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 “교육 효율성과 경쟁력 키우려면 입시 자율화해야”

반 “사교육 부채질하고 반 공교육이 뿌리째 흔들릴수도”

정운찬 총리가 본고사,고교등급제,기여입학제를 금지하는 이른바 '3불(不) 정책'의 재검토 방침을 거듭 시사해 논란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정 총리는 최근 열린 공교육경쟁력 강화 및 사교육비 경감 민관협의회에서 "고교등급제 금지는 이미 현실적으로 무너진 제도"라며 "수준 높은 학생을 뽑으려면 대학의 자율에 맡기는 것이 가장 좋다"고 밝혔으며, 이에 앞서 EBS의 '교육초대석'에 나와서도 "이제는 대학에 자유를 줘야한다"고 말했다.

3불 정책을 수정하겠다는 의도로 해석할만하다.

하지만 교육과학기술부는 여전히 3불 정책을 고수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주호 교과부 차관은 지난달 열린 한 세미나에서 "대학입시에서 3불 정책은 당연히 유지해야 한다"며 "입시에서 자율화를 확대한다고 해서 무조건 3불 정책이 폐지될 것으로 생각해선 안된다"고 강조한 바 있다.

이명박 정부의 교육정책 기조인 자율과 경쟁을 3불 정책의 폐지로 해석해서는 안된다는 얘기다.

3불 정책은 1999년부터 대입제도의 근간으로 자리잡은 이래 끊임없이 논란이 제기돼 왔다.

대학이 건학 이념에 맞는 학생을 가려 뽑을 수 있는 선발권을 제약함으로써 글로벌 경쟁력을 크게 떨어뜨리고 있다는 게 논란의 핵심이다.

게다가 정 총리도 지적했듯, 고교등급제는 의미를 상실해 가고 있으며 일부 대학들도 이런저런 형식으로 본고사와 비슷한 테스트를 실시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문제는 3불 제도의 수정 또는 폐지가 수험생과 학부모들에게는 물론 교육 현장이나 사회 전체에까지 엄청난 혼란을 몰고올 수 있다는 점이다.

3불 정책 재검토를 둘러싼 논란을 분석해본다.

⊙ 찬성 측 "교육 효율성과 경쟁력 제고 위해 입시 자율화해야"

3불 정책의 재검토에 찬성하는 쪽에서는 '대학 스스로 정한 방법으로 대학 특성과 교육 목표에 맞는 우수학생을 뽑아 가르칠 때 교육의 효율성과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을 그 논거로 제시한다.

정부의 입김으로 대입 제도가 수시로 바뀌어 학생 · 학부모가 고통 받는 폐해를 줄이기 위해서도 입시 자율화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각 고교 간 학력격차를 인정하면 대입전형 시 내신성적을 보다 많이 반영할 수 있어 공교육 정상화에도 기여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총리가 사립대에 대해서는 기여입학제를 허용할 수 있다는 입장을 내놓은 것은 열악한 사립대 재정을 보완하는 역할을 할 것으로 평가한다.

이명박 대통령의 대선 공약인 '3단계 대입 자율화방안'은 3불 정책 폐지를 의미하는 만큼 이번 기회에 정부는 구체적인 3불 폐지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다만 3불 정책이 폐지될 경우 초등학생 때부터 입시에 매달리고 사교육비가 더욱 증가할 가능성이 크므로 부작용에 대한 면밀한 분석이 선행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 반대 측 "사교육 병폐를 악화시키고 공교육 근간을 흔들 것"

이에 대해 반대하는 쪽에서는 "고교등급제와 본고사 부활은 망국병이라고 할 정도로 심각한 사교육의 병폐를 더 악화시키고,공교육의 근간을 흔들 수 있다"고 지적한다.

외국어고가 국제적인 감각을 지닌 글로벌 인재를 양성하는 곳이 아닌 명문 대학을 가기 위한 통로가 된 것이나, 또 다른 명문고로 불리는 자율형 사립고에 들어가기 위해 학교와 학부모가 담합해 입학 부정을 벌인 사태에서도 잘 확인되고 있다는 것이다.

기여입학제 또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찾기 어려운 우리 사회에서 계층 간 갈등만 부추길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한다.

3불 정책은 논란 속에서도 10년 넘게 시행 중일뿐만 아니라 입시과열 해소와 공교육 정상화,교육의 기회균등에 나름대로 역할을 하고 있는 만큼 국민이 수긍할 만한 부작용 해소방안이 마련되지 않는 한 섣불리 폐지를 거론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한다.

특히 정부조차 입장이 정리되지 않아 총리와 교과부 간 혼선을 빚는 사태가 일어나선 곤란하다고 꼬집는다.

⊙ 사교육 조장 등 부작용에 대한 만반의 대비책부터 강구해야

사실 학생 선발권을 대학이 갖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대학 입시가 평생을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학벌 만능주의가 만연한 우리 현실로 인해 학생 선발권이 유보되고 있을 뿐이다.

문제는 학생 선발권을 대학에 돌려줄 여건이 과연 갖춰졌느냐는 점이다.

현 정부들어 대학수학능력시험의 고교별 성적과 전국 학업성취도평가 결과가 공개되면서 학교 · 지역 간 학력격차가 큰 것으로 확인되는 등 지난 정부 때와는 여건이 크게 달라진 게 사실이다.

그런 만큼 3불 정책 재검토 얘기가 나오는 것은 자연스런 일로 볼 수 있다.

게다가 교과부가 2012년 이후 학생선발권을 100% 대학에 이관하는 대입 완전자율화를 공언해 놓고 있는 마당이고 보면 더욱 그러하다.

다만 3불 폐지가 교육현장에 몰고 올 사교육 조장 등 부작용에 대한 만반의 대비책부터 미리 치밀하게 강구하지 않으면 안된다.

대학의 투명하고 공정한 입시관리 능력에 대해 충분한 신뢰가 형성될 때까지 기여입학제는 상당기간 도입을 늦출 필요도 있다.

김경식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kimks5@hankyung.com


용어풀이

대입 '3불(三不)'정책

대학입시에서 본고사를 비롯 고교등급제,기여입학제 등 3가지를 금지한 것을 말한다. 1998년 발표된 '2002년 대학입시 개선방안'에서 처음 언급됐으며 지금까지 우리 교육정책의 축이 되고 있다. 대학의 학생선발에 관한 자율권과 정부의 교육평준화정책 간 충돌로 대학과 정부 사이에서 이의 폐지를 둘러싼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3단계 대입 자율화방안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2008년 1월22일 내놓은 것으로,1단계로 학생부 및 수능 반영을 자율화하고 2단계로 현재 평균 7개인 수능과목을 학생 수준과 대학이 요구하는 과목 위주로 축소하며 3단계로 대학이 자체 기준에 맞는 학생을 선발하는 완전자율화를 시행한다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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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신문 3월 1일자 A1면

정운찬 국무총리는 28일 본고사와 고교등급제,기여입학제를 금지하는 이른바 '3불(不) 원칙'과 관련,"이제는 대학에 자유를 줘야 한다"며 "3불에 대해 잘 연구해 보겠다"고 밝혔다.

정 총리는 이날 EBS 교육초대석에 출연,이같이 말했다.

정 총리는 "이제는 대학이 어떤 학생을 어떤 방법으로 뽑아서 무엇을 어떻게 가르칠지 스스로 정해야 한다"며 "(3불 정책을) 재검토해도 서서히 부작용이 없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다만 기여입학제에 대해서는 "국립대는 절대 안 된다"고 강조했다.

정 총리는 또 "교사들이 교육 외적인 일에서 벗어나게 교육보조교사 제도를 도입하는 방안을 강구하겠다"고 밝혔다.

장진모 한국경제신문 기자 jang@hankyung.com