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퓰리즘적 친서민 정책에 대한 ‘향수’… 추종자들 대규모 反정부 시위
[Global Issue] 태국 사람들은 ‘부패 지도자’ 탁신에 왜 아직도 열광할까?
관광 대국인 태국의 수도 방콕이 붉은빛으로 물들었다.

탁신 친나왓 전 총리(2001~2006년 재임)를 지지하는 반정부 시위대가 아피싯 웨차치와 현 총리의 퇴진과 의회 해산 이후 조기총선을 요구하며 방콕으로 몰려들었다.

지난 12일 처음 시작된 반정부 시위는 탁신 지지자들이 트럭 오토바이 기차, 심지어는 강을 따라 보트를 타고 각지에서 방콕으로 들어오면서 14일 최대인 10만여명이 시내 중심가에 집결하며 힘을 보여줬다.

부정부패 혐의가 밝혀진 탁신이 군사 쿠데타로 축출된 2006년 이후 탁신 지지자들은 호시탐탐 탁신의 복귀를 노려왔고 이번 대규모 시위를 계기로 현 정부에 압력을 가한 것이다.

시위 6일째인 17일 현재 시위대 규모는 3만8000여명으로 감소했지만 이들은 여전히 태국 정국을 혼란으로 몰아넣고 있다.

⊙ 반정부 시위의 중심엔 탁신

'미소의 나라'라 불리는 태국의 국민들에게서 요즘 미소가 사라졌다.

태국은 관광 대국이란 타이틀에 걸맞게 친절함이 온 국민의 몸에 밴 국가다.

또 인구의 94%가 불교를 믿고 성인 남자의 다수가 단기 출가를 경험하면서 몸에 자비심을 익혀오기도 했다.

하지만 요즘 대신 방콕 거리를 뒤덮은 건 "아피싯 (현 총리) 죽어라"는 노기 어린 구호다.

이번 시위의 한가운데 탁신 전 총리가 있다. 이번 시위의 직접적인 계기도 탁신에 대한 재산 몰수 판결이었다.

태국 대법원은 지난달 26일 탁신 전 총리의 재직 시절 권력 남용과 재산 은닉 행위 등을 인정하면서,그의 재산 60%에 해당하는 14억달러를 몰수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이에 반발한 탁신 지지파가 태국 전역에서 방콕으로 집결한 것이다.

권력을 이용해 재산을 챙긴 부패 지도자 탁신에게 그들은 왜 열광하는 것일까.

여기엔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이란 비판을 받기도 한 탁신의 친서민적 정치노선에 대한 향수 △탁신 축출 후 글로벌 경기침체의 영향으로 어려워진 경제 상황 △정치 불안 등의 복합적 요인이 작용하고 있다.

또한 농민과 서민 중심의 친탁신계와 지배 엘리트 그리고 중산층 위주의 반탁신계로 나뉜 양극화도 주요 원인이다.

태국 국민들은 2008년부터 친탁신과 반탁신 진영으로 쪼개져 시위를 반복하며 서로 싸웠다.

정부 청사와 공항 점거 사태가 일어나면서 2년 연속 동남아시아국가연합(아세안) 정상회의가 무산되기도 했을 정도다.

탁신은 2001년 총선에서 승리해 총리가 됐다. 1990년대 이동통신사업으로 성공한 부호였지만,총리 재직 시절 그가 편 정치는 오히려 친서민 노선이었다.

그는 저소득층에게는 공짜에 가까운 의료와 교육을 제공했고 농촌에 대한 대출을 확대했다. 대중교통망 등 인프라도 대폭 확대했다.

하지만 뇌물과 입찰 비리 등 고질적 부패가 끊이지 않았다. 그런 가운데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켜 탁신을 축출했다.

이후 태국 정치는 △쿠데타를 뒤집은 친탁신계의 총선 승리와 △다시 이를 뒤집은 반탁신계의 시위와 권력 장악 등 혼란의 연속이었다.

현재 태국 하원은 민주당 등 집권 연립정부나 친탁신계 야당으로 나뉘어 어느 쪽도 과반수에 못 미친다.

그 사이 글로벌 금융위기의 타격을 입은 태국 경제는 침체의 늪에 빠져 헤어나지 못했다.

탁신 재임 시절 태국 국내총생산(GDP)은 1.5배가량 성장했다.

탁신은 포퓰리즘 성향의 정책을 폈지만 한편으론 국영기업의 민영화로 요약되는 '탁시노믹스'를 추진해 효과를 거뒀다.

이런 사정이 얽혀 '옛날이 더 살기 좋았다'는 향수에 사로잡힌 탁신 지지자들이 거리로 뛰쳐나오게 된 것이다.

⊙ 중심 역할 못한 푸미폰 국왕

이번 태국의 정치적 혼란 뒤에는 그간 이 나라 정국의 중심추 노릇을 해 온 현 국왕이 제 역할을 못 했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태국에서 '살아 있는 부처'로 추앙받는 푸미폰 아둔야뎃 현 국왕은 그간 정국 혼란 때마다 '중심'을 잡는 태국 정치의 최후 보루였다.

1946년 즉위한 푸미폰 국왕은 사회적 약자에 관심을 쏟아 전폭적인 국민적 지지를 얻어 왔다.

이를 바탕으로 그는 정국이 불안할 때마다 개입해 안정을 이끌었다.

1973년 민주화 사태 때 시민들은 왕궁에 보호하고 여론을 주도해 타놈 군부정권을 실각시켰다.

1992년엔 쿠데타를 일으킨 수친다 장군과 반대파 잠롱 전 방콕시장을 부른 뒤 수친다를 질책해 망명길에 오르게 한다.

푸미폰 국왕은 재임 중 겪은 19번의 쿠데타와 16번의 헌법 개정 속에서 20여명의 총리 선출을 추인하며 정국을 안정시켰다.

하지만 탁신 정권의 등장 후 국왕의 권위는 삐걱거렸다.

2006년 탁신은 자신의 탈세 의혹으로 정국이 불안해지자 조기 총선을 통해 재집권한다.

그러자 군부는 그해 9월 쿠데타를 일으킨다. 당시 국왕은 쿠데타를 추인하며 반탁신 세력의 손을 들어 줬다.

하지만 탁신 지지 세력은 2007년 말 총선에서 승리하는 등 세력을 넓혀 왔다.

국민 다수는 정신적으로는 국왕을 지지하면서도 현실 정치에선 서민 보호와 경제 발전을 내세운 친탁신 정당을 선택한 셈이다.

후계 문제도 태국 정국을 혼란케 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고령의 푸미폰 국왕은 지난해 9월 방콕의 한 병원에 입원해 다섯 달 넘게 치료를 받고 있다.

국왕은 이미 아들 와질라롱콘을 왕세자로 지명했지만 그는 부패 혐의에 연루되는 등 부친 같은 지지를 얻지 못하고 있다.

⊙ '옐로셔츠'와 '레드셔츠'의 대립

이번 태국의 혼란은 '옐로 셔츠'와 '레드 셔츠' 간 대결로 표현되기도 한다.

'옐로 셔츠'는 왕실 · 엘리트 계층을 옹호하는 국민민주주의연대(PAD) 등 반(反)탁신파를 지칭한다.

이들은 국왕에 대한 존경의 뜻으로 왕실의 상징인 노란색 옷을 입는다.

이들 반탁신파는 2006년 탁신 비판 시위를 주도해 군부가 쿠데타를 통해 탁신을 축출하고 현 집권 여당인 민주당이 정권을 장악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반면 14일부터 반정부 시위를 벌이는 탁신 친나왓 전 총리의 지지자인 '독재저항 민주주의연합전선'(UDD) 회원들은 '레드 셔츠'로 불린다.

도시 빈민층과 농민들로 구성된 이들은 PAD를 비롯한 반탁신파인 옐로 셔츠와 구분하기 위해 붉은색 옷을 입는다.

이들은 군부의 음모와 옐로 셔츠의 불법 시위가 어우러져 현 정부가 탄생했다고 비난하고 있다.

서기열 한국경제신문 기자 phil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