 그렇다,휴대폰을 들고 나온 나는 아무리 집에 불이 났어도 외롭지 않고 세상에서 분리돼 있지 않다.
어느 시인은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고 적어 내려갔다.
사람들 넘치고 사람들이 모인 곳은 대부분 도시화가 진행되는, 정신없이 돌아가는 요즘 세상에 왠지 뭉클하게 다가오는 시 한편이다. (잠깐,위의 시는 저 두 문장이 시의 전문(全文)이다.)
그 섬이 외로운 무인도라고 해도 결코 섬이 아니며 혼자 있는 것도 아니다. 접속이 이뤄지는 순간 나는 세상 속에 존재한다.
불난 집에서 휴대폰 하나 들고 뛰어 나오는 것은 아마도 한 달치 용돈이 들어 있는 지갑보다 더 귀중할지 모른다.
게다가 최신형 스마트폰이라도 된다면 더더욱 그럴지도.
어쨌든 나를 세상에 이어주고 나를 세상에 온전하게 존재하도록 해주는 것,그것은 따뜻한 밥이 아닌,세상에 연결돼 있음이다.
요즘처럼 온 지구가 하나로 연결돼 있는 현대 사회에서 개인의 정체성은 "접속한다, 나는 고로 존재한다"로 표현될지도 모른다.
⊙ 소유냐 접속이냐
이 책은 원제를 따져보면 저자의 의도를 조금 더 이해하기 쉽다.
원래 제목은 '소유의 종말'과는 꽤 거리가 있어 보이는 '접속의 시대(The Age of Access)'다.
뜬금없이 이렇게 의미가 달라보이는 제목을 붙인 건 출판사의 상술일 수도 있겠지만 (아마도 이런 제목을 바꾼 데는 리프킨을 세계적인 유명 작가 반열에 올려 놓은 <노동의 종말> 때문인 듯하다.) 사실 저자는 접속의 시대가 낳은 새로운 생활 양식에서 핵심으로 제시하는 것은 바로 전통적인 자본주의사회 내에서의 소유 개념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 주의할 점은 '접속'이라는 단어 의미가 단순히 '인터넷에 접속한다' 식의 의미가 아닌 소유에 반대되는 의미로서 매우 폭넓은 의미를 지닌다는 점이다.
저자의 구분에 따르면 소유를 기준으로 볼 때,'접속'은 '소유'와 반대로 일시적으로 사용하는 권리를 의미한다.
일시적인 사용 권리를 뜻하는 접속은 인터넷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자동차,주택,가전품,공장,체인점 같은 다양한 실물 영역에서도 일관되게 발견되는 현대 사회의 거대한 흐름이다.
접속은 일시적으로 사용하는 권리다. 혹시 집안에 빌려쓰는 정수기라든지,그런 것이 있다면 그 역시 접속의 시대가 낳은 산물로 볼 수 있다.
변화와 혁신이 빠르게 이뤄지는 시대의 특징은 자기 것으로 늘 소유하는 것은 부담스러울 뿐 아니라 오히려 소유물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경제적인 효용성이나 편익 계산에서 비용이 너무 많이 사용돼 불리해질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사람들은 일시적으로 '접속'하게 되며 소유가 종말을 고하는 시대가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빠르게 변화와 혁신이 이뤄지는 시대에 소유에 집착하는 것은 불리하다.
그러다 보니 접속의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소유를 부담스럽게 여기게 된다.
이젠 접속의 시대 속에서 삶의 의미를 고찰해야 하는 것이다.
아래는 2006학년도 동국대 수시 논술에 출제되었던 제시문 중에서 발췌한 내용이다. 잠시 읽어보자.
☞ 현실 공간에서 가상공간으로,산업 자본주의에서 문화 자본주의로,소유에서 접속으로 이동하는 거대한 조류 앞에서 사람들은 사회 계약의 의미를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배타적으로 소유할 수 있고 시장에서 교환할 수 있는 사유 재산의 관념이 산업 시대의 근간이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일상생활의 조건을 규정지었고 정치적 담론을 지배했으며 인간의 지위를 판가름하는 잣대의 노릇을 했다.
판매자와 구매자가 재산을 교환할 수 있는 장을 제공하면서 수백 년 동안 문명의 근본 패러다임으로 군림해 온 시장 체제는 서서히 허물어지고 있다.
저 멀리 지평선에서 접속의 시대가 떠오르고 있다. 접속의 시대는 상거래와 정치 참여의 방식은 물론 의식의 가장 깊은 차원에서 우리가 스스로를 바라보는 관점에도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산업혁명 이후 생산력이 폭발하고 이후 20세기까지는 소유의 시대로 명명할 수 있을지 모른다.
소비하고 소유하는 데서 인간은 삶의 만족을 얻고 자기만의 정체성을 확보해 나갔다.
기업들 역시 대량 생산으로 인한 세계 시장 점유율을 높여 나가며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이제는 더 이상 제조업의 시대,굴뚝의 연기가 세상을 지배하는 시대가 아니라 생활 전반의 근본적인 패러다임이 변화하게 된 접속의 시대가 찾아온 것이다.
⊙ 접속의 시대,신인류 탄생
기존 산업사회 소유 개념에서 벗어난 접속이 지배하는 삶을 살아가는 시대 새로운 인간형이 탄생한다.
리프킨은 "접속의 시대는 새로운 유형의 인간을 몰고 온다. 바다의 신이자 변화무쌍한 모습을 가졌던 그리스 신화의 프로테우스처럼 새로운 '프로테우스' 세대의 젊은이들은 전자 상거래와 사이버스페이스 세계에서 이뤄지는 사업에 아무런 거부감이 없으며 그 속에서 펼쳐지는 사교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한다"고 평가한다.
가볍고 찰나적인 관계에 익숙한 인간형이 접속의 시대에 어울리는 인간형이 될 것이라는 것 역시 이러한 진단에서 나오게 된다.
또한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자유롭게 오가며 다중 인격자의 세계가 탄생하게 된다.
일관된 그 무엇을 추구하고,인간관계에서도 끈끈함,참을성이 미약해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와 같이 리프킨이 1995년 당시 내다본 새로운 유형의 인간은 어떠한 긍정적 부정적 가치 평가를 이루기 이전에 새로운 유형의 인간으로서 나타난다. 그러한 인간은 어떤 모습일까.
2007학년도 서강대에서 출제된 제시문을 읽어보자.
☞ 접속의 시대는 새로운 유형의 인간을 몰고 온다.
바다의 신이자 변화무쌍한 모습을 가졌던 그리스 신화의 프로테우스처럼 새로운 '프로테우스' 세대의 젊은이들은 전자 상거래와 사이버스페이스 세계에서 이루어지는 사업에 아무런 거부감이 없으며 그 속에서 펼쳐지는 사교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그들은 문화경제를 구성하는 수많은 시뮬레이션 세계에 척척 적응한다.
그들에게 익숙한 세계는 이념적 세계가 아니라 연극적 세계이다.
그들의 의식은 노동 정신보다는 유희 정신에 기울어 있다.
그들에게 접속은 이미 생활의 일부가 되었다. 재산도 중요하지만 연결된다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
21세기의 인간은 관심을 공유하는 사람들로 이루어진 네트워크의 접속점이라는 의식으로 살아갈 것이고,다윈이 말한 적자생존의 경쟁이 치열하게 벌어지는 세계에서 자율적으로 살아가는 주체라고 스스로를 생각할 것이다.
그들이 생각하는 개인적 자유의 의미는 소유권이라든지 남들의 간섭에서 벗어나는 능력과는 점점 거리가 멀어질 것이다.
대신 상호 관계의 그물에 포함될 수 있는 권리로서의 의미가 점점 부각될 것이다.
그들은 접속의 시대를 살아가는 첫 번째 세대이다.
접속이 곧 나의 존재를 보증하고 나의 정체성을 낳고 삶을 지속시키는 접속의 시대에 나타나는 새로운 인간형,즉 노동보다는 유희의 인간으로서 자율적인 주체로서 변화하는 인간상이다.
기존 산업시대의 인간과는 달리 무척이나 유연하고 발랄한 정신세계를 지닌 새로운 인간의 출현이 될 수 있지 않느냐는 진단이 가능하게 된다.
접속의 시대라는 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은 창의적이고 새로운 삶으로 매일매일이 갱신되는 삶이 가능할지도 모를 일이다.
⊙ 접속의 시대를 위한 가치
그렇다면 접속의 시대,소유가 종말을 고하는 시대 속에 우리의 삶은 어떤 가치를 중요하게 논할 수 있을까?
리프킨은 접속의 시대에서 문화를 인간의 가치를 낳는 유일한 원천으로 지적하며 문화가 유일한 원료로서 접속의 시대를 유지할 동력으로 보고 있다.
이러한 생각이 가능한 것은 접속의 시대가 지니는 특징 때문이기도 하다.
접속의 시대에 중요한 가치로 꼽히는 것은 경쟁이 아닌 협력하기,관계 맺기,서로 공존 공생하기이다.
이러한 가치를 담아 접속의 시대 다양한 인간 활동과 관계, 그 삶 자체로서 존중받을 수 있도록 공존의 시대를 열어가 보자는 메시지를 담아볼 수 있다.
박성진 S · 논술 선임연구원 moke@hanmail.net
세상 사람을 둘로 나누면?
글쎄,혹시 이건 어떨까. '온라인 중인 사람'과 '오프라인 중인 사람'. (왠지 '온라人' '오프라人'이라는 언어유희도 그럴듯해 보인다.)
인터넷,통신 관련 기술 발달이 낳은 새로운 정보화 혁명은 산업혁명의 몇 배에 달하는 엄청난 변화라고 말한다.
컴퓨터가 켜지고 인터넷에 접속하는 순간,내 전화기의 전원을 켜는 순간 내 삶은 세상 속으로 들어가고 나는 세상 속에 존재하기 시작한다.
컴퓨터 통신과 휴대폰이 세상에 나타나 삶을 바꾸어가던 초창기 시절인 1995년,미국 사회사상가 제레미 리프킨은 자신의 대표작 「소유의 종말」로 세상 사람들에게 접속의 시대를 내다보도록 도와준다.
이 책은 출판된 지 아직 20년도 되지 않았지만 현대의 대표 고전에 올라 있고 지난 10년간의 논술 빈출 목록을 정리한다면 꼭 포함될 것이다.
잠시 생글생글에 접속해 소유가 종말을 고한 시대,접속의 시대를 읽고 생각해보자.
⊙ "나는 접속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위급한 순간을 하나 가정해 보자.
이게 웬일,우리 집에 불이 났다. 당장 뛰어 나가면 안전하다. 집안에서 내가 들고 나갈 수 있는 것은 딱 한 가지 있다.
나는 지금 안절부절못하고 있다. (걱정 말기를 옷은 입고 있는 상황이다) 자,그렇다면 무엇을 들고 나가겠는가?
무슨 이상한 심리테스트용 질문 아니니 걱정 말고 아무거나 이거다 싶은 것을 말해보자.
무엇을 들고 뛰어나갔는가? 배고플지 몰라 냉장고를 번쩍 들고…추울 것 같아 두꺼운 외투?
으흠,혹시 주저없이 휴대폰과 같은 통신 매체를 선택하지는 않았나? 그렇다,휴대폰을 들고 나온 나는 아무리 집에 불이 났어도 외롭지 않고 세상에서 분리돼 있지 않다.
어느 시인은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고 적어 내려갔다.
사람들 넘치고 사람들이 모인 곳은 대부분 도시화가 진행되는, 정신없이 돌아가는 요즘 세상에 왠지 뭉클하게 다가오는 시 한편이다. (잠깐,위의 시는 저 두 문장이 시의 전문(全文)이다.)
그 섬이 외로운 무인도라고 해도 결코 섬이 아니며 혼자 있는 것도 아니다. 접속이 이뤄지는 순간 나는 세상 속에 존재한다.
불난 집에서 휴대폰 하나 들고 뛰어 나오는 것은 아마도 한 달치 용돈이 들어 있는 지갑보다 더 귀중할지 모른다.
게다가 최신형 스마트폰이라도 된다면 더더욱 그럴지도.
어쨌든 나를 세상에 이어주고 나를 세상에 온전하게 존재하도록 해주는 것,그것은 따뜻한 밥이 아닌,세상에 연결돼 있음이다.
요즘처럼 온 지구가 하나로 연결돼 있는 현대 사회에서 개인의 정체성은 "접속한다, 나는 고로 존재한다"로 표현될지도 모른다.
⊙ 소유냐 접속이냐
이 책은 원제를 따져보면 저자의 의도를 조금 더 이해하기 쉽다.
원래 제목은 '소유의 종말'과는 꽤 거리가 있어 보이는 '접속의 시대(The Age of Access)'다.
뜬금없이 이렇게 의미가 달라보이는 제목을 붙인 건 출판사의 상술일 수도 있겠지만 (아마도 이런 제목을 바꾼 데는 리프킨을 세계적인 유명 작가 반열에 올려 놓은 <노동의 종말> 때문인 듯하다.) 사실 저자는 접속의 시대가 낳은 새로운 생활 양식에서 핵심으로 제시하는 것은 바로 전통적인 자본주의사회 내에서의 소유 개념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 주의할 점은 '접속'이라는 단어 의미가 단순히 '인터넷에 접속한다' 식의 의미가 아닌 소유에 반대되는 의미로서 매우 폭넓은 의미를 지닌다는 점이다.
저자의 구분에 따르면 소유를 기준으로 볼 때,'접속'은 '소유'와 반대로 일시적으로 사용하는 권리를 의미한다.
일시적인 사용 권리를 뜻하는 접속은 인터넷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자동차,주택,가전품,공장,체인점 같은 다양한 실물 영역에서도 일관되게 발견되는 현대 사회의 거대한 흐름이다.
접속은 일시적으로 사용하는 권리다. 혹시 집안에 빌려쓰는 정수기라든지,그런 것이 있다면 그 역시 접속의 시대가 낳은 산물로 볼 수 있다.
변화와 혁신이 빠르게 이뤄지는 시대의 특징은 자기 것으로 늘 소유하는 것은 부담스러울 뿐 아니라 오히려 소유물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경제적인 효용성이나 편익 계산에서 비용이 너무 많이 사용돼 불리해질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사람들은 일시적으로 '접속'하게 되며 소유가 종말을 고하는 시대가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빠르게 변화와 혁신이 이뤄지는 시대에 소유에 집착하는 것은 불리하다.
그러다 보니 접속의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소유를 부담스럽게 여기게 된다.
이젠 접속의 시대 속에서 삶의 의미를 고찰해야 하는 것이다.
아래는 2006학년도 동국대 수시 논술에 출제되었던 제시문 중에서 발췌한 내용이다. 잠시 읽어보자.
☞ 현실 공간에서 가상공간으로,산업 자본주의에서 문화 자본주의로,소유에서 접속으로 이동하는 거대한 조류 앞에서 사람들은 사회 계약의 의미를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배타적으로 소유할 수 있고 시장에서 교환할 수 있는 사유 재산의 관념이 산업 시대의 근간이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일상생활의 조건을 규정지었고 정치적 담론을 지배했으며 인간의 지위를 판가름하는 잣대의 노릇을 했다.
판매자와 구매자가 재산을 교환할 수 있는 장을 제공하면서 수백 년 동안 문명의 근본 패러다임으로 군림해 온 시장 체제는 서서히 허물어지고 있다.
저 멀리 지평선에서 접속의 시대가 떠오르고 있다. 접속의 시대는 상거래와 정치 참여의 방식은 물론 의식의 가장 깊은 차원에서 우리가 스스로를 바라보는 관점에도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산업혁명 이후 생산력이 폭발하고 이후 20세기까지는 소유의 시대로 명명할 수 있을지 모른다.
소비하고 소유하는 데서 인간은 삶의 만족을 얻고 자기만의 정체성을 확보해 나갔다.
기업들 역시 대량 생산으로 인한 세계 시장 점유율을 높여 나가며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이제는 더 이상 제조업의 시대,굴뚝의 연기가 세상을 지배하는 시대가 아니라 생활 전반의 근본적인 패러다임이 변화하게 된 접속의 시대가 찾아온 것이다.
⊙ 접속의 시대,신인류 탄생
기존 산업사회 소유 개념에서 벗어난 접속이 지배하는 삶을 살아가는 시대 새로운 인간형이 탄생한다.
리프킨은 "접속의 시대는 새로운 유형의 인간을 몰고 온다. 바다의 신이자 변화무쌍한 모습을 가졌던 그리스 신화의 프로테우스처럼 새로운 '프로테우스' 세대의 젊은이들은 전자 상거래와 사이버스페이스 세계에서 이뤄지는 사업에 아무런 거부감이 없으며 그 속에서 펼쳐지는 사교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한다"고 평가한다.
가볍고 찰나적인 관계에 익숙한 인간형이 접속의 시대에 어울리는 인간형이 될 것이라는 것 역시 이러한 진단에서 나오게 된다.
또한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자유롭게 오가며 다중 인격자의 세계가 탄생하게 된다.
일관된 그 무엇을 추구하고,인간관계에서도 끈끈함,참을성이 미약해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와 같이 리프킨이 1995년 당시 내다본 새로운 유형의 인간은 어떠한 긍정적 부정적 가치 평가를 이루기 이전에 새로운 유형의 인간으로서 나타난다. 그러한 인간은 어떤 모습일까.
2007학년도 서강대에서 출제된 제시문을 읽어보자.
☞ 접속의 시대는 새로운 유형의 인간을 몰고 온다.
바다의 신이자 변화무쌍한 모습을 가졌던 그리스 신화의 프로테우스처럼 새로운 '프로테우스' 세대의 젊은이들은 전자 상거래와 사이버스페이스 세계에서 이루어지는 사업에 아무런 거부감이 없으며 그 속에서 펼쳐지는 사교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그들은 문화경제를 구성하는 수많은 시뮬레이션 세계에 척척 적응한다.
그들에게 익숙한 세계는 이념적 세계가 아니라 연극적 세계이다.
그들의 의식은 노동 정신보다는 유희 정신에 기울어 있다.
그들에게 접속은 이미 생활의 일부가 되었다. 재산도 중요하지만 연결된다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
21세기의 인간은 관심을 공유하는 사람들로 이루어진 네트워크의 접속점이라는 의식으로 살아갈 것이고,다윈이 말한 적자생존의 경쟁이 치열하게 벌어지는 세계에서 자율적으로 살아가는 주체라고 스스로를 생각할 것이다.
그들이 생각하는 개인적 자유의 의미는 소유권이라든지 남들의 간섭에서 벗어나는 능력과는 점점 거리가 멀어질 것이다.
대신 상호 관계의 그물에 포함될 수 있는 권리로서의 의미가 점점 부각될 것이다.
그들은 접속의 시대를 살아가는 첫 번째 세대이다.
접속이 곧 나의 존재를 보증하고 나의 정체성을 낳고 삶을 지속시키는 접속의 시대에 나타나는 새로운 인간형,즉 노동보다는 유희의 인간으로서 자율적인 주체로서 변화하는 인간상이다.
기존 산업시대의 인간과는 달리 무척이나 유연하고 발랄한 정신세계를 지닌 새로운 인간의 출현이 될 수 있지 않느냐는 진단이 가능하게 된다.
접속의 시대라는 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은 창의적이고 새로운 삶으로 매일매일이 갱신되는 삶이 가능할지도 모를 일이다.
⊙ 접속의 시대를 위한 가치
그렇다면 접속의 시대,소유가 종말을 고하는 시대 속에 우리의 삶은 어떤 가치를 중요하게 논할 수 있을까?
리프킨은 접속의 시대에서 문화를 인간의 가치를 낳는 유일한 원천으로 지적하며 문화가 유일한 원료로서 접속의 시대를 유지할 동력으로 보고 있다.
이러한 생각이 가능한 것은 접속의 시대가 지니는 특징 때문이기도 하다.
접속의 시대에 중요한 가치로 꼽히는 것은 경쟁이 아닌 협력하기,관계 맺기,서로 공존 공생하기이다.
이러한 가치를 담아 접속의 시대 다양한 인간 활동과 관계, 그 삶 자체로서 존중받을 수 있도록 공존의 시대를 열어가 보자는 메시지를 담아볼 수 있다.
박성진 S · 논술 선임연구원 moke@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